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1일. 발가락 부상으로 시작한 5월. 5월 첫째 월요일은 영국의 공휴일이다. 주말 내내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지치고 힘들었던 시간을 보내던 중. 남편이 이렇게 집에 있을 바에 가든센터라도 다녀오자고 제안했고, 날이 조금 서 있는 남편의 눈치를 보며 아이들을 하나씩 외출준비를 시키면서 급하게 복도를 걸어나서다가 콱!!! 복도에 설치된 라디에이터에 발을 부딪혔는데.. 아아악.... 아파도 너무 아팠다.
그자리에 주저앉아 내 발가락을 꽉 움쳐잡았다. 너무 아파...
한참을 눈도 뜨지 못하고 발을 붙잡고 있다가 어찌된 일인지 살펴보려고 발가락을 살피는데... 발가락 모양이 좀 이상했다. 왼발의 발가락들은 오랫동안 신발 속에서 생활하며 발가락이 눌린 탓인지 전체적으로 엄지 발가락을 향해 모인 듯한 모양이었는데, 그날따라 제일 아픈 넷째 발가락만 방향이 다른 쪽으로 틀어져있었다. 다른 발가락들은 모두 엄지를 향해 있는데, 그 발가락만 발가락 끝이 새끼발가락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봐도 뭔가 좀 이상했지만, 뼈가 부러졌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혹시 발가락 한마디가 탈골된 건 아닌가 싶어서 발가락을 살살 움직여봤다. 그랬더니 클릭클릭... 발가락에서 뭔가 걸리는 소리도 나고, 발가락 끝마디가 앞뒤가 아닌 좌우로 움직였다.
흠... 뭔가 이상한데.... 발가락 마디들이 원래 이렇게 좌우로도 움직이는 것이었던가? 생각하며 오른쪽 발의 같은 발가락도 움직여봤다. 오른쪽 발의 발가락들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상해서 틴틴에게 말했다.
"틴틴, 내 발가락 좀 봐. 이 발가락만 왼쪽으로 틀어진 것 같지 않아?"
"글쎄? 잘 모르겠는데?"
"오른쪽 발이랑 비교해서 봐봐. 이 발의 발가락들은 다 이렇게 생겼는데, 왼쪽 발은 여기 이 다친 발가락만 이렇게 모양이 이상하잖아?"
"흠.. 난 잘 모르겠네."
"아휴, 정말 모르겠어?!!!! 이상하지 않아???? 발가락 뼈가 빠지거나 부러진 건 아닐까?"
"뼈가 부러졌으면 멍도 들고 퉁퉁 부어."
"그래? 난 붓지는 않는 거 같은데... 그런데 너무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어."
너무 아파서 한발도 걸을 수 없었던 탓에 우리의 외출 계획은 취소되고 나는 진통제를 먹고 침대에 누웠다.
발가락이 너무 아팠으나, 그 바람에 침대에 누워서 쉴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 좋았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다. 아무리 지나도 나아지지 않고, 점점 더 아파만졌다. 하룻밤 자고 일어난다고 더 나아질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당장 다음날부터 아이들 학교에 데려다주고, 둘째는 어린이집으로 운전해서 데려다줘야 하는데, 이걸 어찌하면 좋을지 걱정이 몰려왔다.
급한대로 응급의료상담 111 번호로 전화를 했다.
발가락을 다쳤다고 하자, 발가락의 모양이 원래 모양과 다르냐고 물었다. 모양이 다르다고, 그 끝이 다른 쪽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말하자 바로 인근 응급실로 가라고 안내하며 응급실 예약을 잡아줬다. 예약 시간은 저녁 8시.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아이들과 다같이 얼른 저녁을 먹고 다같이 채비해서 응급실로 갔다. 절뚝절뚝...
공휴일 저녁 시간, 응급실 대기장소에는 노인분들 몇 분과 젊은이들 다수가 있었다. 나같은 어른 아이 엄마는 나 뿐이었고, 왠 아시안 엄마가 어린 두 아이를 동반하고 발을 절뚝거리며 걸어들어오자 여러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영국에서 응급실에 대기해서 짧은 시간에 진료가 끝나본 적이 없다. 짧으면 4시간, 길면 4시간 이상 걸리는 게 응급실 대기였다. 그래서 이 날도 4시간은 각오하고 대기실에 앉았다.
다행히 나를 간단하게 문진한 간호사가 내 걸음이 불편한 것을 보고 바퀴가 달린 의자에 앉게 해주어서 그 때부터는 병원에서 좀 더 편하게 대기할 수 있었다. 간호사는 내 발가락 엑스레이 촬영과 의사 진단까지 짧으면 두 시간, 길면 네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고 하며, 일단 대기하되 아이들은 집으로 보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갑자기 엄마와 떨어지게 되서 좀 놀란 듯하기는 했으나, 엄마 곧 치료받고 갈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아이들을 안심시켜서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한참 대기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엑스레이를 촬영했고, 그리고 나서 대기실로 돌려보내져서 거기서도 한참을 기다렸다.
그러던 중 의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네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각오하고 있었는데, 두시간 정도만에 벌써 의사가 부른 것이다.
한쪽 구석의 침상으로 데려가서 의사 선생님께서 내게 말했다.
내 발가락이 부러졌다고.
발가락이 부러진 건 부러진 건데, 그걸 마치 내가 몰랐던 임신 소식이라도 전해주는 것처럼 "Your toe is broken!"이라고 발랄하게 말씀하시는 바람에 그 뒤에 마치 "Congratulations!"라는 말이라도 이어질 듯한 분위기였다.
"아 그렇군요.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라고 대답하자 의사 선생님이 어찌된 영문인지 물어보셨다. 복도에서 걸어나오다가 복도 라디에이터에 부딪혔다고 하자, 너무너무 흔하게 있는 일들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사고를 겪는다고 하셨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처음에는 발가락을 보호할 수 있는 'special shoe'를 갖다주시겠다며 자리를 비우셨다가, 어찌된 영문인지 그 special shoe는 걷기에 많이 불편하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시며 내 넷째발가락을 셋째 발가락과 함께 묶어서 테이핑을 해서 지지해주시겠다고 했다. 엄지발가락을 다치게 되면 special shoe를 착용하거나 수술까지 해야 할 수도 있는데, 나머지 발가락들은 lifting 되는 발가락이 아니므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응급실에서 두시간 넘게 대기한 끝에 부러진 발가락에 테이핑만 한 채로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처치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어두운 밤이다. 시간은 밤 열시 반. 이런 늦은 시간에 바깥 공기를 쐬어보는 게 얼마만인지. 아마 몇년 만에 처음이었던 것 같다. 둘째를 낳은 후로는 저녁에 외출해 본 적 자체가 없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의 그 밤 외출이 3년 반만에 처음이었다.
택시를 부르고 택시를 기다리는데 택시가 금방 오지 않고 두 번이나 취소됐다. 한국에서 문제시되는 야간 택시 승차거부 생각이 났다. 도시에서만 일어나는 일 같지만, 이런 한적한 영국의 시골(?)에서도 택시들이 캔슬되는구나 생각하며 주변 사람들 구경, 병원 구경하고 택시를 기다리니 드디어 택시 한대가 도착했다.
집에 돌아오니 틴틴이 아이들을 모두 재워웠다. 아이들이 엄마 없다고 무서워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아이들이 집에 와서 잘 행동했다고, 괜찮았다고 했다.
병원 가기 전에 저녁을 먹다가, 식사를 다 하지 않고 남긴 음식들을 틴틴이 그대로 랩에 싸 두었는데, 아이들이 집에 오자 마자 배가 고프다해서 그 음식들을 랩만 벗겨서 다시 먹였다고 했다.
아이들은 마치 저녁을 아예 건너뛰었던 아이들처럼 허겁지겁 남긴 밥을 싹 다 먹어치웠다고 했다. 밥을 먹으며 우리 첫째 잭이 아빠에게 여러번 물었다고 했다. 그게 바로 일전에 "너 T냐?" 라는 글에 올렸던 에피소드.
"아빠, 엄마 어딨어?"
그러면 남편이 대답해줬다고 했다.
"엄마, 엡솜 호스피탈에 있어."
그렇게 대답해주면 아이가 밥을 계속 먹다가 또 물었다고 했다.
"아빠, 엄마 지금 어딨어?"
그럼 남편은 다시 대답해줬다.
"앱솜 호스피탈에 있어."
그렇게 묻기를 여러번 하자, 그 다음에 잭이 "아빠, 엄마 지금 어딨어?" 라고 묻는 말, 보다못한 둘째 뚱이가,
"엄마 앰솜 호-스-피-탈!"
이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
그렇게 다친 내 발가락은 다음날 자고 일어나자 발가락 주변으로 멍이 시퍼렇게 올라왔고, 그 발가락은 5개월이 다 되도록 아직도 다 낫지 못하고 아직도 아프다는 사실...
지난 달만 해도 많이 걸으면 발가락이 아파왔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진 편이다. 발가락을 전처럼 구부릴 수는 없고, 발가락을 만지거나 누르면 아프지만 그래도 적당히 걷고 가볍게 달리는 데에는 지장이 없어서 다행.
발가락 하나 부러지기만 해도 이렇게 몇 달간 불편했으니 앞으로는 몸조심할 것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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