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초등학교 생활

[Reception Year] 둘째의 만 4세에서 5세 손글씨 발전사

옥포동 몽실언니 2024. 11. 29. 22:33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를 와서 첫 1년간 엄마와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작년 가을에 드디어 형아가 다니는 학교의 어린이집(널서리)을 다니기 시작한 둘째 뚱이. 

우리 뚱이는 어린이집을 시작할 때도 자기 이름을 쓸 줄 몰랐다. 집에서 아이에게 연필을 쥐어주며 이름 쓰기를 가르칠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어린이집에 가면 배울 것이고, 결국 언제가 됐든 자기 이름은 쓸 줄 알게 될 것이므로 내가 집에서 붙잡고 가르쳐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작년 9월, 학교 어린이집을 시작하고 매일 매일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을 갖고 열심히 어린이집을 다니던 뚱이. 두번째 학기가 되었을 때였나.  해마다 한번씩 하는 선생님과 부모님 면담 시간이 다가왔고, 그 때 처음으로 선생님과 줌으로 온라인으로 만나 아이의 어린이집 생활에 대해서 들었다.

다행히 특별한 이슈는 없었고, 아직 아이가 자기 이름을 '그릴 줄 모르니', 아이에게 '이름 그리기'를 가르쳐주면 좋겠다고 선생님이 부탁하셨다.  연필이든, 모래놀이 하면서 모래 위에서든, 뭘로든 아이가 자기 이름을 그릴 수 있도록 해보라고.

그 뒤로 기회가 되면 아이에게 네 이름은 이렇게 쓰니 이렇게 한번 써보자는 이야기를 해봤고, 역시나.. 아이는 집중해야 하고 어렵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름쓰는 활동에는 관심이 없고, 시늉만 좀 하다가 내 품에서 벗어나 거실로 가서 놀기 일쑤였다.

첫째 잭은 다른 건 몰라도 자기 이름은 Reception을 입학하기 전부터 쓸 줄 알았는데, 둘째는 자기 이름쓰는 것에도 관심 없는 게 참 신기하면서도, 뚱이 이름 쓰게 하는 일보다 더 급한 일이 밀려있는 우리 일상에서 둘째 이름 가르치는 일은 우선순위에서 늘 밀렸다.

그러던 어느날.  2024년 2월 2일. 아이가 만 4세가 되고 보름 남짓 지난 날.  아이 가방에서 나온 종이들이 식탁에 올려져있었고, 식탁을 정리하던 남편은 죄다 쓰레기라고 가져가서 버리려고 하는 것을 "잠깐!!! 안 돼!!!" 하고 막아섰다.

"버리지 마!"

"왜? 이게 뭔데? 아무것도 아닌데?"

"아무 것도 아니라니?!!! 뚱이가 자기 이름을 써왔잖아!!! 자기 이름을 이렇게 다 쓴 게 처음인데!!! 버리지 마!!!"

내 말에도 여전히 갸우뚱하는 남편. 

"봐, 모르겠어? 여기, Sunjae 를 쓴 거잖아!

그리고 며칠 뒤, 또 학교 가방에서 잘 접힌 종이 하나가 나왔다. 와!! 이번에는 가족 그림에 이름까지!!!!

사람이 넷이니 이건 무조건 가족을 그린 것 같고 ㅋㅋㅋ 아래에 꼬불꼬불 지렁이 같이 굴러가는 것은 남들 눈에는 안 보이겠지만 내 눈에는 분명히 아이 이름이다. Sunjae.  가족 그림을 그리고, 멋지게 자기 이름을 서명했구나!! 

드디어 우리 뚱이가 자기 이름을 그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Sunwoo 라는 첫째의 이름은 어린 아이가 기억하기도 쉽고, 그리기도 쉽다. S만 잘만 그리면 나머지는 동그라미와 선으로 다 해결되는 느낌.  

반면에 둘째 뚱이의 이름인 Sunjae 는 똑같은 스펠링이 반복되는 게 하나도 없고, 6개의 서로 다른 알파벳의 구성이니 아이가 기억하기도 힘들고, 한번에 그려내기도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이 지났고, 2024년 9월 우리 뚱이도 드디어 정식 학년인 Reception Year를 시작했다. 1학년 바로 아랫 학년이 Reception Year이다. 

형아가 숙제를 하거나, 글씨쓰기를 할 때면 둘째 뚱이도 뚱이용으로 사 둔 책을 골라와서 식탁에 앉는다. 

둘째는 알아서 큰다더니, 바로 이게 그런건가 하고 우리를 놀라게 하는 둘째.  

열심히 첫째 잭을 복돋워주며 잭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라고 하는 글씨쓰기를 하고 있는데, 마주앉은 뚱이가 아니 글쎄, 혼자서 글을 보고 따라서 썼다!!!

 

세상에 이런 일이!!!

글씨를 쓰거나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 둔 부모라면 이해할 수 없겠지만,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글씨그리기와 색칠하기라고 하는 첫째 아이를 키운 우리에게는 둘째의 이런 행동이 신기하기 그지없다. 

특히, 다른 사람이 써두거나 그린 것을 눈으로 보고, 그대로 따라서 쓰거나 그리는 활동. 우리 첫째는 저 나이에 잘 하지 못했고, 하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둘째 혼자 저렇게 큰 네모를 가득 채워 a dog on a mat 과 a cat and a pig를 따라쓰려고 한 게 얼마나 신기한지.  저 작은 손으로 어떻게든 저 알파벳들의 특징을 살려서 꼬부러지고, 동그랗게 그려낸 글씨가 너무 귀여웠다!

그리고 바로 어제.  이제 만 4세하고 10개월이 된 우리 둘째가 이름을 제법 그럴싸하게 그려냈다!!! 그림은.. The very hungry caterpillar 작가인 Eric Carle 의 해...(꿈보다 해몽?)

 

제 눈에 안경이라고. ㅋㅋ 내 눈에는 아이가 그려온 게 바로 아래 사진에 있는 The Tiny Seed 책 뒷표지의 해를 따라 그린 것 같은 것이다!!  둘째가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어서 잠자리에 들어서 저 책을 같이 읽었는데, 가만보니 이 책의 그림이 The very hungry caterpillar와 똑같아서 보니 저자가 똑같은 게 아닌가!  애벌레 책을 그렇게나 좋아했던 뚱이도 한 눈에 알아보고 말했다. 

"엄마!! 이 해도 The very hungry caterpillar에 나오는 해야!!!!" 

하며 하하하하 신나게 웃었다.  그리고 다음날 그려온 그림이 바로 위의 그림이니.  저 그림 속 해는 Eric Carle의 해임에 틀림이 없다!! 

 

저 해 그림과 함께 자기 이름을 멋지게 쓴 종이와 함께 가방에서 나온 것들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아래 사진의 노란 종이들.  

우와!! 이게 뭐야?

아이의 첫번째 그림만 보고 물었다. 

우리 뚱이 미니언즈 그린거야??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뚱이가 말한다. 

a 야. a. 엄마. a 에 astronaut 가 있어! 
와, 그렇구나~~ 

 

학교에서 a 를 가르칠 때 아래와 같은 그림으로 astronaut (우주인) 이라는 단어의 a 와 같다고, a 에 우주인 얼굴을 넣은 그림으로 가르치는데, 그걸 보고 우리 뚱이도 a를 그린 후 그 안에 우주인의 눈코입을 그리고, 눈에 고글까지 씌운 것이다!  그리고 대문자 A도 함께 적었다. 

아이가 그린 우주인 a의 화룡점정은 바로 아래, 머리카락까지 있는 a is for astronaut!

 

첫째인 잭은 사람을 그리는 데에 정말 관심이 없어서 사람을 그려온 적이 거의 없었다.  아마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  그런데, 둘째 뚱이는 자기 이름 그리기를 해낸 다음에 곧이어 시도한 것이 형아 이름 Sunwoo를 적는 것이어서 나를 놀라게 했었다. (남편은 별 반응이 없었으나 나만 놀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나서 우리 아이가 적은 것은 바로.. 선생님의 이름!!!

지난주였던가.. 아이를 아침에 데려다주는데, 아이를 맞이한 후 선생님이 내게 그러시는거다. 

 

어제는 선재가 저에게 제 이름을 적어서 갖다줬어요. Mrs Keam 이라고 적어서 말이에요. 얼마나 귀여웠는지 몰라요!

 

아침이라 아이 둘 데리고 정신이 없었던 나는 저 말을 들은 내 귀를 의심하며 형식적으로 반응했다.

 

아 그래요? 대견하네요!  말해줘서 고마워요!  

 

내 반응이 영 시원찮았던가.  그 다음날은 하교 길에 선생님이 아이에게 말씀하셨다. 

 

선재, 가방에 있는 카드 엄마한테 드려야지~

 

그러자 아이도 아! 하며 자기 가방을 뒤져 카드를 하나 꺼내서 내게 건넸다. 

 

아이가 요즘 손글씨에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칭찬해준 것이다.

한 달 전에 있었던 첫 '교사-학부모' 면담에서 우리의 주된 주제는 아이가 아직 손글씨로 자기 이름을 못 쓴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도 선생님들이 걱정하지 말라고, 아이가 지금은 이름을 못 쓰지만 "attitude"가 아주 좋아서 금방 쓸 수 있게 될거라고 긍정적인 말씀을 해주셨다.  

이름을 쓸 줄 모르는 애들이 뚱이 외에도 여럿 있는데, 이름을 쓰라고 하면 "I don't know"라고 해 버릴 수도 있지만, 우리 뚱이는 자기 옷이 걸려있는 곳으로 가서 자기 이름표에 이름을 보고 와서 그 이름을 쓰려고 노력한다며.  ㅋㅋㅋㅋ 아이가 혼자서 분주하게 교실과 코트 걸이를 오가는 모습이 상상되어서 웃음이 났다.  아이의 성격을 아는 나로서는 너무나 이해가 가는 모습.  선생님들은 그 모습을 얘기하며 아이가 스스로 해내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노력을 하고 있으므로, 앞으로 할 수 있게 될 거라고 걱정 말라고 하셨다. 

첫째 아이의 교사-부모 면담시간마다 늘 긴장을 하고 진땀을 뺐던 나에게 이런 교사-담임 면담은 처음이었다. 

저 카드를 받아온 날.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며 한 말이.. 여태 이 학교를 2년 넘게 아이들을 보내면서 이런 카드가 존재한다는 사실 조차 몰랐는데.  뚱이 덕분에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이런 칭찬/격려 카드를 써서 보내준다는 것도 알게 됐다는 사실. 

첫째 때문에 맘 쓰느라 둘째 학교 생활을 신경쓸 틈이 없어서 둘째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오늘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이번 주말에는 둘째를 데리고 둘째와 나만의 데이트 시간을 좀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손글씨로 치자면 우리 뚱이보다 훨씬 예쁘고 유려하게 손글씨 잘 쓰는 아이들이 저 반에 여럿 있을텐데, 그래도 아이가 노력하는 모습으로 만들어낸 성취를 칭찬해주는 학교 선생님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부모는 어쩔 수 없나보다.  팔불출.  이게 뭐라고 이렇게 자랑하는 글을 남긴다.  이거라도 해야 내가 살겠어서 하는 거니까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길 바라며..

우리 둘째 손글씨 발전사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