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영국생활] 남편의 구직활동

옥포동 몽실언니 2021. 12. 14. 22:52

남편이 이직준비 과정에 있다.

잘 될지 안 될지는 이번 주 안에 결정이 날 것 같다.

몇달의 시간 동안 가족 모두가 긴장했다.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채 엄마 아빠가 바쁘고 피곤해하고 날카롭다는 것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남편은 늘 피곤해했고, 힘들어했고, 별 일 아닌 일에 날카롭게 반응해서 나의 원성을 종종 샀다. 나는 남편을 배려해주느라 힘들면서 동시에 남편이 나의 이 배려를 알지 못하는 것 같아 서운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남편의 이직이 우리 가족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다 보니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첫번째 회사는 코비드에 걸린 중에 인터뷰에 임하면서 망쳐버렸고, 두번째 회사는 첫번째 인터뷰, 두번째 인터뷰를 거쳐 세번째 집에서 하는 과제까지 제출한 상태로, 과제 결과물에 그들이 만족한다면 마지막 단계의 인터뷰에 가게 된다. 세번째 회사는 첫번째 인터뷰에서 기술시험, 두번째 인터뷰, 세번째 인터뷰를 거쳐, 오늘 또 한번의 인터뷰를 한 상태이고, 며칠 안에 최종 결과를 듣게 될 예정이다.

그러던 중에 새로운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와서 두 곳 더 인터뷰를 했다. 한 곳은 너무 스타트업이라(=회사 재정이 매우 불안정) 남편(과 같이 가정이 있는 사람)이 조인하기 힘든 조건의 회사라는 것을 알고 서로 첫번째 인터뷰만 하고 종료했고, 두번째 회사는 오늘 인터뷰가 진행됐는데 남편 말이 자기는 모든 인터뷰에서 거의 동일한 말만 반복하는데 뒤로 갈수록 상대편이 더 좋게 반응하는 것 같다고 한다. 즉, 오늘 마지막으로 인터뷰한 그 회사의 반응이 지금껏 받은 반응들보다 제일 좋았나보다. 이 곳은 되더라도 진짜 갈 생각이 별로 없다(연봉도 높지 않고, 재정도 그리 탄탄하지 않고=언제 개발자를 갑자기 잘라도 이상하지 않을 환경, 해서 2차 인터뷰로 가게 되면 거절을 할 생각). 그리하여 지금 두번째, 세번째 회사들 중에 어떤 오퍼가 오는지에 따라 향후 행방이 갈리게 된다.

남편은 원래 내년 상반기 즈음에 이직을 할 생각이었는데, 난 뭘 그 때까지 기다리냐, 지금 물 들어왔을 때 노 젓자(IT 마켓이 이렇게 좋을 때 이직하자) 주의였다. 내가 완전 적극적으로 지지하겠다. 아이들 데리고 자는 일도 내가 다 하고, 주말에는 한글학교로 아이들 둘을 모두 데리고 갈테니 혼자서 조용히 이직 준비를 해라.

시작은 그렇게 했는데 그 과정은 참 쉽지 않았다.

남편은 첫번째 회사로부터 좋지 않은 결과를 받고, 코비드도 앓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매일 꾸준히 준비하며 두번째, 세번째 회사로부터 좋은 결과를 받았다. 최종적으로 오퍼를 받게 될지 여부를 떠나 현재의 단계까지 진행한 것만으로도 난 틴틴이 정말 큰 일을 해낸 거라 생각한다. 아이들 때문에 개인 시간을 낼 틈이 정말 부족한데,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서도 자기가 자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준비를 계속해서 해나간 것, 그 자체로 큰 일이기 때문에.

나도 힘들었다. 힘든 시간이 될 줄은 알았지만, 나도 내 일을 하며 남편 배려를 해주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나도 내 일이 소중한데 남편이 현재 나보다 더 큰 소득을 벌고 집안에 가장이라는 이유로 내 시간과 경력과 에너지를 희생하여 남편을 지지해준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게 최선이고,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하긴 하지만, 나라고 왜 내 일에 더 집중하고, 더 좋은 성과내고 싶은 욕심이 없겠는가.

뭐든 쉬운 게 없다. 그게 인생인 것 같다.

예전에는 삶의 의미, 삶에서 내가 추구해야 할 방향, 신념, 가치, 이런 것들에 대해 많이 고민했는데, 요즘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할 시간이 없다. 그냥, 나는 지금 당장의 내 할 일을 하고, 남편도 자기 할 일을 하고, 둘이 함께 아이들 이쁘게 커 가는 모습 보며 감사해하고. 그것만으로도 벅차다. 과거에는 모든 것을 내가 다 고민하고, 스스로 풀어가려고(삶의 의미와 가치 등등에 대해) 노력했는데, 지금와서 돌아보면 그 시간들은 내가 복에 겨워 몸부림친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당시에는 내 나름대로는 처절한 고민들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시간이 있고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고상한 고민들이었음을.. 이제라도 인정해야 한다.

하루하루 먹고 살 돈을 마련하고, 그 돈으로 먹고 살고 자식을 먹여살리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고귀한 인생을 값지게 살고 있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에 충실한 우리에게 스스로 칭찬을 해줘야 한다.

틴틴, 어떤 결과가 오든 그 결과를 떠나 그간 수고 많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