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초딩키우기

[학교에서 생긴 일] 나는 내가 싫어. 난 공부를 못 해.

옥포동 몽실언니 2023. 6. 11. 21:32

학교 선생님께서 저희 아이를 사회성 부족을 걱정하고 계실 때 있었던 일이었어요.  1월 말, 2월 초의 일이었죠.  아이가 잠자리에서 그러더라구요.  자기는 자기가 싫고, 자기는 공부를 못한다구요.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저는 아이의 이런 이야기에 놀라고 당황했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자연스럽게 아이와 대화를 이어가며 도대체 아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날의 상황을 자세히 이야기해보자면,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며 침대에 누워서 읽을 책들을 몇 권 골라 침대에 다같이 누웠어요.  첫째 잭과 둘째 뚱이 사이에 제가 누웠습니다. 

제가 골라온 여러권의 책들을 보면서 첫째가 갑자기 영어로 말을 하네요.

"I hate this book. I hate this book(난 이 책 싫어.  난 이 책 싫어.)"

책 한 권, 한 권, 모두 마음에 안 든다며 책들을 휙휙 침대 다른 쪽으로 던져버려요. 

"에이, 그러면 안돼! 책 던지면 안 돼.  그럼 잭은 무슨 책이 좋아?"

"I hate book. I hate boys. (난 책 싫어.  난 남자아이 싫어)"

갑자기 책도 싫다, 남자아이도 싫다고 하네요.

"잭 너도 boy인데, boy가 싫으면 어떡해." 

하고 말하자 그 때 나온 말.

"I hate boys. I hate me.(난 남자아이 싫어. 나는 내가 싫어)"

"정말?  잭처럼 사랑스럽고 이쁜 아이를 너는 싫어해?  엄마는 잭이 정말 정말 이쁘고 좋은데. 왜 싫은거야?"

하고 묻자 더 충격적인 대답이 나왔습니다.

"Because I am evil.(나는 악하니까)" 

 

응....?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놀랐으나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니가 얼마나 괜찮은 아이인데 그러냐고.  구체적으로 기억은 안 나지만, 아이가 그날했던 착한 행동들을 읊어주며 너는 오늘만해도 이런 이런 착한 행동을 한 아이인데 네가 어디가 evil하냐고.. 

그리고, 동생 뚱이도 활용했습니다.  뚱이야, 형아가 오늘 이렇게 이렇게 뚱이에게 잘 해준 행동 있었지?  좋았지? 하고 물었어요. 뚱이는 당연히 "응!!" 하고 대답했지요.  

가끔 나쁜 행동을 할 때도 있지만 그건 그 행동이 잘못된 거고, 그 행동을 고쳐야 하는 일이니 너라는 아이가 나쁜 아이인 것은 아니라고, 누구나 실수는 하는 거라고, 배워나가고 있으니까 잘 하고 있는 거라고 일러줬던 것 같아요. 

그리고 책 읽기를 이어갔습니다. 

무슨 책을 읽던 중이었나, 책이랑 관련되서 나온 이야기였나.. 갑자기 잭이 또 그러네요. 

"잭은 공부를 못해."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깜짝 놀랐던 저는 아이에게 설명해주려고 노력했어요. 너는 집에서 한국말 쓰고 학교에서는 영어로 배우느라 힘든 상황에 있는데 아주 잘 하고 있다고.  공부는 계속해서 배우는 거고,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그 때까지만 해도 제가 아이 공부를 시키겠다고 다짐한지 며칠 안 되던 때고, 공부하자고 맘 먹고 나서 한 거라고는 학교에서 매주 과제로 내어주는 어린이용 읽기 책을 하루에 몇 문장이라도 더듬더듬 읽기 위해 애쓰는 것밖에 없었어요. 

아이와 책 읽기를 하면서도 단 한번도 아이에게 못 한다고 말한 적이 없고, 하기 싫어하는 태도에 대해 윽박지르거나 화낸 적도 없는데 아이가 스스로 공부를 못 한다는 말을 하다니.  저는 이 말에도 다소 놀라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찬찬히 생각해봤어요.  아이가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아이가 evil 이라는 말을 배운 것은 아마 영국 공영방송 어린이채널인 Cbeebies 에서 방송하는 Supertato 라는 프로그램을 학교에서도 보고 집에서도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 Evil Pea 라는 캐릭터가 나와요.  다양한 야채들이 캐릭터로 나오는 쇼인데, 초록색 가든콩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은건지 콩은 악한 캐릭터로, 당근은 착한 캐릭터로 등장해요.  거기에 감자는 수퍼히어로 같은 주인공으로 등장하죠. 

그런데 왜 자기를 evil 이라고 하는건지, 또 뜬금없이 자기는 공부를 못한다고 하는 건지.  이 상황을 나는 어떻게 다뤄야하고, 선생님께 뭐라고 말하고 도움을 요청하면 좋을지 고민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그 시기가 아이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어렵고 힘들고, 공부를 하는 카펫타임에 앉아있는 게 힘들고 지루하니 돌발행동들(옆 친구들 건드리기, 수업 방해되는 소리내기 등)을 하며 선생님께 매일 매일 지적을 받으니 저런 소리를 한 게 아닌가 싶었어요. 

학교에서 아이 공부를 가지고 뭐라 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자기가 보기에도 자기가 모르는 것을 잘 알고 잘 대답하는 아이들이 있었을 것이고, 자기는 영어로 말 하는 게 힘든데 다른 아이들은 영어로 솰라솰라 말하는 걸 보며 의사소통이 답답하기도 했겠지요.  자기는 카펫 타임에 앉아 있는 게 힘들어서 선생님과 중간에 자리를 비우고 나가서 몸을 움직여주고 기분을 전환해서 다시 돌아와 앉아서 수업에 재참여하는데, 다른 아이들은 계속해서 공부를 배우고 있으니... 학교에서 배우는 게 어렵고 힘들어서 자기는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한건지...


어쨌거나 아이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나는 내가 악하기 때문에 나를 싫어해.'라고 한 말이나, '나는 공부를 못 해'라고 한 말 두 가지 모두가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비춰졌고, 저는 이 상황을 학교 교사와 공유하고 학교 세팅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을 요청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을 우리 아이 담임선생님께 뭐라고 말해야 할까 고민이 됐습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은 저는 선배 엄마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역시 선배 엄마인 분은 현명하게 조언을 해주셨어요.  아이가 이런 말을 해서 속상했다고(I was sad to hear...) 표현하는 게 어떠냐고 말이죠.  

그래서 저는 이후 선생님께 짧은 미팅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과 제 마음을 말씀드렸어요.  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해서 듣고 속상했다고.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하기 시작하는 거 같은데, 어떻게 아이를 도와주면 좋을지 여쭤봤죠.  그랬더니 선생님도 제 이야기에 놀라시며, 이런 이야기 해줘서 고맙고, 학교에서도 아이에게 칭찬 많이 해주고 격려해주겠다고, 집에서도 많이 칭찬해주고 지금처럼 계속 지지해주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선생님께서 이메일로 요즘 상황이 어떤지 업데이트해주는 이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아이가 아무래도 포닉스(영어) 시간 보다는 수학 시간에 좀 더 참여하는 편이라 아이가 대답하거나 참여하고자 할 때 아이가 앞에 나와서 다른 아이들 앞에서 말할 수 있게 해주고 다 같이 칭찬해주었다고, 아이가 잘 하고 있고 자기들도 노력하겠다고 하는 이메일이었습니다. 

이 일이 있기 직전, 선생님께서 아이의 사회성을 우려하시며 저희와 의논할 때의 태도가 경직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불편함을 느꼈었는데, 이후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선생님께서 대처하시는 태도를 보며 아이의 선생님이 어떤 성향의 분인지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  열성이 있으신 것은 분명하고, 학부모가 우려를 표하는 점에 대해서도 대처할 수 있는 부분은 대처하시고자 하며, 나름의 노력과 아이의 진전상황에 대해 빠르게 피드백을 보내주시는 점이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