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in 2023

[육아단상] 둘째 때문에 혼이 쏙 빠진 날

옥포동 몽실언니 2023. 6. 9. 20:32

오늘은 둘째 뚱이 때문에 아침부터 혼이 쏙 빠졌어요. 

사실 저희 첫째 잭 때문에 혼이 빠졌던 날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에 비해 둘째가 저희 혼을 빼 놓는 날의 수는 횟수로만 따지자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예요.  그렇지만 과거의 기억은 미화되는 법!  첫째 때문에 진땀빼고 힘들어했던 시기가 얼마나 지났다고, 이제는 그 시간들이 기억도 나질 않는 건 물론이거니와 아예 그런 적도 없었던 것처럼, 그야말로 '없던 일'처럼 여겨지기까지 합니다. 

우리 둘째 뚱이는 첫째에 비해서는 키우기가 수월한 편이었어요.  그 수월함에 제가 너무 맘 놓고 있었던 것일까요.  자신을 좀 더 손쉽게 다룰 수 있다고 믿고 있던 엄마에게 이제 그만 정신차리라고, 난 언제까지나 그렇게 쉽기만 하지는 않을 거라는 선언이라도 하듯이 오늘 아침 둘째가 울고 불고 난리가 났습니다. 

시작은 별것도 아닌 것이었어요.  아니, 늘 시작은 별 게 아닙니다.  그 '별 것'인지 아닌지도 사실 참 어른의 시간, 그 어른 중에서도 아이 부모의 시각이지,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 별 거 아닌 일이 절대 별 거 아니지만은 않습니다.  중요하죠.  네, 정말 중요해요.  

그건 바로... 배고픔!!!!!  허기짐...!!!!

아마 그랬던 것 같아요.  아침 6시가 좀 넘어서 잠이 깬 둘째.  잠이 완전히 깬 건 아닌데다가 아직은 일어나기 좀 이른 시간이다 싶어서 아이 옆에 함께 누워서 좀 더 잠을 청했습니다.  뒤척거리던 아이는 7시가 좀 안 되서 쉬가 마려워서 잠이 깼어요.  저는 아이 쉬를 뉘이고, 남편은 오늘 회사를 가는 날이라 출근준비를 하러 나갔습니다.

아이와 누워있던 제가 눈을 뜨니 7시 24분.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는데, 아이가 옆에서 그러네요.  

"엄마, 아이스크림 먹어도 돼?"

아침부터 아이스크림을 달라하는 건 아이스크림이 정말 먹고 싶어서일 수도 있지만 배가 무지 고프다는 상태를 암시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아침에는 안돼지. 밥부터 먹고.."

"엄마, 티비 봐도 돼?"

"티비?  오늘은 학교 가는 날이잖아.  학교 가는 날에는 아침에 티비 못 봐.  학교 갔다 오자마~자 티비 보여줄게.  밥 먹고 학교갈 준비해야지."

그 때부터 둘째는 수가 틀렸던 것 같아요. 

제가 밥 준비를 하며 어제 요리한 닭고기를 다시 데워서 잘게 뜯고, 당근볶음을 접시에 두며 밥을 거의 다 차려가던 찰나에 아이가 화가 나서 저를 때렸어요.  다른 사람 아프게 하면 안 된다고, 아이에게 방에 가 있으라고 했더니 아이가 방으로 가라고 했고, 아이는 방에 가서 서랍에 있던 선풍기를 꺼내와서 저에게 활짝 웃으며 선풍기를 보여줬다가, 밥을 먹자고 한 숟갈 떠서 아이 입으로 먹여주는데....

도대체 어느 순간에 아이가 화가 난 것일까요.  아이가 선풍기를 들고 식탁으로 왔는데, 제가 '이미 밥 다 식어버렸어.  선풍기 안 해도 돼.'라고 말한 바로 그 순간이었던 거 같아요.  선풍기를 틀어서 뜨거운 밥을 식혀서 먹고 싶었는데, 밥을 먹지 않고 지체하던 시간동안 밥이 다 식어버렸고, 그 사실을 제 입을 통해 듣는 그 순간 아이는 화가 너무너무 났나봐요. 

선풍기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저희 침실로 들어가버린 뚱이.  그리고는 울고 불고 난리가 났네요.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아이를 달래주려고 애를 써봤는데, 도통 그치지를 않았어요.  

오늘은 남편 없이 저 혼자 아이 둘 모두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양치를 시키고, 선크림을 바르고, 둘째 도시락도 싸서 둘째를 데리고 첫째를 학교로 데려다준 후 둘째를 차에 태우고 둘째가 다니는 프리스쿨(어린이집)으로 데려다줘야 하는데...

오늘따라 첫째 잭은 왜 이렇게 일어나질 않는지. 저는 부엌에서 둘째 도시락을 싸며 첫째야, 일어나라, 일어나서 밥 먹자..  계속해서 부르는데, 화가나서 삐진 둘째는 안방에서 울고 있고, 첫째는 잠에서 깰 줄을 모르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는 동안 저는 둘째 도시락 싸기를 마치고, 첫째와 둘째가 학교에서 마실 물을 챙겨 얼른 현관 앞에 갖다두고 이제 본격적으로 첫째를 깨운 후 둘째도 달래기 시작했어요. 

첫째는 이제 학교 가는 게 버릇이 된 건지 고분고분 말을 잘 들으며 밥도 잘 받아먹는데... 문제는 둘째.  

와.. 저희 둘째가 이렇게 이성을 놓고 악을 쓰며 우는 걸 아마 오늘 처음 본 것 같아요.  그야말로 멘붕.  첫째도 어릴 때나 저럴 때가 있었지, 어느 정도 크고 나서는 저럴 일이 없었는데, 오랫만에 겪는 상황에 저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  둘째가 배가 고프니 더 저렇게 악을 쓰는 것 같아 아이를 달래며 밥을 한 숟갈 먹여봤는데, 처음엔 받아먹고, 이내 다시 울고, 또 한번 받아 먹고 또 이내 울음을 다시 시작하더니 이젠 아예 그치지를 않고 악만 더 씁니다. 

휴우... 

둘째 달래러 안방 한번 다녀오고, 첫째 밥 한 숟갈 먹이고, 다시 둘째 달래러 들어가보고... 

아무리해도 둘째는 달래지지 않고, 시간은 째깍째깍 흘러만 가고..

둘째를 안고 달래보려하지만 자기를 안도록 허락하지도 않는 둘째.  

"미안해.  미안해.. 우리 뚱이 화가 많이 났구나.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해."

제가 둘째 화를 풀어주려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자, 첫째가 다가와서 그러네요.

"엄마, 엄마가 뚱이한테 뭐 했어?  뭐 잘못했어?"

"응......?  (어떻게든 화 풀게 해주려고 내뱉은 말인데.. 내가 뭐 잘못했나.. 생각해보다가..)  뚱이 마음을 엄마가 몰라줘서, 그거 미안하다고 하는 거야. 엄마가 뚱이 마음 몰라줘서.."

제가 그 말을 하자 뚱이는 울음이 더 커졌습니다. 

"엄마 안 좋아. 엄마 안 좋아!!! 으앙!!!!!"

"미안해.  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해.  우리 뚱이 아침부터 배고프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싶은데 엄마가 안 된다고 하고, 티비 보고싶은 것도 안 된다고 하고... 우리 뚱이 마음대로 못하게 해서 엄마가 정말 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해."

휴우...

옆에 와서 이런 저런 말을 거는 첫째 덕분에 분위기가 좀 분산됐고, 그 틈을 타 저는 둘째를 안은채로 식탁으로 자리를 옮겼어요.  둘째가 이러는 데에는 근본적으로 "배고픔"이라는 상황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으므로 어떻게든 식탁으로 데려와서 밥을 한 숟갈 더 먹여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왠일로 밥을 받아먹네요?  자기가 밥도 안 먹고 울고 화내고 있던 상황이었음을 잠시 잊은 아이가 자기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입을 벌려버렸고, 입에 들어온 밥을 막상 씹고 넘기니 기분도 좀 나아진 모양입니다.  아이가 한 숟갈 넘기자 저는 또 한 숟갈, 또 한 숟갈을 먹였습니다. 

그러다가 첫째가 뭐라고 말을 한 것 같아요.  무슨 말을 했었을까요.  기억도 잘 나질 않아요.  뭔가 얘기를 하다가 둘째가 웃었고, 그걸로 둘째 화는 그냥 다 풀려버렸습니다. 

"응?  이제 우리 뚱이 기분 풀렸어?  이제 기분 괜찮아?"

하고 묻자,

"괜찮아~" 

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씨익 웃는 아이. 

 

어휴...........

뒤끝이 없는 게 이 아이의 장점이긴 한데...  바로 그 직전까지 왜 그렇게 울고 불고 난리를 친 것인지...

 

아직 아이들 옷도 입히지 못했는데 시간은 이미 집을 나섰어야 하는 시간을 넘어서고 있고..

둘째 밥을 다 먹이자마자 저는 집안 곳곳을 뛰어다니며 첫째 둘째 옷을 입히고, 두 아이 양치를 시키고, 썬로션을 대충 얼굴에 발라준 후 첫째에게는 늦었으니 어서 신발 신으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자칫하다가는 처음으로 첫째를 지각시켜서 첫째 아이를 학교 교실문이 아니라 학교 오피스 문을 통해서 들여보내야할지도 모를 만큼 시간이 늦어져버렸어요. 

황급히 대충 준비를 다 하고, 너무 늦어서 차 타고 가야 한다고, 교실 묻 닫히게 생겼다고 아이들을 재촉에서 아이들을 차에 태웠어요.  그리고 부릉부릉~  집 앞에서 차를 돌려서 도로로 들어서자,

"엄마, 운전 잘 한다~"

첫째가 그러네요.  뭘 보고 잘한다고 하는건지.  

"아빠는 잘 못하는데, 엄마는 운전을 잘 한다."

푸훗... 운전을 잘 하는 건 아빤데... 

"아빠도 운전 잘 해. 아빠가 운전 잘 하지.  아빠는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잘 하는데, 엄마는 아직 잘 못 하잖아."

"엄마는 왜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못 해?"

"엄마는  고속도로에서 무서워서 운전을 잘 못하겠더라고."

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학교 도착.  운 좋게도 학교 바로 옆 도로에 주차할 수 있는 곳이 딱 한 곳이 남아있어서 얼른 주차를 했습니다.  게다가 시간도 늦지 않고 적당히 도착을 했어요.  둘째는 지각이지만 둘째가 가는 프리스쿨은 등하교시간이 조금 더 유연한 편이라 괜찮습니다. 


첫째를 들여보내고, 둘째를 다시 차에 태우러 오는데 둘째가 춥다고 어부바를 해달라고 하네요.  둘째는 업고 꼬마자동차 붕붕 노래를 부르며 차로 돌아오면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아침에 왜 그렇게 울었냐구요.  둘째가 그러네요.  어린이집 가는 거 싫다고.  어린이집 가는 거 싫어서 그런 거냐고 재차 물으니 그게 맞대요.   

그래... 너라고 뭐가 다르겠어..  엄마랑 떨어지는 거 싫고, 갑자기 낯선 환경에서 영어만 써야 하는 게 힘이 들기는 너도 마찬가지인 것을...  

엄마도 이해한다고, 힘든 일이라고..  엄마도 어릴 때 어린이집 가는 거 안 좋아했다고 이야기하다 보니 차에 도착했어요.  아이를 태우고 아이 학교로 가서 선생님께 오늘은 둘째를 30분 일찍 픽업하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나왔습니다.  둘째를 먼저 먼저 픽업한 후 첫째 데리러 함께 갈 수 있도록 말이죠. 


둘째를 들여보내고 나니 자유의 몸!  이제 테스코에 주문해서 동네 슈퍼로 배달해둔 저희 식재료를 받으러 갈 시간.  집 바로 앞에 Aldi에 가서 장을 보면 되는데, 아직 감기도 덜 낫고, 거기에 꽃가루알러지까지 겹쳐서 언제 갑자기 터져나올지 모를 기침과 재채기 때문에 이번 주 식재료를 배달을 시켰습니다. 

부릉부릉 12분을 달려 테스코 익스프레스에 도착했어요.  도착하니 배달차량이 기다리고 있네요.  처음으로 이용해본 서비스인데, 나름 편리했어요.   배달차량이 이집 저집으로 배달가지 않고, 배달차량이 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그 배달차량이 있는 곳으로 각자가 편한 시간(2시간 슬롯)에 와서 자기가 주문한 식재료를 찾아가는 시스템입니다. Click and Collect.  

집에 돌아와서 식재료를 모두 냉장고에 넣는 시간.  하아.. .남편이 집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집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니 아이들 등교부터 장보고 정리까지 일이 정말 많네요.   장을 볼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장보기도 일인데 장 봐온 것을 집어넣는 것도 정말 큰 일이에요.  이건, 빨래도 일이지만 빨래를 다 하고나서 빨래를 걷어서 갠 후 아이들 옷은 아이들 옷대로, 제 옷은 제 옷대로, 남편 옷은 남편 옷대로 정해진 곳에 집어 넣는 게 또 큰 일인 것과 마찬가집니다.

차에서 짐을 빼는데, 현관 옆에 꽃이 피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하는 노래가 생각나는 상황!  

갑자기 팬지가 여기 왜?? 그런데 꽃의 색깔이 익숙해요.  작년 늦여름, 이 집으로 처음 이사왔을 때 문 앞에 팬지가 가득 담긴 꽃바구니를 걸고 2-3주 지낸 적이 있는데, 그 때 떨어진 꽃씨가 싹을 튼 것일까요.  바구니를 걸어두었던 그 자리 바로 아래에 작년 바구니에서 자라고 있던 팬지와 똑같은 색의 팬지가 빼곡히 고개를 내밀고 저를 반겨주네요. 


아침부터 혼쭐이 났던 저는 오늘이 올해들어 처음으로 집에 혼자 있는 날이에요.  올해들어 집에 혼자 있는 게 처음이에요.  혼자 집에 있을 때는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건 불편하지만 집에서 제 맘대로 하고 있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남편이 절대 열지 않는 작업실 창문을 활짝 열고, 커튼도 활짝 젖혀서 창밖의 빛과 풍경이 방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했습니다.  우리집에 유일한 남향 방이거든요.  오전에도 환하게 빛이 드는 방. 

해가 참 좋다, 날씨가 좋구나.. 잠시 감상에 빠졌다가 겨우 두시간 후면 다시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급해지네요.  

오늘의 글은 여기서 마치고 저는 제 할일을 하러 가보겠습니다. 

모두들 건강하고 즐거운 여름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