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2017-20

두 아이 출산 후 3년 반만에 처음으로 맥주를 마시다

옥포동 몽실언니 2020. 6. 24. 07:44

오늘은 역사적인 날입니다!  제가 2017년 3월 첫 아이를 임신한 후 처음으로 맥주를 마신 날입니다!

예정에 없던 일이다 보니 냉장고에 맥주가 없던 관계로, 급하게 맥주를 냉동실에 잠시 뒀다 마셔서 그리 시원한 맥주는 아니었어요.  심지어 집에 맥주잔은 하나도 없어서 남편도 저도 머그잔에 맥주를 마셨습니다.  둘 다 술이 약하다 보니 Becks 작은 병 하나를 머그잔 두 잔에 나눠 부으니 잔의 2/3 정도 차올랐습니다.  오랫만에 건배하고 둘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건 모두 저희 잭이 일찍 자 준 덕분입니다.  자그마치 밤 10시에 말이죠.  이것도 늦은 시간인데, 요며칠 계속해서 11시, 12시에 자던 것에 비하면 저희에게는 10시도 감사합니다. 

틴틴이 가장 좋아하는 Walkers Cheese and Onion 감자칩을 먹으며 맥주 한잔 하고 나니 알딸딸... 합니다.  좀 전에 올린 블로그 글을 거의 다 써 가던 중에 맥주를 마셨는데, 그냥 랩탑을 덮고 자자니 아쉬운 마음이 들어 오늘의 맥주를 기록에 남기기로 했습니다. 

전 이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예요.  술이 원래도 약했는데, 임신, 출산, 수유, 또 임신, 출산, 수유로 오랜 기간 금주하다 다시 술을 마시니 술이 더 약해진 기분입니다. 

내일은 이번 틴틴 휴가의 마지막 날.  내일은 둘째 뚱이의 영국 여권을 신청하는 게 목표입니다.  이게 이번 휴가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는데, 아직도 못 했어요.  과연.. 내일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언제라도 한국으로 가고 싶을 때 (하늘길이 막히지만 않았다면) 갈 수 있도록 여권은 미리 만들어둬야 할 것 같은데, 당췌 시간도 나지 않고 시간이 나면 그 시간에는 그 일보다는 제 블로그가 더 쓰고 싶으니..이것 참 문제입니다. 

오늘 이렇게 술을 마실 수 있었던 것은 저희 뚱이가 분유를 잘 먹어주는 덕분입니다.  죽어라도 젖병은 싫다 했던 형과는 달리 뚱이는 분유를 잘 받아 먹어요.  탈도 나지 않구요.  처음 한 이틀가량 젖병이 싫다며 한시간씩 울어댔는데 (약 8주쯤 되었을 때), 그 시기를 넘어가니 분유를 잘 받아 먹더라구요.  이 참에 그냥 분유 수유로 넘어가기로 했고, 분유수유로의 전환이 잘 이루러지고 있는 중입니다.  하루에 한두번 정도만 모유수유를 하고 있거든요.  그것도 응급시.. 분유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뭐라도 먹여 잠 재워야 할 때. 

분유수유로의 전환 여부를 고민하며 틴틴과 의논할 때, 틴틴은 분유를 주게 되면 밤중수유를 본인이 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저녁에 분유를 든든히 먹여 밤중 수유 없이 재울 수도 있다는 점을 들어 적극적으로 분유수유를 지지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제가 좀 더 회복할 수 있을 거고, 그래야 저희 가족 모두가 좀 더 편안할 수 있으니까요. 

잭 하나 키울 때는 무엇이든 잭을 최우선으로 결정했는데, 둘째 때에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미안하면서도, 그렇게 해서 모두가 좀 더 편안한 상태에서 뚱이가 자랄 수 있다면 그게 뚱이 본인에게도 좀 더 나은 일이니, 그렇게 그런 상황도 정당화하게 됩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해요.  잭을 모유수유하던 때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이 참 다르거든요.  잭을 처음 키울 때는 어떻게든 모유를 12개월까지는 주고 싶었습니다.  모유가 안 나오는 것도 아니고, 모유가 있고, 모유를 줄 수 있는데, 그걸 단지 '제 몸이 힘들다'는 이유로 주지 않는 결정을 하는 게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뿐만 아니라 저희 잭은 모유 먹기를 정말 정말 좋아한 아이였던지라 모유를 끊을 수가 없어 13개월까지 힘겹게 모유수유를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둘째 뚱이는잭 때문에 둘째 뚱이 안고 모유를 주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분유를 줘봤더니 생각보다 잘 먹고, 게다가 첫째처럼 배앓이도 없어서 분유 수유가 크게 문제될 것도 없고, 5개월간 모유만 먹고도 체중이 10킬로나 되고.. (오늘 9.8kg), 뒤집기도 잘 하고, 방방방 점퍼루에서 점프도 잘 하니, 이만하면 모유 줄 만큼 줬다 싶은 생각이 올라왔어요.  제가 잡은 분유병을 제 손으로도 잡고 쪽쪽 빠는 아이를 보니, 내가 널 뱃속에서 열달이나 (실제로는 8.5개월 정도이지만) 품고 키워준 것만으로도 나도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올라와서 푸핫 하고 웃었습니다.  상황에 따라 사람 마음이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자기 정당화의 힘이 이런 거구나 하면서 말이죠. 

블로그에 이 글을 쓰며 함께 올릴 사진을 찾느라 사진첩을 열어 보니 오늘, 어제, 그제.. 아이들과 함께 보낸 하루하루의 모습이 새록새록합니다.  이쁘고, 재밌고, 사랑스럽습니다.  

이 글은 술기운에 쓰는 글이라 제가 쓰면서도 뭐라고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늦어 얼른 자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하기도 해서 더 그렇습니다. 

저는 오늘의 일과를 마치고 이만 잠자리에 들려구요.  "이따 자자" 요정을 꼬옥 안고 잘 생각입니다.  모두 좋은 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