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2017-20

둘째 육아 5개월차, 내가 남편에게 부탁한 것은..

옥포동 몽실언니 2020. 6. 10. 22:53

안녕하세요.  몽실언니입니다.

오늘은 오랫만에 부부 이야기입니다.

영국에서 락다운이 시작된지 어느새 11주가 꽉 차고, 다음주면 12주가 됩니다.  영국은 그렇게 12주간의 락다운 기간 후 6월 15일부터는 제법 완화된 락다운 상황을 이어가게 될 예정인데요.

3월 말의 락다운으로 큰 아이 어린이집은 갑작스레 문을 닫고, 남편 틴틴은 재택근무를 하게 되고, 저는 그 와중에 집에서 큰 아이와 두 아이를 모두 돌보며 남편의 점심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이 약 3개월의 기간은 저희 가족 모두에게 도전의 시간이었습니다. 

락다운 기간 중에 모든 가족이 집에 있게 되면서 가장 힘든 사람 중 하나가 "엄마"들인데요.  학령기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아이 공부 챙기랴, 집에서 근무하는 남편 챙기랴, 가족들이 집에 있게 되면서 삼시 세끼에 간식까지 챙기랴, 가족들이 내내 집에 있으면 당연히 집안일, 특히 청소와 설거지거리는 늘어나고, 엄마들의 자유시간은 원래도 적은데 더더욱 적어지니.  사실 엄마가 많이 힘들긴 하지만, 엄마는 엄마들대로 힘들고, 집에서 일을 하는 아빠들은 아빠들대로 힘들고, 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는 어린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힘든 그런 상황이 대부분의 상황이 아닐까 합니다. 

저희 집에서는 평소에도 어린이집을 너무 가기 싫어했던 첫째는 신이 났고, 이 아이에게 특별히 공부를 시켜야 하는 상황은 아니라는 점에서는 한편으로는 참 다행이에요.  그러다 갑자기 27개월 아이와 3개월 아이를 동시에 돌봐야 하는 저,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씨름하는 저를 보면서도 못 본 척 방문을 닫고 일을 해야 하는 틴틴은 참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모두 다 집에만 갇혀 있다보니 답답하기도 하고, 틴틴은 일 하는 데에서도 스트레스를 받고 (며칠전 틴틴의 회사도 전체 인원의 16%를 감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어요 ㅠㅠ), 가족 외에는 만나는 사람도 없고, 두 아이 때문에 잠도 잘 못 자고, 운동은 당연히 할 시간도 없는 상태로 지내다 보니 저도 틴틴도 피곤하고 예민해졌어요. 

다른 것보다 한달전쯤부터 저는 꽃가루 알러지가 아주 심해지면서, 콧속이 따갑고 목이 붓고 눈이 가렵고, 심한 재채기 발작에, 피부에는 두드러기 반응으로 발진까지 일어나면서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 극심한 꽃가루 알러지 때문에 몸이 너무 안 좋아서 그간 글을 올릴 틈이 없었답니다. 

제가 아프면 틴틴도 힘듭니다.  틴틴이 아파도 제가 힘들듯이 말입니다.  둘이서 기족 프로젝트로서의 자녀 보육을 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아프거나 힘들어지면 다른 한 사람도 같이 힘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힘들어지면 예민해지고, 예민해지면....?

네, 그렇습니다.  싸우게 되지요. 

그렇게 저희 부부는 지난 주 한 차례 부부싸움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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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부부싸움만 한 판을 한 건 아니고 그 외 자잘한 싸움도 두 세번 한 것 같습니다.  돌아서면 이유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그런 싸움들이긴 했지만, 그래도 싸움은 싸움입니다.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진다거나 그런 과격한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원래 그런 성격들이 아니니까요.  또, 같이 지내는 어린 아이들이 있는데, 애들 때문에라도 더더욱 그럴 수가 없습니다. 

앞의 자잘한 한 두 싸움은 양육방식을 둘러싼 갈등과 오해로 인한 싸움 (실은 갈등과 토론의 시간이었지만 둘 다 감정이 다소 격양되었으므로 싸움이라 할 만 합니다) 이었는데, 마지막에 한 싸움은 진짜 부부싸움이었습니다.  

그 부부싸움의 원인은 별 것 아니지만 별 것인 것이었어요.  틴틴이 피곤하고 지친 모습으로 있는 것 때문이었어요.  요즘 너무 심해진 제 알러지 증상 때문에 아침 저녁으로 청소를 하고 있는데, 틴틴이 그 청소를 너무 힘들어하는 바람에 싸움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틴틴 너만 피곤한 줄 아느냐, 밤중 수유하며 자고 낮에 내내 아이 돌보는 나는 더 피곤하다, 나는 안 힘들고 안 피곤해서 웃고 있는 줄 아느냐.  

내 알러지가 이렇게 심하니 이렇게 청소를 하는 거 아니냐.  니가 힘들 것을 생각하여 나도 이렇게 아이까지 등에 업고 청소를 함께 하지 않았냐.  내 얼굴에 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보았느냐.  나는 뭐 힘이 안 들어서 이렇게 애 업고 청소하는 줄 아느냐.  

요즘 너는 네가 피곤한 것에만 급급하여 나에게 격려의 말, 수고한다는 따스한 말을 얼마나 건넸느냐, 틈이 생기면 핸드폰 보기에 바빴지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 준 적 있느냐.  나 참 외롭고 힘들다. 

그렇게 한바탕 틴틴에게 퍼붓자 틴틴은 처음에는 억울한 표정을 하더니, 제가 조곤조곤 설명하니 이내 미안한 표정으로 바뀌었습니다 (부부싸움에서 틴틴이 처음에 억울한 표정을 짓는 것은 언제나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는 나름의 항변을 하였습니다.

내가 너를 위해 해 주는 게 없다고 하면 억울하다.  내가 밤마다 부엌 뒷정리하고 거실 치우고 하는 건 다 뭐냐고.  모두 다음날 아침에 너 좀 더 편하라고 하는 거 아니냐고. 

그래서 제가 말했죠.

그건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나를 위해 간접적으로 하는 무엇 말고, 직접적으로 하는 무엇인가를 해 준 적이 있느냐고.  특히 요 근래에.  

그랬더니 틴틴의 말문이 막혔어요.  

"인정.  그럼 내가 어떻게 해줄까?"

"몰라.  직접 생각 좀 해 봐.  맨날 그것까지 나한테 물어.  그런 거 생각하는 것도 힘들어.  내가 왜 힘든지 이야기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그래서 틴틴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는 것도 힘든 일이라고!!  나한테만 묻지 말고 본인 스스로도 좀 생각해보면 안돼?  나도 생각 좀 해볼게."

그리고 잠시 돌아서서 생각한 후, 저는 틴틴에게 이야기했습니다.

"틴틴이 어떻게 해 주면 좋을지 생각났어."

"뭐야?"

"날 보고 웃어줘.  나랑 눈 맞추고 웃어줘.  그리고, 날 웃게 해 주기 위해 노력을 좀 해 봐.  맨날 힘들다고 인상만 쓰고 있지 말고.  나라도 힘들지 않아서 웃고 있는 게 아니잖아."

"어떻게 하면 니가 웃을까?  춤이라도 춰?"

"응, 춤이라도 춰.  그렇게라도 해."

그래서, 그 날부터 틴틴은 저랑 눈만 마주치면 웃음을 지어주고, 가끔은 엉성한 자세로 아주 이상한 춤도 추고 있습니다. ^^ 억지웃음을 지을 때가 열에 여덟이지만, 억지웃음의 그 어색한 표정과 웃음이 웃겨서 결국 둘 다 웃음을 터뜨려요. 

코로나로 인한 집콕생활.  모두들 힘드시죠?  You are not alone!  혼자가 아니에요.  우리 모두가 힘들답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매일 조금씩만 더 힘내도록 해요~ 

모두모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