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참 뜸했습니다.
몽실언니예요.
다들 잘 지내셨나요?
가끔 제 소식을 궁금하게 생각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제 존재가 뭐라고. 물론 저희 부모님이나 저희 가족에게는 제법 소중한 존재일 수는 있겠지만, 제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이 세상에서 제 존재의 의미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 와중에 제가 만난 적 없는 누군가가, 저의 글만으로 저를 알고 있는 누군가가 저의 소식을 궁금해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제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간 글을 쓰지 못한 이유는 정말 많습니다. 뭐든 뭘 해야 만 하는 이유, 뭘 하게 된 이유를 찾는 거보다, 뭘 해서는 안 될 이유, 할 수 없던 이유를 대는 게 더 쉽다고 하더니, 저도 딱 그런가 봅니다.
가장 중요하게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아이들과 영국으로 돌아와 자가격리하며 시차적응을 해야 했는데, 그 와중에 남편은 재택으로 계속해서 일을 해야 했어요. 한국에서는 부모님 댁 냉장고에 가득 차 있는 각종 밑반찬에, 엄마가 그 때 그 때 해 주시는 각종 반찬에 밥을 먹고, 큰 아이는 부모님이 해 주시는 밥상에 밥을 먹이고, 이유식 중이었던 둘째는 엄마가 해 주시는 음식 반, 베베쿡으로 배달받은 음식 반, 그 때 그 때 집에 있는대로 밥을 먹이며 지냈습니다. 영국에 돌아와서는 아이 둘을 온종일 돌보며 이전처럼 다시 삼시세끼에, 끼니 사이 간식까지 저 혼자 차려 내야 하다 보니 그 자체로 얼마나 벅찬지.
남편도 부모님이 해 주시는 밥 먹고, 아침이나 점심에 설거지 한두번 하고, 낮에 저와 함께 집 정리 한번 쯤 하는 게 집안일 전부였는데, 영국으로 돌아와서는 다시 매 끼니 그릇 정리와 남은 설거지, 빨래, 빨래 널기, 빨래 걷기, 저녁 뒷정리, 쓰레기 정리까지 모두 혼자 하다 보니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에 저와 틴틴 모두 힘들었어요. 한국 가기 전에는 당연하게 저희가 모두 하던 일인데, 한국에서 부모님 덕을 너무 보고 지냈나봅니다. 그리고, 한국 가기 전까지는 주로 기어다니던 둘째가 이제는 걷고 기어오르며 집 안을 활보하며 형과 시비가 붙기 일쑤인지라 둘째에게서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는 상황. 그러다 보니 집안일 할 시간과 체력이 더 부족했어요.
둘째로는 마음에 여유가 없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시간이 없고, 체력도 따라주지 않으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지 않습니다. 아무리 잡다한 이야기라도 글로 적으려면 잠시라도 자리에 앉아 차분히 생각하는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밥 먹는 시간 조차 제대로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는 처지에 블로그라니요. 그런 상황이었답니다. 블로그를 쓰는 시간은 저에게는 나름 힐링의 시간이에요. 지나간 일을 생각하고, 제 느낌을 되살려서 그걸 글로 쓰는 일. 게다가 제 글을 좋아해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고립된 영국 생활에 엄청나게 큰 지지가 되거든요.
셋째로는 컴퓨터를 바꾸면서 새 컴퓨터가 손에 익지 않고 눈에도 편하지가 않아서 컴퓨터에 대한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졌어요. 박사과정 중에 구입해서 최근까지 꼬박 8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저와 함께 했던 컴퓨터를 보내고, 한국에서 새 컴퓨터를 들였습니다. 이건 그저 컴퓨터를 바꾸는 일 그 이상의 일이었어요. 왜냐하면 애플에서 나온 맥 운영체제에서 윈도우즈 운영체제로 갈아타는 일이었기 때문이지요.
처음 맥 컴퓨터를 쓰기 전까지는 윈도우즈가 당연한 세계였습니다. 그러나 일단 맥을 접한 순간 윈도우즈로 다시 돌아오는 것은 정말 힘든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음 같아서는.. 돈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맥북 하나를 구입하고 싶은 마음인데.. 꾸욱... 참고 있습니다. 왜냐... 돈이 없으니까요.. 흑흑.. 9년 전 제가 맥을 사기 전에, 저보다 몇 달 앞서 맥을 구입한 동생에게 맥을 사용하는 게 어떤지 물었습니다. 그 때 그 동생이 대답했어요. "언니, 맥 쓰세요. 제 삶은 맥을 쓰기 전과 맥을 쓴 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 친구는 저보다 몇달 앞서 샀던 맥북 에어를 아직까지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윈도우즈로 돌아온 저는, 오래 전의 컴맹으로 돌아온 기분과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이전의 맥 생활은 잊어야 하는데, 아직도 맥을 그리워하느라 윈도우즈에 적응을 못하고 있네요.
마지막으로(이건 마지막이지만 제법 중요한 이유인데요), 큰 아이가 만 세살을 넘으며 어느새 알 것 다 아는(?) 나이가 되고 나니, 육아생활을 글로 쓴다는 게 조심스러워졌어요. 특히, 아이 사진을 올리는 것은 더 조심스러워지구요. 이 아이에게도 자기만의 사생활이 있는데, 제가 제 마음대로 이렇게 공개된 글을 써도 되는건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건 이전부터 해 오던 고민이었어요. 틴틴에게 자주 그랬거든요. '육아일기를 계속 이렇게 써도 되는걸까?' 하구요. 그래서 이 부분은 아직도 고민 중입니다.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내 고민을 어디까지 공개할 수 있을까.
오랫만에 포문을 열었으니, 앞으로는 예전처럼 자주 글을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기다려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오늘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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