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in 2023

2023년 7월 3일 아이 학교 소풍에 다녀오다

옥포동 몽실언니 2023. 9. 23. 00:56

아이 학교에서 가는 소풍에 함게 다녀왔다. 

아이 반은 정원 30명에, 담임교사 1인과 보조교사 1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풍을 가는 날에 parent helper라고 부르는 엄마 도우미를 모집한다는 이메일이 왔고, 나는 곧장 답장을 보내서 나도 helper로 참여하고 싶다고 답장을 했다.

부모 도우미 신청을 해두고 선생님의 답변이 올 때까지 사흘쯤 기다린 것 같은데, 이 때의 기다림이 은근히 떨려서 마치 어딘가 직장 채용공고에 지원하고 기다리는 취준생 마음이 이런 마음일까 싶기까지 했다.

며칠 후 선생님의 답장이 왔다.  부모 도우미로 신청해줘서 고맙고, 관련한 자세한 사항을 추후 연락줄 거라고 했다. 

이 때부터 내 목표는 7월 3일이 되기 전까지 최대한 발이 많이 낫도록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발이 잘 나아서 저 날 저 소풍을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도록 하자고.

7월 3일이 되도록 내 발이 다 낫지는 않았지만, 어느정도 걷는데는 무리가 없었다.  뛸 수는 없었지만, 적당한 속도로 적당한 양을 걷는 것은 내 페이스만 어느정도 조절하면 할 수 있는 상태였다. 

나 외에 부모 도우미가 세 명 더 있었다.  총 4명의 엄마들이 함께 한 것이다.  다른 보조 선생님들도 파견되어서 담임 선생님 1명, 보조교사 1명, 그 외 교사 2명, 학부모 4명, 총 8명의 성인이 30명 아이들을 인솔하게 됐다.

실제로 소풍에 참석한 아이들은 30명이 아니라 25-27명 정도로 보였다.  당일에 학교에 도착하자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5개의 그룹으로 나누셨고, 우리 부모들에게는 각자 자기 그룹에 속한 아이들을 잘 챙겨달라고 당부했다.  그 외 중요한 원칙들은 (가령, 범죄기록 조회가 되지 않은 부모들의 경우 아이들 화장실 인솔 불가능, 비상 시 학교나 교사 연락처 등) 소풍 가기 일주일 전에 서면 자료로 모두 제공되었기 때문에 당일에는 내가 맡은 아이들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교사들을 도와 소풍장소로 이동했다. 

이날 소풍에 부모 도우미로 참석할 마음을 먹었던 것은 평소에도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에 내가 도울 만한 게 있으면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선생님으로부터 우리 아이의 학교 생활 문제로 워낙 지적을 받다 보니 아이의 학교 생활이 도대체 어떤지 내 눈으로 좀 보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그리고, 소풍이라는 평소와 다른 상황 속에서 내가 그 상황 속에 있으면 우리 아이가 좀 더 편안하게 느끼고, 아이의 돌발 행동도 자제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 때까지만 해도 내 머릿속에는 부디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말 안 듣고 말썽을 일으켜서 그걸로 인해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고, 선생님들이 힘들어지고, 선생님들이 그런 상황들을 나와 틴틴을 불러서 이야기해서 나와 틴틴도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고 싫었다. 

나는 도대체 학교에서 우리 아이가 어떻게 지내고 있길래 계속해서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게 되는지, 어떤 상황에서 우리 아이가 자꾸 그런 행동들을 하는 것인지, 그 상황과 수위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런 마음으로 자원해서 참여하게 된 아이의 소풍.  

소풍 장소까지는 학교에서 빌린 큰 관광버스로 이동하고, 최종 목적지까지 25분에서 30분이 소요될 예정이었다. 

나와 같이 참석한 엄마 도우미들은 각자가 맡은 그룹 아이들과 섞여서 이곳 저곳에 적당히 자리 잡고 앉았다.  다른 엄마와 함께 앉은 엄마도 있었으나 나는 어쩌다보니 혼자 앉았고, 버스가 학교를 떠나 외곽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기분도 들어서 설레이기도 했다.

엄마들이 아이들과 적당히 섞여 자리 잡고 앉았는데, 선생님들은 희한하게 아이들과 다소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자리잡아 앉으셨다.  왜 저렇게 멀리 앉으셨을까 의아했는데, 소풍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버스가 출발하기 무섭게 설레임에 가득한 다섯살 꼬마 아이들은 재잘재잘 웃고 떠들기 시작했고, 그 귀엽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들과 웃음이 모이자 엄청난 소음이 되었다.  처음엔 그 상황이 웃겨서 웃음이 나왔는데, 나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도 그런 소음이 이어지자 '아... 이래서 선생님들이 멀리 앉으셨구나...' 하고 그 이유를 혼자 깨닫고 헛웃음이 났다. 

소풍 장소에서는 약간의 긴장 속에서 재미난 일들이 이어졌다.  모든 아이들이 자기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의 그룹에 속하게 되어 있어서 우리 잭은 내 그룹이 아닌 다른 그룹에 속해 있었다.  다른 엄마의 그룹도 아니고, 보조선생님 Mrs Andrew 가 통솔하는 그룹이었다.  내가 맡은 그룹은 다섯명이었다. 올리, 샤헴, 알피, 이사벨라, 에밀리.  남자 아이 셋, 여자 아이 둘.  

우리는 소풍 장소에 도착해서 그날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안내받고, 간식을 먹었다.  모두들 손을 씻고 야외 테이블에 앉자 선생님이 돌아다니면서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아주 알이 작은 사과 하나씩을 나눠줬는데, 받아 먹는 아이들도 있었고, 사과는 싫다고 받지 않는 아이들도 있었다.  우리 잭은 배가 고팠는지, 그 작은 사과를 중간에 씨앗 부분과 앞뒤 꼭지만 정말 조금 남기고 사과 속살을 남김없이 싹 먹어치웠다. 

간식을 먹은 후 그날의 첫번째 스케쥴인 동물 체험부터 시작했다.  여러 장소를 이동하며 동물 체험을 하고, 트랙터를 타고 농장 한 바퀴를 돌며 농장에 있는 더 많은 동물들을 구경하고, 다 같이 화장실에서 손을 씻은 후 학교에서 준비해준 샌드위치 점심을 먹었다. 점심 식사 후에는 돼지들이 경주를 하는 돼지 경주를 관람했고, 그걸로 그 날의 스케줄이 마무리됐다.  다 같이 버스로 다시 이동해서 인원수 점검 후 학교로 돌아오면서 엄마 도우미들의 스케줄은 끝이 났고, 아이들도 이내 귀가했다.  

우리 잭이 학교 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엄마 도우미를 자청한 측면도 있었는데, 내가 맡은 아이들 다섯을 챙기느라 바빠서 정작 우리 잭이 어떻게 그날 하루를 즐기고 있는지는 관찰할 틈도 없었다.  이동하는 시기에 아이가 Mrs Andew의 손을 잡고 가는 것을 몇 번 본 게 전부였다.  점심 시간에는 아이가 함께 점심을 먹고 싶어했고, 선생님들도 아이들이 자기가 원하는 그룹에 섞여서 점심을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해줬다.  그 덕분에 잭은 내가 인솔하는 아이들 그룹에 끼어서 점심을 먹었다.

아이들이 점심을 먹는 모습도 각양각색이었다.  우리 그룹에서 남자 아이들 셋은 모두 그날 본인의 도시락을 싸서 왔다.  각자 자신의 가방에서 자기 도시락을 잘 꺼내서 먹었다.  학교에서 싸 준 다른 아이들의 점심은 통밀 식빵 사이에 버터도 없이 치즈 한장 덜렁 들어있는 샌드위치였다.  식빵 두 장 사이에 슬라이스 체다 치즈 한장 넣고 반으로 자른 후 그걸 두 쪽 겹쳐서 은박지에 싸져있었다. 

정말 무미건조해 보이던 점심.  나는 내가 싸 온 햄치즈 샌드위치를 먹고, 우리 잭과 내 그룹의 두 명의 여자아이들은 학교에서 싸 준 샌드위치를 먹었다.  아이의 샌드위치는 정말 차갑고 맛도 없어보였으나 놀랍게도 우리 잭은 샌드위치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야무지개 싹 다 먹었다.  잭 옆에 있던 이사벨라도 샌드위치를 다 먹었다.  이사벨라 앞자리에 앉은 에밀리는 샌드위치 점심을 확인하고는 자기는 샌드위치를 먹지 않는다고 말하며 빵을 내려놓았다.  배가 고플텐데 어쩌나 걱정했는데, 좀이따 보니 빵만 내려놓고 치즈만 빼서 야금야금 먹고 있었다.  그리고, 디저트로 선생님들이 나눠준 작은 컵케잌을 하나씩 받았는데, 다행히 에밀리가 컵케잌은 남김없이 다 먹었다.  우리 잭은 컵케잌이 별로였는지, 아니면 배가 불렀기 때문인지 컵케잌은 한두입 맛만 보더니 남겼다.  사이드로 나온 오이와 당근만 몇 개 더 집어서 먹었다.  건강하게 잘 먹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하루를 보내고 나서 느낀 점은 우리 아이가 그렇게 특별나지 않다는 점이었다.  선생님께 자주 불려가서 아이의 사회성에 대해 지적받으며 그런 상황으로 인해 정말 스트레스가 많았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여자 아이들은 제법 말을 잘 듣는 편이지만, 남자아이들은 우리 잭만큼, 혹은 잭보다 더하게 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개구장이들이 있었다. 몇 명 아이들은 보조 선생님이 아예 전체 그룹과 분리해서 선생님 혼자서 세 명의 아이들만 따로 데리고 다니셨다.  아마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했을 건인데, 개인적인 사정들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한다.

아이들은 모두 밝고 귀여웠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 안에서 아이들은 여전히 신이 나서 재잘재잘 떠들었다.  온종일 아이들을 돌보느라 지쳤던지 나는 두통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서 멀찌감치 앉아 있는 담임 및 보조 선생님들이 부러웠다.  그때가 내가 저들이 저리 멀리 앉은 이유를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든 때였다.

몸이 힘들었으나 나는 우리 그룹 아이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아이들과도 이야기 나누고 장난치며 아이들과 어울렸다.  우리 잭은 저 뒷 자리에 자기 그룹 아이들과 함께 앉아 있어서 소풍 장소로 갈 때도, 돌아오는 길에도 버스에서 아이가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한참 큰 도로를 달리며 학교로 돌아가고 있는 때에 내 뒷편에 앉은 엄마가 내게 말해줬다.  선우가 잠들었다고....!!!! ㅋㅋㅋ  왠만해서는 차에서 자는 법이 없는 우리 아이가 피곤했던 것인지 아이가버스에서 곯아떨어져서 꾸벅 꾸벅 잠에 들었다는 사실.

그 날 아이들과 함께 하며 인상깊었던 것은 내가 맡은 그룹의 두 남자 아이, 남자 아이들 속에서도 인기가 많은 편이라고 들은 바 있는 두 남자 아이들의 행실이었다. 이 둘은 내가 그간 본 이 나이대의 남자아이들 중 사교성이 제일 좋고 인사성도 바르고 밝고 귀여웠다.  남자아이들 치고 여느 여자아이들 못지 않게 말도 많고 규칙도 잘 지키고 서로 차례도 잘 지키고, 처음 보는 엄마인 나에게도 그렇게 수줍어 하지 않고 말도 잘 건네도 웃어주기까지 했다.  이 두 아이의 공통점은 각자의 가정에서 둘째들이라는 점이었다.  둘째들은 첫째들보다 더 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자라면서 이렇게 사회성이 더 발달하게 되는 것인지, 이 두 아이 자체가 둘째인 것과 상관없이 원래 이렇게 사회성이 좋은 아이들인 것인지.. 신기하기 그지 없었다.

이 날 집에 돌아오자 마자 나는 내 두통을 진정시키기 위해 파라세타몰 (한국의 타이레놀과 같은 약) 을 두 알 먹었다.  머리가 너~~~ 무 아팠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러 가서 전날 함께 도우미로 활약한 하니아 엄마와 이야기를 나눴다.  잘 쉬었냐고.  나는 머리가 너무 아파서 집에 가자마자 진통제부터 먹었다고.  그러자 하니아 엄마가 하는 말.  자기도 두 알 먹었다고, 아이들과 외출하는 날에는 출발하기 전에 두 알 먹거나, 갔다 와서 두 알 먹거나, 무조건 두통약 두 알은 기본이라고 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고 하니아 엄마가 내게 물었다.  다음에도 소풍 가면 도우미 할꺼냐고. 하하하하.  나도 함께 웃으며 생각해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