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초딩키우기

[영국 초1 이야기] ADHD여도, 자폐여도, "괜찮아, 사랑이야"

옥포동 몽실언니 2024. 4. 18. 22:12

안녕하세요.  참 오랫만에 글을 올립니다. 

블로그에 글을 다시 쓸 수 있기까지 몇 달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희는 잘 지내고 있었어요.  겨울동안 폭풍이 휘몰아치는 것 같은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이 새해 초까지 이어졌어요.  복잡했던 생각과 마음들이 정리되면서 우리 가족의 삶은 전과 같으면서도 또 새로운 한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제목에서 짐작하시다시피 지난 겨울 저와 틴틴 저희 부부의 화두는 ADHD와 자폐였어요.  자폐를 영어로 줄여서 ASD(오티즘 스펙트럼 장애)라고도 하죠.  최근에는 이 모든 것들을 포괄해서 Neurodiversity라고도 부릅니다.  신경발달이 '다른' 것일 뿐, 잘못된 게 아니라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같아요. 

어쨌거나, 저희 가족의 화두가 ADHD와 자폐였던 이유는 저희 큰 아이, 잭의 ADHD와 자폐가 의심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하자면 참 긴 이야기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글을 쓰며 정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실 1년 전에 블로그에 글을 쓴 바 있죠.  저희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잭의 자폐 성향을 이야기하며 병원에 가 볼 것을 권하셨던 이야기. 

2023.03.03 - [영국에서 초딩키우기] - [리셉션] 선생님과 면담, 그리고 그 후.. 자폐 의심과 우리의 대응

 

[리셉션] 선생님과 면담, 그리고 그 후.. 자폐 의심과 우리의 대응

제 지난 이야기에 후기를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실 거 같아요. 2023.01.31 - [교육/리셉션(0학년) 일상] - [리셉션 적응기] 아이(만 5세) 선생님께 또 불려갑니다... 사실 몇번이나 글을 적었다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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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선생님과 보조선생님, 저와 저희 남편, 이렇게 넷이 만나서 미팅을 한 후, 선생님께서는 일단 한 학기 더 지켜보자고 제안하셨어요. 그렇게 저희는 한 학기를 더 보냈고, 그 학기 후 선생님께서 아이가 여러 면에서 발달과 발전을 보였다며 아이가 1학년에 올라가서도 잘 지낼 수 있도록 교내에서 지원 가능한 것들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자고 말씀하시며 초등학교에서의 첫 학년인 Reception Year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1학년에 올라가서 첫 학기를 지내던 중...

수년간 연락이 끊겼던 선배 언니 가족과 연락이 닿았고, 언니에게 제가 아이 학교 생활로 이런 저런 맘 고생을 했던 이야기, 아이를 키우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다가 이 언니를 통해 ADHD에 대한 책도 추천받고, 영국의 의료체계인 NHS에서 어떤 도구로 아이들을 검사하는지 검사툴도 소개받게 됐어요.

저와 남편은 언니에게 소개받은 NHS에서 ADHD와 검사 도구로 저희 아이에 대해 체크해보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죠.  우리 아이도 mild to moderate 수준의 ADHD가 있는 것 같다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moderate to severe 라고 판단될 때도 있었어요. 

저희는 내친김에 자폐 검사 도구도 찾아봤고, 그걸 우리 아이에게 적용하자 우리 아이는 자폐성향 또한 병원에 가서 검사받기가 권장되는 상태로 나타났습니다. 

그 길로 저희 GP (지역 내 가정주치의) 예약을 잡았습니다. 응급이 아니다 보니 가정의학의라고 할 수 있는 GP 의사를 만나기까지에도 3주 정도의 대기 시간이 있었어요.  그 긴 시간을 기다린 끝에 저는 12월 말 드디어 GP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GP를 만나서 작년 담임 선생님이 아이에게 지적했던 점들을 말씀드리고, 새 학년에 들어서도 보이고 있는 아이의 모습들 (10분에서 20분 남짓되는 수업 시간에 집중 못 함 등등)을 말씀드리고,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었던 NHS 에서 검사하는 도구로 검사해봤을 때 어느 정도의 점수가 나왔는지도 말씀드렸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자마자 GP선생님은 아이를 ADHD와 자폐 검사를 받아볼 수 있게 소아과 진료의뢰를 해주셨습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영국의 NHS에서는 ADHD와 자폐 검사를 위한 대기 시간이 1년 혹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는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저는 혹시 저희가 여름에 한국에 가서 대학병원에서 검사받고 진단 받아올 경우, 그걸 바탕으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냐 물으니 그건 안 된다고 하시고, 영국 내에서 프라이빗 병원으로 가서 NHS와 동일한 의료 기준으로 검사를 실시한 의사의 진단명을 받아올 경우 그건 받아줄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에 하나 민간 병원에서 약을 처방하게 됐을 경우, 그 약을 NHS에서 처방해줄 수 있을지는 확답은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게 좀 복잡한 이야기인데요.  이건 영국의 NHS는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의료서비스이고, 16세 미만의 아이들은 진료비는 물론  모든 약값이 무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단점은 응급한 상황이 아닌 이상 전문의 서비스를 받기까지 대기기간이 아주 길다는 점!  그 대기가 싫어서 민간 병원으로 갈 경우, 검사비가 엄청나게 비싸고 (ADHD 검사비만 200만원, 자폐 검사만 200에서 250만원), 검사를 실시한 후 약값 또한 계속 자비용으로 부담해야 합니다. 

검사만 민간병원에서 자기 비용 부담으로 받고, 이후 치료를 NHS에서 이어갈 수 있냐고 여쭤본 것인데, 그게 돈이 들어가는 일이다 보니 의사 선생님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봐요.  의사선생님의 매니저와 약사 선생님께 여쭤봐야 하는 일이고, 자기 위치에서 확답을 줄 수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으신 거죠. 

저희는 일단 NHS에 검사 대기를 넣어놓고, 저희 사는 곳 근처에서 괜찮은 민간 병원에서 하루 빨리 검사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민간 병원들 여러 곳으로 연락해서 진료 및 검사 문으를 했어요.  왠걸... 400에서 500만원 내돈내산으로 검사를 하겠다고 하는데도 빠른 시일 내에 검사 가능한 곳이 없네요?  민간 병원들조차 최소 3개월에서 길게는 5-6개월을 기다려야 검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 중에 그나마 제일 빠른 석달 뒤 검사가 가능하다고 하는 곳에 예약을 잡았습니다. 

영국 민간 병원 검사를 예약해놓고, 저희는 저희 가족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했어요.  남편과 저는 ADHD에 대한 책을 읽으며 아이가 보인 여러 행동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고 애쓰면서 동시에 아이를 위해 단기적으로, 또 중기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계속 고민했어요. 

책을 읽고, 남편과 대화하고, 아이들에게 집중하다 보니 몇 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흘러보내며 도달한 생각은 아이가 ADHD든, 자폐든 다 괜찮다는 것입니다.  ADHD면 어떠하고, 자폐면 어떠하리.  어느 진단명을 갖다붙이든, 이 아이가 우리의 사랑스럽고 이쁜 아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는데!  

아이가 보이는 모습들이 어떤 진단명이 붙을 수 있는 것인데 내가, 그것도 엄마라고 하는 사람이 그걸 지금까지 모를 수가 있었다니, 우리 아이가 보이고 있는 이 행동들이 정말 그 진단명에 부합하는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 것인지,  이 상황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아이에게 가장 최선인 것인지, 혹시 지금 내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글에서는 이렇게 차분하게 적어내려갔지만, 사실 지난 겨울 내내 저는 온갖 복잡한 생각과 마음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이게 정도가 심해지니 저희 스스로를 포함하여 주변의 모든 사람들까지 ADHD와 자폐의 렌즈로 바라보게 되는 ADHD/자폐 병(?)에 걸려 저와 남편은 뭐만 하면 "ADHD라서 그래", "자폐라서 그래" 하며 우스개소리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지요. 

ADHD 책을 읽으며 저는 영국과 한국에 있는 자폐 자녀를 키우고 있는 친구/지인들에게 연락해서 우리 아이에 대한 제 걱정을 이야기하고, 제가 현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조언을 구했어요.  여러가지 조언들을 들었습니다.  루틴을 세울 것, 시각화할 것, 운동을 통해 균형감각 키울 것, 책과 강의를 통해 엄마가 ADHD와 자폐에 대해 공부하고 우리 아이에게 맞는 우리만의 플랜을 세울 것 등등. 

그 때부터 유튜브에 "소아 ADHD" 검색해서 여러 선생님들의 강의도 찾아보기 시작했고, 영국 내에서 있는 온라인 강의도 들어가보고, 오프라인으로 하는 워크샵에도 참석했습니다.

한참동안 정신이 거기에 팔려있었어요.  이 상황이 뭔지, 난 이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하고, 앞으로 우리 아이는 어떻게 될지. 

그걸 그렇게 고민하다가 몇달이 지나서야 이제야 깨달았죠.  

진단도 진단이지만, 그것에 정신팔려서 이 이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이 귀한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지금, 당장, 내 눈앞에 있는 이 아이들에게 집중하자.  현재의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자.  즐거운 시간 많이 많이 보내자.  단, 아이의 사회성 함양을 위한 노력은 계속하자!

2024년에는 3월 29일 금요일부터 4월 12일까지가 부활절 방학이었어요.  주말까지 합하면 총 17일간의 방학이었죠.  이 긴 방학, 저는 아이들을 그 어느 방학 캠프 (영국에서는 맞벌이 부모들이 방학 기간 중 주로 holiday camp라고 부르는 캠프에 보냅니다. 보통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아이들에게 여러가지 활동을 제공하지요) 에도 보내지 않고 아이들과 온전히 즐겁게 노는 시간을 보내기로 결심했어요.

그리고 그 결심을 실천했습니다.  하루는 온종일 신나게 놀고, 다음날은 집에서 좀 쉬면서 휴식, 그 다음날은 또 다시 밖에 나가서 온종일 신나게 놀기, 다음날은 또 휴식.. 퐁당퐁당으로 2주가 넘는 시간을 아주 신나게 보냈습니다.  

2024년들어 처음으로 따뜻한 햇살이 비춘 날 (비록 사진은 어둡지만 ㅋ)
집 안팎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



그리고, 새로운 결심들을 세웠고, 그것들을 실천 중입니다.  그것은 아이들 학교에 가서 자원봉사 하기, 그리고 아이를 스카우트에 등록해서 스카우트 활동에도 봉사자로 함께 참여하기. 

올해 2월 중순에서 말 사이에 자원봉사를 신청했는데, 범죄이력 확인하고, 자원봉사자에게 요구되는 온라인 교육 받고, 읽고 서명해야 하는 200쪽이 넘는 각종 학교 정책들을 읽는 사이 한달이 넘는 시간이 지났어요. 스카우트 활동은 3월 중순부터 시작했고, 학교 봉사활동은 이달 말부터 시작합니다. 

학교 봉사활동은 아직 시작을 안 해서 뭐라고 말 할 수가 없지만, 스카우트 활동은 기대 이상으로 아이가 좋아하고, 저 또한 매우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영국 초등학교에서 자원봉사자 되는 과정과, 동네 스카우트 가입하고, 부모 봉사자 되는 과정을 다음에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가족 소식을 궁금해하고 기다려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며, 저는 곧 다시 찾아뵐게요! 모두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