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쓰기가 내게 갖는 의미
어린 시절 우리는 남에게 보여주고 검사받기 위한 일기를 쓰도록 강요받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기쓰기를 그렇게 시작하지만 막상 살다보면 그렇게 할만큼 일기쓰기가 우리 삶에서 갖는 역할은 참 크고도 중요한 것 같다.
일기를 쓰지 않으면 나의 지나간 시간들이 그저 흘러가버린 기억의 파편처럼 조각조각 존재하다가 하나 둘씩 사라져버려서 과거에 대한 희미한 기억만 남는다. 그러나 일기를 쓰면 내게 일어난 일, 그 일에 대한 나의 생각, 그 일로 인해 내게 일어난 감정의 소용돌이가 기록되고, 훗날 그 기록을 되새기며 지나간 일을 추억하기도 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한걸음 나아가려고 발버둥쳐보려는 시도라도 해보게 되기도 한다.
어릴 때 일기쓰기 숙제를 싫어했으면서도 보여주고 공유하기 위한 목적의 일기쓰기를 지속하는 나를 보니 이건 또 무슨 아이러니 같기도 하다. 나도 관종인가? 나도 관종이지. 우리 모두는 관종일지도. 아이들이 끊임없이 부모의 관심을 바라는 걸 보면 우린 모두 타고난 관종일지도.
바람 잘 날 없는 가족관계
어쨌거나 다시 내 근황으로 돌아와서 최근 몇 주간 나는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결혼한지 5년만에 처음으로 남편과 말다툼 후 말을 안 한 채로 하루를 넘기는 일을 해봤다. 또, 2년 반만에 영국으로 와주신 엄마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때때로 눈물 섞어가며 말다툼을 하기도 했다. 웃었다가 싸웠다가의 반복. 멀리 와주신 엄마 덕에 내가 이 나이에 엄마에게 이렇게 과한 사랑을 받아도 되나 감동하다가도 엄마의 잔소리에 고성과 눈물이 터져버리기도.
그러다 다시 한번 깨닫는 것은 엄마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그런데 엄마는 자꾸만 나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고 싶어하시는 것 같다 ㅠㅠ), 내 남편도 있는 그대로 존중해줘야 한다는 것.
남편을 사랑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또 하나. 남편과의 사랑은 과거의 사랑으로 지속되는 게 아니라는 것. 완전한 타인과 내가 인위적으로 형성한 관계인 만큼, 이 관계의 유지와 발전에야 말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특히, 그 관계의 정수는 로맨틱한 사랑에서 시작했는데, 그 로맨틱함의 속성은 변할지라도 끊임없이 상대를 "사랑의 눈"으로 보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부관계에 그렇게까지나 노력하면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결혼해서 살면서, 특히 아이들이 태어나며 자식까지 생긴 후에는 집안에서만도 어렵고 힘든 일 투성인데, 그 일을 부부가 파트너가 되어 해나가다 보면 우리는 전략적 동업자인지, 과연 과거에 사랑했던 사이는 맞는지, 이 동업자 관계는 비지니스가 끝난 후에도 지속될 수 있을지, 우리 관계가 그럴 힘은 과연 있는 관계인지, 내 앞에 있는 이 자가 과연 내 동업자가 맞기는 한지, 엑스맨인지 회의가 들 때가 있다. 항상 그렇지는 않겠지만, 내가 힘들고 피곤한데 상대도 힘들고 피곤한 상태이면 더더욱 그런 회의감을 느끼기가 쉬워진다.
어쨌거나 그런 폭풍같던 감정의 소용돌이를 지나면서 느낀 것은 그래도 내 옆에 있는 이 자는 좋은 자이고, 내게 한 때(??)나마 믿을만한 사랑을 보여준 이고, 이 동업자가 아니라면 내게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닌 처지이니만큼 이 자와 노력해서 내 부부관계, 가족관계를 잘 만들어가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라는 생각. 오랫만에 부부싸움을 해보면서 반은 웃자고 해 본 소리이고, 반은 진심인데, 어쨌거나 남편과의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없던 사랑도 생겨나게 하기 위해 나는 상대방을 바꾸려는 마음을 먹어서는 안되고, 그런 시도조차 해서는 안된다고 다짐해본다.
사실, 이렇게 다짐은 해보지만 현실에서의 나는 남편이 스스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조금이라도 바뀌게 하려는 노력은 이어갈 것 같은데, 그게 바로 내 문제다. 생각과 마음이 다르게 움직인다는 것!!! 그러지 않고 싶은 마음에 일기로 기록에 남기지만, 내가 계속 일기를 쓴다는 건 그만큼 그게 맘처럼 잘 안 된다는 증거가 아닐까.
(오늘의 일기는 뭔가 싸이월드 갬성. 훗날 다시보면 낯부끄러울 글을 장문으로 쓰고 있다.)
어쨌거나 남편과 그런 힘든 시간을 보냈던 데에는 엄마도 한 몫을 하셨다. 고생하며 사는 것처럼 보이는 딸이 안쓰러운 엄마. 그저 아이들 공원에서 뛰어 놀리며 행복하게만 사는 줄 알았던 딸이, 돈 한푼 두푼 아낀다고 허리띠 졸라매고 지내는 내 모습이 속상하신 모양이다. 엄마가 자꾸 눈물을 흘리니, 나도 내가 뭔가 잘못 살고 있는 건가 이런 생각에 빠지면서, 나를 그런 생각에 빠지게 하는 엄마를 탓하며 괜히 엄마랑 말다툼을 했다. 엄마의 마음도 있는 그대로 들어드려야 하는데, 이 나이 먹어도 그게 잘 안 된다.
이렇게 싸움이 잦았던 것은 우리가 '이사'라는 큰 일을 앞두고 있어서이다. 큰 일은 많은 일을 수반한다. 이사가 성사되게 하기 위해 변호사와 연락하고, 우리 집 구매하려는 자들과 연락하고, 부동산과 연락하고, 우리가 이사가려는 집 주인들과 연락하고, 이들의 부동산과 연락하고, 이들의 부동산을 통해 이들의 변호사에게 연락을 넣고... 이게 이렇게 힘든 일인줄은 겪어보기 전에는 정말 몰랐다.
남편은 반년 전에 이직한 직장에서 아직도 새 기술, 새 분야에 익숙해지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 중견 혹은 대규모 기업에서만 일하다가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니 직장 분위기도 많이 다른데다가 기술분야, 산업분야도 바뀌어서 적응하느라 힘이 드는 모양이다.
나는 나대로 한달전부터 아이 둘을 전업육아를 하고 있으나 나대로 힘이 드는데.
서로가 힘들다 보니 싸울 일이 많은 건 너무나 당연하다. 여유가 없다. 상대를 이해해주고 상대방 마음을 이해해줄 여유가 없다. 자기도 나름대로 애를 쓰고 많이 쓰고 있는데, 잘 하고 있다, 훌륭하다, 고맙다는 말을 더 자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오늘의 내 다짐들이 (언젠가는) 허공 속의 다짐이 (되어버리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되기까지 이번에는 좀 더 오랜시간 지속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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