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일상

[일상일기] 식욕없는 엄마라 미안합니다.

옥포동 몽실언니 2022. 6. 4. 08:00

영국에서 먹고 살다 보면 먹고 사는 일이 정말 힘겹게 느껴지곤 한다.

(아, 이건 물론 돈이 아주 많다면 힘겨움의 절반 이상은 없을 수 있다.)

힘겹게 느껴지는 일이 참 많은데, 그 중 하나가 매끼 밥을 해서 먹는 일이다.  그야말로 "먹고" 사는 일이 힘들다. 

첫째 아이를 낳은 후에는 나만 밥을 먹으면 되는 일이었다.  원래 남편은 아침 식사를 잘 하지 않았고, 아기는 엄마 젖만 먹으니 따로 밥을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나만 아침과 점심을 적당히 먹고, 저녁에 남편과 한끼 식사 하면 그걸로 하루 식사가 채워졌다. 

그러다 둘째를 가졌고, 그 아이를 낳았고, 낳자 마자 코비드와 함께 락다운.  그와 동시에 시작된 남편의 재택근무.  

나는 남편이 재택근무라 남편과 함께 집에 있을 수 있어서 참 좋은데, 코비드가 터진 후부터 집에서 삼시세끼를 챙겨먹는 건 조금 힘들다.  안 힘들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애들은 어린이집을 가서 어린이집에서 점심과 오후 간식을 먹고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들을 아침에 밥을 먹이고, 오후에 데리러 가기 전에 아이들이 차에서 먹일 간식을 싸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을 먹고, 가끔은 저녁 먹은 후에 2차 저녁을 또 먹거나 간식을 또 먹는다.  

아이들이 없는 시간에 남편과 나는 아침 토스트를 먹고, 점심에 점심을 먹거나, 아님 가끔은 아침을 건너뛰고 점심을 먹는다.

지난 2년 반 동안 우리 가족이 외식을 한 횟수는 손에 꼽을 수 있다.  밖에서 밥을 사 먹은 건 열번도 채 되지 않는다.  배달음식이라 해봤자 그마저도 도미노 피자를 두세번 정도 시켜먹은 것 같다.  그나마 가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드라이브뚜루에서 사다 먹은 게 몇달에 한번쯤 하는 외식이었다. 

우리의 고충은 가족이 모두 한식파라 더하다.  최근들어 한국음식은 비싸져서 사기도 힘들어서 최근까지 거의 반년이상을 김치도 없이 지냈다.  김치를 사먹자니 비싸고, 그렇다고 김치를 담을 정신도 없었다.  영국살며 김치를 담아본 적도 두 번밖에 없기도 하다. 

그저께는 야심차게 그간 한번도 해 준 적 없는 특이한 모양의 파스타를 삶아서 저녁 파스타를 준비했다.  아이들 취향에 맞춰 베이컨도 넣고 소세지도 넣고, 야채는 최소화했다.  버섯과 양파도 듬뿍 들어갔지만 그것들은 티가 덜 나니 괜찮았다. 

그런데도 우리 첫째 잭은 파스타가 싫댄다.  파스타에 들어간 소세지와 베이컨을 밥하고 먹고 싶댄다. 

하아아아아아....

결국 틴틴, 나, 뚱이만 파스타를 먹고, 잭은 자기가 원하는대로 파스타에 들어간 속재료를 반찬 삼아 밥 한그릇을 뚝딱했다. 

첫째 잭을 낳고 5년째 거의 집밥만 먹고 지내니 이젠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뭘 요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요즘 들어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입맛마저도 없다. 

과도하게 밥을 해대다보니 입맛이 사라진건가 싶었는데, 생각해보면 난 원래 식욕이 별로 강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예전부터 뭐가 먹고 싶긴 해도 뭘 특별히 먹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누가 뭘 먹자고 하면 같이 먹는 편이었지, 내가 어떤 맛을 찾고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식욕없는 엄마는 오늘도 식욕이 없다.

식욕이 없다고 뭘 먹지 않는 건 아니다.  좀 전에도 점심으로 미역국에 밥 한그릇을 뚝딱 말아먹고, 입가심으로 우리 애들 손바닥만한 쵸코칩쿠키를 자그마치 다섯개나 먹었다. 

그래도 식욕은 없다.  뭘 해 먹으면 좋을지 아이디어도 없고, 사실 뭘 하고 싶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저녁이 돌아오면 밥을 해야 한다.

6월부터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주 3일만 가니, 아이들이 집에 있는 주 4일을 주구장창 밥을 해야 한다.

아.. 도대체 뭘 해서 먹이나.  어떻게 메뉴를 다양하게 해야 하나.

맨날 똑같은 것만 먹여서 미안하다.  먹을 아이디어가 이리도 궁한 엄마라 미안하다.  

식욕없는 엄마라 너희들에게 다양한 먹거리의 기쁨을 주지 못하는 엄마라 미안하다. 

상에 올라오는 것은 늘 거기서 거기지만, 그래도 엄마가 고민은 한단다.  별 답이 없는 고민이라 그렇지. 


아래 사진: 

드디어 몇주전 남편이 옥스퍼드 한국슈퍼에 가서 김치를 사왔고, 그 덕에 우리가 김치찌개를 끓여먹을 수 있게 되었다.  김치찌개만 내기가 뭣해서 나름 광화문 맛집이었던 김치찌개집을 떠올리며 계란말이를 함께 내었더니 남편이 "뭘 요리까지 하고 그랬어~"라고 말해서 아주 민망했다.  계란말이가 반찬이 아니라 "요리"로 여겨지는 집이라니!  다시 봐도 너무 빈약한 밥상이다.  틴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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