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요즘 참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몽실언니입니다. 오늘도 제 블로그로 제 이야기를 들으러 와 주셔서 감사드려요!
둘째 뚱이를 키우면서 블로그로 쓰고 싶은 글이 더 많이 늘어났는데, 정작 시간은 더 없다 보니 글로 남기지는 못하고 모두 머리 속에, 마음 속에만 떠돌다가 모든 이야기가 사라져버려서 참 아쉬운 요즘입니다. 특히, 이번 10월달은 블로그에 쓰고 싶은 글이 더더욱 넘쳐나는 한 달이었으나 시간에 쫒겨 글은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시간이 이렇게나 지나버렸어요. 글로 남기지 못하니 저의 지나간 시간이 모두 연기처럼 날아가버린 느낌입니다. 이래서 일기를 쓰라고, 그것도 매일 쓰라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르치나 봅니다.
갑자기 생긴 두 개의 데드라인
이 달에 바빴던 이유는 데드라인이 두 개나 있었기 때문이에요. 모두 예정에 없다가 갑자기 생긴 일이다 보니 일정을 조정하는 데에 조금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10월은 원래 내년에 진행할 연구프로젝트의 프로포절 초안을 작성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해당 프로젝트는 무산이 되고 말았습니다. 영국의 장애아동복지 관련 기관에 대한 사례연구를 진행하는 것이었는데, 영국은 현재 세계적으로도 코로나 상황이 좋지 않은 국가일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는 최고로 상황이 나쁜 상황에 있다 보니 현지 기관에 대한 사례조사를 진행할 상황이 못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행정이 최소한으로 돌아가고 있고, 필수적인 업무가 아닌 이상 대면 업무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 연구자들에 대한 연구 협조는 절대 기대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현재의 분위기로 봐서는 내년이 된다고 해서 이런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해당 연구과제는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연구계획이 무산된 것은 아쉬웠으나, 이로써 저는 10월부터 그 어떤 일도 없을 예정이었기에 마음은 홀가분한 상태였어요. 올해의 모든 필수 과업들은 끝난 셈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리하여 올해의 남은 시간은 즐겁게 블로그를 쓰고, 그간 읽고 싶었던 책도 좀 읽고, 한해를 정리하고 내년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여유롭게 10월을 보낼 생각에 들떠 있던 저에게 갑자기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그 이메일이 바로 10월 19일의 데드라인인 일이었지요.
10월 19일의 데드라인: 어느 영국 교수님 연구팀의 원고를 읽다
그 이메일은 제가 함께 일을 하곤 했던 어느 연구원에서 저에게 원고검토를 요청하는 이메일이었습니다. 그 원고는 영국에 대한 원고였습니다. 제가 그 연구원에 영국에 대한 글을 두어번 제출한 적이 있다 보니 원고 검토를 저에게 요청한 모양이었습니다. 연구원에서 먼저 저에게 일을 청탁하다니, 그것도 원고검토를! 저는 약 1초간 망설인 끝에 바로 답장을 보냈습니다.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이죠.
1초간 고민한 이유는 이제 올해는 더 이상 일이 없을 거라고 틴틴에게 말 해 뒀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벌써부터 올 해 며칠 남지 않은 휴가를 어떻게 즐겁고 알차게 보낼지 의논하고 있던 중인데 제가 일을 다시 받게 됨으로써 저희 가족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었습니다.
일을 할 수 있다는 메일을 보내고 나서 잠시 뒤 아주 짧게 후회를 하긴 했습니다. 남은 휴가는 여유롭게 보내려 했는데 결국 그럴 수 없게 된 데다가, 20장이라고 한 원고는 꽉 채운 30장인데다가, 원고는 영어로 쓰여진 원고인데, 원고 파일을 열고 보니 그것도 영국의 유명한 교수님이 쓰신 원고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원고검토 요청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틴틴에게 했을 때, 틴틴이 저에게 그랬어요.
“오~ 잘 됐네! 몽실도 빨간줄 팍팍 그어서 원고작성자들이 조사를 더 할 수밖에 없게 만들면 되겠네!”
하고 말이죠.
제가 이전에 그 연구원에 냈던 원고에 대해 검토의견을 받았는데, 그 때 한 검독자분께서 제가 원고에 적지 않은 내용들에 대한 내용을 추가해줄 것을 요청하시는 바람에 원고 수정에 꽤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했었습니다. 틴틴은 바로 그 일을 떠올리며 저에게도 복수할 기회(?!)가 왔다고 이야기한 것이었지요. ㅋ
그러자 저는 그럴 수 없다고 대답했어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내 원고야 그럴 만 했으니 그런 것이고, 또 알고 보니 어느 대학에 유명한 교수님이 쓴 글이면 어떻게 하려고~”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저희 분야에서 영국에서도 잘 알려져있고 한국에서도 제법 잘 알려져있는 어느 교수님이 제 1저자로 이름이 올라있었습니다.
전 사실 원고에 이름은 가려져 있어서 저자를 모르는 상태로 글을 검토하게 될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원고를 열어본 후 잠시 후회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명한 교수님이 쓴 글을, 원래 분량은 20장이라고 하는데 그 분량의 1.5배인 30장이나 되는 원고를 읽고 검토의견을 보내야 한다니. 내가 그 일을 과연 할 수 있을까..
이 일에 대한 대가는 20만원. 저는 원고를 읽는데만 최소한 몇시간은 쓸 것이고, 원고 검토의견을 작성하는데도 몇시간을 쓸 예정이었지만 대가는 20만원.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돈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제가 투입한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적은 돈이었지만, 이쪽 업계에도 열정페이는 존재하고, 갑과 을의 관계가 존재하기에 절대 불평불만 하지 않고 “일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속으로 넙죽 인사하며 일을 진행했습니다.
일을 흔쾌히 승락한 것은 마침 원래 계획됐던 일이 취소되었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있기 때문이었고, 다음으로는 제가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의 원고를 읽고 코멘트하는 일을 재미있어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의 원고가 최종적으로 춢판되기 전에 먼저 읽고 그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즐겁고 뜻깊은 일입니다. 서로 만나지는 못하지만 글로써 서로간의 의견을 나누고 배우고, 대화를 통해 최종 결과물을 개선하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반대로, 제가 쓴 글에 대해 타인이 읽고 검토해주는 것도 아주 감사한 일입니다. 비판적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제가 보지 못한 문제점을 상대방이 찾아주고 개선할 수 있는 지점을 지적해주기 때문이지요. 그 과정을 통해 제 글이 더 나아진다면 그 정도 고통은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합니다. No pain, no gain.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예전에는 참 싫어했던 말인데, 옛말이 오랫동안 유통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외국 교수님들에 대한 선입견을 깨다
이렇게 설레이는 마음으로 원고 읽기를 시작했으나, 저의 설레임은 금새 실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왜나하면 원고의 첫장에서부터 이게 뭐지 하고 저를 갸우뚱하게 하는 내용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저자명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저자들을 구글에서 검색했습니다. 두 분은 교수님, 또 다른 둘은 박사과정 학생들. 원고는 마지막 두 저자인 학생들이 쓴 것임에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이런 일은 한국의 대학원에서나 왕왕 일어나는 줄 알았더니, 영국에서 이런 교수님도 이렇게 일을 하신다는 사실에 약간 신선한 (?) 충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교수님이 우리나라의 이 연구원을 얼마나 우습게 생각했으면 이렇게 학생이 쓴 글을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고 제출했을까 싶어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수 년전 저의 영국인 친구에게 들은 이 교수님에 대한 비화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 이야기는 영국 한 정부부처에서 컨설턴트로 일을 하는 공무원인데, 그 친구가 절대 비밀이라고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여기서 밝힐 수가 없습니다. ㅠ
그리하여 저는 '유명대학의 교수님께서 쓰신 원고를 내가 어찌 감히 검독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하며 시작했던 일을, '다른 대학의 박사과정이 쓴 글에 내가 코멘트를 해준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읽고 검토의견을 기록했습니다. 내용은 좋으나 완성도가 너무 떨어져서 (말도 안 되는 오타가 너무 많았어요 ㅠ) 읽는 내내 툭툭 걸리고 화가 나서 일의 진행 속도는 더 더뎠습니다. 최소한 전문 proofreader 에게 글 교정만이라도 맡겼어도 해결되었을 오류들이 참 많았습니다. 내가 20만원을 받고 이런 정도의 시간을 들여 이런 코멘트까지 해 줘야 하는 것이냐고 틴틴에게 하소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글이 너무 완벽해서 제가 할 말이 하나도 없는 것보다 글이 조금 부족해서 내가 해 줄 말이 많은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검토의견을 남겼고, 그렇게 19일의 데드라인을 넘겼습니다.
20일의 데드라인
19일을 데드라인을 맞추기 무섭게 저는 다음날의 데드라인도 맞춰야 했습니다. 연구를 업으로 삼아 일을 하는 분들, 혹은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분들은 이렇게 데드라인에 쫒기는 것을 “글빚”에 시달라고 있다고 표현하곤 합니다. 데드라인은 바로 빚을 갚아야 하는 마감일인 거죠.
그런데 이 일은 16일 금요일에야 저에게 수령이 되었고, 저는 이미 19일 데드라인을 맞추는 데에 일정이 모두 맞춰져 있다 보니 20일 데드라인을 문제 없이 맞추기는 어려웠습니다. ㅠ 그 바람에 이 일은 영국 시각으로 20일 자정 즈음, 한국 시간으로는 21일이 되어서야 마무리되면서, 올 해 제가 데드라인을 넘긴 첫 사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20일까지 맞춰야 했던 이 일은 제가 이미 써서 제출한 원고의 최종본에 마지막 교정을 보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저는 바로 그 전날 다른 사람들의 원고에 검토의견을 보냈던 것에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내 원고도 이리 오류가 많은데 내가 다른 사람들의 원고의 문제를 지적하다니 하고 말입니다.
제가 쓴 원고는 이미 함께 작업하는 선배언니와, 출판사의 교정자가 한번 교정을 본 것이었고, 저는 그 원고에 혹시라도 문제가 없는지 다시 한번 점검하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저 다음으로 두 사람의 손을 거치며 원고가 조금씩 수정이 되다 보니 글의 어투가 제 어투가 아니라서 어색하기도 했고, 제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 다른 띄어쓰기로 되어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어떤 쪽이 맞는지 찾아봐야 하다 보니 분량은 적은데 시간은 제법 걸렸습니다. 그렇게 하나 하나 찾다보니 제가 얼마나 그간 한국어 맞춤법을 잘 모르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교정본이 틀렸고 제가 맞다고 생각한 것의 90%는 교정본이 맞았거든요.
나름대로 한국어 맞춤법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오랫동안 한국어 책을 읽지 않고 지내다 보니 제가 알고 있던 맞춤법, 특히 띄어쓰기가 오류가 많았던 것이지요.
그 덕에 20일의 데드라인은 제가 한국어 맞춤법에 대해 다시 배우고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10월의 데드라인을 모두 쳐(?)내고 이제야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고 있던 일을 하나씩 하면 됩니다.
그런데… 과연, 제가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고 있던 일은 무엇일까요? 궁금하신가요? 궁금하신 분들은 내일 제 블로그로 찾아와주세요!
사진: 제 책상이 아닙니다. ^^; Unsplash 무료이미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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