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언니 다이어리/일기

셋째에 대한 욕심은 접기로 했다.

옥포동 몽실언니 2021. 5. 11. 08:36

셋째를 욕심냈다고?  아니, 내가?  만으로 석달뒤면 마흔하나가 되는 내가 셋째를 욕심냈다고? 

그렇다.  욕심을 냈다.  그것도 요 근래 며칠 그리 욕심이 났다. 

셋째를 갖기에 늦은 나이라는 어떤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셋째에 대한 욕심을 접기로 했다.  자녀 출산은 둘째를 끝으로 마무리하는 것으로.

 

셋째가 욕심났던 이유는..

둘째를 낳고보니 정말 이쁘다. 

첫째와 다르면서도 비슷한 부분을 발견해나가는 재미도 크다.  

우리가 그저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우리에게 관심을 갈구하고, 우리에게 의존하는 이들의 존재가 정말 고맙다. 

셋째가 있으면 셋째는 얼마나 더 귀여울까!  첫째, 둘째와 다른 어떤 이쁨을 보여줄까?

틴틴도, 나도 셋째이다 보니, 우리 셋째는 어떤 아이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셋째 고민

우리는 처음부터 아이를 하나만 가질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둘째는 계획적으로, 첫째 돌이 지나면서 모유수유를 중단하고 나의 생리가 돌아오자마자 계획하여 임신했다.  첫 아이 임신 후 생리 없는 시간을 보내다가 모유수유 중단 후 한 달 후부터 마법처럼 다시 시작된 생리.  처음 생리를 확인하고 나의 "가임가능성"을 확인한 후, 두번째 생리를 마지막으로 나는 두번째 임신을 했다.  

최근까지만 해도 셋째 생각은 별로 없었다.  틴틴이나 나나 셋째를 갖고 싶다는 마음은 항상 있었으나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었다.  내가 평생 전업맘으로 살 요량이 아니라면, 셋째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첫째, 둘째만 낳고 키우면서도 어느새 내 경력단절이 5년째에 접어들었으니, 셋째까지 가지면 내가 원래 하던 업으로 돌아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지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봄이 오고 (아직 영국 날씨는 많이 춥지만 - 낮최고 10도에서 13도 사이), 동네 새들과 거위, 오리들이 새끼를 낳아 아기 거위, 아기 오리들을 데리고 다니는 시기가 오자 셋째 생각이 났다.  셋째를 가지면 어떨까.  

둘째 뚱이가 돌이 지나 15개월쯤 되자 아기티를 많이 벗고, 어느새 토들러 느낌이 나면서 "아기"에 대한 그리움이 생긴 것도 한 몫 한 것 같다. 

우리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심각하게 이야기도 나눴다.  그러다 결정했다.  셋째는 갖지 않기로.  두 아이로 만족하기로. 

 

포기한 이유

포기한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우리의 나이와 체력.  우리의 재정적 여력.  우리의 육아 상황.  우리의 자유와 행복. 

체력적 한계

사실, 이건 가장 큰 고민이다.  체력이 너무 딸린다.  아이가 둘인 지금 상황으로도 우리 부부는 충분히, 아니 더없이 힘들다.  아직도 아이들 때문에 밤잠을 연속해서 자지 못하고 자다가 두세번 깨는 것이 일상이다.  딱 하루라도 6시간만이라도 끊어짐 없이 자 보는 게 소원이다.  지난 4년간 깨지 않고 연속해서 6시간이라도 자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단언컨대, 밤중에 깨지않고 8시간을 자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게 육아의 현실이다. 

우리가 부부끼리만 아이들을 돌봐야 해서 체력적으로 너무 힘든 상황이지만 한국으로 돌아갈 엄두를 못내는 것은 한국으로 돌아가 한국에서의 노동시장 업무 강도를 버텨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틴틴은 몰라도 나는 절대 불가능할 거라 생각한다.  지난 겨울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 마지막 2주간 바쁘게 일했는데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반), 그렇게 일 한 시간이 길어야 2주인데 그 기간동안 내 체력과 영혼이 갈리는 느낌이었다.  블랜더에 넣고 윙윙 갈리는 느낌.  그걸 1년 365일 하면서 살아간다?  난 자신이 없다.  

이 곳에서 주위의 도움은 받을 수 없어도, 내 경력 단절을 희생해서라도, 우리의 흐름대로, 우리 수준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육아활동을 하며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았다.

이 상황에 셋째?  지금 이 몸 상태로 셋째?  둘째를 가졌을 때 어떤 상태였는지를 생각하니 현재 상태에서의 셋째는 언감생신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임신 7-8개월의 부른 몸으로도 첫째 잭을 업고 안고 해야 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그걸 한번 더 한다고?  생각해보니 다시 온 몸이 떨어져나갈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 부부의 나이

올 여름이면 내 나이가 만으로 마흔 하나에, 틴틴은 마흔 넷이다.  올해 셋째를 가져서 그 아이가 태어나면 내 나이 마흔 둘에 틴틴 마흔 다섯.  만으로 이야기하니 이 나이지만, 한국에 가면 우리 나이가 마흔 셋, 마흔 여섯이 되는 나이다. 

사실 나이는 그 자체로는 큰 의미가 없다.  그러나 그 나이는 사회에서 차별의 요인으로 작동한다.  Ageism, 한국어로는 연령차별.  

한국에서는 기업들의 평균 퇴직 연령이 53세.  최근 몇 년 사이 퇴직연령이 좀 길어졌다고는 하지만, 어느 기사를 보니 대기업/중소기업 종사 중인 근로자들은 자신의 예상 퇴직 연령을 늦으면 53세, 빠르면 49세로 예상한다고 했다.  틴틴은 현재 영국에서 일하고 있지만 우리는 언제라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입장에서, 틴틴의 나이 40대 중반에 셋째를 가진다... 이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으로 돌아갈 경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무섭게 퇴직해야 하는 연령이 되니 말이다. 

재정적 여력

재정적인 것도 무시할 수가 없다.  아이 둘을 낳고, 과연 우리가 애들 대학 등록금을 지원해줄 수 있을까, 우리 애들은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던 중에 아이 셋이라니.  정말 답이 없다.  이건 수영, 테니스, 스키까지 시키던 것에서 스키 하나 빼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갑자기 한국 가족들에게 큰 일이 생겨 한국을 다녀오려고 하면, 아이 셋에 우리 부부까지 그 비행기 삯만 해도 그게 얼만가.  

집도 문제다.  아이가 셋이면 방은 몇 개가 필요한가.  새로 태어나는 아이가 사내아이어도 문제(체력적으로 우리가 너무 힘들테니), 여자 아이어도 문제(어려서부터 방을 따로 줘야 하니).

차도 바꿔야 한다.  아직 애들이 모두 어리니 카시트를 사용해야 하는데, 일반 5인승 차량은 뒷좌석에 카시트 3개를 놓을 수가 없다.  차도 밴으로 바꿔야 하는데 우린 지금 그럴 여력이 없다. 

육아 상황

우리의 육아상황이 힘든 것은 주변에 도와줄 가족이 하나도 없다는 것과, 우리가 체력이 약하다는 것(나이가 많다 보니 일정 부분은 어쩔 수 없다 ㅠ), 아이들은 모두 사내아이들로 에너지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둘째 뚱이가 태어났을 때, 뚱이 수유를 할 때마다 잭이 얼마나 싫어했던가.  방해하고, 수유 중인 내 몸 위에 올라타고.. 돈을 아끼려면 분유 먹이지 않고 모유수유를 해야 하는데, 위로 아이가 하나일 때도 아이의 방해로 모유수유가 힘들어서 모유를 일찌감치 끊어야 했는데, 위로 아이가 둘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출산을 권하지만, 엄마를 반기지 않는 노동시장 

아이가 셋 이상이 된다면 적어도 수 년간은 내 일을 포기해야 한다.  내 일과 병행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 투입되는 돈은 어마무시하다.  그 돈이 없다면 나의 노동을 외부 시장에 파는 게 아니라 우리 가정에서, 우리 아이들 육아에 투입하는 것이 현명하다. 

사회에서, 특히 한국사회에서 출산은 그렇게나 장려하는데, 출산한 엄마들은 노동시장에서 얼마나 환영받는가?   

수 년간 일 없이 아이들만 돌보고 나면 나는 그 때 다시 노동시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가?  이론적으로야 "그렇다"는 것이 대답이겠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가 않다.  자녀 양육과 부모님 병수발 등 가족을 위한 돌봄에 헌신하다가도 노동시장에 재진입한 대단한 엄마들의 이야기를 종종 뉴스를 통해 듣는다.  그런 것들이 뉴스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이고, 쉽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적인 걱정이 전혀 없다면 아이를 더 낳을 것인가?  노동시장 재진입이 어려워 전업주부로 평생을 살아도 어려움이 없는 형편이라면 셋째를 가졌을 것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육아가 돈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며, 우리의 행복이 전적으로 [자녀+돈]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므로. 

취준생들이 스펙쌓기에 열 올리는 것은 스펙이 취업에 도움이 되기 때문인데, 출산도 취업에 도움이 되는 스펙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출산을 이토록 장려하면서, 왜 노동시장에서는 출산은 스펙으로 인정하지 않는가? 

나이가 좀 많으면 어떤가, 출산 양육으로 인한 공백이 좀 있으면 어떤가, 그리하여 업무를 익히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리면 어떤가.  결국 일이 손에 익어 잘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리하여 출산한 엄마들도 직장에서 차별받지 않고 남성들과 비출산 여성들과 동등하게 일할 수 있다면, 엄마들도 일을 하며 자기 만족을 얻으며 집안의 생계를 이끌어갈 수 있다면, 그건 그 개인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 좋은 일 아닌가? 

너 좋아서 아이를 낳았으면서 왜 사회에게 책임을 지라고 하냐고?  나 좋아서 낳은 아이이지만, 아이들은 우리 사회의 미래다.  우리 사회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아이를 낳아야 한다.  우리 모두의 노후를 책임져줄 연금제도가 지속되기 위해서도 아이들이 필요하다.  

노인들이 각 성인들의 부모이지만, 모든 성인이 자신의 부모 가까이 살며 부모를 돌봐드릴 수 없다 보니 우리 모두 세금을 내고 그 돈으로 사회 전체가 노인요양제도나 연금제도 등을  통해 최소한의 부양을 함께 한다.  노인들이 우리 모두가 돌봐야할 어른들인 것처럼, 아이들도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고, 따라서 출산도 우리 모두의 일이다. 

아이들이 각 가정의 아이들이지만 동시에 이 사회의 아이들이기도 한 것처럼, 출산한 엄마들도 누군가의 엄마이지만 이 사회의 엄마로 존중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가 있다 함은 누군가는 그 아이의 아빠이고, 누군가는 누군가는 그 아이의 엄마이고, 삼촌이고, 고모이고, 이모이고, 이모부이다.  그 아이의 엄마는 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친구이고, 이웃이고, 내 올케이고, 처제이고, 형수다.  가족이 아니라도 이웃이다.  이웃의 자녀이고, 그 엄마는 옆집 엄마다.  이웃들이, 내 가족들이, 내 친척들이, 내 친구들이 모두 걱정 없이 아이를 낳고, 아이를 낳은 후에도, 몇 년간 아이를 키운 후에도 노동시장에 쉽게 진입하여 자신의 일을 하며 즐겁게 살아간다면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서로 다 좋은 것 아닌가?  

우리의 자유와 행복

결혼과 동시에 첫 아이를 임신하여 둘째가 15개월이 되는 지금까지, 근 4년간 여행다운 여행 한번 가보지 못했다.  그나마 올 겨울이면 둘째가 두 돌이 되면서 앞으로 좀 더 외출이 자유로워질 것을 고대하고 기다렸는데, 셋째를 가지면 다시 방콕, 집콕 생활을 2년 더 해야 한다.  이것도 자신이 없다.  

아이가 주는 행복은 정말 크다.  둘째가 태어나고 그걸 더 많이 느꼈다.  여전히 느끼고 있다.  그러나 부부인 우리도 살아야 한다.  자녀가 아닌 다른 데서 얻는 행복도 많고 큰데, 그 행복은 계속 미뤄두고 자녀로부터 얻는 행복만 계속해서 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우리 부부는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셋째까지 욕심을 내는 것은 안 되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우리가 올해 계획한 일들을 계획한대로 하기로 했다.

특별한 계획은 없지만, 조금씩 시간내서 운동도 시작하고, 각자 지난 4년간 미뤄왔던 일들을 조금씩 해나가기로.  이쁜 두 아이에게 집중하기로.

 

Abbey Meadow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