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초딩키우기

[리셉션] 선생님과 면담, 그리고 그 후.. 자폐 의심과 우리의 대응

옥포동 몽실언니 2023. 3. 3. 08:51

제 지난 이야기에 후기를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실 거 같아요.  

2023.01.31 - [교육/리셉션(0학년) 일상] - [리셉션 적응기] 아이(만 5세) 선생님께 또 불려갑니다...

사실 몇번이나 글을 적었다 비공개로 저장하고, 또 새글을 쓰다가 애들 때문에 중단하다가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 어느새 몇 주가 지나버렸네요. 

당시 제 불길했던 예감은 틀리지가 않았어요.  선생님을 만났고, 선생님은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관찰한 아이의 특징을 나열하시며 소견서를 써줄테니 소아과 전문의를 만나볼 것을 권하셨어요.

선생님께서 묘사하시는 아이의 특징들은 다름아닌 고기능성 자폐(학습 능력은 있으나 사회적 상호작용이 안 되고 사회기술이 현저히 떨어지는 아이)였어요. 

학습은 잘 되는 편이지만 다른 아이들과 상호작용이 없고 사회적 기술이 떨어지며 감각 욕구가 높아서 감각개입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이 감각욕구는 선생님께서 지난번에도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다시 들어도 그게 뭔지 모르겠고, 이해가 잘 가지 않았어요.  어쨌든 선생님의 결론은 정식 명칭은 본인의 입으로 말하지 못하지만(의료인이 아닌지라 절대 함부러 말하면 안 된다고 하네요) 아이를 고기능성 자폐로 잠정적으로 단정지으신 것 같은 상태였어요. 

음...? 뭐지...?  우리 아이가 그렇다고...?  

저는 대혼동에 빠졌어요.  우리 아이가 세상 사람들과 상호작용하고 있다고 느낀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나, 내가 아이의 마음을 아니까 아이가 소통하지 못하는데 나는 소통하고 있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었나.. 우리 아이가 정말 자폐인가?  자폐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선생님이 보는 아이와 내가 보는 아이는 왜 이렇게 다르지..?  

면담 중에 제 생각을 물으시길래 저는 아이의 수줍어하는 성격과 언어 장벽 때문이라 생각한다고, 한국인 사촌들과 너무나도 잘 놀고, 바로 몇 주전 한국에서 저희집을 방문한 사촌 누나들과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래도 선생님은 의심을 거두지 않고 계속 물으셨어요.  어떤 놀이를 했냐, 이런이런 놀이는 못하지 않았냐, 놀이가 일방적이거나 아이 혼자 하는 놀이였지는 않았냐 등등.

아이가 어릴 떄부터 환경에 예민하기는 했어도 사회성 문제를 고민해본 적은 없다고 말씀드리자, 어릴 때부터 어떤 부분이 예민했냐 물으셔서 처음 수영장에 간 날 소리가 울리고 공기가 다르자 겁을 먹고 울어서 수영장을 못 쓰고 나온 일, 새 신발 신기를 거부한 일을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그 이야기를 의사 만나서 모두 다 하고, 의사 선생님에게 우리 아이가 받을 수 있는 도움을 여쭤보라고 하셨어요. 

미팅을 마치고 돌아온 저는 계속 벙찐 상태. 

혼란스러운 상태가 이어졌어요. 

사실 저는 아이가 어떤 진단명의 상태를 가졌는지 여부를 떠나 선생님이 바라보는 아이와 제가 보고 느껴온 우리 아이가 너무 다르다 보니 거기서 온 괴리가 참 힘들었어요.  이걸 설명하려고 해도 선생님은 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지 않고, 결국 의사를 만나보라는 이야기로 끝이 났으니까요. 

그 자리에서는 당연히 좋다고, 의사 만나보겠다, 소견서를 써달라고 말씀을 드리고 나왔어요. 

선생님과의 면담에서 제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은 선생님께서 특정 프레임을 정해놓고 잭이라는 아이를 그 틀에 끼워맞추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어요.  가령, 선생님은 우리 아이가 노래 가사를 잘 외우는 것이 노래가사를 스토리로 기억하기 때문이라 하셨어요.  자폐에 대해 잘 아는 특수교사 선생님께서 그게 자폐의 특징이라 하시는데, 제가 아는 우리 잭은 노랫말 의미를 하나도 모르는 노래도 곧잘 따라부르고 노래를 즐기는 아이였어요.  노랫말도 모르는 것도 소리로만 기억하고 부르며 즐기는 아이를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요. 

그외에도 놀이터에서 하는 단체 놀이에 약하다 하시는데, 집에서 저랑 여우야 여유야, 동동동대문을 열어라 같은 놀이는 잘만 하는데, 영국에서 영어로 하는 영국 놀이를 못한다고 그걸 들어 자폐를 의심하시니.. 전 이것도 답답할 노릇이었어요. 

뿐만 아니라 아이가 패턴에 강하다고 하시는데, 제가 아이 수학공부를 시켜볼까 해서 패턴을 제시했을 때는 아이가 패턴을 전혀 파악하지도 못하고 패턴에 대한 인식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응??? 우리 애가 패턴에 강해???  (약하다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다행이네... 라고 대답했더니.. 이 모든 이야기의 끝은 아이의 자폐가 의심되니 의사를 만나볼 것을 권한다는 것이었지요.

선생님은 진단명만 얘기하지 않았지 마음 속으로 이미 우리 아이에 대해 진단명을 내린 것 같은 상태라 전 그것도 참 어이가 없고 속상했어요.  뭐지.. 왜지...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아이들이 잠든 후 저는 심란한 마음으로 이곳저곳 조언을 구할만한 곳들에 의견을 구하고, 고민을 좀 한 끝에 아침이 밝았을 때 선생님께 메일을 보냈어요. 

어제는 면담에서 나눈 이야기가 다소 갑작스러워서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것 같은데, 집에서 내가 보는 우리 아이와 학교에서 보는 우리 아이 모습 간에 간극이 큰 것 같다, 선생님이 제시해 준 조언 다 좋은데, 학년 초부터 이야기했다시피 나는 아이의 언어 장벽으로 인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감각욕구에 대해 개입하는 만큼, 영어에 대해서도 별도로 개입을 좀 해줬으면 하는데, 어떠냐. 주 2회 15분 정도씩만이라도 좋을 거 같다... 고 제안을 했어요. 

집에서 보는 아이 모습과 학교에서의 모습 간에 간극이 너무 크니 다시 한번 만나서 남편도 대동하여 다같이 이야기를 한번 나눴으면 좋겠다... 고 메일을 보냈지요.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때 일어났어요. 

선생님 의견에 이견을 보이는 제 이메일에 선생님이 기분이 상하셨는지 담임 선생님께서 장작 3페이지는 될 거 같은 분량의 장문의 답장을 제게 보내오신 거지요.  요지는 우리가 잭의 영어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오고 있는데!!!!  따로 '외국어로서의 영어'라는 수업으로 제공하고 있지 않을 뿐이지 아이 영어를 위해 우리가 이런 이런 노력을 하고 있고, 아이의 감각 문제에 대한 감각 개입에서도 모두 영어로 말하는 기회를 가지며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다다다다다다다.... 학교에서 본 아이 모습과 내가 보는 아이 모습이 좀 다른 것 같다고 한 모든 부분들에 대해 하나 하나 재반박하시는 장문의 메일을 보내온 거죠.  

이메일을 읽는 순간 제 가슴은 쿵쿵쿵쿵... 정말 소리가 들릴 정도로 쿵쿵 울렸어요. 

난 이제 어떡하지.  선생님이 화가 잔뜩 났는데.  

내가 이 나이 먹고도 아직 사회성이 부족하구나.. 혹시라도 선생님 심기를 건드리지는 않을지 내가 쓴 메일을 읽고 읽어서 가다듬어 선생님 심기 불편하지 않게 최대한 돌려써서 메일을 보냈어야 했는데.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마음이 급해서 그 때 떠오른대로 주루륵 글을 써서 보낸 게 선생님 심기를 불편하게 한 모양이구나..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이렇게나 선생님이 화가 나도록 하게 이메일을 적었나.. ???  남편은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그냥 사실을 차분히 적은 것 같다고 하는데... 선생님은 왜 이렇게 화가 난 건가.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 생각을 말도 못 하나... ㅠㅠ

의사를 안 보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레터 써주면 의사 보러 가겠다고 그건 그것대로 진행하겠다고 이야기도 했건만 왜 이렇게 화가 나신건지. 

며칠 후 만나면 그 떄 난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나... 

그렇잖아도 학교에서 자꾸 지적받고 있는 우리 아이를 내가 더 외롭게 만드는 건 아닌가.  

이러고도 내가 엄마인가.  별에 별 생각을 다하며.. 이날부터 저와 틴틴, 저희의 삶은 피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늦어져서 오늘 더 쓸 수가 없네요.  한달이나 지난 일인데도 그 떄 일을 적으니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이에요.  바로 엊그저께 일 같으면서도 지난 그 한달간 이렇게 많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구요.  

다음 이야기는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모두들 좋은 밤, 좋은 하루 되세요! 오늘도 방문해주시고, 저희 가족을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