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육아일기 in 2021

괜히 남편에게 화를 낸 날...

옥포동 몽실언니 2021. 1. 20. 00:24

오늘은 괜히 남편에게 화를 냈다.  엄청 냈다.  그가 한 잘못이라고는 “한숨 좀 쉬지마”라고 말 한 마디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말 한마디가 나를 폭발하게 만들었다.  

한숨을 쉬지 말라니.  이 상황에, 한숨이 절로 나와서 미쳐버릴 것 같은 이 상황에 한숨을 쉬지 말라고?  내 한숨을 듣는 게 그렇게 힘들어?  이렇게 한숨 나오는 상황에 있는 내가 얼마나 힘들지는 알아주지 않고 한숨 쉬지 말라고만 하니 그 말에 화가 나고 속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는 스트레스 받고 있는 나를 보기 안쓰러웠고, 스트레스 속에서 한숨을 쉬는 나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한숨 쉬지 말라는 위로의 말을 건넨 것이었을텐데.  그는 그 말 한마디로 인해 나의 온갖 퍼부음을 들어야만 했다.  공감받지 못한다는 마음은 이렇게나 무서운 것이다.  그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나는 그에게 온 화살을 쏘아버렸다.

내 욕심을, 그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잠시 일어난 망상이었나보다.  남의 언행이 불일치한다고 뭐라 할 게 없다(요즘 내가 우리 아버지의 언행불일치를 상당히 문제삼았더랬다 ㅠ).  나부터도 이러하니.  나도 한참 멀었다. 

(연관글: 2021/01/13 - [몽실언니 다이어리] - [엄마일기] 마음 내려놓기)

이제 솔직히 고백하자.  일 욕심이 들었던 것에서 마음을 좀 내려놓았다고 블로그에 글을 썼건만, 그것은 그 글을 쓴 날, 그 날따라 기분이 좋았던가, 내가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던 거라고.  내 마음에는 여전히 욕심과 욕망이 들끓고 있는데 그걸 모른척, 그렇지 않은 척 하고 싶었나보다.  아마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하면, 더 가벼운 마음으로 그 일을 향해 달려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인지도. 

내가 마음 속으로 계획하고 있던 것은 포닥을 지원하는 일이었다.  ‘포닥’은 박사후연구과정을 짧게 부르는 영어 표현으로, 박사를 한 사람들이 교수나 연구원이 되기 전에 거쳐가는 과정이다.  박사를 한 후에 바로 교수나 연구원이 되는 사람들도 많다.  능력자들.   나는 그런 능력자가 아니다.  게다가 취업난은 학력 불문이다.  박사학위가 있다고 해서 누구나 교수/연구원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포닥도 누구나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포닥 한번 되어 보고 싶어서 준비 한번 해보려고 하는데, 준비할 시간이 영 여의치가 않으니 아무 것도 하지도 못하고 스트레스만 받는 중이다.  마음을 내려놓았다 글로는 적었지만, 진짜 욕심을 버리지는 못했다.  특히, 그것은 내게 생계도 걸린 일이기 때문이다. 

포닥이 된다고 해도 월급도 아주 적다.  아카데믹 잡은 월급이 적다.  특히 문과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  문과는 이과에 비해 등록금이 저렴한 편인데, 교수 월급도 문과가 적다.  문과 교수가 공부를 덜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노동시장의 논리가 학계에서도 작동을 한다.  저 사람보다 내가 덜 열심히 일하는 게 아닌데, 저 사람은 저 분야에서 일하기 때문에 월급을 많이 받고, 나는 다른 분야에서 일하기 때문에 월급을 적게 받는다니.  가령, 박사를 받고 어느 지방 대학에서 교수가 되느냐, 컨설팅 회사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느냐에 따라 두 사람의 월급은 상당히 차이가 난다.  물론 일의 가치를 어찌 돈으로만 따지겠냐만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중요하기는 하다 보니 돈을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다. 

현재 내가 일을 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이유와 경력을 이어가고 싶은 욕심이다.  경제적 이유로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한다면 기왕이면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그것이 바로 내 전공을 살려서 내가 하던 일을 하는 것이므로 연구하는 일.  그러던 중 마침 포닥을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일에 도전해 보고 싶어진 것이다.  

포닥을 하고 싶은 이유는, 내가 독립적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연구역량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며, 그 기간 동안 적지만 안정적인 연구비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몇 해 전 같은 프로그램으로 포닥을 하셨던 분의 말씀에 따르면 내가 받게 될 실수령액은 약 220-230만원 사이라고 한다.  그 이야기에 남편은 물론 이과인 친구는 깜짝 놀랐다.  40대에 접어들어 받게 될 첫 월급이 220만원이라니.  그 돈을 파운드로 환산해보니 영국의 최저임금으로 주당 37시간 근무할 경우 받게 될 월급보다 약 10만원 많은 돈이다.  그래도 남에 돈을 벌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그 돈도 감지덕지.  제발 제가 합격할 수 있는 멋진 프로포절을 쓸 수 있게 해주세요!

포닥이 된다면 처음으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연구를 내가 연구 책임이 되어 수행하게 된다.  어쩌다보니 나는 석사 논문도 박사 논문도 별 생각 없이 지도교수님이 제안한 연구 주제를 그대로 받아 연구를 진행했다.  논문이 뭔지, 연구가 뭔지 개념이 제대로 없었기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논문이 뭔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지도교수님이 이런 주제로 써 보라고 하시니, 지도교수님 말씀이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줄 알고 “네”하고 그 주제를 받아 그대로 쓴 것이다.  박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세부주제는 박사과정을 진행하며 많이 달라졌지만, 주제 자체는 석사 시절 지도교수님께서 제안하신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박사 프로포절을 썼고, 그것이 내 연구 주제가 됐다.  박사연구가 뭔지, 박사학위가 뭔지, 긴 시간을 한 주제에 대해서만 연구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벌일 수 있던 일이었던 것 같다. 

그 바람에 나는 내가 좋아서 하는 연구, 내가 정말 궁금해서 하는 연구를 진행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박사씩이나 되면서도 나는 아직도 내가 좋아서, 나 스스로가 그 모든 것을 계획해서 진행하는 연구를 해 보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하여 이번 포닥을 기회로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연구,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연구, 내가 계획하고 내가 수행하고, 내가 분석하는 연구를 꼭 한번 해보고 싶다(블로그 글을 그만 쓰고 연구계획서를 써야할텐데, 연구계획서는 쓰지도 않고 블로그 글만 쓰다가는 계속해서 블로그 글만 써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ㅠㅠ).

이런 포부를 마음 속에 그대로 안고 있으면서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글을 쓰다니.  이젠 정말 인정하고 고백해야 한다.  그것은 거짓이었음을.  나는 마음을 여전히 내려놓지 못했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욕망만 더 커져서 마음이 괴로워죽겠다고.

마음을 내려놓았다고 글을 쓴 것은, 그렇게라도 글을 쓰고 마음을 내려놓아야 내 삶이 가능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의 현실은 부모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며 아이 둘을 돌보는 상황.  남편이 남의 집 살이라 불편해하지 않고 재택근무를 원활히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올해로 일흔 둘, 일흔 일곱의 노부모도 돌봐야 하니, 마음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정신을 똑바로 붙들어 매고 있기가 힘든 현실이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가고 부모님이 옆에서 조금만 도와주신다면 아이들이 없는 시간 동안 온전히 내 일에 집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내 작업 환경을 세팅하는 데에만 꼬박 2주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부모님은 내 생각보다 바쁘시고, 내가 내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실 의사가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딸이 뭐라도 해서 돈을 벌어왔으면 하는 마음, 어디 가서 자랑할 수 있게 어디서 뭐라도 했으면 하는 욕심은 끊임없이 내비치시면서도 그걸 위해 본인들이 어떤 노력을 해 주지는 않으신다.  본인들의 양육의무는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면서, 이 상황에서 내가 다 알아서 모든 것을 해내기를 기대하시는 듯하다.  그렇다.  부모님은 이미 하실 만큼 하셨고, 넘치도록 해주셨다.  오히려 부모님에게는 나이 마흔 넘어 온 가족들 끌고 부모님 집에 쳐들어와서는 왜 날 도와주지 않느냐고 하소연하는 내가 어처구니가 없으실 게다.  그래도, 우리가 한국에 온 것은 코로나로 고립된 생활을 하느라 부모님이 많이 힘들어하신다는 그 말 한마디에 내달려 온 것인데, 부모님 생각해서 온 만큼 부모님도 우릴 좀 도와주시면 좋지 않을까? 유튜브 좀 그만 보시고, 사랑의 콜센터 좀 그만 보시고, 앞으로 봐야 얼마나 더 본다고, 자식 손주 위해 좀 더 노력해주시면 좋지 않을까?  그러나 이것도 모두 내 욕심이다.  부모님도 부모님의 인생이 있는데.  일흔 넘은 나이에도 자식만을 위해 살아달라는 것은, 그게 두달이라 하더라도 일흔 넘은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힘든 일일 것이니 어찌 부모님을 탓하리오.  힘들어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한국에 왔으면서, 막상 와서는 내 욕심 챙기려고 부모님 덕을 보고 싶어하는 내가 욕심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화가 나는 것은 내가 포닥을 하고자 하는 것이 내 경제적, 경력적 욕심이면서도 부모님의 욕심을 채워드리고자 하는 딸로서의 의무감도 포함된 일이기 때문이다.  부모님도 박사씩이나 마친 딸이 집에서 아이들만 키우고 있다는 걸 늘 아쉬워하시고, 그마저도 빠듯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며 답답해시니, 내가 일을 하고 커리어를 쌓아가는 것은 내 개인의 프로젝트이면서도 우리 부모님의 프로젝트이기도 한 것이니 말이다. 

내가 이렇게 불만을 하는 것은, 집에서 청소를 하는 것도 나요, 점심을 차리는 것은 남편이요, 남편이 재택근무 하는 오후와 저녁시간 내내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챙기는 것도 나 혼자이다 보니 하는 소리이다.  이 상황에 내가 어떻게 일을 하냐고요.  ㅠㅠ 어린 시절, 그렇게나 자식들에게 헌신적이었던 우리 부모님은 나이가 들면서 사라지셨다.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아직도 내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기대에 충족할 수 있도록 날 좀 도와달라구요!  제발…!!

엄마, 아버지.  제 블로그에 부모님에 대한 불만 적어놔서 죄송해요.  엄마 아버지는 내 블로그를 안 보시므로 내가 이렇게 글을 썼다는 것을 모르시겠지만 그래도 죄송해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이렇게라도 쓰지 않고서는 나도 마음을 털어내기가 힘든 것을 말이에요. 

남편, 미안해요.  내가 더 잘할게요.  나 이제 이렇게 내 속마음 다 적고 나니 이제야 마음이 좀 후련해졌어요.  내일부터 화내지 않고, 한숨 쉬지 않고, 내게 주어진 시간 안에 딴짓 하지 않고 내 일에 집중해볼게요.  영문도 모른채 나한테 이끌려서 처갓집 살이하며 고생이 많아요.  내가 그 고생 다 알고, 항상 고마워하고 있어요.  내가 다른 건 몰라도 결혼은 진짜 잘 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알죠?  박사하고 몸 아프며 힘들게 보냈던 그 수년의 시간 끝에 당신과 만나 결혼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에요. 

앞으로 블로그에 글을 쓸 틈도 없이 제 일을 열심히 해야 할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블로그에 글을 올리게 될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그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는 제 일을 제대로 못 할 것 같거든요.  그러다 포닥 지원한 것에서 떨어지면.. 좀 많이 속상하긴 하겠죠?  그러니 블로그는 적당히 할게요.  그리고 제 일도 잘 한번 해 볼게요.  간간히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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