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초딩키우기

[리셉션 적응기] 선생님 면담 후.. 부부동반 재면담 이야기

옥포동 몽실언니 2023. 3. 24. 23:13

지난 번 글에서 선생님과의 면담 후에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몹시 당황한 일을 적어보았는데요.  오늘 드디어 그 뒷 이야기를 적어볼까 합니다. 

지난 일 요약

이전글을 보시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요약하자면, 저희 선생님은 저희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의 상호작용이 너무 떨어진다고 자폐를 의심하셨고, 의사를 만나볼 것을 권하셨어요.  저는 그 자리에서는 좋다고 했는데, 집에 돌아와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선생님께서 보시는 우리 아이와 집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우리 아이 모습이 많이 달라 혼란스러웠고, 그런 점을 선생님께 이메일을 보내 추가로 설명드렸어요.  그리고, 저는 영어 장벽을 좀 낮추기 위해 아이에게 '외국어로서의 영어' 수업을 매일 10분이라도, 안 되면 주 2회만이라도 받을 수 있을지 여쭤봤어요. 

 

그에 대한 선생님의 답장이 지나치게 방어적이어서 저는 많이 당황했어요.  제가 메일로 말씀드린 것들 하나 하나에 반박 혹은 부연을 하셨고, 아이에게 따로 영어 수업이 제공되고 있지는 않았지만 아이의 영어를 위해 자신들이 이미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오고 있었으며, 아이가 어른들에게는 문장으로 말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셨죠. 

 

선생님의 이메일 톤에서는 선생님 의견에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제 이야기로 인해 선생님이 자신의 전문성을 무시당했다고 느낀 것 같았어요.  제가 마치 선생님의 의견이 '틀렸다'고 이야기한 것처럼 느끼신 것 같았죠.  전 좀 혼란스러웠을 뿐이고, 아이의 '감각 문제'에 대해 개입하시는 만큼 영어도 같이 그 계획에 추가해주면 좋겠다고 말씀드린 것인데, 그게 그간의 선생님의 노력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여졌나봐요. 

 

저는 선생님을 화나게 할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 제 이메일이 선생님의 심기를 단단히 건드린 것 같았지요.  그렇잖아도 아이에 대한 선생님의 말씀에 혼란스럽고 힘든데, 의도치않게 선생님 화까지 돋구게 된 거 같아 어찌할 바를 몰랐어요. 

 

선생님과의 면담을 한 것이 목요일, 선생님께 영어 수업을 부탁하는 이메일을 한 것이 금요일 아침인데, 선생님께서 근무 시간 중에 제게 장문의 답장을 보낸 게 그 날 점심 시간 경이었어요.  그리하여 그 메일을 확인한 시간부터 그 다음날인 토요일, 일요일까지.. 저희 부부는 무슨 정신으로 살았나 모르겠어요.  제대로 된 밥을 해 먹을 경황이 없었고, 그 주 일요일 늦은 오후 동네 교회에서 얻어먹은 밥이 그 주말에 먹은 제대로 된(?) 첫 '밥'이었지요.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던 것은 제 정신이 온통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고 발전시켜나갈지에 쏠려있었기 때문이에요.  금요일과 그 주말, 저는 선생님과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주말 후에 다시 미팅을 하기로 했어요.  왜 그렇게 서로가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이 다른지, 그리고 그 점에 대해 어떻게 할지 남편과 함께 선생님을 다시 만나서 이야기하기로 했어요. 

 

선생님께 답장하기

저는 계속해서 생각하고 많이 고민했고, 주변에 가까운 선배맘들과 동료맘들에게 조언을 구했어요.  주말 동안 아이의 행동에 대해 더 관찰하고 고민한 끝에 몇가지 결론에 이르렀고, 어떻게 선생님께 답장을 할지 생각을 추릴 수 있었습니다. 


첫째.  선생님과 관계가 나빠지지 않도록 잘 풀 것.  선생님과 척을 지지 않고, 아이가 좋은 분위기 속에서 학년말까지 보낼 수 있도록.   

둘째. 선생님께 내 생각에 대해 다시 잘 설명드릴 것.  특히, '영어' 부분을 도와달라고 했던 이유를 좀 더 잘 설명하기. 


이것을 어떻게 이메일로 적어야 하나 고민을 하며 메일을 쓰다 말다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다 일요일 밤이 되어 결국 이메일 최종본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제가 쓴 이메일은 네 가지 정도의 내용으로 구성됐어요.  


첫째, 싹싹 비는 긴 문단을 적었어요.  혹시라도 내 이메일에 선생님이 기분이 상했다면 매우 죄송드렸죠.  나에게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서 미묘한 뉘앙스를 정확하게 전달할만큼 내 영어가 훌륭하지 못해서 생긴 오해일 거라고. 

둘째, 영어부분을 도와달라고 부탁드린 건 아이가 영어 환경과 한국어 환경에서의 행동이 매우 달랐기 때문이지, 절대 선생님이 아이 영어에 대해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 부족하다고 느껴서가 아니었다고 설명드렸어요.  또, 아이가 학교 생활에 대해 잘 이야기하지 않아서 영어 부분에서 어떻게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몰랐다고도 말씀드렸지요.  선생님이 제게 썼듯이 이미 충분히 많은 노력을 해오고 계시니, 그것에 매우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어요.

셋째, 그러니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바로 의사도 만나고, 아이의 언어 발화 평가도 받을 수 있게 진행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넷째, 그간 선생님이 해 준 조언들이 매우 도움이 됐고, 앞으로도 선생님의 '전문성' 있는 도움이 필요하니 계속 도와달라 읍소하는 메세지...


즉, 미안하고, 고맙고, 계속 잘 부탁한다는 메일이었지요. 

 

최대한 짧고 간결하면서도 핵심 메세지가 잘 전달될 수 있게 이메일을 다듬은 후 '전송'을 클릭..  저는 편안하게 잠이 들었어요. 

 

선생님으로부터의 답장

다음날 아침!  선생님께서 벌써 답장을 주셨네요?  선생님도 주말 내내 맘이 편치 않으셨나봐요.  아마 출근하자마자 처음으로 한 일이 우리에게 답장을 주신 게 아닌가 싶었어요.  이메일 보낸 시간이 오전 7시 47분쯤이었거든요.  출근시간이 제법 이른 거 같죠? 

 

선생님은 답장에서, 

1. 사과할 필요 없다.  그 어떤 offence도 없었다.  
2. 길게 이메일 썼던 이유에 대한 설명 - 가끔 길게 메일로 쓰는 게 부모들이 읽고 또 읽을 수 있어서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3. 아이의 영어에 대한 부분도 아이 계획서에 넣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시 곧 다시 만나서 이야기하자.  

고 메세지가 왔습니다.

 

선생님이나 저희나 서로 적당히 예의를 지켰고, 조만간 다시 만나 아이에 대해 다시 의논하기로 했지요. 

다시 만나는 날은 '자폐' 이야기가 나온 날로부터 딱 일주일 뒤였던 그 주 목요일이었어요.  그 미팅에는 저와 남편이 함께 가기로 했어요.  아이들은 다른 곳에 맡기고 가겠다구요.  감사하게도 같은 반 친구 아빠가 그 날이 쉬는 날이라 저희 아이 둘을 선뜻 맡아주었고, 그 덕분에 저희는 그 주 목요일 오후 선생님을 만나 편안하게 의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과의 재면담 시간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니 짧게 적자면,

저희 부부가 함께 가서 선생님을 만났고, 이번에는 감사하게도 보조선생님께서도 함께 자리에 참여하여 이야기를 나눴어요.  즉, 넷이서 충분히 아이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지요.  학교에서 아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어떤 점들 때문에 선생님들이 그렇게 우려했는지, 집에서는 아이가 어떻게 다른지, 왜 우리가 학교에서의 모습을 전혀 가늠할 수가 없었는지 서로의 이야기를 충분히 주고 받았어요. 

서로가 아이를 이해하는 데에 제법 도움이 된 시간들이었던 것 같아요.  감사한 것은 선생님들이 아이를 그저 '진단'하고 '처방'받게만 하려는 게 아니라 아이의 학교생활이 나아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한다는 것이었고, 우리 부부 또한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서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저는 아이의 성격과 성향에 대해 선생님께 더 충분히 설명드렸어요.  아이가 쉬운 영어 문장을 구사는 할 수 있지만, 또래 친구들 앞에서 그걸 편안하게 구사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요.  다른 아이들이 자기보다 영어를 잘 하고, 자기의 영어가 자기 한국어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어서 아이들 앞에서 어설픈 영어를 구사하는 걸 주저하는 것 같다고 말이죠. 

며칠 사이 선생님들도 아이에 대한 접근을 조금 달리 해서 아이가 친구들에게 직접 말을 걸 수 있게 도와주고 있고, 그게 제법 효과를 보이고 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가령, 아이가 다른 친구가 멋있는 걸 만들었다고 선생님께 와서 말을 하면 아이를 그 친구에게 다시 데려가서 그 말을 친구에게 직접 해주라고, 네 친구는 선생님이 아니라 저 아이이니 저 아이에게 직접 그 말을 해보겠냐고 제안하셨다고 해요.  

이건 사실 참 감사한 일이었어요.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상호작용 하지 않는다고 병원을 가보라고 했던 선생님께서 아이가 상호작용할 의사가 있다고 봐주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었지요.  게다가 선생님이 그렇게 다리를 놔주니 아이도 좀 더 자신감을 갖고 다른 아이에게 말을 한마디 건넬 수 있을 것이고, 아이가 한마디 건네면 다른 아이들도 저희 아이에 대한 마음이 조금 더 가까워지면서 다음에 다른 아이가 먼저 저희 아이에게 말을 건네줄 일도 생길 거니까요. 

그렇게 저희 집에 큰 걱정과 파랑을 불러일으켰던 선생님과의 면담을 재면담을 통해 잘 정리되었고, 이후 몇 번 더 짧은 면담을 통해 몇 가지 더 근황을 업데이트하면서 선생님들도 아이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하고, 좀 더 잘 개입하고 다룰 수 있는 상황으로 발전하고 있어요. 

저 재면담 후에도 몇 가지 슬픈 일이 있었는데, 그 일들도 선생님과 잘 의논했고, 선생님들도 적극적으로 그 부분들을 도와주면서 저희는 그렇게 영국 학교에서의 두번째 학기를 마쳐가고 있습니다. 

그간, 걱정해주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려요.  그냥 막연히 내 삶의 유일한 낙으로 지켜오던 블로그인데, 이 블로그 덕에 참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네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