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 아침 8시 31분. 학교 가는 길. 이날은 틴틴과 잭이 앞서서 가고, 나와 뚱이가 뒤따라 가고 있었다. 손을 맞잡고 가는 틴틴과 잭의 키 차이가 언제 저렇게 줄었나 놀라워서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얼른 꺼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5월 22일 목요일 오늘. 예전 사진을 뒤졌다. 지금 집에 이사와서 아이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첫 학기. 2022년 11월 10일에 찍은 사진을 발견했다. 3년 전 가을에는 아이 키가 틴틴의 팔꿈치까지 밖에 닿지 않았는데, 지금은 팔꿈치를 훌쩍 넘어 윗팔의 가운데쯤까지 키가 자랐다. 아이가 입고 있는 파란색 학교 외투가 2022년 가을 입학 때 산 것인데, 저렇게 컸던 옷이 지금되어야 딱 맞는 옷이 되었다.
잭과 아빠의 과거 키차이 사진을 찾다 보니 그 시절 잭을 학교에 보내고 나서 아이 하교 시간이 될 때까지, 뚱이와 나 둘이서 동네 곳곳의 놀이터와 공원을 탐방하며 지낸 사진들이 가득하다. 12개월 돌부터 쉬지 않고 방학 없이 연중 어린이집을 다녔던 뚱이. 이사와서 처음으로 엄마와 단둘의 시간이 생겼다. 그것도 아주 많이.
넌서치 파크(Nonsuch Park)에 가서 다람쥐 구경도 하고,
앱솜 (Epsom) 시내 근처에 있는 레인보우 레저센터 내에 있는 소프트플레이 (키즈카페) 에 가서 땀흘려 놀고 오기도 했다.
아이와 나 둘이서만 돌아다니니 내 말동무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편하게 스케줄을 만들고 조정할 수 있어서 편하기도 했다. 아이가 학교 널서리 입학하기 전까지, 딱 1년만 있을 시간이라 생각하며, 오랫만에 육아의 즐거움을 만끽하고자 했던 시간들. 1년일 거라 생각했던 전업주부로서의 삶은 생각지 못한 복병 (큰 아이의 ADHD, 그리고 한번에 두가지 일을 힘들어하는 내 성격) 을 만나며 3년으로 장기화되고 있다.
이사온 첫해에 전업주부로서의 삶을 살면서 늘 마음 속에 약간의 불안함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데서 오는 불안함. 내 삶이 어디로 갈지, 아이들은 어떻게 자랄지, 나는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든 것이 막연했던 것 같다. 아이와 함께하는 그 시간이 특별하고 행복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의 불안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좋으면서도 살얼음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즐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예전의 사진을 보니, 그냥 불안 없이 그 시간을 누렸어도 괜찮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뭘 그리 불안해했나. 힘들다고 투정했던 그 시간들이 지금 돌아보니 그렇게 행복하기 그지 없었던 시간인데.
오늘은 시어머니께도 전화드리고, 우리 엄마에게도 전화를 드렸다. 시어머니께서는 울고 계시던 중에 전화를 받으셨고, 나와 이야기를 하시며 더 엉엉 우셨다. 눈물 날 땐 마음껏 우시라고, 괜찮다고, 잘 하고 계시다고 격려해드리며 나도 같이 울었다.
우리 엄마는 얼마전 암진단을 받으셨다.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날, 공교롭게도 바로 그날 병원에서 암 소견을 받은 우리 엄마는 4월 정밀검사에서 암이 확진되었고, 7월에 추적검사를 앞두고 계신다. 암 확진을 받은 때로부터 1-2주간은 엄마도 우울하고 심란해서 입맛도 없고 외출도 못하셨다고 했다 (우리 엄마는 완전 외향성이라 엄마가 집 밖을 안 나가셨다는 건 정말 우울하셨다는 뜻이다).
난 최대한 엄마가 암으로 두려운 마음을 덜 가지고 편안하게 생활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우리가 이제야 알게 되서 엄마가 암인거지, 엄마가 알기 전에도 엄마 몸에 있던 것 아니냐며.. 엄마가 이제 암환자가 되셨으니 엄마 영어 이름을 이제 아만다로 하면 되겠다고 말도 안 되는 농담을 건넸다. 암환자의 경험을 웹툰으로 그린 김보통 작가의 '아만자'를 활용한 작명이었다. 엄마는 깔깔 웃으시며 아만다, 그거 괜찮다고 좋아하셨다. 내가 건네는 시덥잖은 말장난에 엄마는 한껏 웃어주신다. 웃음장벽이 낮기도 하고, 셋째의 말장난을 좋아하기도 하시는 것 같다.
지금의 고민과 방황이 시간이 지나면 별 것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가 많다. 오늘 문득 아이들의 예전 사진을 보니 그게 더 와닿는다. 일어나지 않은 일과, 일어나지 않을 지도 모르는 일을 미리 걱정하지 말기로 한다. 걱정이 들더라도, 의도적으로 그 걱정을 내려놓는 연습을 해보기로 한다.
내가, 그리고 다른 이들도 평화로운 마음으로 일상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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