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초딩키우기

[리셉션 적응기] 아이(만 5세) 선생님께 또 불려갑니다...

옥포동 몽실언니 2023. 2. 1. 08:36

네, 제목 그대로예요.

또 불려갈 예정이에요.  며칠 뒤에...

학교를 시작하니 한 학기에 한번씩 선생님과 부모님 면담을 하나봐요.  영국은 9월에 학기를 시작하고 1년이 3학기제로, 가을학기, 봄학기, 여름학기로 이루어져요.  첫 학기에는 10월 중간방학 직전쯤 10분간 온라인으로 선생님과 면담을 했어요. 그리고 이번에도 이번학기 미팅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미팅 하루를 앞두고 선생님으로부터 메일이 왔습니다. 따로 만나서 면담할 수 있겠느냐구요. 

온라인으로 미팅을 하면 시스템에서 자동으로 10분이 다 되면 통화연결이 끊어져요.  그런 점을 말씀하시며, 저희에게는 몇가지 더 이야기해야 할 것들이 있어서 며칠 후 방과후에 면대면으로 직접 만나서 미팅을 했으면 좋겠다구요. 

이메일을 받자마자 저는 가슴이 철렁...

선생님이 제시하신 건 '목요일 아니면 금요일' 오후였는데, 저는 차라리 금요일에 매를 맞고 주말에 회복하는 시간을 갖겠노라 생각하고 매 맞는 날을 미루고 싶어 금요일이 좋다고 답장을 했습니다. 

선생님께 몇 시간 후 답장이 왔어요.  애들이 없어야 이야기하기 좋으니 애 봐줄 사람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라구요.

원래는 남편 회사에서 금요일은 미팅을 하지 않는 날로 정해져 있어서 금요일에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가려고 한 것이기도 했는데, 선생님의 답장을 받자 마자 이번주 금요일에는 남편에게 중요한 미팅이 있다는 게 생각이 났어요. 

그제서야 남편에게 가서 금요일 시간이 어떤지 물으니 아니나다를까 딱 미팅 시간전부터 해서 오후 늦게까지 계속 미팅이 있네요.  

그래서 선생님께 다시 메일을 썼어요. 

죄송하지만 목요일로 바꿀 수 있겠냐구요.  목요일에 하면 애들을 남편에게 맡길 수 있는데, 금요일은 힘들다고요.  

그 짧은 이메일을 쓰는데, 한숨을 몇 번이나 쉬었는지 모릅니다. 

미팅에 불려가는 것도 속상한데, 이젠 미안하다고 하고 다시 날짜를 바꿔달라고 요청해야 하니...

그러던 중에 카톡으로 전화가 오네요?  한국에서 친한 선배언니 전화예요. 

그제서야 생각났어요.  몇 분 전에 제가 줌 미팅이 잡혀있었다는 사실!

부랴부랴 상의 잠옷을 벗고 외투를 걸치고 컴퓨터를 켜서 책상에 앉아 줌에 접속했습니다. 

언니들께 사과의 말을 건네자 언니들은 괜찮다며,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셨어요. 

"전... 요즘.. 집에서 선재 돌보고, 선우 학교 생활 적응 도와주고... 그것만 하고 있어요.  방금 또.. 선생님이 면담 요청이 와서... 그거에 마음이 무거워서 선생님한테 답장을 하느라 거기에 정신이 팔려서 그만 오늘 미팅인 걸 완전 까먹은 거 있죠.."

"그러게, 선우 학교 잘 다녀?"

하고 묻는 언니들...

"네, 애는 잘 가고 돌아와서도 기분 좋고, 잘 다니는 것 같은데, 학교에서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가봐요. 이번에는 또 무슨 이야기를 하실지...  흑흑흑흑..."

왈칵 울음이 터져버렸어요. 

울음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저와 저희 아이를 궁금해해주고 염려해주는 이들의 따뜻한 목소리를 들으니 이제야 내가 울 곳을 찾은 것마냥 눈물이 터져버렸어요.  도대체 몇달만에, 아니, 거의 일년만에 화상으로 만난 언니들인데... 그 언니들 앞에서 울기부터 했네요.

"죄송해요. 좀 전에 연락을 받고, 이제야 막 답장을 한터라서 너무 제 감정이 fresh한 상태였어요. 흑흑.. 저는 이렇게 저렇게 지내고 있었어요..."

여섯명이서 서로의 근황을 주고 받았어요.  그 중 아이가 있는 분은 딱 한 분.  한명은 저보다 동생. 

아이가 있는 분은 딱 한분이었지만, 그 언니는 저보다 한살 많으면서 애는 셋이나 키웠어요.  큰 애가 중학생인지, 이제 고등학교를 올라갔는지...  20대에 결혼해서 20대부터 육아를 한거죠.  그 언니가 그러네요.

"4살, 6살 둘을 키우고 있으니.. 지금이 제일 힘든 때야.  다행인 것은 그 시간이 무한하지 않고, 유한하다는 거야.  대신, 그 시간을 지나면 또 다른 더 큰 산이 기다린다는 게 함정이지만.. 하하하하하."

언니 말에 다같이 웃음을 나눕니다. 

미팅에 앞서 제 정신수련을 잘 해야 할 것 같아요. 

아직 어떤 일인지 모르면서 미리 걱정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 선생님의 이야기에 감정을 담아 듣지 말 것, 선생님이 하는 이야기를 잘 메모해와서 남편과 잘 의논해볼 것. 


요즘 많이 드는 생각인데요. 

인생이 원래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겪게 되는 이 모든 과정들이 제게는 인생을 배워가는 여정같다고 느껴져요.  이렇게 내가 인생을 배우는구나.... 

박사논문을 쓰기 시작할 때 참 부담스러우면서도 지겹게 들은 말이,  박사과정은 하나의 journey (여정)이다, 모든 논문은 독창성(originality)이 있어야 한다, 시험은 질문에 답을 하는 거지만, 논문은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는 것이었죠.

박사를 하는 과정 중에는 독창적인 논문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 늘 부담되고, 저 스스로 해나가야 하는 그 여정이 외롭고 힘들었는데, 박사 학위를 마치고 나서 그제야 교수님들이 하신 그 말씀이 뭔지 이해가 갔어요.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서 저 말은 단지 박사과정이나 논문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모든 사람의 인생은 고유하고, 따라서 모든 사람의 인생은 하나의 고유한 여정이라구요.  박사논문을 쓰는 과정이 하나의 여정이었지만, 그것만이 여정이 아니라 인생 자체가 하나의 여정이었더라구요. 

아이를 키우면서 살아가는 요즘, 아이를 통해 제가 저 자신만의 인생에서 겪지 않았던 일들(선생님께 좋지 않은 행동으로 지적받기), 겪어보지 못한 것들을 겪으며(학교에 불려가는 부모역할), 인생이 뭔지, 인간은 뭔지, 내가 가진 경험의 폭과 사고가 얼마나 한정적이었는지 생각해보게 하고, 내 속에 내가 몰랐던, 혹은 모른척 했던 나의 편협함, 자존심, 약하고 여린 마음 등등 여러 가지 것들을 마주하게 합니다.  

전 제가 일반적인 기준으로 상식적이고, 성숙하고, 합리적이고, 온정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었어요. 어릴 땐 그런 생각이 별로 없었고, 저 자신의 부족한 점만 생각하던 때도 있었는데, 오래 살며 이런 저런 사람들을 겪다 보니 저 정도면 제법 온정적이고 괜찮은 사람 축에 속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런데 이렇게 또 선생님께 불려가는 일을 겪으며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저의 오만함을 반성하게 되고, 겸손한 마음과 사랑으로 아이들을 키워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내일은 부디 오늘보다 목소리 키우는 일이 적도록 노력해볼게요.  선생님께 불려가기 전까지, 또 불려다녀온 후까지도.. 제 심신을 잘 다지고, 아이들에게 영향 주지 않도록 힘써보겠습니다. 

지금은 이게 참 큰 일이지만, 지나고 보면 별 일 아닐 일일터이니, 너무 마음쓰지 말고 담담하게 임하자고 적으며, 그 말을 마음에 새겨봅니다.

관심가져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