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일상

[영국생활] 여왕 즉위 20주년 기념 공휴일과 골목 파티

옥포동 몽실언니 2022. 6. 1. 08:00

안녕하세요. 

요즘 영국은 파티 분위기에 흠뻑 빠져있습니다. 

사실 요즘처럼 영국에서 먹고 살기 힘들었던 적이 있었나 싶은데요.  그런 와중에도 파티는 이어집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삶은 계속되기에...

영국에서 매년 열리는 가장 큰 행사라면 그건 4월에 있는 부활절과 12월에 있는 크리스마스예요.  한국의 추석과 설처럼 온 가족이 모여 연휴를 즐기는 기간이 바로 저 두 기간이지요. 

한국에 어버이날처럼 영국에도 어머니의 날과 아버지의 날 같은 게 있긴 하지만, 그런 매년 반복되는 날 말고도 지역별로 뭘 기념하고 축하할 일이 참 많아요.  영국에 오래된 위인들의 무엇인가를 기념하는 날이 많아요.  가령, 셰익스피어 탄생 200주년 행사, 이런 행사는 자주 있는 건 아니지만 제법 큰 이벤트가 됩니다.

매년 반복되는 건 아니지만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또 다른 행사가 바로 여왕의 즉위를 기념하는 행사, 주빌리로 불리는 행사인데요. 

제가 영국에 참 오래 살긴 살았어요. 2002년에는 어학연수를 하느라 유럽에 있으면서 영국 여왕 즉위 50주년 Golden Jubilee를 기념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2012년에 60주년 Diamond Jubilee를 거쳐 2022년 70주년 Platinum Jubilee를 기념하도록 영국에 살고 있네요. 

"Jubilee"라고 하는 것은 '쥬빌리'라고 읽어요.  어떤 통치나 활동을 이념하는 특별한 기념일을 쥬빌리라고 한대요.  그래서 여왕 즉위 매 10년마다 그걸 기념하는데, 그 명칭이 50주년은 골든 쥬빌리, 60주년은 다이아몬드 쥬빌리, 70주년은 플라티넘 쥬빌리라고 한대죠. 

2002년에는 6개월간 프랑스에, 4개월간 영국에 머물렀던 거라 잠시 머무는 여행객처럼 유럽땅에 머물며 영국에서 별 걸 다 기념하는구나, 여왕이 즉위한지 50년이나 됐구나 하고 말았는데, 그 때 그 여왕님이 정정하게 건강을 유지하시어 이제 자그마치 즉위 70주년이 되었습니다.

최근 영주권 신청을 위해 Life in the UK 라는 시험을 봐야 했는데, 모의고사(?) 문제 중에 저걸 묻는 질문도 있더군요.  몇 년도에 여왕 즉위 몇십주년을 기념했는데, 그건 무슨 기념일이었냐, 이런 식의 질문. 그 정도로 영국에서는 저게 제법 중요한 일입니다.  

실제 즉위일은 2월인데, 매년 6월 초에 공식 기념 행사를 한대요. 

매년 5월 마지막 주 월요일이 영국 공휴일인데, 영국 여왕 70주년 즉위 기념 공휴일을 6월 3일 금요일로 정하고, 매년 5월 마지막주였던 공휴일을 조금 미뤄서 둘을 붙여 올해는 6월 2일과 3일을 연달아 쉽니다.  그 덕에 목-금-토-일까지 긴 휴가가 생겼습니다.  

사실 여왕이니 뭐니 하는 건 문화적으로 참 이질감이 느껴집니다.

21세기에 여왕이라니요!

인공지능이니 뭐니 하는 이 시대에 여왕이라니요!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살고 있는 곳이 영국인 것을.


 

골목 이웃들과 함께 하는 여왕 즉위 70주년 파티

 

저희 골목에는 코비드가 들이닥치며 골목 이웃들이 함께하는 채팅방이 만들어져서 지금까지 계속 운영 중이에요.  그 채팅방에서 얼마전 다가오는 쥬빌리를 맞이하여 파티를 하는 게 어떠냐고 옆집 엄마가 운을 띄웠습니다.

저의 반응은 무반응...

사실 사회정책을 전공한 저로서는 왕족이 있는 국가에서 산다는 것도 뭔가 어색한데, 그 왕족의 즉위 70주년을 기념하는 파티라... 상당히 낯설었어요.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죠.  

다른 분들은 좋다고 대답한 아줌마들도 있었어요.  다만 어떻게 준비할지, 뭘 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다 옆집 엄마 Anna가 이번에는 개인톡을 보냈어요. 

6월 5일 일요일에 쥬빌리 파티하는 거 어떻게 생각하냐고. 

각자 가지고 있는 가든 체어와 테이블을 갖고 나와서 케잌과 디저트를 나눠먹자고.  가든에서 할 수 있는 게임이 있으면 갖고 나와서 아이들과 다같이 하면서 말이죠. 

개인 톡까지 와서 제안을 하니 이번에는 읽씹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주 좋은 아이디어라고, 우리 잭은 파티를 좋아해서 정말 좋아할 거 같다고, 우리는 가든 체어와 가든 게임을 준비하겠다고, 음식은 뭘 준비할지 고민을 좀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이후 Anna가 다시 단체톡에 글을 띄웠습니다.  

다들 그날 시간이 좋고, 파티 아이디어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 가든 체어와 테이블을 갖고 나와서 몇 시부터 다같이 기념 파티를 하자고 말이죠. 

그러자 각자 자신들이 준비할 것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의자 몇 개, 가든 게임 어떤 종류, 케잌, 쿠키, 기타 주전부리, 술과 음료까지.

그러던 중에 Judith 라는 아줌마가 제안했어요.  아이들 중에 초대장을 만들 의향이 있는 아이가 있냐고.  골목 파티를 하는 김에 초대장도 있으면 너무 재밌을 거 같다고.  

안타깝게도 저희 잭은 초대장 만드는 일을 너무 좋아할만한 아이이지만, 아직 스스로 그걸 다 해낼 능력은 없는지라 저는 이번에도 조용히 있었습니다.  다른 이웃들도 조용......

하던 찰나에 저희 집으로 초대장이 하나 날아들어왔네요. 

저는 이 초대장을 보는 순간 감탄을 그치지 못했습니다.  사실 소리를 질렀어요.  

"꺄악!!!! Anna 뭐야?!!!! 틴틴, 이것 좀 봐!! Anna 정말 미친 거 아냐?!!!!! 언제 이런 걸 만들어서 돌렸대?!"

그도 그런게, 저 파티를 주도하고 저 초대장을 직접 만든 Anna는 저희 잭과 뚱이 또래 아들 둘을 키우는 와중에 딱 두 달.. 아니네요, 달력을 보니 딱 한 달 전에 셋째 아들 Ethan을 낳은 아기 엄마거든요.  첫째 아이는 잭보다 1개월 빠르고, 둘째 아이는 뚱이보다 3개월 빨라요.  그런 두 아들을 키우며 파트타임 교사로 일까지 하던 엄마가 한달 반 전에야 육아휴직을 하고 딱 한 달전 셋째를 출산했죠. 

아니, 위에 애 둘에 신생아까지 돌보느라 정신이 없을 엄마가 어떻게 이런 걸 만들어죠?!!!!

전 기가 막혀서 바로 단톡에 글을 남겼습니다. 

"Anna, 넌 정말 놀라워, 정말 대단해!"

라고 말이죠. 

와... 저희는 정말 하루하루 겨우 겨우 살아가는데, 옆집 이웃은 저럴 여유가 어디서 나오는지.  감탄밖에 나오질 않습니다. 

파티 초대장에 힘입어 다들 파티 준비로 분주해요.  이웃들은 집 앞 골목을 장식할 bunting을 주문하고, 문 앞에 걸어두는 바스켓 형식 꽃바구니를 달며 파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에 정말 게으른 저는 뭘 준비하게 될까요?

생각은 하고 있는데, 전 정말 아이디어가 없어요.  bunting을 사자니 한번 쓰고 말 것에 돈을 쓴다는 것도 아깝고.  심적으로 영 내키지도 않아서 그건 주문 안 했어요.  대신, 색지를 이용해서 집에서 직접 뭐 하나 그냥 만들까 싶어요. 

이웃들이 산 걸로 추정되는 번팅은 이런 겁니다.  벌써 이웃 골목들이나 시내에는 이런 장식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어요.  확실히 파티 분위기 나고 흥은 돋우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어린이집을 오가는 등하원 길에 시내에 휘날리는 번팅을 보며 저희 아이들도 주말에 있을 골목 파티를 매우 고대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게 저도 뭔가 해 봐야 할텐데.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 심히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