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일상

해가 나자 파티를 해야 한다는 네 살 아들

옥포동 몽실언니 2022. 2. 28. 20:02

어제는 햇살이 정말 좋았다.  따뜻하고 화창한 봄 햇살이 쏟아졌다.  그래도 기온은 여전히 겨울이다.

한국의 겨울은 언제나 해가 많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저런 해가 정말 귀하다. 

12월 한달 중에 해가 있었던 시간은 총 29시간 뿐이었다고 한다.  앞집 Jen이 내게 그 말을 하면서, 믿을 수 있냐고, 이게 말이 되는 날씨냐고 하소연을 해서 알게 된 사실이다.  미국 동부 출신인 Jen에게도 영국 날씨가 아직 적응이 안 되나보다. 

갑자기 해가 반짝하고 나자 첫째 잭이 기분이 너무 좋았다. 

아이 운동화를 사러 나가는 길.  새 신발을 산지 넉 달도 안 된 것 같은데, 아이 신발에 이미 구멍이 난지 한달이 넘었다.  신발을 신고 도대체 뭘 하는 건지, 신발 내구성이 심하게 떨어지는 건지.  작년 10월 말에 산 신발이 두달도 지나지 않아 구멍이 생겼고, 그걸 버티고 버티다 이제야 새 신을 사러 가는 길이었다.  

벼르고 벼르던 운동화 쇼핑날인데, 아이가 차에서 바깥 햇살을 맞으며 신이 났다.

"엄마, 날씨 좋아! 날씨 정말 좋아!"

그리고 우리는 이웃 동네 쇼핑몰로 가서(우리 동네에는 아이들 운동화 파는 곳이 아예 없다) 아이들 각자 운동화를 한켤레씩 사고, 옆에 있는 마트에 들러 아이들 자동차 장난감을 하나씩 샀다. 

외출준비를 하는 동안 아이들이 너무 협조를 안 해줘서 "운동화만 사고, 바로 옆 마트가서 자동차도 한 대씩 살거야!" 라고 말해버린 탓이었다.  그러자 미적대던 아이들이 곧바로 준비해서 신나게 차에 올라탔다. 

남편이 새 직장으로 옮겨간 후 첫 달은 월급이 안 나와서 남편도 나도 마음을 졸였었다.   첫달 근무기간이 반달밖에 되지 않아서 회사에서 그 다음 달 월급일에 그 한달 반치를 같이 지급한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기다리면 나오는 게 월급인데 그것 가지고 뭘 마음을 졸이냐고 하겠지만, 회사가 망하면서 짤려 본 경험이 있는 틴틴에게는 월급이 날짜 된다고 무조건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고 생각이 됐나보다.  

옆에서 틴틴이 불안해하자 나도 덩달아 조금은 불안했다.  특히, 한달 반 동안 생활비 입금없이 또 저축으로 버텨야 하다 보니 그것도 불안했다.  유일한 수입이 월급인데 그것마저 두달을 건너뛰었으니. 

다행히 월급이 입금되었고, 틴틴은 새 직장 첫 월급 기념으로 아이들에게 장난감 선물을 하나씩 해주기로 했다.  작년부터 적자생활을 이어온 우리는 아이들에게 장난감이나 옷을 사 줄 여유가 없었다.  작년 연말, 아이들 크리스마스 선물과 생일 선물이 유일한 선물이었다.  아, 그 전에 마트에서 세일 중이던 작은 자동차를 하나씩 사준 적이 있구나! 

어쨌거나, 작년 한 해 내내 옷도 나달나달 다 떨어질 때까지 입고, 형아가 입어서 헤어진 옷을 둘째에게도 또 입히며 그렇게 아끼고 살았다.  잭 옷이 작아져서 새로 사야 할 때는 무조건 테스코.  예전에는 좀 더 좋은 마트인 막스 앤 스펜서에서 옷을 사서 입혔는데, 이제는 무조건 테스코 옷이다.  가격대비 품질이 훌륭하다.  

뭐든 사고 싶은 게 있더라도 살 수 없고, 필요한 게 있더라도 최소한으로만 구입해야 했고, 먹는 것도 최대한 비용을 아껴야 했다. 

아마 둘째 뚱이의 취학 전까지, 앞으로 2년 반은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다.  그 이후에도 현재와 같은 인플레이션 속에서는 계속 그렇게 살아야할 가능성이 높겠지만, 그래도 지난 1년은 우리에게 경제적으로 제법 고된 시간이었다.

다시 아이들 장난감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래서 틴틴이 본인의 이직 기념으로 아이들에게 약 20파운드 어치까지 선물을 사주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그 선물로 지난 토요일 왓포드 타운 센터의 장난감 가게에서 아이스크림 밴(4.99파운드)과 플라스틱 요요(4.99 파운드)를 샀는데, 남은 예산으로 어제 마트에서 아이들 각자 장난감을 하나씩 더 샀다. 

첫째 잭은 길다란 버스를 샀고, 둘째 뚱이는 응급자동차 세트를 샀다.  잭 자동차는 10파운드, 뚱이 자동차는 8파운드 짜리인데 할인해서 6파운드에 팔고 있었다. 

오랫만에 아이들 장난감을 기분좋게 사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잭은 계속해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엄마, 날씨가 정말 좋아.  파티해야 돼.  밖에서 파티하자."

"응? 파티?"

"응. 파티해야 해. 날씨가 좋으니까.  크리스마스 크래커는 안 해도 돼."

"응, 크리스마스 크래커는 크리스마스에만 하는 거야."

"응.  파티하자."

"밖에 해는 있어도 아직 추운데?"

"그래도 밖에서 해야 돼."

"그럼, 잭 니가 파티 준비해.  엄마도 참석할게."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잭이 정말로 파티 준비를 했다. 

아빠에게 아이들용 테이블을 밖에 내놔달라고 하더니, 부엌에 있는 내게 달려와서 접시 4개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케아 접시 다발을 건네줬더니 4개만 고르고 나머지를 내게 돌려줬다.

그리고 다시 달려온 잭.

"엄마, 컵도 4개 필요해."

"응, 여기있어."

그리고는 혼자 계속 왔다 갔다 부산했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너무 익어서 먹을 수 없게 된 바나나를 처리할 겸 바나나 케잌 반죽을 해서 오븐에 넣은 참이었다.

아이는 자기가 파티를 준비하는데 엄마가 케잌까지 구우니 더 신이 났다.  

파티 하기 전에 밥을 먹어야 한다고 했더니 밥도 잘 먹었다.  케잌 반죽을 오븐에 넣자마자 바로 만들기 시작한 새우야채 볶음밥.  아이는 볶음밥 너무 좋고, 새우 볶음밥 정말 좋다며, 자그마치 밥을 두 그릇 반이나 먹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파티 준비.  

넥타린은 나에게 껍질을 까서 잘라달라고 하고, 나머지 과일은 모두 자기가 준비한다고 했다.  

혼자 발판을 부엌에 놓고 열심히 과일을 씻고(틴틴 말로는 물에 한번 담궜다 뺀 게 전부인 것 같다고), 그 과일들을 식탁 접시에 세팅했다.

그 와중에 나는 낮잠을 거부하는 둘째 뚱이를 들쳐 업고 아이를 재웠다.  아이가 잠들자 포대기에서 내려서 눕혀놓고 내려왔다니 멋진 파티상이 차려져있었다.

각 의자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인형들을 모두 데려다 앉혀놨다.  잭의 의상은 잭이 가장 좋아하는 회색 내복 세트. ㅋㅋ 아이가 저렇게 입고 있으면 회색소세지 같아서 아이를 안고 데굴데굴 구르고 싶어진다.  

위 사진의 노란색 뚜껑 컨테이너에는 지난 몇주간 아이가 시간날때마다 잘라둔 색종이가 들어있다.  파티를 할 때 뿌리는 거라며 열심히 자르더니 드디어 제 날을 맞았다. 

과일만 갖고 하는 파티에 소금이랑 후추는 왜 필요하다는 건지.  볶음밥을 만들다가 소금을 찾는데 소금이 없다 했더니 아이가 자기 파티상에 갖다놓는 바람에 없던 것임을 아게 됐다. 

위 사진에 바닥에 놓인 하얀색 볼에는 물이 담겨져 있다.  아이들이 손을 씻기 싫어할 때 볼에 물을 담아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손을 씻기곤 했더니, 아이가 곧바로 그걸 따라했다.

"엄마, 이 물은 손 안 씻은 사람들 손 씻을 수 있게 해 주는 물이야.  손 안 씻었으면 이 물에 손 씻으면 돼." 

파티상이 준비되자 잽싸게 자리 자리를 차지한 둘째 뚱이.  잠바를 입으라고 하는데도 잭은 말을 듣질 않고, 뚱이는 추워서인지 잠바 입기에 협조적이었다. 

드디어 파티의 서막을 알리는 레코더 연주. 하하하하.  아이가 파티가 시작한다고 레코더까지 들고와서 첫 시작을 알렸다.  틴틴은 이웃들 시끄럽다고 레코더는 집 안에서 불라고 아이를 자제시켰다. 

아직 파티는 시작하지 못했다.  케잌이 덜 구워졌기 때문이다.  그 사이 나는 졸린 뚱이를 재웠고, 케잌은 다 구워졌다.  오븐에서 나오자마자 케잌을 바로 잘라서 잭에게 건네주니 그제야 파티상이 완성되었다. 

내가 뚱이를 재우는 동안(=케잌이 구워지도록 기다리는 사이) 잭은 체리와 딸기도 씻어서 상에 올렸다.  자기 상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블루베리, 넥타린, 체리만 가득이다. 

케잌까지 등장하자 신이 난 잭.   케잌을 제외한 모든 상차림, 수저와 과일세팅까지 모든 것이 잭 혼자서 한 작품이다. 

추운데도 꿋꿋이 밖에서 햇살을 즐기며 간식을 먹고 들어왔다. 

그리고 마트에서 산 자동차는 거실에서 실컷 갖고 놀다가 부엌 구석에 주차를 했다.  

형이 주차해둔 버스가 너무 탐타는 뚱이는 몇번이나 그걸 갖고 놀려고 건드렸다가 형이 난리치는 것을 보고 결국 포기했다.  그리고는 형아 버스 뒤에 자기도 자기가 좋아하는 차들을 가져다가 줄을 지어뒀다. 

우측에 줄 지은 작은 차량들이 어제 뚱이가 산 차들이다.  한 자리 비어있는 것은 소방차 자리인데, 소방차가 너무 좋은지 하루종일 손에 들고 다니느라 주차장에서 빠진 상태이다. 

긴 주말이 지났다.

뚱이는 어젯밤에 열이 펄펄 끓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밤에 약을 먹이고, 아이와 한참을 꼭 안고 있었다.  어제 낮에는 코피도 두 번이나 났다.  나를 닮았나 코피가 잘 난다. 

오늘 어린이집에서 무사히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기를.  엄마도 이제 시간이 없으니 일을 하러 가야겠다.  빨리 밀린 일빚을 갚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