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in 2023

영국의 의료 서비스: 병원-약국-학교가 협력하는 과정(feat. 항생제 장기복용 부작용으로 인한 구강 칸디다증 치료)

옥포동 몽실언니 2023. 12. 18. 20:08

바로 저희 첫째의 이야기입니다.  아이가 항생제 장기 복용 부작용으로 구강내 칸디다균이 발생했고, 그로 인해 약을 사고 치료를 해나가는 과정을 적어볼까 합니다.  이 글을 읽어보시면 전국민에 대한 의료가 국가에서 운영하는 서비스로 제공되고 있는 상황에서 병원과 약국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한편으로는 답답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유기적으로 잘 작동하는 시스템이기도 합니다. 


저희 첫째 잭이 요도염으로 5일간 항생제를 복용하던 중에 아이가 수두에 걸렸고, 수두가 며칠 진행되면서 매일 고열과 기침이 동반되어 걱정하던 중 병원에서 아이를 응급실로 보내 소아과 전문의 선생님께 진료를 받은 후 페니실린 계열 항상제를 다시 5일치 처방받게되었어요. 

소아과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저희 잭이 수두를 앓고 있지만, 수두를 앓는 중에 며칠째 고열이 발생하고, 손바닥과 입안 수포가 생긴 것으로 볼 때, 수두를 앓는 중에 그와 별도의 수족구가 발생하고, 거기에 아이 숨소리를 청진기로 들어봤을 때 chest infection 까지... 세 가지를 동시에 앓고 있는 중일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다만 아이의 기침이 수두로 인한 폐렴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수두로 인한 합병증은 아닌 것 같으니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저희 잭은 요도염으로 복용한 항생제 5일 코스가 끝나고, 2-3일만에 또다시  chest infection으로 인한 항생제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영국에서는 일반 GP와 응급실 방문 등 모든 병원 진료가 무료입니다.  병원 내에서 주는 약도 다 무료예요.  무료..라기 보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이죠.  그래서 응급실에서 아이 진료를 받고, 항생제를 받아오는 과정까지 저희가 진료/처방 과정에서 납부해야 할 비용은 별도로 없습니다. 

두번째 항생제 코스를 마치고 나서 아이가 이야기를 하는데 혓바닥 색이 이상하네요?  무슨 일인가 하여 아이 입을 체크하니 혓바닥 위가 하얀 층으로 덮여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백태가 심각했어요.  깜짝 놀라 NHS 웹사이트를 검색해보니 이것을 oral thrush 라고 부른대요.   혓바닥에 생긴 칸디다 균이래요. 

원인을 살펴보니, 항생제 장기 복용의 흔한 부작용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항생제 장기 복용으로 신체 내 균형이 깨지면서 이렇게 입 안에 곰팡이 균이 번식할 수 있다고...

약을 먹는 동안 매번 유산균도 함께 복용을 했지만, 유산균 정도로 극복하기에는 항생제의 파워가 그토록 강력한가봅니다.

NHS 웹사이트를 찬찬히 읽어보니 일반적으로 일주일간 oral gel을 발라서 치료하면 낫는다고, 약국에서 약을 사서 바르고, 일주일간 그렇게 치료해도 낫지 않았을 경우 병원을 방문하라고 나와 있었어요.

그걸 확인한 시간이 저녁 5시 30분을 넘긴 시간...  저는 동네 약국이 문을 닫기 전에 얼른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약이 있는지 확인하고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이게 왠걸... 약이 없다네요?  그 약이 없은지 이미 두 달쯤 된 거 같대요.  재고가 없다는 소식에 구글 맵에서 집 근처 약국을 검색한 후 한 곳, 한 곳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걸어나가는 동안 시간이 지나서 5시 30분이나 6시에 문을 닫는 약국도 하나 둘 생기고 있었어요.   차로 가면 되니 좀 멀더라도 약만 있으면 사러 갈 심산으로 위치를 가리지 않고 모든 약국에 전화를 돌렸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10군데쯤 전화를 거는 동안 모든 약국에 그 약의 재고가 없다는 거예요!!!!  럴수럴수 이럴수가!!!!

하다 하다 너무 답답했던 저는 한 약사 선생님께 이 약의 재고가 없는 게 모든 약국이 마찬가지 상황이냐고, 다른 데에도 약이 없는 상황이냐고 물으니 그건 아닐 수 있고, 어느 약국에는 재고가 있을 수 있으니 일일이 전화해서 물어보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점점 지도내 반경을 넓혀가며 전화를 돌렸고, 그러다 기적처럼 딱 한 곳!!!! 약이 있다는 곳을 찾아냈어요.  

몽실: "정말로 그 약이 있다구요?"

약국 직원: "네, 있어요."

몽실: "다른 약국은 모두 없다고 하더라구요.  정말로 그 약이 있다구요?  저희가 바로 사러 갈게요!"

이 약국은 다행히 문을 닫는 시간이 저녁 8시로 늦게까지 영업을 하는 약국이었어요.  얼른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남편과 간단하게 채비를 하고 약국으로 출발했습니다.

처음으로 가 보는 동네, 처음 가보는 약국.  저녁 7시 30분이 넘은 시간에 도착했는데, 그 시간에도 이 약국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어요.  저녁 늦은 시간에 사람이 붐비는 약국이라...  영국에서 처음보는 광경에 깜짝 놀란 저와 잭.  둘째 뚱이는 약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잠이 들어버려서 틴틴은 뚱이와 차에 남아있고 저와 잭만 약국으로 와서 약을 사서 갔습니다.  

이렇게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사는 약은 돈을 내야 합니다. over the counter로 사는 약은 아기를 위한 약이든, 성인을 위한 약이든 본인의 비용으로 구입해야 해요. 

약을 사와서 보니, 약은 15그램인데, 한번에 2.5그램씩 하루에 네번을 발라주라고 하는데.. 그렇게 계산하니 이틀이면 약을 다 쓰게 될 거 같아서 다음날 저와 틴틴은 아이들을 학교로 보낸 후 전날 갔던 약국으로 차를 향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약국 문을 열고 들어가서 약사에게 약을 하나 더 사러 왔다고 하니, 이 약사 하는 말이... 어제 그 약이 마지막 약이고 이제는 자기들도 더 이상 그 약이 없다는 게 아니겠어요!!!!! 흑흑... 이제는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약밖에 없다고... 

그리하여 저는 집으로 가자마자 병원으로 전화를 했는데.... 병원에서는 오늘 진료 예약은 이미 다 찼으니 내일 아침 병원이 문을 여는 8시에 전화를 해야 당일 진료를 예약할 수 있다고 하네요.   예상은 한 상황이지만, 들을 때마다 실망스러운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영국에서는 전문의를 당일진료로 보는 것은 응급실 내원이 아니고서야 절대 불가능하고, 동네의 가정의학과 선생님조차 아침 8시에 전화하지 않고서는 당일 진료가 불가능한 상황... 한국에서 언제든 아무 병원이나 가서 전문의를 볼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자란 한국인에게는 십수년이 지나도 실망스러운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화가 나고 속상하지만 다음날 아침 7시 58분에 알람을 맞춰두고 7시 58분부터 핸드폰 시계를 계속해서 보고 있다가 7시 59분부터는 지피에 전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8시가 되어야 병원 전화가 작동하기 때문에 당연히 전화가 걸어지지는 않는데, 동네 엄마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8시 전부터 계속 전화를 한다고, 그래야 8시에 전화 연결이 빨리 되고, 예약도 잡을 수 있다고 자신만의 노하우를 알려줬거든요.

핸드폰 시계가 8시로 바뀌자마자 지피 전화 연결음이 나왔고, 저는 전화 대기번호 24번.... 이렇게 빨리 전화를 해도 대기 24번입니다.  전화 연결을 기다리며 아이들 아침을 먹이다가 전화 연결이 되자마자 약속을 의뢰했습니다. 

아이가 항생제 장기복용으로 oral thrush가 생겼는데, 약을 구할 수가 없어서 처방전이 필요하니, 의사 선생님과 전화 진료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요.  우리 아이의 수두와 폐를 진료해줬던 그 선생님으로 진료를 잡아달라고 했더니 바로 전화 진료를 예약해주셨습니다.

Covid 이후에 일상화된 것이 전화 진료예요.  과거에는 이게 의사들이 예외적인 상황에만 사용했는데, 코비드 이후에는 전화 진료를 요구할 수 있게 된 것이 아주 큰 변화입니다. 

 

진료 의뢰를 하고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의사선생님께 전화가 왔어요.  아이에게 일어난 상황을 설명하니 약을 바로 처방해주겠다 하셨어요.

그런데 처방해서 줄 수 있는 약도 재고가 부족할 수 있으니, 저희가 약을 수령한 약국에 다시 전화를 해서 그들이 갖고 있는 약의 정확한 약 명과 용량을 알아내서 의사 선생님께 알려달라고 하셨어요. 

그도 그럴 것이, 저희가 열군데 넘는 약국에 전화를 하면서 약사 선생님들이 말씀하신 게 오버 더 카운터 약(처방전 없이 구입 가능한 약)도 재고가 없지만, 처방전으로 살 수 있는 약조차 재고가 없는 상황이라고 언급한 약국들이 몇 곳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의사 선생님과 전화를 끊고, 다시 약국에 전화해서 약사 선생님께 그 약국에 재고가 있는 약의 이름이 뭔지, 용량이 어떤 것인지 물어본 후, 의사 선생님께 병원 서버를 통한 메세지로 어떤 용량의 무슨 약이 재고가 있는지 알려드리는 메세지를 띄웠어요.

그리고 30분 가량을 기다리니 제 핸드폰 메세지로 약 처방전을 약국으로 발송했으니 병원에 가서 약을 수령하라는 메세지가 왔습니다.  병원에서 저희 집 인근 약국으로 바로 처방전을 보내는 시스템입니다. 

메세지를 받은 후 저는 약국으로 가서 약을 받아 왔고, 그날부터 아이에게 새로운 약을 주기 시작했어요.  의사의 처방에 따라서 약을 구입할 때 약 비용은 0원입니다. 만 16세가 될 때까지 처방전에 의한 약은 모두 무료예요. 


그리고, 다음날부터는 학교에도 가져가서 점심시간에 학교에서 약을 혓바닥에 넣어줘야 해서 학교로 약을 들고 갔습니다.  학교에서 약을 먹어야 하는 경우 학교 오피스로 약을 갖고 가서 이 약이 어떤 약인지, 왜 복용하는지, 언제까지 복용해야 고, 학교에서는 몇 시에 얼만큼의 용량을 어떤 식으로 줘야 하는지 서류를 기입해야 해요.  그래서 저희는 약을 들고 가서 아이 입에 넣는 약이고, 식사 후 12시에 아이 혓바닥에 1밀리를 넣어주면 된다고 (over the counter 약과 다른 약이어서 용량이 1ml로 바꼈습니다), 12월 13일까지 계속 써야 하는 약이라고 서류를 써서 제출했어요.

그날 11시쯤 학교에서 전화가 왔어요.  학교 직원 한분이 전화가 와서 아이에게 약을 줘야 하는 12시는 식사 후가 아니라서, 식사 후에 줘야 한다면 1시에 주게 될텐데 그래도 괜찮은지 물어보셨어요.  괜찮다고, 1시에 주셔도 상관없다고, 연락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학교에서 꼼꼼히 살펴보고 복약을 정확하게 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아 보여서 놀랐습니다.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없던 제도들이니 말이죠. 

그렇게 저희 아이는 구강내 곰팡이균을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쯤 약을 쓰고 나서 거의 다 좋아진 듯했는데... 며칠이 지나 보니 나은 듯 싶던 것이 다시 퍼지고 있는 게 보여서 어제 저녁부터 다시 약을 주고 있어요.  싹 낫지 않으면 며칠 안에 또 병원에 전화를 해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올 겨울... 10월말부터 12월 중순이 되도록 아이들 데리고 병원 다니고 약 먹이다가 시간이 다 지나버렸네요.  저희 아이들 학교는 지난주 금요일을 마지막으로 겨울방학을 시작했고, 연초까지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예정입니다. 

모두들 연말 연시 가족과 함께 건강하고 편안한 시간 보내시기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