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in 2021

[영국생활] 영국을 떠날 수 없게 하는 동네 산책로

옥포동 몽실언니 2021. 4. 28. 19:46

해외생활은 고충이 많습니다.  

국내에서 생활할 때 잘 생각해보지 못했던 종류와 내용의 고충이 많다는 것으로, 국내에서 생활하는 것도 고충이 많기는 마찬가지이겠죠. 

영국에 산 시간이 점점 길어질수록, 영국에 있을 땐 한국이 정말 그립습니다.  그렇지만 또 한국에 머물러 보니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영국이 그렇게나 그립더군요. 

4개월간의 한국 체류 후, 남편의 생업 즉, 저희 가족의 밥줄이 있는 영국으로 돌아왔고, 저희는 다시 영국생활에 정착 중이에요.  부모님들과 북적거리며 지내다가 다시 저희 네 식구만 있는 생활에 적응하려니 쉽지 않더군요.  한국으로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었지만 그나마 저희를 이 곳에 정 붙이게 해 주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동네 산책로입니다. 

저희를 영국에 머물게 하는 동네 산책로.  

Abbey Meadow in Abingdon

아이들 어린이집을 데려다주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남편이 회의 중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회의를 하다 보니 집에 돌아와도 남편 회의 소리에 제 일을 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아이들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meadow 근처 주차장에 차를 대고 바로 meadow로 걸어갑니다. 

이쪽은 동네 강 하류 부근인데, 이전에는 상류 쪽으로만 산책을 하고 하류쪽으로는 잘 오지 않았어요.  집에서 좀 더 멀기도 하고, 인적이 좀 더 드문 편이라 괜히 무섭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는 바로 이쪽 강 하류쪽 주차장을 지나게 되어 있어서, 돌아오는 길에 바로 차를 대고 산책하기에는 이 곳이 편리해서 요즘은 자주 찾는 편입니다. 

강 건너에 보이는 교회 건물은 St Helen's Church 로, 교회 건물 중 가장 오래된 부분은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에 지어진 아주 오래된 교회예요.  교회 마당 앞에는 나지막한 건물이 있는데, 그 건물은 15세기에 지어진 영국 구빈원(Almshouse)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숙소를 제공한 곳이지요.  지도교수님께서 저희 학과에 방문교수로 오신 분을 모시고 아빙던에 와서 이 교회로 걸어가 이 곳을 설명해주시면서 알게 된 곳입니다. 

St Helen's Church in Abingdon

강 건너 교회를 지나 계속 걷습니다. 

지금은 영국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예요. 

푸릇푸릇한 잎들이 자라나고, 여러 꽃들이 만개하는 시기이거든요. 

오늘은 날이 아주 흐렸어요.  부슬부슬 비가 오다 말다 반복하는 날이었지요. 

이런 날에는 이런 날대로 자연의 색이 아름답습니다.  습도에 따라, 햇볓의 양과 빛의 방향에 따라 자연의 색이 항상 변해요.  흐린 날에는 기분도 가라앉고 몸도 찌뿌둥하지만 자연의 색들이 좀 더 선명해집니다.  어둡지만 선명한 느낌.

푸릇푸릇..

좀 더 내려가면 강 건너에 민가들이 나타납니다.  외벽의 색상들과, 강가에 정박하고 있는 배들의 색깔과 강가 바람에 휘날리는 풀들의 색상이 묘한 조화를 이루네요.  희뿌연 하늘의 색마저도.

강과 호수, 공원이 많은 나라.  영국에 살면서 알게 된 것은 오리가 난다는 것, 거위도 난다는 것, 백조도 싸운다는 것입니다.  너무 당연한 건데, 한국 도심에서만 살던 저에게는 이 또한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거위들이 강 위의 물살을 가르며 퍼덕일 때..  거위의 작은 몸뚱아리에서 굉장한 힘을 봅니다.  자연의 아름다움도.

마음같아서는 하염없이 걷고 싶지만, 저도 제 일을 해야 하기에 적당히 걷다 돌아옵니다.  이제쯤 돌아가면 남편 회의는 끝나있겠구나 싶을 때쯤 발길을 돌립니다. 

얼른 마무리해야 하는데, 마무리하지 못한 중요한 일이 있거든요.  오늘은 꼭 그 일을 끝내는 게 목표입니다(그러면서도 블로그를 하고 있는 나...ㅠ).

돌아오는 길도 참 예쁘네요.  해가 화창한 날은 화창한대로 이쁜데, 이렇게 흐린 날은 흐린 날대로의 멋이 있어요.  집에만 있으면 볼 수 없는 자연의 멋.

잠시 고민을 해 봅니다.  차를 그냥 두고 집으로 걸어가고 싶다고.  여기서 집까지는 약 20분.  그리고, 이따 틴틴에게 주차장까지 산책해서 (도보 20분) 집으로 차를 몰고 오라고 하면 어떨까 하고.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혹시라도 틴틴이 오전 내내 미팅이 있어서 오전 중에 산책할 시간이 없을 경우, 결국 제가 다시 여기까지 걸어와서 차를 갖고 가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차를 두고 온 주차장에 점점 가까워갑니다.  저 멀리 돌 다리가 보이시나요?  바로 Abingdon Bridge입니다.   1416년에 지어져서 1422년에 완공된 다리라고 하네요.  정말 오래됐죠?

좀 더 가까이에서 다리를 보겠습니다. 

거의 600년이 된 다리예요.  그 다리가 아직까지 저렇게 보존되고 사용되고 있다니, 대단합니다.  

영국에 살다보면 이렇게 오래된 건축물들이 박물관에 박제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때가 많아요.  예전에 지어진 다리이다 보니 폭이 좁고, 시내로 들어가는 길로 통하는 다리인지라 교통량이 많아서 사람들의 편의를 생각하면 저 다리는 허물어버리고 더 넓은 다리를 짓고 길도 넓힐 수도 있겠지만, 영국에서는 어지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오래된 것들이 살아낸 긴 세월을 값어치있게 보기 때문에 저런 다리를 보존하기 위해 좁은 다리를 불편하게 다녀도 모두 거기에 적응합니다.  

그래도 아빙던 브릿지는 차량들이 양방향으로 달릴 폭이 되는데, 아빙던보다 더 작은 마을들은 마을 초입에 이보다 더 좁은 폭의 다리들이 많이 있어요.  그런 곳은 다리 인근에 양방향으로 신호등을 설치해서 한쪽 방향씩 번갈아가면서 통행이 이루어집니다.  

뿐만 아닙니다.  더 오래된 다리, 보존이 어려운 다리들은 통행료를 일부 받기도 해요.  그래봤자 20펜스에서 50펜스로 한국 돈으로 몇 백원 되지 않는 돈이지만, 전국 고속도로에 통행료가 없는 영국에서 작은 다리를 건너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합니다.  절대 아깝지 않은 돈입니다.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산책로.  아쉽지만 오늘의 산책은 여기까지. 

그리고 오늘의 블로그도 여기까지. 

저는 이제 본업으로 돌아갑니다.  내일 또 재미있는 글로 돌아올게요. 

모두들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