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생활

우리 가족이 주말 약속을 잡지 못하는 이유

옥포동 몽실언니 2021. 7. 5. 20:45

자주, 좀 더 규칙적으로 글을 올리려고 했는데, 또 그러지 못했다.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 블로그가 조용할 때는 애들이 아프거나, 내가 아프거나, 틴틴이 아프거나 할 때이다.

우리 가족의 고립 라이프스타일

코로나로 일년 반 넘도록 외부활동에 제약이 생겼지만, 우리 가족은 코로나 이전부터, 또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지금과 같은 수준의 고립생활을 해 왔던 터라 코로나로 인한 외부활동 제약이 가져온 불편이 별로 크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누구 하나가 아플 일이 잦다 보니 주말에 누군가와 약속을 잡으려 해도 그 주말에 우리 중 누구 하나가 아프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보니 되도록이면 약속을 잡지 않는다.  

지난 주말은 원래 왓포드에 사는 Y네 가족과 만나기로 했는데, 그 친구의 잡 인터뷰로 인해 약속을 한 주 미루었다.  참 다행이었던 것은 주말 내내 잭이 아프고, 내가 아프고, 틴틴도 아팠던 터라 약속이 밀린 게 다행이었다.  한시간이면 닿을 거리에 사는 후배네 가족이건만, 우리는 잭이 태어난 후 이 친구네는 우리 집을 두 번 와줬고, 우리는 석달 전 한 번 간 것이 전부였다.  영국에 있는 내 친구라고는 한 손으로 꼽을 만큼인데, 그런 가까운 친구임에도, 사는 거리가 겨우 한 시간 거리임에도 평균 잡으면 1년에 한 번 보는 게 전부라니. 

그런데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두시간 거리에 사는 나의 20년 지기 내 소중한 친구 J도 2017년 겨울 잭을 낳은 후 우리집에서 두 번, 중간 지점쯤 있는 이케아에서 한 번, 친구네 가족이 인근 지역에 놀러왔을 때 잠시 만난 거 한 번, 그리고 최근에 한 번, 총 다섯 번을 보았다. 이 중 두 번(이케아, 친구가족 나들이에 잠시 조인)은 잠시 얼굴 본 수준이지만 그걸 합쳐야 겨우 다섯번.  그나마 잭 8개월 때 친구와 나랑 단 둘이 런던 데이트로 세시간쯤 만났는데, 그 만남도 정말.. 너무 짧았다.  평균 내면 이 친구와도 1년에 한 번 보는 게 전부이다. 

그나마 후배네 가족이 우리 집 가까이 이사오면서 약속 없이도 들고 나며 쉽게 왕래할 수 있는 덕분에 '인간'과의 교류가 유지되고 있다.  

우리 가족이 이토록 외부 활동에 소극적인 것은 우린 너무 자주 아프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자주 아픈 이유

일단, 애기들은 자주 아프다.  난 이걸 나내 아이를 직접 낳고 길러보기 전에는 잘 몰랐던 사실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애들은 약하고, 자주 아프다. 

그러나 아픈 것도 애들 나름인데, 우리 애들은 자주 아팠고, 자주 아프다.  첫째 잭은 타고나기를 기관지, 호흡기가 약한 것 같다.  생후 한달도 되기 전부터 감기로 병원을 들락거렸고, 그 후로도 어린이집도 가지 않고 엄마와 집에만 머무는데도 감기가 자주 걸렸다. 돌이 지난 후에는 중이염을 세 번쯤 걸렸던 것 같고, 17개월에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후로는 콧물을 달고 살다가 21개월, 아이를 서너명만 돌보는 차일드마인더로 옮긴 후부터 감기와 이별했다.  

둘째 뚱이는 첫째 잭에 비해서는 덜 자주 아팠다.  황달로 입원하면서 후두염에 걸렸고, 그 후로는 특별히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다 한국에서 돌아올 때쯤 감기에 걸려 보름간 호되게 감기를 앓은 후, 3주쯤 감기 휴식기를 거친 후 영국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 때부터 현재까지 감기가 나을 틈이 없다. 

뚱이는 잭에 비해서는 튼튼한 편이지만, 제 아무리 형아보다 건강해도 형아가 나이를 먹으며 형성한 면역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올 4월부터 잭과 뚱이 모두 감기를 달고 살지만, 확실히 잭이 짧고 가볍게 지나간다.  뚱이는 더 쉽게 걸리고, 더 오래 지속된다. 

그나마 잭의 몸이 많이 튼튼해져서 다행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아이가 둘이다 보니 둘 중 누구 하나가 아플 가능성은 애가 하나일 때보다는 더 높고, 하나가 아프면 다른 하나가 반드시 옮아서 결국은 기간이 짧더라도 둘 다 아픈 시기가 어느 정도 발생한다.

우리 부부가 자주 아픈 이유

아이가 아프면, 아이는 밤에 자주 울면서 깨고, 그러다 보니 우리도 잘 자지 못하고 체력이 떨어지고, 결국 아이의 감기를 옮거나, 그러지 않더라도 체력이 저하되어 몸이 아프기 쉽다. 

아이 감기를 옮기로는 틴틴이 최고였다.  틴틴은 잭처럼 기관지, 호흡기가 약해서 어릴 때부터 '감기맨'이라는 별명을 가졌을 정도였는데, 그러다 보니 뚱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잭이 감기에 걸렸다 하면 틴틴도 무조건이었다.  아이 보다 하루 이틀 뒤부터 아이와 똑같은 증상의 감기를 앓는 것이다. 

잭이 아프고, 거기에 잭을 함께 돌보며 집안일을 함께 해야 할 틴틴까지 아프면 내 부담은 가중된다.  그러다 보면 우린 모두 쉽게 지쳤다.  주말이면 힘이 빠져 누굴 만나거나 어딜 가거나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뚱이가 태어났고(이렇게 적고 보니 그 와중에 둘째 임신 계획을 세우고 둘째를 낳을 생각을 한 우리가 참 무모했다. 그러나 뚱이를 낳은 건 우리가 한 일 중 가장 잘 한 일!), 뚱이 돌보는 일까지 더해지니 우리 부부의 체력이 약해지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2년간 잭을 키우며 누적된 피로, 약해진 체력, 더 노화된 몸으로, 잭을 키우며 겪었던 그 모든 것들을 다시 해야 하는데, 이걸 2살 더 형아인 잭을 키우면서 동시에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부부는 원래 몸이 약하다는 것.  틴틴은 틴틴대로, 나는 나대로, 우린 아이가 있기 전부터 그리 건강하고 체력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난 6-7년간 아주 심각하게 아프면서 학교를 휴학하고 복학하기를 반복해야 했을 정도로, 틴틴은 일평생을 건강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렇게 우린 둘 다 약골들이었다. 

우리에게는 육아가 주는 힘듬은 다른 것보다 체력적 한계가 가장 큰 어려움이다.  육아의 8할은 아이가 아플 때 아이를 돌보느라 겪어야 하는 수면부족과 육체적 한계라는 사실을 아이를 낳기 전에는 몰랐다. 

우린 '살기' 위해 우리의 삶을 최대한 간소화하고, '약속'을 하고 꼭 지켜야하는 약속을 최소화하고, 아이들의 컨디션, 우리의 컨디션을 우선으로 지내는 중이다.  주말여행(?)이라고는 앞서 언급한 왓포드 후배네로 가기 위해 약 한 시간 운전하고, 2주 전 J 가족과 만나기 위해 45분 이동한 것이 가장 장거리(?) 여행이었다.  그 외 우리의 행동반경은 인근 30분 이내 이동거리이다. 

지난 주말, 우리 가족이 모두 아팠던 것은 일주일 전 뚱이의 고열(코비드19 PCR검사 결과 음성), 그로 인해 며칠 밤을 울고불며 깨기를 반복하며 아이를 안고 소파 취침, 뚱이의 감기를 잭이 옮은 듯 하더니, 잭의 임파선 염과 기침 감기, 이 감기를 틴틴과 내가 옮으면서 온 가족이 아팠다. 

나는 사실 체력과 전반적 건강은 약하지만 다행히도 감기에는 잘 걸리지 않는 편이었는데, 지난 주는 헤이피버(Hay fever, 영국 내 꽃가루 알러지)로 인한 타격이 너무 커서 밤새 뚱이가 아니어도 양 코가 모두 막혀 코로 숨을 쉬지 못하고 입으로 숨을 쉬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서 목이 건조하고 컨디션이 최악이 된 상태였다 보니 아이 감기도 결국 옮고 만 것 같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주말 내내 힘든 시간을 보냈다.  잭은 임파선염 때문인지 팬티 한장 차림으로 1년 넘게 생활 중인 아이가 춥다고 하고, 밤이면 밤마다 기침하며 울고 발버둥치고.. 나와 틴틴은 우리대로 알러지로 눈이 붓고 목이 아픈 상태에서 기침까지 하며 최소한의 에너지로 '저절전 모드' 육아를 지속했다. 

오늘은 틴틴의 휴가일.  틴틴은 휴가 때 항상 아프다.  특별히 휴가다운 휴가를 위해 휴가를 쓰는 날 없이 늘 이렇게 휴가 때마다 틴틴은 아프고, 그러다 보니 꼭 해야 할 행정일을 처리하고(오늘은 은행 등), 집안일(가든정리, 세차 등)을 하다가 휴가가 끝난다.  

어쩜, 휴가마다 틴틴은 아픈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틴틴이 휴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쉬어가는 날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이기 때문이라는.

아이를 키우는 일은 힘들다.  죽을 만큼 힘든 것은 아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힘들다.  그래도 감기는 며칠 쉬면 낫는 병에, 내가 고생 중인 알러지도 관리하며 살아야 할 컨디션일 뿐 큰 병이 아닌 건 얼마나 다행인지. 

건강하게 살자.  즐겁게 사는 것도 좋은데, 건강해야 즐겁기도 쉬우니.

가끔 이렇게 둘이 함께 웃을 때, 보는 우리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 둘은 싸우는 순간이 98%, 함께 웃는 순간이 2%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