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 제니퍼는 81년생, 그녀의 남편 에밀은 79년생이다. 우리 부부와 비슷한 또래들이다. 물론 우리 부부가 조금씩 나이가 더 많긴 하지만.. 하하.
그런데 결혼도 일찍 하고, 아이도 일찍 낳고, 우리보다 사회생활도 더 길게 해서 그런지 뭔가 풍기는 포스는 우리 부부보다 더 안정감 있는 느낌이 있다. 제니퍼는 코비드로 10년 다닌 회사에서 짤렸고, 에밀은 제니퍼가 짤린 그 회사에 근속한지 조만간 20년이 된다. 이번에는 자그마치 Principle로 승진을 했다고 한다. 개발자로서는 임원급이라고도 볼 수 있는 제법 높은 직책이다.
Jen과 산책을 하던 날, 에밀 아버지가 위독하셔서 아버지를 뵈러 자주 간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전립선 암이 있으셨는데, 작년 겨울부터 급격히 나빠지셨다고 한다. 암이 척추로 전이되어서 움직이실 수가 없는데, 항생제 치료를 해야 하는데 몸이 너무 약해지셔서 항생제 치료조차 받을 수 없는 상태에 있으시다고 했다.
이웃의 아버지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아팠다. 그들의 부모님도 우리 부모님 또래이실테니 남에 일처럼 여기지지 않았다.
특히, 한 골목에 산지 벌써 5년. 코비드 이전에만 해도 몇 달에 한번씩 앞집을 방문해서 손주들이랑 함께 놀아주시고, 같이 외식을 하러 나가는 모습을 본 것도 여러번이었다. 정정해보이셨던 그 분이 지금 그렇게 앓아누워계시다니.
그 이야기를 들은 후 에밀네 집에 차가 없거나 하면 갑자기 아버님께서 돌아가셔서 급하게 부모님댁에 간 건 아닐까 내 마음이 다 쿵 내려앉았다.
그러다 얼마 후 제니퍼와 또 마주쳤다. 잘 지내냐고, 어찌 지내냐고 안부를 서로 주고 받다 보니 에밀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우리가 산책한 날이 12월 30일이었는데, 1월 8일에 돌아가셨단다. 쿵....
이미 작년 겨울부터 워낙 약해져계셔서 다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큰 일은 큰 일이었다. 에밀은 외동아들. 혼자 남겨지신 어머니가 걱정되어서 어머니를 뵈러 자주 집으로 올라간다고 했다.
장례식은 2월 18일에 하기로 했다고 했으니 지난주 금요일이 에밀 아버님 장례식이었다.
한국은 사망 직후 장례식을 바로 준비하지만 미국이나 영국은 좀 더 천천히 하는 편이다. 일단 망자와 관련된 행정처리를 먼저 실시하는 것 같고, 각자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릴 시간을 갖는 것 같기도 하다. 영국에서도 인도 Sihk 교나 유대교, 이슬람교 등 일부 종교 집단의 경우에는 한국처럼 사망 직후 최대한 빠르게 장례를 치른다고 하니, 문화권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에밀 아버님의 사망 소식을 듣고 마음이 무거웠던 나는 다음날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집 근처 웨이트로즈에 들러 꽃을 사왔다. 우리 장을 보러 가는 거면 리들을 갔겠지만, 앞집 에밀에게 위로차 주기 위한 꽃을 사기 위한 것이라 그래도 근사한 꽃을 사주려고 웨이트로즈로 갔다.
뭘 사야 할까.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하얀 꽃을 사주는 건 좀 그런 거 같고. 결국 적당히 여러 꽃들이 예쁘게 다발로 되어 있는 것으로 하나 골랐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집에 있던 부고 위로 카드를 작성했다. 뭐라고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까. 인터넷을 검색해서 적당한 표현들을 담았다.
그리고 틴틴과 함께 앞집 문을 노트했다.
수척해진 에밀이 우리를 맞이했다. 키는 거의 2미터쯤 될 거 같은 장신에, 얼굴도 잘 생긴 친구이다. 영국 드라마 셜록의 주인공으로 한국에 많이 알려졌던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 같은 길쭉한 몸매에 얼굴 느낌도 비슷한데, 에밀이 훨씬 잘 생긴 버전이랄까.
에밀과 젠은 미국에서 공연장에서 마주친 사이인데, 그렇게 서로 사랑에 빠져 젠이 물 건너 영국까지 와서 정착한 데에 에밀의 잘생긴 외모와 친절한 매너가 한몫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에밀은 잘 생긴 편이다. 젠도 매력적이고 예쁜 얼굴이고.
무거운 이야기를 하다가 또 갑자기 엉뚱한 이야기를.
어쨌거나 원래도 마른 체형이었던 에밀이 살이 더 빠진 모습으로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우린 꽃과 카드를 건네줬다. 에밀은 고맙다고 했다.
아직 온갖 행정처리업무로 바쁘다고 했다. 아버지의 은행 계좌들도 모두 정리해야 하고, 정부 포털을 통해서도 해야 할 게 정말 많다고 했다.
여전히 친절하고 매너가 좋았지만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이었다. 그래, 뭐가 좋다고 웃음이 나겠는가. 그래도 우리를 밝게 맞아준 것만으로도 고맙지.
그날 오후 에밀네 창가에는 우리가 준 꽃이 화병에 담겨 있었다. 자기들도 보고, 밖에서도 보이게 거실 창가에 꽃을 꽂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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