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언니 다이어리/일기

[영국일기] 코로나 시대, 우리가족 적응기

옥포동 몽실언니 2020. 10. 6. 06:21

2020년은 바야흐로 코비드 시대.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이 바뀌었다. 

사실 올 해는 우리 가족에게 제법 특별한 해이다.  나는 연초에 둘째 아이를 출산했고, 여름에 마흔번째 생일을 맞았다.  어린이집에 가던 큰 아이는 동생이 생겼고, 코로나로 어린이집이 문을 닫으며 1 년간의 어린이집 생활을 청산했다.  둘째가 태어나면 그 한 해만이라도 재택근무를 하며 육아를 돕고 싶다고 바래온 남편 틴틴은 코로나로 인해 강제 재택근무를 시작했고, 현재까지 재택근무를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24시간을 함께 한 지 7개월.  그리하여 오늘은 우리 가족의 코로나 시대 적응기에 대해 적어볼까 한다. 

내가 겪은 인종차별

코로나 초기, 영국의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지기 전까지는 혹시라도 내가 한국인이라서 이곳에서 인종차별을 받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3월 영국 락다운 발표 다음 날, 아이 해열제를 구하기 위해 이른 아침에 찾은 동네 마트에서 날 지나치며 "차이니즈(Chinese)!"라고 내뱉은 중년의 한 아저씨.  영국와서 이런 노골적 인종차별 발언을 듣기는 처음이라 얼마나 당황했는지.  더 황당했던 것은 우연히 계산대에서 내 뒤에 섰던 그 아저씨가 내가 옥스퍼드 칼리지 쟈켓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자기도 옥스퍼드에서 공부했다며 내게 말을 걸던 것이었다.  심지어 그 아저씨가 다녔다고 하는 칼리지는 현 영국 총리인 보리스 존슨 뿐만 아니라 전 총리 데이빗 카메런 등 유명인사들을 많이 배출해낸 유서깊은 베일리얼 칼리지였다.  속으로 난 "So what?  그래서 어쩌라구요?"라고 외치고 있었으나, 현실의 나는 그 상황이 너무 불편해서 아저씨와 눈이라도 더 오래 마주칠까 무서워 서둘러 계산대를 떠났다. 

그 후로 현재까지 약 7개월의 시간 동안 우리는 단 한번도 대형마트를 가지 않았다.  그 때의 마트 방문이 올 해 딱 두번째 마트 쇼핑이었는데, 그 두 번이 올 해 마트쇼핑의 마지막이 되었다.  우리는 원래 첫째가 태어난 이후부터 시간을 아끼느라 식재료 쇼핑의 80% 이상을 온라인 쇼핑으로 해결해오고 있었다.  그래서 마트를 가지 않는 것이 엄청난 생활의 변화는 아니지만 가끔 기분전환 삼아서 또 아이와의 나들이 삼아 마트를 가던 재미가 있었는데 그 재미를 더이상 누릴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운 변화라면 변화이다. 

첫째 아이의 어린이집이 문을 닫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그 전까지 차일드마인더 (소규모 가정 어린이집) 에 주 4일을 가던 큰 아이 잭은 주 5일 전일로 어린이집을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생활은 딱 두 달간만 이어졌다.  영국에서는 3월 중순 락다운으로 모든 보육시설에서 필수인력 (key workers) 자녀가 아닐 경우에는 보육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이 참에 우리 아이를 돌봐주던 차일드마인더 베키는 아예 사업을 접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 아이는 본인이 너무나 원하던대로 "어린이집을 안 가는" 상황에 놓였다. 

베키는 아직 말문이 트이지 않은 잭이 말문만 트이면 굉장한 발달을 보일 거라며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이의 그런 발달을 하나도 보지 못하고 아이와 헤어졌다.  우리에게 사업을 접는다는 이메일을 적으며 지금 눈물을 흘리며 이메일을 쓰고 있다고 했다.  지난 12년간 이어 온 자신의 일을 한 순간에 접게 된 데에다 오랫동안 돌봐온 아이들과 갑작스레 이별하니 내가 베키라도 황망하고 아쉬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 아이는 자신을 돌봐주던 베키와 이별했지만, 요즘도 베키 이야기를 종종 한다.  나에게 자신이 베키집에 가던 때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할 때가 많은 것을 보면, 늘 울면서 베키네에 들어갔지만 베키와 함께 한 시간이 아이도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다. 

더더욱 놀라우면서도 웃긴 것은, 아이가 집에 있기 시작하면서 언어발달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는데 아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영어 악센트가 들어있는 한국말이었다는 것.  "하나, 둘, 셋"을 세면, "하나, 두wool, 세at" 이런 느낌의 발음이다.  시옷 받침의 발음은 한국 디귿 발음으로 나는 게 아니라 영어 t 발음에 유사하고, 리을 받침 발음은 한국어 리을 발음이 아닌 영어 "L" 의 발음이 나는 식이다.  어린이집을 다니는 동안에 아이가 하던 영어단어는 "Look (봐!), there (저기), no (아니), bye (안녕!)" 이 네 단어 뿐이었건만.  

그리고 몇 달이 지나 아이 말문이 완전히 트이고 나자, 아이는 갑자기 좋아하던 영어 노래도 영어 가사로 곧잘 부르고 (발음은 엉망이지만), 한 두문장 영어문장을 시켜보면 말을 잘 따라해서 놀랐다.  하지만 놀라지는 말 것.  바이링구얼 같은 수준은 아니므로.  

가령, 이런 식이다.  놀이터에서 친구를 마주쳤을 때, 친구가 "What's your name?" 이라고 물으면 아임 선우 라고 하면 된다고 몇번을 가르쳤는데, 그걸 기억하나 싶어 아이에게 What's your name? 이라 물으니 아이는 "세 살"이라고 대답하더라는. 

그래도 우리 아이가 틀리지 않고 잘 말하는 문장이 하나 있으니, 그건 바로 "Do you want to play with me?" 이다.  "너 나랑 같이 놀래?" 라는 말.  지인에게 받은 책에서 동물들이 자기 친구와 놀고 싶을 때 뭐라고 말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었는데, 그 책을 읽어주며 너도 다른 친구랑 놀고 싶을 때 이렇게 물으면 된다고 알려주니 그 문장을 너무 좋아하며 곧잘 따라말한다.  집에 있는 몇 달 사이 성큼 자란 우리 아이가 이제는 친구를 찾고, 친구를 좋아할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현실은 친구와 손을 잡기는 커녕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비매너"가 되었으니, 이렇게 안타까울 데가...

남편의 재택근무 7개월

운 좋게도 남편은 IT계열 종사자이다.  IT 계열은 코로나로 인해 자동화와 온라인화가 가속화되면서 오히려 시장이 넓어졌다.  

그러나 남편의 회사라고 해서 코로나로 인한 경기위축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미 한 차례 구조조정을 통해 17%의 인력을 감축했다.  우리 앞집 부부 제니퍼와 에밀은 남편과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제니퍼는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되었다.  12개월치 월급을 보상으로 주는 조건이라 제법 괜찮은 조건이다.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제니퍼는 아이들의 온라인 수업을 돌봐줘야 하기도 해서 요즘의 자유가 너무 좋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그간 10년 넘게 다닌 영국에서의 첫 회사에서 (제니퍼는 미국인이다) 짤렸는데 그 속이 그저 편하지만은 않을 것 같아 제니퍼를 꼬옥 안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우리에게 허그는 허용되지 않는 일. 

남편은 첫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실은 구조조정 대상이 된 직원들은 대부분 지원팀 직원들이고, 남편과 같은 개발자들은 많이 짤려나가지 않았다.  그런 사실과 무관하게 틴틴은 이전 직장들에서는 구조조정만 했다 하면 1순위로 짤려나간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에 이번의 생존은 틴틴에게 나름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틴틴의 말에 따르면, 요즘 들어 재택근무가 장기화되면서 슬슬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팀내 미팅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상호작용 하던 것에 비하면 온라인상으로 회의를 하는 것이 비효율적인 데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도 지치고.  

그래서인가, 요즘 틴틴 회사 뿐만 아니라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도 미팅 시 비디오 화면을 켜는 것을 "강하게" 권장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초기에는 비디오를 켜고들 일하다 재택근무가 장기화되면서 다들 잠옷이나 편한 옷 차림으로 일을 하며 비디오는 끄고 오디오로만 미팅을 했는데, 이제는 매니저에 매니저가 비디오를 켤 것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틴틴도 며칠 전부터 다시 비디오를 항상 켜고 일을 하고 있고, 그 바람에 나와 아이들도 낮시간 동안 틴틴 주변에 얼쩡대지 않기 위해 더 신경을 쓰고 있다. 

틴틴의 회사는 올 연말까지도 재택근무를 이어갈 예정이다.  요즘같은 시국에 일하러 나가지 않고 집에서 일 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특혜이다.  유럽에서는 요즘 재택근무가 가능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간의 차이가 매우 큰 상황.  의사, 간호사, 학교교사, 우체부, 배달부 등 필수인력들은 그들이 사회에서 수행하는 필수적인 역할로 인해 코로나의 위험에도 더 많이 노출되는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이다.  

틴틴이 재택근무를 하던 초기에는 모두 다같이 힘들었다.  평소 틴틴이 없는 낮시간에는 나 혼자 대충 밥을 먹고 떼우곤 했는데, 이제는 틴틴이 함께 있으니 틴틴과 함께 제대로 된 점심을 먹기 위해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오전과 오후 잭의 간식 뿐만 아니라 틴틴의 간식도 챙겨야 했다.  그러니 나는 아침부터 아침식사, 간식, 점심식사, 간식, 저녁식사, 그걸 매일 매일 집에서 직접 준비해야했다.  그 와중에 둘째 모유수유도 하고.  배달음식이라고는 몇 주전 집 정리 및 가구 조립 하던 날 피자 한 번 시켜먹은 것이 올 해 배달음식의 전부이다.  그리고 한 때 열심히 사다 먹은 맥도날드.  그것도 몇번 먹으니 질려서 이제는 먹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둘째 뚱이 모유수유도 6월 중순으로 그만두고, 이제는 힘들어서 잭 간식도 틴틴의 간식도 따로 챙기지 않는다.  그냥 있는대로, 각자 원하는대로 또 필요한대로 적당히 또 대충 허기를 채운다.  

34개월 첫째, 9개월 둘째 형제애가 커지다 

사실 형제'애'라고 할 게 있나 모르겠다.  아직 두 아이 모두 많이 어리니까. 

그렇긴 하지만 코로나로 온 가족이 집에만 머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더 빨리 적응하게 된 것 같다.  뚱이는 온 종일 형아만을 쫓아다닌다.  배 고플 때와 졸릴 때만 나를 찾는다.  그렇지 않고서는 대부분 형아를 쫓아다니거나, 아님 자기에게 흥미로운 무언가를 혼자서 열심히 하고 있다 (문 여닫기라든지, 끈 잡아당기기 등등). 

동생을 시샘하고 동생 장난감을 뺏기에 급급했던 첫째 잭은 동생 뚱이가 기고 설 줄 알게 되면서 이젠 동생에게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늘 당하는 것은 아니고 열에 서너번은 당하는 것 같다.  나머지는 아직 뚱이가 잭에게 당하는 신세이다.  

처음에는 뚱이가 있는 것을 어색해하고, 엄마를 뺏기는 것처럼 느끼던 잭이었건만, 9개월, 아니 정확하게는 오늘로 8개월 19일이 지나면서 잭도 이제는 뚱이가 우리 가족인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잭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책에서 친구, 베스트 프렌드 등의 단어가 언급되길래 잭에게도 혹시 친구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잭, 잭도 친구 있어? 

그랬더니 아이의 대답. 

응, 있어. 

나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함께 어울린 친구를 기억하나보다 싶어 얼른 다시 물었다. 

오, 있어? 누구야?

이 때 돌아온 의외의 대답. 

선재.  선재 있어. 

뚱이의 본명 선재.  선재가 자기 친구라고.  이 때의 놀람과 뭉클함이란.. 

큰 아이는 이제 34개월인데, 둘째가 9개월이니 큰 애는 자기 인생의 약 1/4을 동생과 함께 살아온 셈이다.  둘째 뚱이에게 형아는 원래, 늘, 항상 존재하던 사람.  

우리 잭은 겁도 많고 소심하고 예민하며 늘 사람 곁에 있기를 좋아하는데, 그러다 보니 그런 잭에게 뚱이가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유모차에 혼자 앉지 않아도 되고, 차 뒷좌석에 자기만 카시트에 앉지 않고 자기 옆 카시트에 앉은 또 다른 '더 작은 사람'이 있어서 얼마나 마음이 든든할까 하는.  둘째에게도 형아가 있어서 참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끊임없이 재미있는 무언가를 하고 있고, 자기랑 외모도 가장 비슷한 사람이니. ㅋ

남편과 자주 이야기한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우리가 가장 잘 한 일은 둘째를 낳은 거라고. 

둘째 육아, 힘이 들긴 든다.  두 아이 육아를 간단히 표현하자면, "기쁨 10배, 피로도 10배." 

세상에 공짜가 없노라니.  틴틴은 자기의 모든 자유시간, 근무 시간 외의 모든 시간을 육아 혹은 집안일에 투입하고 있고, 나 또한 내가 좋아하는 블로그에 글 쓸 시간도 제대로 없이 아이들 돌보고 먹을 것 챙기느라 여력이 없다.  요즘은 부모님께 통화도 잘 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고 친구들과 전화로 이야기 나눌 시간조차도 없다.  어떻게 한 인간의 삶이 이렇게까지나 피폐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팍팍하고 피폐하다.  사실.. 박사시절을 생각하면 그 때의 삶이 더 피폐하긴 했다.  지금은 적어도 내 주변에 "사람"이 있으니 그게 어딘가!  그래도 몸의 피로, 절대적인 시간의 절대적 부족함은 지금만했던 적이 또 있던가 싶다.  무언가를 생각할 시간이 없다.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것으로 인해 괴로워할 시간 조차도 없다.  이건 어쩌면 다행인가?  내가 늘 멍한 상태로, 깨어 있으나 깨어 있지 못한 것 같은 답답함에 가끔 우울해진다.  그러나 이 시간도 언젠가 끝이 있으리니, 그 실낙같은 희망으로 버티는 중.  이 싸움에서는 버티는 자가 승리하리니!

우리 가족의 코로나 시대 적응기.  더 할 이야기가 많지만 남은 이야기는 다음에.  

나는 오늘 밤까지 끝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일이 있으니, 이제 글쓰기 놀이는 그만하고 내 일을 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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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몽실언니의 블로그를 찾아주신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고 또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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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우리 둘째 뚱이의 생애 첫 그네타기. (9월 29일 화요일) "이건 뭐지..?" 하며 아이의 다소 긴장된 표정.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