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좀 해보려고 마음먹었다고 글을 쓴 게 3주 전인데, 나는 벌써 마음을 내려놓았다. 아니, 실은 내려 놓아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했더니 두통이 사라졌다.
세상에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참 많지만, 그 중 절대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다른 사람의 마음과 몸이다. 현재의 나에게 있어 그 “다른 사람”은 바로 나의 두 아이. 그리고 우리 엄마와 아버지.
그래도 부모님은 부모님이라서, 나를 더 생각해주고 위해주신다 (물론 절대적으로 그 분들의 입장에서의 생각과 위함이라는 게 함정). 그렇지만 나의 두 아이는 그렇지가 않다. 그들은 자신들의 욕구에 충실하며 사는 것이 그들의 할 일이다 보니 하루 온 종일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는 데에 나를 활용하려 한다. 아이 돌보는 일이 정신적으로 지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인 것 같다.
뭔가 내 일을 좀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나의 현실은 두 아이 엄마. 두 아이가 내 눈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서 나를 좌지우지하고 쥐락펴락하며 들었나 놨다 하기 바쁘다. 그 와중에 내 머릿속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 어떻게 그 일을 하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과 구상이 쉼없이 돌아가니 머릿속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터지지 않더라도 다 찢어져버릴 것 같은 느낌. 외부 충격 하나 없이 심한 외상을 받은 느낌. 그 느낌을 털어내고 싶어 머리를 몇번이나 흔들었다. 물리적으로라도 머리를 좀 흔들어대면 머리에 있는 잡생각이 떨어져나가는 기분이다.
결국 어느 하루는 두통약을 먹었다. 올해 첫 타이레놀. 작년에도 타이레놀을 딱 한번, 아니면 두번 정도 먹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올해는 아직 1월 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타이레놀을 먹었다!
평소 워낙 약을 안 먹고 지내다 보니 약을 먹으면 효과가 좋다. 금새 두통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무리 애 써도 안 될 일에 너무 힘쓰지 말자고. 지금 내가 애들을 모른척하고 내 할 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내 일을 “내 일”이라고 생각하지조차 말자고. 일은 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에만 생각하자고. 저 아이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냐고. 엄마가 눈 앞에 있고, 그런 엄마가 그저 좋아서 엄마에게 달려드는 것일 뿐인데.
그렇게 내려놓으니 마음은 편해졌다. 어쩔 수 없는 것을 어찌하리오. 마음을 내려놓으니 틴틴에게도 더 친절해졌다. 내게 다가오는 아이에게도 더 다정해졌다.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다 내려놓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래도 도전은 해 보고 싶기 때문에. 그래도 할 수 있는 시간 안에, 내 육체적 한계 안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해 보기로 했다. 할 수 없을 때는 과감히 내려놓고. 그리고도 잘 안 된다면 그건 내 일이 아닌 것이겠지.
세상에 정답이 없다. 그래서 늘 더 어렵다. 그렇지만 정답이 없으므로 뭐든 정답이라 생각하고 넘어가버릴 수도 있으니, 속 편하게 살려면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는 게 또 인생이다.
벌써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다가온다. 어제는 랩탑을 샀고, 오늘은 은행도 다녀왔고, 조합 회의에도 참석했다. 그것만으로도 큰 일 했다. 욕심내지 말자. 하루에 5시간의 자유시간이 있다고 해서 그 시간을 죄다 무엇인가를 “생산”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는 무엇을 위해 무엇을 생산하고자 하는가? 그 생산은 누구를 위한 무엇이던가?
나의 건강, 내 가족의 건강, 우리의 평안. 내가 원하는 가장 큰 것들을 놓치지 말자고 다짐하며.. 아이들 오기 전에 잠시라도 한 숨을 돌려야겠다. 우리 삶에 휴식도 꼭 필요한 것이니까.
사진: 남편과 7주만의 상봉한 후 첫 주말 나들이. 추웠지만 청명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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