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언니 다이어리/일기

믿을 수 없지만 믿어주기로 한 남편의 진심

옥포동 몽실언니 2020. 8. 16. 08:00

오늘은 뭐가 그리 힘들었던가.

아침 일찍 남편이 가족 일로 왕복 1시간이 좀 안 되는 지역을 다녀와야 했다.  그 때문인지 (사실, 그게 아니라도 우린 늘 피곤한 상태이긴 하다) 오후가 되기도 전에 나도 틴틴도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잭이 졸려하는 오후. 뚱이도 졸려하니, 우린 이 참에 뚱이도 재우고, 우리도 잠시 쉴 요량으로 드라이브를 나섰고, 드라이브를 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피곤해서 결국 틴틴과 나는 잠자는 뚱이 곁에서 교대로 낮잠을 잤다.

먼저 잔 것은 틴틴이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에너지를 억지로라도 올리겠다며 주말인데 카페인이 들어있는 발포비타민을 한 잔 하겠다고 했다.  난 주말에까지 뭣하러 그러냐고, 그냥 잠시 올라가서 뚱이 옆에서 한숨 자라고 했다.

그렇게 남편을 올려보내고 나 혼자 잭을 상대하는데, 20분, 30분이 넘어가니 나도 힘들고 애도 아빠를 찾았다. 담요를 이용해서 shelter를 만드는데, 내가 아무리 노력해서 만들어줘도 전날 아빠가 만들어 준 것에 비할 바가 못 되니 아빠를 찾는 것이었다.

난 이 참에 잘 됐다 싶어 남편을 내려오라 하고 내가 뚱이 옆에 가서 누웠다.

잠이 쏟아졌다.

평소 낮잠이 적은 뚱이인데, 옆에 우리가 누워자면서 잠이 깨려 할 때마다 토닥이며 더 재워줬더니 한시간 자는 일도 드문 아이가 한 시간, 두 시간을 넘어 두 시간 반 정도는 잔 것 같다.  

그 사이 틴틴과 잭이 욕실에서 목욕도 하고, 욕실에 들어가고 나오는 소리에 애가 깨려 할 때마다 난 애가 조금이라도 더 잤으면, 그래서 나도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으면 하는 마음으로 애를 계속 토닥이며 잠을 청했다.

그렇게 노력했지만, 아니, 사실 그렇게 노력한 덕에 나도 애도 제법 잠을 잤고, 오랫만에 뚱이는 평화롭게, 자기 잘 만큼 자고 기분 좋은 모습을 낮잠에서 깨서 "아앙.."하고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난 알렉사를 불러 시간을 확인하고, 아이와 함께 몇 마디 주고 받는데, 아이 소리를 아랫층에 켜져있는 베이비모니터로 들은 틴틴과 잭이 뚱이를 데리러 올라왔다.

그렇잖아도 여러번 나를 깨우고 싶어했던 잭이 함께 올라 오고 있는데, 난 잠이 덜 깼고,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은 욕심에 얼른 이불을 뒤집어쓰고 몸을 최대한 납작하게 바닥에 붙여 이불 밑에 내가 있다는 것을 최대한 감춰보려고 애를 썼다.

미동 없이 숨까지 죽이고 방에 없는 척을 하고 있는데, 틴틴이 들어와서 뚱이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잘 잤어? 기분 좋게 잘 잤구나!

잭은 방에 들어오자 마자 날 찾는다. 

엄마?

두리번 두리번.

'방에 없는 척 하기 성공!!'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데, 그 때 틴틴의 한마디.

자, 잭, 그럼 우리 이제 엄마가 괜찮은지 한번 살펴볼까?

틴틴은 왜 내가 이불 밑에 숨어 있다는 것을 잭에게 알리는 것인가? 거의 성공한 계획이었는데, 결국 잭에게 내 위치가 들통났고, 아이는 내가 자기 다리 밑에 깔려있다는 사실에 아주 기뻐하며 "엄마!!" 하고 내게 달려들었다.

난 이불에서 나오자 마자,

아니, 틴틴, 뭐야?! 왜 얘기한 거야?

틴틴은 웃으며,

네가 괜찮은지 보려고 그랬지.

믿을 수 없는 말.

당연히 괜찮지.  그걸 말이라고 해?

난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어서 숨어있었던 건데, 내 마음을 몰라준 건지, 웃기려고 일부러 그런건지 틴틴의 그 한마디 말에 난 결국 잭의 손에 이끌려 거실로 내려가야 해서 얼마나 아쉬웠나 모른다.

***

그리고 아이들을 모두 재운 후, 드디어 우리만의 시간.

난 틴틴에게 다시 물었다.

"아니, 정말 왜 그런거야? 내가 조금이라도 더 자는 게 싫었어?"

"아니, 진짜 걱정되어서 너 괜찮은지 살펴보려고 그런거지."

"아니, 당연히 괜찮지.  정말 진심이야?"

"그럼. 네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을 자고 있으니까 숨은 제대로 쉬고 있나 걱정이 되어서."

"아니, 내가 숨을 제대로 쉬고 있나 걱정이 되면, 바로 달려들어서 확인해야지, 그걸 그렇게 느긋하게 이야기하면서 확인하는 법이 어딨어?"

"그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 아닐 거라는 건 나도 아니까..."

"그리고, 그렇게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자는 사람이 어딨어?"

"내가 어릴 때 자주 그랬거든."

"....그래?  숨막히게, 어떻게 그래? 난 그러고 잔 적 한번도 없어. 아무튼, 잭이 자꾸만 이불 뒤집어 쓰려고 하는 게 아빠 닮아서 그렇구만.."

하고 말도 안 되는 핀잔을 주며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끝이 났다.

틴틴은 정말로 내가 걱정되어서 그런 거란다. 그게 자신의 진심이라 하니, 믿어줘야지, 별 수 있나.

그리고 우리는 둘이서 감자칩 세 봉지를 먹어치웠다. 

한국이었으면 다양한 야식이 있었을텐데, 우리 야식은 고작해야 씨리얼, 아니면 감자칩이다. 

(씨리얼은 남들이 아침 한끼로들 먹는 것인데, 그걸 우리가 저녁 야식으로 먹는 것이니, 고작이라 하기는 좀 그렇다)

그렇게 나는 틴틴의 다소 어이 없는 진심에 어이 없는 웃음을 지었다.  어쨌거나 나를 웃게 해 주는 남자이니 그걸로 족한다.  아니, 사랑한다. 

(사진: 무슨 기분인지 갑자기 잭에게 목마를 태워줬다. 뉴버리 ridgeway에 주차하고 걸어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