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in 2023

[독서일기]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 (feat. 나의 아팠던 시절..)

옥포동 몽실언니 2023. 11. 15. 21:48

요즘 제가 읽고 있는 책을 소개할까 합니다.

 

네, 제가 책을 읽고 있어요!!!! 

 

한동안 책을 끊었던(?) 제가 요즘 다시 책을 손에 집었습니다.  한권을 다 읽는데까지는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아이들이 티비를 볼 때 저는 식탁 테이블에 앉아 한 챕터라도 책을 읽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바로 아래 그림에 있는 이 책을요.

 

아서 프랭크 라는 분이 쓰신 "아픈 몸을 살다" 라고, 2017년에 처음으로 한국에 번역이 되어 2020년에 초판 7쇄를 찍었으니, 아마 지금도 계속해서 읽히고 있는 책 같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심장마비와 암을 겪으며 자신의 질병 경험에 대해 기술하며, 질병 (illness) 이 사회에서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 개인의 삶과 경험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자세하게 기술한 책이에요. 

 

저는 어쩌다보니 이 책의 한글판, 영어판 모두를 갖게 됐어요.  영국에 있을 때 이 책을 알게 되서 원서를 먼저 샀고, 나중에 한국에서 책을 구입할 기회가 있었을 때 한글 번역본도 샀어요.  아래 사진에서 보실 수 있듯이 이 책의 원제는 "At the Will of the Body: Reflections on Illness" 입니다.  한국에 번역되어 나온 것은 2017년인데, 영어로 처음 발간된 것은 1991년이었어요.  꽤 오래전이죠?  노태우 대통령 정권 하에서 88올림픽을 하고 나서 고작 3년밖에 지나지 않은 책이네요.

 

 

 

처음 이 책을 소개받았을 때는 제가 건강이 좋지 않을 때였어요.  저는 2009년부터 섬유조직염 혹은 섬유근육통이라고 불리는 Fibromyaligia를 갖고 있었어요.  당시 한 친구가 이 책을 읽었는데,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이 제가 몸이 아플 때 경험한 것과 정말 똑같은 이야기들이 적혀있다며, 한번 읽어보라고, 도움이 될 거 같다며 추천하더라구요. 

 

친구에게 추천을 받았으니 저는 책을 바로 구매를 했고,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몇 장 읽지 못하고 당시 책을 접었습니다.  도저히 당시의 제 상황에서는 이 책을 읽어지지가 않았어요.  당시 저는 약 7년간 섬유조직염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그런 건강 상태에도 불구하고 운 좋게 임신을 해서 첫 출산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뒤였어요. 여전히 제 몸은 안 좋았고, 아기였던 첫째도 자주 아팠고, 엄마인 저는 육아가 서툴고, 거기에 수유는 정말 힘들었어요.  게다가 주위에 도와줄 사람 하나 없이 남편과 제 밥을 챙기며 온종일 아기를 돌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당시 그렇게 책장 몇 장을 넘기지 못하고 접어두었던 책을 저는 무슨 생각인지 한국에서 책을 구입할 기회가 있었을 때 이 책이 여전히 읽고싶어서 한글 번역본으로 구입했어요.  그렇게해서라도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고 싶기는 했나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서와 번역본 두 책 모두 저희 집 책장에서 몇 년을 잠만 자다가 드디어 이번에 제가 그 책을 꺼내서 읽고 있어요.  원서로도 읽고싶어서 원서를 찾는데, 원서는 어디로 갔는지 다시 찾을 수가 없네요.  한국어로도 읽고, 원서로도 다시 읽으며 저자가 원문으로 쓴 그 느낌까지 읽고 싶어지는 책입니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캐나다 캘거리 대학교 사회학교 교수님으로, 지금은 은퇴를 하신 것 같아요.  1991년 이 책이 처음 나왔는데, 이 책에서 심장마비가 발생한 때가 교수님께서 39세의 나이였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 본인이 심장마비를 겪은 이야기와 본인의 암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거라고 하시는데, 저는 이제 심장마비 부분을 끝내고, 암 부분을 시작하려고 하는 중이에요. 심장마비 경험에 대한 부분은 앞 부분에 두 개의 챕터에 불과하고, 이후 긴 이야기가 암과 함께 살아가며 경험하신 삶에 대한 이야기예요.  

 

이 책을 다시 손에 잡게 된 계기는 애정하는 블로거이자 인생 선배이신 팜펨님의 최근 암 소식을 들으면서 저도 이 암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고 싶어졌기 때문이었어요.  게다가. 암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최근 남편의 피검사 결과 날씬하고, 활동적이며, 술과 담배는 물론 외식과 매식을 잘 하지 않는  40대 중반인 남편이 피검사 결과 콜레스테롤도 높고, 간수치도 안 좋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우리 몸에 생기는 일들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그것들의 의미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알고싶어졌어요.  그래서 자연스레 이 책을 다시 꺼내들게 됐지요. 

 

자연스레 제 요즘의 화두는 건강, 암, 우리 삶의 의미 같은 것은 것들이었어요.  우리는 "암", "암환자", "암투병" 같은 단어를 보통 명사로 사용하지요.  하지만 모든 한 사람 한 사람의 암이 다 다르고, 각자가 암과 함께 살아내는 인생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 개인이 암과 함께 하는 삶은 그만의 독창성과 고유성이 있을텐데,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암과 삶, 암이 아니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질병과 그 질병과 함께 하는 삶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질문이 던져졌습니다.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블로그에 쓰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책을 다 읽지는 않았습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제 예전 경험을 생각해보게 하고, 저자의 경험을 떠올려보게 하고, 도대체 1991년에 씌여진 이 책의 이야기가 어떻게 30년이 지난 현재의 우리에게도 이렇게 여전히 투영될 수 있는지 삶의 보편성, 인간 경험의 보편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요.  한편으로는 30년이나 지나는 동안 의료 및 과학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질병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의 변화와 발전은 의료 및 과학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섬유조직염으로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 몸이 정말 많이 아팠어요.  이렇게 살바에야 죽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너무너무 아팠어요.  견딜 수 없을 만큼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혼자 흐느껴 운 낮과 밤이 정말 많았어요.  이런 상태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너무 막막했고, 건강으로 인해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정말 큰 장벽을 만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습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강렬하게 올라오는 게 무서워서 한 밤중에 기숙사 방을 뛰쳐나가 학교에서 제공하는 상담 전화로라도 전화해서 도움을 받으려고 자정에 기숙사 리셉션에 내려가서 상담 전화 번호를 찾다가 한 밤중에 리셉션으로 내려온 저에게 말을 건네 준 포터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며 엉엉 운 적도 있었습니다. 

 

20대 후반, 30대 초중반의 싱글 여성이 겉으로는 멀쩡해보이는 몸으로 혼자서 고통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고, 저 또한 저의 달라진 건강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보냈지요. 

 

주변에 어떤 이들은 제가 아픈 것을 두고 "박사병"이라며, 박사과정 스트레스 때문에 아픈 거고, 박사를 안 하거나 끝내고 나면 안 아플 거라고 하기도 했고, 어떤 이는 저에게 제가 아프다고 생각해서 아픈 거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 친구는 공부 그만두고 결혼하고 애를 낳아보라고, 애를 낳으면 체질이 바뀐다 하니 몸이 나을 수 있을 거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한 유명 대학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님은 제 검사와 진료를 마치며 제 혈액형이 A형이라 그렇다며(?) 성격 탓일 수 있으니 성격을 좀 바꿔보라는 처방(?)을 내리시기도 했어요.  

 

남들이 한창 열심히 자신의 커리어를 추구하며 의욕적으로 살던 시기에 저는 몸이 아파서 생활에 많은 제약이 생겼습니다. 여행은 커녕 차로 30분을 가는 것도 힘들었고, 가만히 있어도 아프고 힘드니, 뭘 한다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던 시간들이었지요.  앞으로는 또 어떻게 살아가나 하는 막막함까지 더해져서 몸이 아프고 힘들 때면 찾아오는 그 좌절감과 괴로움, 우울감을 다루는 게 참 힘들었어요.

자는 이런 몸 상태로 과연 어떻게 공부를 끝낼 것이며, 공부를 차치하고서라도 연애는 어떻게 할 것이며, 결혼은 할 수 있을지, 결혼을 떠나서 나 혼자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아무런 답도 보이지가 않았어요.  몸이 아프니 친구를 만나는 것조차 힘들었고, 그런 상황에서 연애나 결혼은 꿈도 꿀 수 없었죠.  꼭 참석해야 하는 세미나 참석조차 몸이 아파서 겨우 참석했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이 책의 저자, 아서 프랑크 교수님은 이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본인이 심장마비를 겪고, 그 원인을 찾기 위해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하고 나서 바이러스 감염이라고 결론을 짓고, 심장과 동맥 모두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고, 그 후 검진을 위해 병원을 갔다가 나올 때면 자유로움을 느꼈다구요.  그러나 이후 암까지 겪으면서, 이 교수님은  심장마비 완치(?) 당시 자신이 느꼈던 그 "자유로움"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질병은 제약이다. 최선의 경우라고 해도 치료에 시간을 들이고 활동에 제한을 둬야 하며, 최악의 경우에 질병은 몸을 변형하고 손상하며 정신을 가둔다.  병원에서 나올 때마다 (...) 자유롭다는 것을 신께 감사한다.  하지만 자유롭기 위해 건강이 좋아야 한다면 자유란 너무 위태로운 것이 아닐까."

 

제가 제 이런 건강과 몸으로 결혼은 커녕 연애는 할 수 있겠냐고 푸념했을 때, 친한 동생 민아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언니, 언니도 결혼할 수 있어요.  언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할 거니까 걱정 말아요."

 

"어떻게 그렇게 자신할 수 있어?"

 

"언니, 언니는 나이도 많죠, 건강도 안 좋죠, 가방 끈 길죠, 돈도 없죠, 그러니까 언니랑 결혼하는 사람은 언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일 거예요!"

 

그 친구의 말에 저는 완전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어요.  

 

그런데 이 교수님이 쓰신 책에서 말씀하신 바로 저 내용, 자유롭기 위해 건강이 좋아야 한다면 그런 자유란 너무 위태로운 것이 아니겠냐는 그 말씀이 바로 저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랑하고 결혼하기 위해 몸과 건강, 나이,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면, 그 사랑과 결혼은 너무 취약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몸이 좋지 않던 저를 지켜보고, 나이도 많고 직업도 없고 모아둔 돈도 없던 저와 결혼한 제 남편 틴틴은 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였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 구절이 나온 챕터를 읽기를 마쳤을 때 틴틴에게 물었어요. 

 

"틴틴, 내가 그렇게 몸이 안 좋았는데, 무슨 생각으로 나와 결혼했어?"

 

"널 사랑하니까 결혼했지!"

 

저는 제법 괜찮은 사람과 잘 결혼을 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는 저 나름대로 병과 함께 하는 삶을 7년 보내면서 건강과 신체와 내 삶, 내 삶의 우선순위, 내가 삶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바, 내가 삶에서 갖고 있던 여러가지에 대한 생각과 관념들이 많이 변했어요.  이후에는 건강이 예전보다는 좋아졌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며 삶에 대한 생각들이 계속 자라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해요.  우리 삶은 경험과 관계의 점들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총합이라는 생각 말이죠.   무엇을 성취하고,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아니라,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속에서 어떤 만남을 가지며, 삶 속에서 어떤 경험을 하며 내가 인생에 대해 배워나가는지,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내 인생의 여정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

 

끝으로 제가 좋아하는 가수 이상은씨의 노래, "삶은 여행" 들으며.. 오늘 글을 마칩니다.  

 

 

삶은 여행 - 이상은

 

의미를 모를땐 하얀 태양 바라봐

얼었던 영혼이 녹으리

드넓은 이 세상 어디든 평화로이

춤추듯 흘러가는 신비를

 

오늘은 너와 함께 걸어왔던 길도

하늘 유리 빛으로 반짝여

헤어지고 나 홀로 걷던 길은

인어의 걸음처럼 아렸지만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소중한 너를 잃는 게 나는 두려웠지

하지만 이제 알아

우리는 자유로이 살아가기 위해서 태어난 걸

 

용서해 용서해 그리고 감사해

시들었던 마음이 꽃피리

드넓은 저 밤하늘

마음속에 품으면 투명한 별들 가득

 

어제는 날아가버린 새를 그려

새장속에 넣으며 울었지

이젠 나에게 없는걸 아쉬워 하기보다

있는 것들을 안으리

 

삶은 계속되니까 수많은 풍경속을

혼자 걸어가는 걸 두려워 했을 뿐

하지만 이젠 알아

혼자 비바람 속을 걸어갈 수 있어야 했던걸

 

눈물 잉크로 쓴 시 길을 잃은 멜로디

가슴과 영혼과 마음과 몸이 다 기억하고 있어

이제 다시 일어나 영원을 향한 여행 떠나리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강해지지 않으면 더 걸을 수 없으니

수 많은 저 불빛에 하나가 되기 위해

걸어가는 사람들 바라봐

 

가사 출처: https://songhwajun.com/1399 [읽는 일상의 기록: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