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in 2021

둘째와 함께 한 1년 회고: 둘째의 생존 무기

옥포동 몽실언니 2021. 1. 15. 23:17
둘째는 둘째인 것인가. 둘째를 가졌을 때, 둘째가 태어나길 기대하며 “둘째는 사랑”이라는 말을 해 주던 친구들이 있었다. 무조건, 엄청 많이 이쁠 거라고.  당시까지만 해도 내 눈 앞에 아이라고는 큰 애 잭밖에 없던 상황에서 아무리 주변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해 줘도 나는 둘째에 대해 큰 기대가 없었다.  오히려 남들이 둘째는 사랑이라는 말을 하면 할 수록 우리 첫째 잭이 느끼게 될 상실감과 소외감에 벌써부터 마음이 아려서 첫째 잭을 더 강하게 안아주곤 했다.  

그리고 2020년 1월 15일 드디어 둘째가 태어났다.  얘는 뭐지?  갖다붙이기 나름이지만 태어날 때부터 달랐다. 진통이 시작되고 1시간도 되지 않아 4분 간격 진통 (4분 간격으로 진통이 오고 자궁문이 10센티 열렸을 때부터 본격적인 분만과정이 시작되는 거라고 한다)이 오더니, 병원에 들어가서 40분만에 아이가 태어났다.  물~컹 하며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 그 순간 미드와이프(조산사)들이 감탄하며 말했다.  아이가 나오면서 양수가 동시에 터졌다고.  그런 경우 영국에서는 행운이 가득하다고 하고 좋아한다고.  이 아이는 운이 좋을 거라고.  분만과정까지 나를 이끌어준 조산사도 아주 좋았는데,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그런 좋은 말을 들으니 기분이 더 좋았다.  

둘째와 함께 한 시간이 항상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태어난 초기, 극심한 황달로 우린 병원 입원을 두세차례 반복했고, 아이는 두어달간의 피검사와 팔로업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것만 제외하고는 이 아이는 첫째에 비해 참 수월했다.  건강하게 성장하는데, 발달속도도 좀 빠른 편이었다. 

그렇게 수월하고 귀여운데도 불구하고 둘째가 어리던 시기까지만 해도 난 이미 첫째와 정이 듬뿍 들어있는 상태이다 보니 둘째에게는 “사랑”보다 “양육의무”를 더 크게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둘째는 사랑”이라는 말을 잘 실감하지 못했다. 또한 동생으로 인해 상실감과 시샘을 느낄 첫째가 걱정되어 그저 첫째 마음을 살피기에 급급했다.  내가 첫째 마음을 잘 살펴주지 않으면 첫째가 둘째를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아서 둘째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첫째를 잘 보듬어주어야 했다.  그 바람에 둘째가 어릴 때는 둘째를 마음껏, 실컷 안아주고 넘치게 사랑해줄 시간과 기회가 부족한 게 늘 아쉬웠다.  그러다 시작된 코로나 사태.  영국의 봉쇄령.  남편의 재택근무와 큰 아이 어린이집 폐쇄.  온가족이 24시간을 함께 하게 되면서 자연히 둘째는 더 많은 관심을 형에게 뺏겼다.  형은 강하고, 의사표현이 분명했으며, 형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동생의 안위가 위협당한다는 좋은 무기마저 갖고 있었다.  그러니 우리는 형아, 잭의 비위를 맞춰주기 바빴다. 그러면서 더더욱 줄어드는 둘째와의 눈맞춤 시간.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  이런 와중에 도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둘째를 사랑이라고 하는 것인지 알기 힘들었던 시간의 연속.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둘째는 귀여움이 증폭되면서 남들이 왜 둘째를 사랑이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일단, 생김부터가 더 애기애기하다.  얼굴이 희고, 작으면서 (물론 형보다 작을 뿐 객관적으로는 크다.  아이가 태어난 날 아이 신체 검사를 받으러 간 곳에서 아이 머리둘레를 측정한 조산사가 “오늘 태어난 아이들은 죄다 하나같이 머리가 “아주” 크네요!”라고 감탄했다 ㅋㅋ), 머리숱도 아주 적다.  그 자체로 아이는 제 월령보다 훨씬 더 어려보이는 효과가 발생한다. 생김만 그런 게 아니다.  살성도 훨씬 “야들야들”하다.  남편이 늘 그런다.  살이 너무 야들야들해서 깨물고 싶다고. ㅋ 몸짓도 그렇다.  돌이 다 되도록 아직도 가끔 제 발가락을 손에 쥐고 당겨 발가락을 물며 재밌어 한다.  울음소리도 훨씬 아기같다.  이 아이는 정말로 “이앙!”하고 운다.  옹알이도 귀엽다.  손에 있는 것을 던지거나 공을 굴리면서 “띠양~ 띠양~”하며 소리를 낸다.  성격도 부모를 참 편하게 해 준다.  혼자서도 잘 노는데, 그게 너무 신기하고 기특해서 자꾸만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뿐만 아니다.  극강의 살인미소!  눈이 마주치면 씨익~ 하고 웃는데, 눈만 마주치고도 이렇게 싱긋싱긋 잘 웃어주는 아이라니!  첫째에게서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라 우린 너무 신기한데, 한국에 와서 보니 다른 가족들도 모두 이 아이의 미소에 사르르 녹는다.

뿐만 아니다.  발달과정도 빠르고 수월해서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계속해서 만든다.  태어나자마자부터 목을 이미 어느정도 가누어서 모유수유하기에도 수월했는데, 젖을 빠는 힘도 참으로 좋아서 수유 시간도 상대적으로 짧았다.  그래서인가 수유간격도 첫째에 비해 더 넓었다.  체중증가는 첫째보다 조금 더뎠는데, 그 덕에 아이를 들어올리고 내리기가 수월했다.  뒤집기는 빨리 시작하더니, 뒤집기 무섭게 되뒤집기를 하며 놀기를 한 일주일 했던가.  5개월이 좀 지나자 이 아이는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남의 아이가 그랬다고 하면 아니, 세상에 그런 아이가 있다니, 믿기 어렵다며 틴틴과 혀를 내둘렀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집에 그런 아이가 찾아왔다.  그렇게나 열심히 기더니 10개월이 되자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우리 친정엄마는 내 평생에 아이 넷에 손주들을 셋이나 키웠어도 돌 전에 이렇게 걷는 아이는 처음이라며 놀라워하셨다.  이런 남다른 발달속도는 가족들이 감탄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더 “아기아기”하여 귀여움을 듬뿍 받을 이 아이는 놀라운 발달속도로 인해 가족들의 관심을 더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대단한 관심이 아니라, “뭐야, 얘는 벌써 이렇게 잘 걸어?”라는 말 한마디가 이 아이에게는 관심이고 사랑이다.  오늘로 딱 돌이 된 이 아이는 아주 능숙하게 잘 걷는 정도가 아니라, 걷는 속도도 빠르고 균형감각도 뛰어나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도 속으로 “얘는 뭐지?!” 하고 감탄하게 된다. 

타고난 귀여움에, 빠른 발달과정.  그것들이 스스로 가지는 생존무기라면, 타인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생존무기가 있었으니, 그것이 강한 아귀 힘, 날렵한 몸동작, 강한 코어힘이다.  이 아이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한 대상은 바로 두 살 많은 형아 잭.  형의 괴롭힘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이 아이가 탑재하고 태어난 것이 바로 그것들인 것 같다.  잠시 방심한 순간이 아니라면 절대 자기가 손에 쥔 것을 형에게 빼앗기지 않고, 형이 화가 나서 아이를 짓눌러도 왠만한 힘까지는 울지도, 소리치지도 않고 스스로 버티려 하고, 몸동작도 재빨라서 형이 장난감을 뺏으러 다가오면 재빨리 도망가거나 손을 뒤로 획 빼버려서 형의 손길을 피해버린다.  성장 발달과정만 빠른 게 아니라, 떼쓰기도 월령에 비해 상당히 빠른 느낌인데, 형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게 되었을 때 울고 떼쓰고 화내는 정도가 아주 보통이 아니다.  오늘도 자기 생일선물로 받은 장난감을 형이 하고 싶어하자 절대 양보하기 싫다고 버티며 울어대는데, 와… 그 울음 소리가 귀청을 뚫어버릴 기세.  몸을 뒤로 젖히며 악을 쓰는데, 내 힘으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수준이다. 

그렇게 우리 둘째는 처음부터 타고난 귀여움에, 강인함과 날렵함까지 구비한 상태로 남다른 성장속도를 보이며 가족들의 감탄을 한몸에 받고 있다.  혼자서 독차지하던 관심을 어린 동생이 모두 뺏어가는 것 같아 시샘이 난 잭은 자주 심통을 부리고 있다.  아이가 그럴 때마다 야단을 치면서도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어쩌랴.. 이게 다 사는 과정인 것을… 그나마 다행인 것은 큰 아이도 가끔 동생에게 너그러울 때가 있다는 점, 그리고 가끔은 동생과 함께 있고 함께 하려고 한다는 점(아마 가족 중에 그나마 자기와 가장 유사점이 많은 인간이 자기 동생이라는 것을 본인도 아는 듯)이다.  그렇게 그 둘은 서로와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있고, 나와 틴틴도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일년간 수고 많았다.  우리 가족 모두.  

+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녀온 오후에는 집에 있던 재료와 도구들로 엄마가 돌상을 차려주셨다.  어젯밤 엄마가 황급히 떡과 떡케잌을 주문해주셨고, 나와 틴틴은 오전에 다이소에 가서 조화꽃다발을 사왔는데, 거기에 집에 있던 과일들을 올리니 그럴싸해졌다.  엄마 방 서랍 어디에서인가 명주실뭉치도 보았는데, 엄마도 나도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해 부엌과 거실에 있던 것들로 대충 상을 차렸다.  그리고 아이들이 돌아왔을 때는 시부모님과 친구어머니, 어린이집 선생님이 준 선물도 함께 올려 우리끼리 돌촬영~  즐거웠던 시간!  (이 돌상의 매력 포인트는 엄마가 상 위에 올려둔 공룡.  뜬금없이 공룡 ㅋㅋ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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