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일상

[셀프 인테리어] 1. 시간이 멈춘 집

옥포동 몽실언니 2025. 10. 16. 22:25

반 세기 동안 시간이 멈춘 집

지금 집으로 이사 온 지 3년이 지났다. 이 집은 아주 오래된 집이라 페인트도, 카펫도, 부엌도 모두 오래된 예전 것들이다. 70-80년대에 시간이 멈춰있는 집.

우리는 이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부터 항상 페인트만이라도 다시 칠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벼르고 벼르던 페인트 작업을 이사 온 지 3년이 넘은 이제야 드디어 해보려고 한다. 소위 말하는 셀프 인테리어.  처음으로 도전하게 될 공간은 거실. 오래된 페인트 벽에 새 페인트를 발라볼까 한다. 

47년간, 한 부부의 여생을 함께 한 집

이전에 사시던 분들은 우리 부부와 같이 아들을 둘 가진 부부였고, 자녀들이 10대 후반이 되었을 때 자신들의 노후를 보낼 집으로 이 집으로 이사를 들어왔다고 했다. 그리고, 47년이라는 시간을 이 집에서 사시다가 아흔이 넘은 나이에 할아버지께서 먼저 돌아가시고, 몇 년이 더 흐른 후 여든이 넘으신 나이에 할머니께서도 세상을 떠나셨다. 할머니가 마지막 여생을 보내던 몇 년간 큰 아들이 본가에 들어와 함께 살며 할머니를 돌봐드렸고, 할머니께서 작고하시고 2년 후 우리 가족이 이 집에 이사를 들어오게 됐다. 

이 오래된 집이 마음에 쏙 들었다

이전에 사시던 노부부는 물론 그 아드님도 모두 집을 깨끗하게 관리하고 사시던 분들이었던 것 같다. 집 안에 많은 것들이 오래된 것들이지만, 그 연식에 비해 모두 상태가 좋고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오래된 집을 대대적으로 고칠 경제적, 실질적 능력과 의지 모두가 없던 우리 부부는 겁도 없이 이런 집으로 이사를 들어왔다. 얼마 전까지 사람이 살던 곳이고, 잘 관리되고 사랑받던 집이라는 느낌이 있었고, 그래서 당장 살아가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틴틴은 집의 넓은 가든이 마음에 쏙 들었고, 나는 틴틴이 이 집의 큰 가든을 마음에 들어한다는 점이 좋았다.  또, 틴틴이 런던으로 출퇴근 가능하면서, 단독주택이라 이웃과의 소음 분쟁 없이 살 수 있다는 점도.

이웃들의 관심

이사를 들어와서 이웃들과 인사를 나눴다. 우리집의 좌우에 있는 이웃들은 모두 할머니들이셨다. 이 분들은 이 집을 전문 업자(빌더)가 사서 대대적으로 고쳐서 다른 사람에게 팔거나, 젊은 가족이 직접 빌더를 고용해서 집 전체를 대대적으로 고치기부터 시작할 거라 생각하신 것 같다. 그럴 경우, 집 앞으로 몇 달간 공사 차량이 다니게 되고, 공사 소음과 먼지로 인해 불편을 겪게 될 거라 생각하셨던 것 같다. 우리가 이웃집에 인사를 가자마자 양쪽 집 할머니들 모두 가장 궁금해하던 것이 집 공사 계획이었다. 

아.. 저희는 돈이 없어서 당분간 공사할 계획이 없어요. 집이 오래되긴 했지만, 사는 데는 문제가 없는 컨디션이라 저희는 일단 그냥 살려고요. 

그런 내 대답에 두 할머니 모두 얼굴에 반색을 띄셨다. 한 할머니는 기쁜 내색을 표하시면서도 그 집 부엌이 아주 작아서 불편할 텐데 괜찮겠냐고 물으셨다. 난 학교 기숙사에 살면서 오래된 부엌을 많이 써봤고, 예전 생각나고 친근해서 괜찮다고 했다. 언젠가 여유자금이 생긴다면 부엌을 하면 좋겠지만 지금 그대로로 쓸 만은 하다고.

그렇게 말하긴 했어도 정말 3년간을 집 내부에 아무런 시공도 하지 못한테 이대로 살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가구를 이리 옮겨보고, 저리 옮겨보며 어떻게 해야 이 집을 더 우리 마음에 들게 만들 수 있을까 궁리는 했지만, 집 내부를 개선할 돈도 체력적 정신적 여유도 없었다. 

3년만의 결심: 거실 벽 페인팅

그렇게 3년이 흘렀고, 드디어 우리는 거실 벽에 페인트를 칠하는 것으로 드디어 DIY 작업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영국은 실내 페인트 벽이 흔하다 보니 영국에 오래 살다보면 페인트칠 한두번은 해보게 마련인데, 틴틴이나 나는 단 한번도 페인트 칠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 이번이 정말 처음이다.

예전 아빙던 집에서는 페인트 상태가 나쁘지 않았고, 그 집에 더 오래 살았더라면 그 집에서도 지금 정도의 시간이면 페인트칠을 한번쯤 해보려고 마음을 먹었을 것이다. 그 집에 계속 살았다면 8년이 됐을 것이고, 아이들의 낙서와 손때로 벽이 점점 더러워져서 지금쯤이면 더 견디기 힘든 상태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린 이걸 견디는 힘이 굉장히 강하긴 하다). 실제로 우리가 이사 나온 후, 아빙던 우리집에 새로 이사를 들어온 가족은 이사 직후 집 내부 전체에 페인트 칠을 다시 하고, 바닥과 부엌까지 대대적으로 모두 수리했다. 

거실 벽이 첫번째 프로젝트가 된 이유는 유일하게 내부 전면이 기존 벽지 없이 페인트만으로 시공되어 있는 공간이라 뭔가 시도를 하기에 가장 쉽기 때문이다. 또, 최근 가구 재배치로 거실 공간에 식탁을 놓고 식사를 그 곳에서 하게 되면서 거실 벽에 있던 얼룩 자국과 벽의 균열들이 눈에 더 거슬렸다. 라디에이터 위로 오래된 시커먼 먼지 자국이 남아있고, 외부를 향하는 벽에는 결로로 인해 생긴 것 같은 곰팡이 자국도 좀 있다. 다만, 곰팡이가 살아있는 곰팡이는 아니라서 그런지 냄새도 없고 눈에 보이는 위치도 아니라서 지금껏 모른척하고 살 수 있었다. 

이 공간은 우리 가족을 이 오래된 집에 들어와서 살게 한 결정적인 계기인 넓은 가든이 내려다 보이는 공간이다. 그러나 주로 아이들이 티비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데만 사용하다가 이제 그 곳에 식탁을 놓고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하며 거실을 사용하다 보니 벽면의 미관 상태에 눈에 더 거슬리게 됐다. 페인트칠로 벽 미관이 개선되면 가든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는 기분이 더 좋아질 것 같다.

올해 9월부터 잭과 뚱이 둘 모두 토요일마다 한국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한국학교에서 4시간을 보내게 됐고, 그 시간 동안 틴틴과 나 둘이서 이런 저런 집안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그 덕에 이젠 페인트칠까지 엄두를 내게 되었다. 

페인트 고르기: 클레이 페인트

집 내부가 아주 오래되고 낡았음에도 아무런 시공없이 지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비용 부담이긴 했지만, 또다른 이유는 내가 워낙 화학적 냄새에 민감한 편이라 뭐라도 손댈 엄두도 나지 않았다. 손톱 매니큐어나 일반 화장품 냄새에도 두통이 일어난다.  소싯적에는 손톱 매니큐어는 물론 향수를 즐겨 뿌렸는데, 한참동안 몸이 아픈 이후부터는 향수는 손도 못대는 것은 당연하고, 향이 있는 화장품도 쓰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집에 뭐든 새로운 시공을 하면 본드가 포함된 각종 화학적 냄새로 당분간 힘들 게 두려웠다. 그런 냄새야 며칠이면, 길어도 몇주면 사라진다고들 하지만, 나는 가장 편해야 할 집 안에서 비록 며칠이라도, 몇주라도 아프게 될 것이 싫었다. 미적, 기능적 만족감을 얻게 될 것은 확실하지만, 시간도, 돈도, 체력도 없는 상태에서 굳이 무리해서 내 몸을 며칠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안 예쁜 것들을 눈감고 지낼 수 있는 힘이 좀 강한 것도 한 몫했다. 지금 이대로 좀 불편하고 안 예뻐도 좋으니 몸이 편안한 게 내겐 더 중요했다. 

페인트칠을 해보기로 틴틴과 얘기하고 나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냄새가 나지 않는, 최대한 적게 나는 친환경 페인트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일이었다. VOC zero인 페인트들이 있고, 그 중 Earthborn 제품이 영국 브랜드(제조는 독일에서 한다고 한다)로 영국 내에서 구하기가 쉬운 것 같아 이 브랜드 제품을 한번 써볼 생각이다. 이 페인트는 점토를 사용한 클레이 페인트 (clay paint) 라 통기성이 좋아서 우리 집 거실처럼 오래되고 곰팡이가 생기기 쉬운 벽에 사용하기에 적합하다고 한다.  클레이 페인트를 사용한 우리 생애 첫 페인트 도장 시공. 과연 우리가 계획하고 예상하는대로 잘 진행이 될지. 앞으로 우리의 첫 페인트 시공 경험기를 기록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