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in 2021

김치 없이 지낸 한 달의 시간

옥포동 몽실언니 2021. 4. 13. 21:29

안녕하세요.  몽실언니입니다.

영국으로 돌아온지 한달 하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간의 시간을 요약하자니, 제목 그대로 '김치 없이 지낸 한 달의 시간'이었어요.  영국에 돌아와서 열흘간의 자가격리, 그리고 이후 아이들 어린이집을 찾고, 어린이집에 적응하는 기간을 가지느라 김치를 사러 갈 시간이 없었어요.  그리고 그 시간동안 아이들도 모두 감기에 한번씩 걸렸고, 저와 틴틴도 감기에 걸렸습니다.  그 감기는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나가면 피곤하던 몸이 싹 나을 줄 알았더니, 세상에 그런 일은 없나봅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가는데도 피로는 가실 줄 모르고, 때아니게 찾아온 4월의 한파는 눈 귀한 영국에서 4월에 눈과 우박을 보게 하더군요. 

 

4월의 한파에 찾아온 눈

 

왜 이렇게 몸이 안 좋은가 생각을 하다 보니 혹시 한국에서 돌아온 후 한달이 넘도록 김치를 못 먹어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쳤습니다.  사실,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면서 저희까지 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서 오는 피로가 더 클 수 있는데, 감기에 걸린 아이들을 강제로 감기에서 낫게 하고, 밤에 울지 않고 자게끔 할 방법은 없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중에는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김치에 생각에 미친 거지요. 

그리하여 저는 옥스퍼드의 한국마트, 서울플라자에 가서 5kg짜리 김치를 한 통 사고, 직접 김치도 한번 담궈보겠다고 배추와 무도 사고, 콩나물도 두 봉지 사고, 만두도 사고, 큰 아이가 좋아하는 유부초밥도 사서 집으로 왔습니다.  바구니에 잔뜩 담긴 식재료들을 보더니, 영국인 직원이 저에게 묻더군요. 혹시 근처에서 레스토랑 운영하냐구요. 하하하하하하. 제가 좀 많이 샀나봅니다.  특히, 식재료를 말이죠.  그래서 그냥 아이들과 우리 부부가 잘 먹어서 그렇다고.  자주 못 오기 때문에 한번에 많이 사 가는 거라구요.  저 혼자 한국장을 보러 간 건 그 날이 처음이었는데, 짐이 많다 보니 그 친구가 길 건너 제 차까지 짐을 들어줬어요.  어차피 가게에 아무도 없으니 짐 드는 것 도와주겠다구요.  얼마나 고맙던지.  

괜스레 김치타령을 하게 된 것은 몸이 좋지 않은 것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다 보니 김치를 생각해낸 것도 있지만, 얼마전 미국에 있는 한 후배를 통해 장내미생물 환경과 자폐 등의 발달장애가 연관이 있다는 최신 연구들을 접했던 것도 영향이 있었습니다. 파킨슨 병과 발달장애 등이 있는 경우 장내미생물환경이 독특한 양상을 보인다고 하더라구요.  국내에서도 제법 연구가 이루어지고, 관련 종사자들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 같았는데, 그런 이야기를 처음 접한 저로서는 '한국에서 넉달간 물김치, 배추김치, 깍두기김치 등 종류별로 두고 먹던 것을 못 먹고 지내니 이렇게 몸이 아픈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이 황당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틴틴에게 했더니, 틴틴은 예전 옥스퍼드에서 줄기세포를 연구하던 한 동생이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해 줬어요.  그 친구 왈, 장내미생물 환경이 사람 성격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자기도 사실 박사과정을 하느라 먹는 걸 제대로 챙길 여유가 없어 자꾸만 머핀이나 라면을 먹긴 하지만, 사실 뭘 먹느냐 하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그리하여 저는 이번에 사온 포기김치를 열심히 썰어 음식통에 담아두고 끼니때마다 김치를 먹고 있습니다.  

그러나, 잠도 잘 못자고 잠 시간도 부족한데 김치만 먹는다고 몸이 뚝딱 좋아지지는 않네요. 저의 상태는 컨디션을 가장 낮은 1에서 가장 좋은 컨디션 10 중에 점수로 매길 때, 3 정도인 수준입니다.  그냥 좀 안 좋은 정도도 아닌, 어딘가가 아픈 듯한 느낌.  어디가 아픈지는 몰라도 어디가 아프지 않고서야 이렇게 몸이 안 좋을 수 있나 하는 느낌입니다.

동네 사는 한 후배네 가족은 남편이 컨디션이 안 좋을 경우,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칭하는 암호로 "유니콘"을 쓴다고 해요. 그 이야기를 들은 틴틴은, 그럼 컨디션이 약간 안 좋으면 유니콘 반 마리, 많이 안 좋으면 유니콘 두 마리, 세 마리, 이렇게 하는 거냐고 얘기하며 저를 빵 터지게 하였는데, 남편의 척도대로 할 때 유니콘 두 마리 반 정도 되는 상태인 것 같습니다. 

점심을 먹으며 틴틴에게 "나 컨디션이 3 정도인 상태야."라고 했더니, 이전의 유니콘 이야기를 기억한 틴틴이 마침 "유니콘 세 마리?" 하고 묻습니다.  그래서 대답했지요. "응, 왼쪽 어깨 위에 한 마리, 오른 쪽 어깨 위에 한마리, 그리고 목 뒤에 또 한마리." 그렇게 저희는 별스럽지도 않은 우스개소리를 주고 받으며 웃습니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서로 웃음을 주고 받으니 함께 버틸 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