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생활/부동산 및 집구하기

부동산에 집을 내놓기로 했다

옥포동 몽실언니 2022. 3. 4. 08:00

이사를 계속 고민했다. 

가기로 했다가, 가지 않기로 했다가, 다시 가기로 했다가, 가지 않기로 했다가, 결국 가는 쪽으로 다시 마음을 바꿨다.


이사를 가려면 집을 팔아야 한다.  집을 팔려면 부동산 직원이 우리 집을 와봐야 했다.  와서 보고 이 집을 얼마에 내 놓을 수 있을 거 같다는 감정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주말동안 열심히 청소를 하고, 부동산 직원과 미팅을 가졌다. 

틴틴은 일 때문에 방에서 일을 하고, 나 혼자 부동산 아저씨와 한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눴다. 

아저씨는 지금 우리 동네 집들이 수요가 많다고 했다.  특히, 우리 집 위치에 이런 집이 잘 없다고 내 놓으면 금방 팔릴 것 같다고도 했다.

그래도 우리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정 든 동네.  정 든 집.  틴틴의 출퇴근이 불편한 점 하나 빼고는 지금 우리 가족의 상황에서는 나무랄데 없는 최고의 집이었다. 

이사를 가기 위해 치러야 할 모든 과정들을 우리가 과연 해낼 수 있을지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이사를 가지 않는 쪽으로 결정했었다.

그러다 그 결정을 바꾸게 된 계기는 얼마전 틴틴이 런던으로 가야 하는 날 비가 왔기 때문이었다. 


밤새 내린 비가 그치지 않아서 틴틴은 그 날 아침 방수 잠바를 입고, 바지 위에도 방수 바지를 덧입고, 가방에는 회사 랩탑을 맨채, 헬멧을 쓰고 자전거를 타고 달려 기차역까지 가야했다. 

돌아올 때라도 데리러 가고 싶지만, 그럼 사람은 데리고 돌아와도 자전거는 갖고 돌아오지 못하니, 자전거를 타고 갔으면 자전거를 타고 돌아와야 했다. 

이제 3월. 영국에서는 4월까지도 태풍도 잦고, 바람도 세고, 비오는 날도 많다.  1년 중 3분의 2 이상이 비가 오는 날이니.  출근일에 비가 오지 않는 게 더 놀라운 일이다. 

여름에는 비가 자주 오지 않으니 그럭저럭 버틴다 해도 10월이 되면 하루가 멀다하고 비가 내릴텐데.  그 때마다 비록 매주 한번이라도 틴틴이 매번 비옷을 입고, 가방에는 랩탑을 든 채 자전거를 타고 런던을 오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차라리 랩탑이라도 없으면 할만할텐데, 가방에 랩탑부터 비옷까지 모두 넣고서 기차를 타고, 한번 또 갈아타고, 런던에 도착해서 지하철을 타고, 또 한번 갈아타야 회사에 도착하는 생활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그 날을 계기로 우린 결심했다.  이사를 가자고. 


부동산에 다시 연락을 해서 집을 팔겠다고 했다. 

그럼 다음 과정은 집 내부와 외부 사진을 찍는 것.  

요즘은 코비드 이후로 집 내부와 외부 영상도 찍어올린다고 했다.  밖에는 드론으로 카메라를 띄워서 집 가든을 공중에서 찍고, 내부는 영상으로 여러 컷 찍은 후 연결해서 영상으로 올린다고 했다.

그러려면 청소를 해야 한다.  지저분한 짐을 치우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집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온라인에서 우리집 사진을 본 사람들이 집을 보고 싶다고 마음을 먹고, 집을 봐야 집을 살지 말지 결정들을 할 것이다. 


(사진: Photo by Travel-Cents on Unsplash    영국에 이런 집도 있다니. 외부에서 2층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 집은 처음봤다)

 

집 사진을 찍기로 하고나니 왜 매일 비가 오는지.  사진을 찍기로 한 날도 온종일 비가 내려 결국 일주일 또 연기했다.  외부에서 찍는 영상은 비가 오면 카메라를 띄울 수 없다고, 비가 오지 않는 날에 하기로 했다. 


그 와중에 러시아는 전쟁을 일으켰다. 

이사를 고려하고 있는 동네 두 곳에 매물이 올라오나 매일 체크를 하는데, 전쟁이 터지고 나서 새 집이 올라오는 속도가 더뎌졌다.  

올해 1월, 2월은 유례없이 부동산 거래가 활발한 두 달이었는데, 전쟁으로 그 기세가 꺾이는 듯했다. 

그렇잖아도 인플레이션에, 미국의 금리인상 압박과 함께 영국에서는 이미 작년 겨울에 한차례, 또 올해도 한차례 금리가 인상됐다.  

두 달전에 확인했던 모기지 금리보다 지금은 0.5% 이상 이미 오른 상태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우리도 마음이 위축되는데, 남들이라고 별로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상황이 어떻게 되나 지켜보고 싶겠지.  

부동산 아저씨 말씀이, 영국에서는 집을 사고 파는 데 평균잡아 최소 5개월은 걸린다고 했다.  이 아저씨는 이 동네 부동산에서만 30년을 일한 아저씨다. 

우리 집을 살 사람이 금방 나타난다고 해도, 우리가 들어갈 집을 사게 될 그 시점은 그 보다 더 이후가 될텐데.  그 때는 이자가 얼마나 더 올라 있을지.  인플레이션은 또 어떠할지.  전쟁 상황은 어떻게 진전되었을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나도 마음이 위축되어서 이번에 이사를 가지 말아야 하나 고민이 들기도 했다.

못 갈 수도 있다.  운 좋게 좋은 집이 나타나서 이사를 갈 수도 있고.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일.

그래도 이사를 꼭 해야 할 사람들은 집을 팔 수밖에 없고, 이사를 꼭 가야 할 사람은 집을 살 수 밖에 없다. 

전쟁으로 마음도 무겁고 상황도 불확실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냥 우리가 살아내야 할 일상을 살아가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냥 우리의 하루하루를 묵묵히 지내기로 했다.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다행이고, 나타나지 않으면 그 또한 괜찮다.  

집 사진을 찍을 줄 알고 안팎으로 열심히 청소했는데, 이 청소를 다음주에 다시 해야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