영국생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다!

옥포동 몽실언니 2019. 12. 14. 01:35
어릴 때 딱 한번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나도 가족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해 본 적도 있는 것 같다. 
이 모든 기억이 예전 집에 살던 때인 것을 생각하면 초등학교 4학년 이전에 있었던 기억들이다. 

그렇게 크리스마스와는 별 상관없는 삶을 살아온 우리는 여느때처럼 영국에서도 그런 생활을 해 오고 있었는데, 지난 주말에 만난 선배언니가 아이를 위해 크리스마스 장식을 할 것을 권했다.  영국에서는 다들 하는 일인데다가, 아이가 학교를 나가기 시작하면 크리스마스 선물을 몇개 받았는지 (마치 한국에서 어릴 때 세뱃돈 얼마 받았는지를 친구끼리 자랑하듯이) 이야기하고, 뭘 받았는지 이야기하는 것이 아주 일상적이라고.  그리고, 크리스마스 선물은 미리 받더라도 크리스마스 당일이 되어야 뜯어볼 수 있으므로 그때까지 기다려야 해서 인내심 훈련도 되고, 선물이 무엇일지 상자를 흔들어보고 상상하고 하는 재미도 있다면서.  

그래서 우리는 아이 생일에, 아이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틴틴과 나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사러 쇼핑을 갔다.  사실 그날은 출산가방을 싸고, 곧 태어날 아기방 준비를 끝내기로 해서 휴가를 예약해둔 날이었는데, 하필 그날이 아이 생일이어서 아이만 빼고 우리 부부만의 시간을 보내 아이에게 좀 미안하긴 했던 날이다. 

아이를 보내자마자 거실 정리를 대충 마치고 근처 가든센터로 가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둘러보다가 우린 결국 저렴한 아고스 (Argos) 트리를 사기로 마음 먹고, 몇가지 크리스마스 조명과 장식만 사서 돌아왔다.  아이 생일축하를 마친 뒤 그날 저녁 크리스마스 장식을 설치했는데, 아니나다를까 아이가 너무너무 좋아했다.

그날 하루 멋진 데이트도 하고, 출산가방도 싸고, 아기방 준비도 끝내고, 휴식도 취하고, 좀 놀 수 있으면 놀아도 보자고 계획했던 우리는 뭐가 그리 피곤했는지 차로 15분이면 가는 가든센터만 잠시 둘러보고 오고도 너무 피곤해서 헉헉 대다가 겨우 출산가방을 대충 싸고, 방정리도 대충 한 게 전부였다.

그래도 간만에 둘이 마주앉아 잉글리쉬 브렉퍼스트를 먹으니.. 나름 데이트한 기분은 났다.  

동네 가든센터의 아침인데, 2 for 12.95로 저렴하면서도 맛도 좋았다~ 

이날 샀던 장식은 창가 책꽂이 위에 둘러줄 크리스마스 장식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하나랑, 눈내리는 led 랜턴 하나, 가짜 led 초 하나, 그리고 트리에 달 장식 3개가 전부였다.

가짜 초는 위의 것인데, 이건.. 사용한지 4일만에 사망하셨다. ㅠㅠ 마침 영수증도 어제 정리하며 버린탓에 환불도 불가능..  이 초는.. 사지 마세요, 여러분~ 남편은 8파운드에 사서 4일 잘 썼으니 하루에 2파운드어치 즐긴 셈이라고, 그 정도면 됐다고 한다. 

우리가 산 트리는 바로 이것. 이것보다 작은 트리를 가든센터에서 30파운드 넘게 주고 사올 뻔 했는데, 그냥 아고스에서 저렴한 거 사서 애들 어릴 때 쓰다가 애들 좀 크면 좋은 걸로 업그레이드하기로 했다.  아래의 트리는 단돈 11파운드!  2만원도 안 된다~

그리고 스노우볼 같은 걸 찾다가 세일 중인 스노우 랜턴으로 구입해왔다.  하얀 눈 내리는 배경에 서 있는 두 마리의 사슴~  그 옆에 어린왕자는.. 2002년.. 도대체 언제야.. 자그마치 지금으로부터 17년전.. 내가 난생 처음으로 간 나홀로 여행인 스위스에서 우연히 가게 된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어린왕자인데, 여지껏 나와 함께 하고 있다.  안녕, 어린왕자!

생일 카드 몇개와 아이 어린이집 선생님이 미리 준  크리스마스 카드를 피아노에 올리니.. 피아노가 이젠.. 정말 장식장이 되어 버렸다. ㅠㅠ 피아노 위에 올려둔 장식은 원래 내가 책꽂이 위에 둘러두려고 산 것인데, 우리 아들 잭이 그걸 피아노위에 저렇게 놓으라고 해서 아이가 시키는대로 했다.  그랬더니 뭔가.. 더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나면서 하얀 피아노에 잘 어울린다.  그렇게.. 잭 고모집에서 장식품으로 전락했던 피아노는 우리집으로 와서도 장식품이 되어 가고 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후, 집에 있던 "That's not my Santa"책을 이용하여 아이에게 산타의 존재를 알려줬다.  그리고, 우리는 요즘 산타와 산타가 가져다줄 크리스마스 선물 (리모콘으로 조정할 수 있는 자동 굴삭기!!!) 을 이용하여 아이를 적극 구슬리고 있다.  특히 기저귀 갈기 싫다고 도망갈 때와 잠자기 싫다고 버틸 때.  산타할아버지가 창 밖에서 몰래 보고 있다고, 잘 하는 아이들에게만 선물을 준다고 했더니 의외로 약발이 잘 먹힌다. 

아이를 키우려다 보니 나도 별 걸 다 해 보게 된다.  집 안 거실에라도 크리스마스 장식을 이렇게 소박하게나마 하고 나니 영국의 우울한 겨울이 한결 버틸만한 것이 되는 것 같아서 잭 덕에 우리도 크리스마스 기분 내는 겨울을 보내고 있다. 

부디 12월 25일까지.. 산타의 약발이 지속될 수 있기를..!!  

모두들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