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아. 너의 정체는 도대체 뭐니?
어떻게 어제까지는 에어컨 사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하더니, 오늘은 이렇게나 추울 수 있니?
넌 어쩜 이리도 확확 변하니?
일년내내 큰 변화 없이 항상 춥고 축축하더니, 그래도 여름이라고 요며칠 해를 반짝 보여주더니, 어느새 다시 본 모습으로 돌아가는구나.
일년을 보면 큰 변화가 없는 듯하지만 하루에도 해가 났다, 비가 왔다, 또 해가 났다, 우박이 내리기도 하니, 변화가 없다는 말은 취소해야겠다. 오늘만 해도 어제 그리 더웠다 오늘은 이리 추우니 변화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변화무쌍하구나.
영국아. 나는 니가 참 편하면서도 힘들어.
내 성인기의 절반 이상을 너와 함께 보냈으니, 이젠 니가 나의 고향인데도 나는 아직도 니가 낯설어. 특히 너의 이 변함없이 춥고 어둡고 축축한 날씨가 불편해. 잠시 잠깐 해를 보여줄 때도 너는 꽃가루알러지로 나를 힘들게 하지. 나만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틴틴, 잭, 우리 꼬맹이 뚱이까지. 우리 가족 모두를 콧물범벅, 재채기 연발, 눈물범벅으로 만들어버리는 너!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가 너를 잊을까 두려운거니. 한시도 우릴 편안히 놓아줄 때가 없구나, 너는.
영국아. 넌 나를 어떻게 생각하니? 난 너와 계속 함께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너와 계속 어울릴 수 있을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있는걸까? 혹시 너도 많이 불편하니?
니 마음을 알 수 있다면, 니 생각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 그거 알아? 난 말이야, 니가 조금 불편할 때마다, 아니, 너의 전부는 아니고, 네가 보여주는 날씨가 불편할 때마다 한국 날씨를 찾아본다? 서울 날씨가 어떤지, 제주도 날씨는 어떤지, 큰 언니가 살고 있는 부산 날씨는 어떤지 찾아봐. 그러면서도 나와 같이 영국에 살고 있으면서도 자주 만나지 못해 아쉬운 내 친구들이 사는 곳은 날씨가 어떤지 찾아봐.
그리고 또 항상 나와 틴틴이 결혼 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떠났던 여행지, 스페인 알메리아의 날씨도 찾아봐. 그리고 상상해. 여러 다른 곳에서의 나의 삶은 어떨지. 다른 곳에서 살면 어떨지. 그곳으로 여행이라도 가면 어떨지.
영국아. 이렇게 말하지만 난 니가 좋아. 힘들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네 덕분에 배운 것도 많고, 경험한 것도 많고, 얻은 것도 많아. 니가 아니었으면 얻지 못했을 것들이 많거든. 특히, 그토록 아팠던 내 몸이 이렇게 좋아진 건 다 네 덕분이야. 물론, 내가 그토록 아파진 것도 어느 정도는 너 때문이었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좋아진 것도 너 덕분, 틴틴을 만난 것도 너 덕분, 잭과 뚱이를 숨풍숨풍 낳은 것도 너 덕분. 아픔도 많았지만 추억도 많고 고마운 것도 많아.
그래서 말이야. 난 니가 나한테 좀 더 잘 해 줬으면 좋겠어. 지금껏 이렇게나 잘해줬으면 됐지 뭘 더 잘 해주냐고? 그러게 말이야. 난 욕심쟁이인가봐. 그래도 난 니가 나에게 좀 더 잘 해줬으면 좋겠어. 나도 많이 노력하고 있잖아. 내가 너와 함께 좀 더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 졸이지 않고 평온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나도 노력할테지만 너도 도와줘. 니가 도와줘. 난 도움이 필요해. 혼자서는 힘들어.
영국아. 너와 나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너는 언제까지나 너로 남을까? 언젠가 너는 내가 되고 내가 너가 될까? 아 정말 모르겠다. 너는 참 알다가도 모르겠고, 내 마음은 더더욱 모르겠다.
그저 내가 부디 내 일을 오늘 끝낼 수 있기만을. 이렇게 급한 날 나는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지. 꼭 급한 일 있을 때마다 평소 안 하던 짓을 굳이 찾아서 하는 사람의 마음은 도대체 뭘까.
영국아. 고마워. 사랑할게. 너를 사랑하도록 노력할게. 그러니 너도 나를 사랑으로 보듬어주렴. 고마워. 사랑하자, 우리!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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