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in 2021

[영국육아] 어린이집 사고에 대한 서로의 마무리

옥포동 몽실언니 2021. 4. 20. 23:32

안녕하세요.  몽실언니에요.

요즘 글을 자주 쓰죠?  

네, 시간이 좀 생겼거든요.  그러나 이 시간도 곧 없어져버릴 시간이라, 시간이 있을 때 글을 많이 올려보려구요. 

오늘 적을 글은 어린이집 사고 보고 이후, 어린이집으로부터 받은 회신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사고에 대한 어린이집의 대처가 어떠했는지, 그리고 저는 이 사고를 어떻게 마무리했는지에 대해 정리해봅니다. 

제가 어린이집에 메일을 보내고 나서, 그날 오후 적당한 수준의 답장을 받았습니다. 

 

친애하는 몽실, 

이메일 보내줘서 고맙고, 어제 가든에서 있었던 너의 사고에 대한 이야기 듣게 되어 유감이고, 우리 직원들이 오늘 아침 그 이야기를 내게 해 줘서 그 일을 사고 리포트에 기록해뒀어. 

가든은 놀이와 활동을 위해 디자인된 것이라서 아이들 데리러 올 때 언제나 잘 피해야 할 장난감과 각종 도구들이 많아. 네가 언급한 울타리는 문이 있어. 빙 돌아서 저쪽 편에 문이 있으니까, 다음부터는 뚱이 데리러 오면 그 문을 이용하면 돼. 네 말대로 문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고, 그랬으면 네가 아이를 팔에 안고 갈 필요가 없지. 뚱이가 너와 같이 걸어가면 되니까. 직원들에게 앞으로는 울타리 넘어로 아이를 넘겨주지 말고, 부모들이 문으로 와서 아이를 데려가도록 하라고 말해뒀어.

직원들은 모두 너랑 뚱이 모두에 대해 꽤 걱정하고 있고, 사실 우리도 모두 약간 충격을 받았어. 가든에서 학부모가 넘어지는 이런 사건이 한번도 없었거든.  

뚱이가 지금 어린이집에서 잘 놀고 있다는 소식 전할 수 있어서 기쁘고, 어제 일어난 일로 인한 여파는 하나도 없어 보여. 

네가 빨리 낫길 바래. 

Kind regards and best wishes,

N.

 

이 이메일이 큰 위로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1. 사고가 발생한 것이 유감이라는 표현은 있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2. 사고 리포트에 기록해뒀다고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으로 기록했는지 저에게 확인시켜주지 않았고 (예전 어린이집에서는 사고가 있으면 항상 사고 경위를 간단하게 적은 후 그에 대한 부모의 서명을 받았어요. 이 어린이집에서도 아이가 집에서 다쳐서 생긴 부상에 대해서도 경위서를 작성하게 한 후 부모의 서명을 받았구요), 

 

3. 아이의 부상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completely unaffected by what happened"라고, 아이가 어제 있었던 일로 전혀! 영향을 받은 것 같지 않다고 단정한다는 점도 다소 불편했어요.  뚱이 상태와 마음을 어떻게 알고 저렇게 단정할 수 있나 해서이지요.  여파가 "없기를 바란다"고 표현을 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영향이 없어 보인다고, 그것도 "완전하게(completely)" 없어 보인다고 하니 이게 좀 기분이 상하더군요.

 

그러나, 그래도 이 이메일이라도 받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은,

 

1. 앞으로는 문을 이용해서 아이를 데려가도록 하고, 울타리 넘어로 아이를 주고 받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점,

 

2. 직원 모두가 저와 뚱이를 걱정하고 있다고 말해준 점.

 

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사고 후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처음으로 저 혼자서 아이를 데려다주고 온 날.  데려다 주러 갔을 때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데리러 갔을 때.. 그 때가 문제였습니다.  부원장이라 할 수 있는 Deputy Manager가 왜 이리 퉁명스러운지. 

사실 불편함이 발동된 계기는 제가 가든 사진을 찍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아이를 데리러 들어가는 길에 마침 놀이터가 텅텅 비어있길래 놀이터 사진을 한 장 찍었어요.  아이들 어린이집의 넓은 놀이터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고 싶은 생각.  그리고 제가 넘어진 현장의 기록이기도 하구요.  아이들 할머니 할아버지께 아이들 어린이집의 놀이터를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구요. 

그렇게 사진 한장, 정말 딱 한장을 찍고 들어갔는데, 부원장이 실내에서 그걸 봤나봅니다.  제게 다가오더니,

 

"너 방금 사진 찍었니? 뭐 찍은 거야?  사진 찍으면 안 돼, 특히 아이들이 하나라도 나와 있으면."

"아, 나 여기 놀이터 한장 찍었어."

"아이 하나라도 있으면 사진 찍으면 안 돼."

"아, 아이들 하나도 없어."

"그래? 혹시 니가 놀이터 사진을 찍은 특별한 이유가 있니?"

 

하고 나와서 밖을 둘러보는데, 정말 그 넓은 놀이터에 아이는 하나도 없었어요.  그러니 저도 사진을 찍은 것이었구요.  부원장 친구는 계속 저를 추궁했어요.

"아, 애들 할머니 할아버지께 애들 노는 놀이터 보여드리고 싶어서."

"놀이터가 엉망이어서, 좀 정리된 상태였다면 좋았겠구나."

"뭘, 이대로가 자연스럽고 좋지."

 

이렇게 대화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위 사진이 바로 문제가 된 사진입니다.  빨간색으로 표시해둔 곳이 뚱이가 놀고 있던 낮은 울타리 안 놀이터고, 그 바로 앞에 타이어가 있었던 것이죠.  넘어졌다 일어난 후 그 옆에 높게 솟은 나무 주위에 둥그렇게 설치된 의자에 앉아 응급조치를 취하고 돌아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냥 일반적인 대화인데, 제가 지나치게 예민한 것인지.. 마치 제가 넘어진 현장 사진을 찍어서 이 사진으로 어린이집을 신고하거나 (안전규정 위반으로) 뭔가 조치를 취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처럼 의심하는 느낌..??  ㅠㅠ 이런 것이 사실 외국인으로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피곤한 일입니다.  상대방의 말과 의도에 대해 지나치게 해석하게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무엇이 진실인지는 절대 알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말이지요. 

이 부원장은 뚱이 부상을 발견하고 어린이집으로 다시 돌아갔을 때, 정말 귀찮고 피곤하다는 느낌으로 쿨링팩을 들고 터덜터덜 저희 곁에 걸어왔던 분이에요.  어린이집 등록 전 사전 방문 당시에는 참 친절했는데, 어린이집 등록 후에는 항상 피곤해보였던 분. 

부원장이긴 하지만, 20대 중반, 많아야 20대 후반인 친구.  이전에는 그저 저이에게 피곤한 일이 있나 보다, 집에 돌봐야 할 아이나 어른이 있나보다, 코로나로 뭔가 집안에 힘든 일이 있나 보다 등 저희 나름대로 이해하고 넘어갔는데, 아이가 다쳤을 때 보인 태도에 실망하고 나니 이후의 이런 이야기에도, 그이의 눈빛, 말투까지 모두 어찌나 차갑게 느껴지는지. ㅠㅠ

그리고 아이를 불러준 어린이집 간호사 에밀리. 에밀리는 잭을 불러주며, 잭이 오늘 뭘 먹었고, 좋은 하루 보냈다고 간단히 말해주는데 평소와 달리 에밀리가 유난히 제 눈을 뚫어져라 보며 말하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ㅠㅠ 

그래서 저 몽실은, 어린이집에 사고 보고 이메일을 쓸 때의 당당함은 어디가고, 이내 쪼글어들어서 혼자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내 이메일로 인해 원장이 직원, 특히 각 반 대표 선생님들을 심하게 경질한 것은 아닐까, 이들이 그래서 나를 원망하는 것은 아닐까, 저들이 나를 별난 아시안 아줌마라고 생각하면 어쩌나, 나라는 사람이 그냥 이런 사람인 것인데, 이걸 "아시안"이라는 출신과 연결지어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이 일로 인해 우리 아이들에게까지 영향이 가는 것은 아닐까...'

 

부원장은 평소에도 늘 피곤한 모습이었고, 그 날도 그저 평소와 같은 불친절함이었을 수도 있는데, 저는 내 이메일이 이들에게는 너무 심한 편이었나, 나는 왜 좀 더 노련하게 대처하지 못했나 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자책"만큼 괴로운 게 없죠.  특히나, 스스로의 잘못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조차도 없는 일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 과정이야 어찌됐든 간에, 어린이집에서는 전체 부모에게 보내는 5-6월 행사 안내 이메일 말미에 코로나로 인한 안전조치 중 하나로 아이는 반드시 문에서 픽업/드랍오프한다는 규정을 명확히 하여 보냈습니다.   

 

제가 이런 저런 이유로 마음이 찝찝하다고 하니 틴틴이 위로같지 않은 위로를 건넸습니다. 

 

"괜찮아, 몽실. 원래 혁신가들은 피곤한거야."

"응? 누가 혁신가야?"

"이제 앞으로는 울타리 넘어로 아이들 건네주는 일 없도록 하겠다잖아. 네가 혁신을 일으킨거야."

"응...? 그게 혁신이야?"

"아무튼, 비슷한 사고가 또 나는 것보다는 조금 불편한 게 낫지. 괜찮아."

 

뭔가.. 이상한 비유지만, 그래도 틴틴 말대로 비슷한 사고가 앞으로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하였으니 그걸로 잘 되었고, 또 다른 친구 SM이도 그들이 만만한 가마니(?)로 보는 것보다는 오히려 조금 어렵고 불편하게 생각하는 편이 나으니 너무 마음쓰지 말라는 말을 해 주어서 그렇게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

소심했던 저는 괜히 선생님들의 눈빛 하나, 말투 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잠시 마음을 졸였다가 오늘 아침 여느때와 같이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오면서 마음을 훌훌 털어보냈습니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선생님들이 사고 이후에 대응하는 태도가 나쁘지 않았고, 저도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저만 피곤한 일일 뿐,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해 알게 되어 갈 거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지요. 

사고 후 처리에 대한 과정과 절차에 제가 예민하게 구는 것은 어쩌면 제가 사회정책을 전공한 사람이다 보니 약간의 직업병이라 할 수도 있을 만한 행정처리에 대한 엄격성을 기대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안전이 달린 문제는 허술하게 넘어갈 수 없다는 개인적인 소신도 한 몫 하였구요. 

마지막으로 일관성에 대한 기대.  우리 뚱이의 머리가 혹이 난 것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책임이 없는 부상임을 명확하게 서류화하기 위하여 사고경위서를 작성하게 하고 저희 서명을 받아가는 이들이, 자신들의 사유지 내에서 저와 뚱이에게 일어난 사고에 대한 경위서를 저에게 확인시켜주지 않는 것은 절차상으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사실, 이 대목에서 저는 원장에게 나에게도 사고 리포트 사본을 보내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영국의 시스템이 그러합니다.  저는 그걸 요구할 권리가 있고, 원장은 제게 그걸 보여줘야 할 책임이 있거든요. 

그러나.. 이렇게까지 하면 이건 원장으로서도 정말 피곤한 일이고, 저도 이곳 아니고서는 아이들을 보낼 다른 곳을 찾을 수 없는 처지이다 보니 그렇게까지 요구할 생각도 없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 없도록 조치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니, 그 정도 선에서 타협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오늘 원장에게 받았던 이메일에 드디어 회신을 보냈습니다.

사실 마음은 이메일을 받은 날 바로 답장을 해 주고 싶었으나 너무 피곤했고, 다시 그 일을 떠올리기가 힘들었습니다.  팔도 아프고 어깨도 아픈데 책상에 앉아 답장을 뭐라 쓸까 고민하기가 힘들었지요. 

오늘은 날도 맑고, 여전히 손목이 많이 시큰거리지만 근육통은 많이 회복이 되었고 하여 저도 기분좋고 어린이집에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친애하는 N에게,

친절한 이메일과 답장 정말 고마워.

네가 걱정해준 덕분에 지금은 몸이 많이 좋아졌어.  울타리 저 반대편에 문이 있다는 것을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은 점은 참 안타까워. 팔이 부러지거나 어깨가 부러지지는 않았으니 참 운이 좋았어. 여전히 등에 근육통이 있고, 손목도 시큰거리지만, 그것만 빼면 괜찮은 상태야. 뚱이도 건강하고, 어린이집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는 것 같아. 어제 보니 애가 편안하게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있더라고.

그리고, 모든 부모들에게 안전조치 관련해서 알려준 것도 많이 고마워. 덕분에 안심이 많이 돼.

앞으로 있을 여러 행사들이 기대돼. 아이들도 아주 기대하고 있을 것 같고, 아이들 모두 좋아할 거라 믿어. 

너의 친절에 정말 고마워.

좋은 하루 보내.

Best wishes,

몽실"

 

저는 나이 마흔쯤 되면 이런 일 정도는 아주 노련하게 처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고 보니, 이런 일에 감정적으로도 많이 흔들렸고,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별 것 아닌 것에 마음 졸이는 저를 발견하고 나이 마흔이 되어도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이만 먹었지, 사회생활 경험도 부족하고,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엮인 갈등상황을 맞닥뜨리고 해결해본 경험이 부족하지요.  

앞으로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이 비슷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생길까.  학급에서 생기는 일, 놀면서 생기는 일, 친구들 사이에 생기는 일, 선생님과 생기는 일.  여러 크고 작은 사건 사고를 겪게 될 것인데, 앞으로는 이런 일에 좀 더 부드럽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 일을 정리해봅니다. 

부드럽지만 강인하게.  강하지만 부드럽게 상대방을 포용해내는 힘이 있는, 그런 해결사, 중재자의 자질을 키워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어린이집을 마치고 자주 찾는 어린이집 근처의 공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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