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in 2023

[세살 둘째 이야기] 엄마랑 뽀뽀를 해야되는데 뽀뽀를 안 했어!

옥포동 몽실언니 2023. 11. 2. 18:45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 2주간에 걸쳐 아이들 중간방학이다.  다른 학교들은 대부분 1주일간 방학을 갖는데, 우리 학교만 이 가을 중간 방학이 2주나 된다.

 

최근 들어 일을 시작하면서 방학 동안 아이들을 온전히 내가 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으로 아이들을 '할리데이 클럽(Holiday Clubs)'이라 부르는 방학 중 돌봄에 보내기로 했다.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 하교 시간이 빠르다 보니 오후 내내 학원 뺑뺑이를 돌려야 해서 그때부터 사교육비가 든다고 부모들이 푸념을 하는데, 영국에서는 학교 정규 과정이 시작하는 만 4세때부터 하교 시간은 오후 3시라 하교는 늦지만 이후에 방과후 돌봄 비용이 매우 비싸다. 

 

방학 중 돌봄 비용도 비싸다.  프로그램에 따라 아침 9시에서 오후 3시까지 운영되는 프로그램들은 보통 25파운드에서 28파운드 가량(하루 4만원-4만5천원)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보낼 수 있는 곳은 하루 30파운드, 5만원.  여기가 우리가 보낼 수 있는 곳인 이유는 만 3세 아이들도 받아주기 때문이다.  둘째 선재를 함께 보내야 남편도 나도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으니, 만 3세를 받아주는 유일한 클럽에 등록을 했다.  운 좋게도 여기서는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추가 돌봄을 제공해서 우리는 내친김에 추가 돌봄까지 신청해버렸다.  2주간의 방학 중 화수목, 주 3일씩, 총 6일간 클럽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돈을 낼 때는 이게 얼만가...싶어 가슴이 쓰렸는데, 막상 보내고 나니 평소 학교 가던 시기보다 마치는 시간이 늦어서 내가 일을 하기에 훨씬 좋았다.  평소에는 2시 50분이면 학교를 마쳐서 2시 30분만 되어도 아이를 데리러 갈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할리데이 클럽은 6시까지이니, 오후 5시경 일을 마무리하고 얼른 데리러 나가면 된다.  점심 시간 이후에도 4시간 이상 통시간을 갖다 보니 일을 진척시키기가 훨씬 쉬웠다.  그걸 보면서, 아이들이 좀 더 크면 내가 일 할 수 있는 시간이 덩달아 늘겠구나 싶어 앞으로도 일을 해 나가는 게 가능은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됐건, 우리는 그렇게 아이들을 처음으로 할리데이 클럽이라는 곳에 보내게 됐다.

 

아이들은 거기서 온종일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인데다, 형과 동생이 한 곳에 같이 가니 재미있게 잘 놀다 오는 것 같았다.  첫째날 좀 어색해하며 들어갔고, 그 다음날도 싫다는 내색 한번 없이 잘 들어갔다.  그런데 사건은 그날 저녁 아이들 귀가 후 

 

우리 둘째, 뚱이가 갑자기 날 붙잡고는 이야기를 했다. 

 

"엄마, 엄마랑 (아침에 들어가기 전에) 뽀뽀를 해야되는데, 엄마가 뽀뽀를 안 했어!!!"

 

하며, 아주 심각하게, 손 동작까지 하면서 열을 내는 게 아닌가!

 

응?? 뭐지?  난 분명히 뽀뽀를 해 준 것 같은데...

 

"아니야, 엄마 뽀뽀했어~ 선재 이마에 이렇게 뽀뽀 했잖아~"

 

분명히 이마에 뽀뽀를 했다.

 

"아니야, 안 했어!!"

 

아이는 손사래를 치며 내 말을 부정했다.

 

"내일 갈 때는 엄마가 꼭 뽀뽀해줄게!"

 

아이를 꼭 안아주며 달래줬다. 

 

다음날 아침, 9시.  할리데이 클럽에 들어가는 문 앞에 줄을 섰다.  

 

한 명, 한 명씩 입장을 시작했다.   나는 아이를 들여보낼 준비를 하느라고 무릎을 굽히고 낮게 앉아 둘째 뚱이의 옷섬을 추스려주고, 내 뒤에 있던 아이 장화 가방을 챙기려고 몸을 뒤로 돌리는데, 우리 둘째는 엄마가 옷 정리를 끝냈으니 들어갈 준비가 다 됐다고 생각한 건지 입구로 걸어가려고 몸을 돌렸다가 갑자기 내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리고는 내 양 어깨를 제 손으로 꽉 잡더니 내 볼에 뽀뽀를 "쪽!" 하는 게 아닌가!

 

헉... 이게 뭐지!!

 

뽀뽀를 당했다!!!!

 

우리 둘째는 워낙 자율적으로, 또 독립적으로 신체의 자유를 행사하는 것을 좋아해서 아이를 안는 것도 내 맘대로 할 수 없고, 아이를 안고 싶거나 뽀뽀를 하고 싶을 때면 아이에게 구걸하다시피 사정사정해야 겨우 허락을 받을 수 있다.  그런 둘째가 내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나에게 뽀뽀를!!!!  그것도 내 양 어깨를 잡고 자신은 나에게 뽀뽀를 하겠노라 확실한 의지를 갖고 뽀뽀를 하다니!!! 

 

깜짝 놀란 나는 그제서야 어제 아이가 내게 했던 말이 정말 진심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또 한번 놀랐다.  할리데이 클럽이라는 새로운 환경,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선생님들과 있으면서 뭔가 허전함을 느꼈거나, 엄마 생각이 났나보다.  아침에 문 앞에서 잘 가라고 인사하는 인사 루틴이 짧았다고 느낀 것일까.   나는 분명히 아이 이마에 뽀뽀를 해주고 아이를 들여보냈는데, 아이는 그걸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그래서 엄마가 뽀뽀를 안 해줬다고 나에게 불평을 제기한 아이는 그 다음날 자기의 마음을 잊지않고 자기가 먼저 나서서 나에게 뽀뽀를 행사한 것이다!

 

두 달 후면 네 살이 되는 우리 둘째, 이 쪼끄만 아이도 자기 생각이 있고, 마음이 있고, 의지가 있고, 계획이 있다니!  아이를 키우며 늘 놀라고 배운다.  인간에 대해, 연령에 대해, 성별에 대해,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내가 갖고 있던 선입견이나 여러 인식들이 잘못됐거나, 늘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배우고 또 배운다.  저 어린 아이들도 다 자기 생각이 있고, 감정이 있다. 

 

이사를 준비하기 시작한 작년 여름부터 아이들을 내가 데리고 있으며 내 시간이 없고, 내 경력공백은 길어지고, 경제적으로도 쪼달린다고 사실에 힘이 들었다.  내 시간이 없었고, 내 경력 공백이 길어졌고, 경제적으로 쪼달렸다.  힘든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에 나는 첫째의 학교 생활을 돌보고, 둘째와 온종일 함께 하며 둘째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둘째 아이와 추억이 많이 쌓였다.  둘째와 함께 간 공원, 놀이터, 산책, 마트쇼핑..  돌아보면 그 시간은 다시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시간.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새삼 다시 느낀다.  앞으로도 우리가 선택할 여러 선택들에는 그것들만의 비용이 따를 것이다.  난 무엇을 추구할 것이며, 그 대가로 무엇을 어디까지 치를 의향이 있는가.  늘 고민이라 머리는 아프지만, 고민하고 사는 만큼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는 덜 남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