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2017-20

육아의 마법: 5%의 행복이 95%의 힘듦을 덮어버린다.

옥포동 몽실언니 2020. 9. 24. 06:19

머리가 너무 아프다. 

처음에는 이 두통이 안경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큰 애 때문에 안경이 삐뚤어질 때가 한 두번이 아닌데, 오늘 오후에도 큰 애가 내 얼굴로 덥쳐오며 안경이 삐뚤어졌고, 그러고 얼마 후부터 두통이 올라와서 안경 초점이 맞지 않아 머리가 아픈 줄 알았다.

그래서 애들 모두 잠든 후 방에 올라와 안경을 다른 걸로 바꿔썼다.  기대와는 달리, 온전한 안경으로 바꿔썼는데도 두통이 가라앉질 않는다.  생각해보니 잠이 부족했을 때 나에게 왔던 그 두통과 같은 두통 같다.  그런데도 나는 잠을 자지 않고 이렇게 오늘의 기록을 남긴다. 

그 이유는 애독하는 김민식pd님의 블로그에서 본 도서 리뷰 중에서 글을 씀으로써 글 쓴대로 살아진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기록함으로써 나의 하루를 완성하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다. 

제가 애독하는 블로그, 영어통역가 출신의 책쓰는 피디, 김민식pd님의 블로그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한 링크: https://free2world.tistory.com/


오늘의 기록을 짧게 남기자면, 

1. 나는 어제의 갑작스런 배탈로 오늘도 좀 힘든 컨디션으로 하루를 보냈고,

2. 둘째 뚱이는 아무 것도 잡지 않고 앉은 상태에서 온전히 자기 힘으로 일어서는 쾌거를 보였고,

3. 첫째 잭은 뭐든 무섭다 하며 엄마를 조정하려 들었다. 


오늘은 배탈 여파로 컨디션이 안 좋아서 더 힘든 하루였지만, 이런 힘든 하루도 아이들의 이쁜 짓과 남편의 지지 덕에 기꺼이 견딜만한 것이 된다. 


먼저, 배탈 이야기. 

어젯밤 갑자기 복통이 찾아왔다.  싸르르.. 하더니 너무 배가 아파서 팬티도 추스리지 못한 채 욕실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얼마나의 시간을 보냈나 모른다.  나는 아파 죽겠는데, 그 와중에 내 근처를 배회하는 잭 때문에 신경이 쓰여 죽는 줄 알았다.  아이는 제발 엄마 혼자 있게 해달라고 사정을 해도 안 들어주더니, 내가 계속 앓는 모습이 제 눈에도 심상치 않았는지 겁먹은 모습 반, 엄마가 그리 부탁하니 어쩔 수 없이 부탁 들어주는 모습 반으로 날 욕실에 혼자 두고 문 앞에서 날 기다려줬다. 

나중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좀 오래된 샐러드가 아깝다고 그걸 그냥 먹었는데, 그게 좀 잘못된 것 같다.  온 식구가 다 같은 음식을 온종일 먹었는데, 나만 먹은 건 그것 딱 하나 뿐이었기 때문이다.  몇년 전에도 샐러드를 잘못 먹고 크게 탈이 난 적이 있었는데, 그 후 첫 배탈.  배탈로 죽겠다는 생각이 든 게 얼마 만인지.  음식 아깝다고 꾸역꾸역 먹지말자. ㅠ 상태 안 좋은 음식 먹었다가 내 상태가 더 안 좋아진다.  알면서도, 몸소 경험하면서도 자꾸만 반복하는 어리석음, 이제는 끊어버릴 때! 

어젯밤의 배탈 덕에 몸무게가 몇백그람은 줄어든 것 같아 좋아했더니, 틴틴이 그건 수분부족으로 인한 일시적 효과인데 그걸 왜 좋아하냐고 피식거렸다.  그래도 난 좋은 걸!  고통의 댓가로 딱 하루라도 좀 낮아진 체중을 볼 수 있다면! ㅋ 


뚱이는 열심히 혼자 서기 연습 중!

뚱이는 요즘 정말 열심히 일어서기를 연습 중이다.  대체로 내가 누워있을 때 내 몸을 잡고 일어선다.  그런 후 팔을 뗀다.  그리고 서핑을 하는 사람처럼 팔을 벌리고 균형을 잡으려 애 쓴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아이가 혼자 서면 내가 늘 이렇게 수를 세니, 이제는 뚱이가 섰다 하면 잭이 먼저 숫자를 세기도 한다. 

그러다 오늘 저녁에는 날 잡지도 않고 혼자 서기에 성공했다!  

혼자 서기에 성공하면 아이는 항상 웃는다.  자기도 만족스럽다는 듯한 표정이다.  

"엄마, 나 대단하지?"

하고 말하는 것 같아서, 

"아이고 잘 서네!  어쩜 이렇게 잘 서~~" 

하고 엉덩이를 토닥거리거나 볼을 부벼 안아주며 항상 칭찬해준다. 

대단히 뭘 해 주는 것도 없는데 아이가 열심히 자라주니 그저 고맙다. 


사진: 가든에 나가 있는 형아와 아빠를 너무나 부러워 하는 중. 


뭐든지 다 "무섭다"고 하는 큰 아이

첫째의 어리광 부리는 법이다. 

정말 무서워서 무섭다고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20%도 안 된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아이는 엄살을 피우기 위해 "무섭다"고 한다. 

가령, 요즘 우리가 떠먹여주지 않고 아이 혼자서 밥을 먹게 하려고 하고 있는데, 엄마가 떠먹여 주길 원하는 잭은 이렇게 말한다.

"엄마, 떠먹여 주세요."

라고.  요즘 아빠는 절대 떠먹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이젠 엄마한테만 부탁한다.  

그럼, 아빠가 안 된다고, 떠먹여주는 건 뚱이처럼 기저귀 차는 아기들, 손 잘 못 쓰는 아기들이나 떠먹여주는 거라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점프도 할 수 있는 잭은 스스로 떠먹어야 하는 거라고.  그게 식사예절이라고 말 한다.  

그럼 아이는 자기는 혼자 떠먹을 능력이 없다고 일부러 숟가락에 밥을 잔뜩 푸며,

"못 해.  못 해.  너무 많이 떠질까봐 무서워."

라고 말도 안 되는 대답을 한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귀엽고 웃겨서 웃음이 나는데, 그 웃음을 참는 게 관건이다.  내가 웃어버리면 아이는 자기가 이겼다는 것을 바로 알기 때문에. 

그 외에도 자기가 하기 싫은 건 죄다 무섭단다.  매일 아침 하는 말.  계단 혼자내려가기는 너무 무서워.  하루 종일 자기 혼자서 뛰어 올라가고 뛰어 내려가는 아이가 매일 아침 하는 말이 바로 그 말이다.  아직도 엄마에게 안겨서 계단을 내려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은 우리 큰 애기, 잭.


힘든 우리의 하루, 우리 부부의 당충전은 아이스크림으로. 


아이 몰래 밤에 아이스크림을 먹곤 했는데, 이젠 밤에 너무 피곤해서 아이스크림 먹는 걸 까먹을 때도 있어서 오늘은 잊지 않고 낮에 몰래 먹었다.  나는 낮에 잠시 잭이 아빠와 2층에 올라왔을 때 한 팔에 뚱이를 안은 채 몰래 먹고, 틴틴의 것은 겉이 보이지 않는 사기그릇에 담아 냉동실에 넣어둔 후 틴틴이 작업실로 다시 일하러 올라갈 때 챙겨주었다.  그랬더니 틴틴은 나의 센스에 놀라며, 볼 뽀뽀를 해 줬다. 

"난 정말 몽실 너랑 결혼해서 너무 행복해.  정말 결혼 잘 한 것 같아!"

아이스크림 몰래 챙겨준 것,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그 작은 일에도 이리 좋아하는 틴틴을 보면 나도 절로 웃음이 나고, 나야말로 작은 일에도 이렇게 기뻐하고 나에게 고마워하는 이와 결혼한 게 얼마나 잘 한 일인가 생각하게 한다.  고된 하루, 남편 덕에 그나마 이렇게 웃음 짓는다. 

지치고 힘들지만 어찌저찌 하루를 겨우 마치고 돌아보면 남편과 지었던 웃음, 오늘 잭이 나에게 해 준 볼 뽀뽀와, 뚱이가 나에게 건네준 활짝 웃는 이쁜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게 육아의 마법이다.  하루의 95%가 힘듬으로 가득 차 있지만 나머지 5%의 행복함이 그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마법. 

내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독서모임에 참여해야 하고, 밤에는 애들 재워놓고 원고수정도 마무리지어야 한다.  그걸 생각하면 내일의 육아를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피곤하다. ㅠ 그러나.. 내일도 내일의 마법이 나를 살게 할지어니..  내일의 걱정은 내일 하기로 하고 나는 오늘을 이렇게 마친다. 

오늘도 수고많았어, 몽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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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그저께 일기였습니다.  글을 올리려던 찰나에 아이가 깨서 우는 바람에.. 오늘에야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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