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2017-20

[영국 어린이집 적응기] 레이첼과 애착을 형성하다

옥포동 몽실언니 2019. 5. 17. 18:09
어제는 우리 아이 St Mary's 어린이집 2주 2일차 등원일이었다.  어제 아이를 데리러 가서 아이의 버디 케어러 레이첼과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우리 아이의 어린이집 생활 적응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어제는 처음으로 아이를 3시반 이후에 데리러 갔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처음 정식 등원할 때는 9시에 데려다 주고 2시반에 데리러 가다가 이번주에 들어서는 7시반에 데려다 준 후 3시 반 정도에 데리러 갔다.  

그런데 마침 3시반은 티 타임이라 우리 아이만 티를 먹지 못한 채 집으로 출발하니 아이는 배가 무지 고픈 상태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3시 반에 나오는 티를 먹은 후 아이를 데려 오려고 집에서 3시 35분에 출발하여 어린이집에는 3시 50분이 안 되어 도착했다.

티타임이라 가든에는 아이가 하나도 나와있지 않았다.  모두 식당에 있구나 생각하며 얼른 실내로 들어갔다.  혹시 우리아이가 울고 있지는 않을까 귀가 쫑끗 세워졌다.  울음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고 실내는 조용했다.  모두들 식사를 하느라 그런가보다.  

아이들 놀이방에 도착하여 고개를 쑤욱 들이미니 저쪽 구석 바닥에 아이의 버디케어러 레이첼과 또 다른 교사 한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이!” 

레이첼을 보며 인사를 건넸다.  사실 나는 사람 얼굴을 정말 기억을 못해서 레이첼을 그렇게 여러번 보고도 아직도 레이첼이 레이첼이 맞는지 헷갈린다.  ㅠㅠ 레이첼을 딱 두번 봤던 우리 잭은 레이첼을 귀신 같이 기억하고 레이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레이첼을 맞이했다고 하는데, 내 기억력이 우리 잭보다 못함에 틀림없다.  

내가 웃으며 인사를 건네자 레이첼도 웃으며 자기 앞에 드러누워 있는 한 아이를 가리켰다.  
엥..?  
잭이 바닥에 널부러져 자고 있었다. ㅋㅋ  널부러져 자는 모습이 너무 귀여우면서도 이런 상황 속에 이렇게 뻗어 잠든 모습이 낯설고 우스워 레이첼에게 허락을 받고 사진을 한장 찍었다. 


아이의 어린이집 적응기 

레이첼이 마침 선우 옆에 앉아있던 만큼 레이첼과 이런 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생활 적응

일단 기저귀 가는 것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기저귀 갈자고 하면 기저귀 교체실에 걸어가서 문 앞에 서 있을 정도라 하니, 가히 놀랍다. 

밥 먹으러 가기 전 손 씻기, 기저귀 간 후에 손 씻기 등 어린이집의 생활 규칙을 따르는 데도 문제가 없다고 했다.  언어가 다르긴 해도 말을 하면서 손짓을 함께 해서 그런지 다 알아듣고 잘 행동하고 있다고 한다.  옆에 와서 앉으라고 할 때도 옆자리 바닥을 손으로 탁탁 치며 ‘Come and sit down here’ 이라고 말 하면 아이가 와서 앉는다고 했다. 

심지어 자기 혼자 자기 자리에 앉아서 밥도 다 먹는다고 한다.  이전까지는 선생님들이 본인 무릎에 앉혀서 아이를 떠먹여줬어야 했는데, 레이첼과 함께 있을 때는 레이첼이 옆자리 앉아서 잘 먹으라고 격려해주니 턱받이도 잘 하고 혼자 자리에 앉은 채로 본인이 숟갈 포크질 하여 다 먹는다고 한다.  이렇게 놀라운 데가!  집에서는 아직도 밥 먹는 시간에 장난도 많이 치려고 하고, 자기가 먹고 싶은 것만 손으로 집어먹고, 숟갈로는 가끔 먹으려 하는데 포크질도 잘 안 하려 하고 떠 먹여주는 걸 먹으려 하는데, 어린이집에서는 혼자서 다 먹는다니!

아이의 놀이활동

가든 놀이시간에는 가든에 있는 작은 풀에 거북이 띄워놓은 곳에서 물장난을 치며 엄청 잘 놀았다고 한다.  아이 혼자 ‘독립적으로’ 놀거나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도록 하는 것을 장려하기 때문에, 혼자서 잘 놀고 있길래 레이첼도 다가가지 않고 아이 혼자 내버려뒀다고 한다.  그랬더니 한 5분 혼자 잘 놀다가 갑자기 레이첼이 옆에 없다는 것이 생각이 났는지 두리번 두리번 살피며 레이첼을 찾은 후 레이첼에게 다가와서 안아달라 했다 한다. 

모레놀이 트레이에서도 엄청 재밌게 놀았다고 한다. 

노래 시간에는 If you are happy and you know it (우리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을 부를 때 손뼉치며 좋아했다고 한다.  집에서도 이 노래만 나오면 춤을 껑충껑충 췄는데, 이젠 어린이집에서도 그랬다고 하니 조금씩 그 공간이 편해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노래 시간인지 점심 시간인지 한번은 아이가 레이첼을 보고 웃기도 했다고 한다. 

낮잠 

오전에 레이첼 위에서 잠들었다고 한다.  전에도 레이첼에게 안긴 채로 잠들었었는데, 어제도 레이첼의 팔, 다리를 자꾸 잡으며 다른 데 못가게 하고 레이첼에게 기대더니 앉아있는 레이첼의 팔 다리에 기대어 곯아떨어졌다고 한다.  오전 9.55-10.50 사이 첫 낮잠.  아이가 전날 밤 11시반에 자서 아침 7시에 일어난 탓에 어제 낮에는 매우 피곤했던 것. 

점심 식사 후 낮잠 시간에는 잠이 안 오니 안 자려 했다고 한다.  낮잠 시간에는 아이들 모두 신을 벗기는데 선우는 자기 옷 신발 이런 걸 소중히 여기고 애착이 강해서 신발도 안 벗으려 해서 못 벗겼다고 한다. 

오후에 책도 보고 노래도 하고 가든에서도 놀고 하다가 오후 3.35분쯤 또 뻗어버렸다.  이 때 내가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갔던 것. 

레이첼과의 애착 형성

이번주 첫 등원이었던 화요일 아침에도 선우가 어린이집에 갔을 때부터 내내 울고 있다가 레이첼이 출근하자 (8시 출근-5시퇴근 조라고 함) 레이첼을 보며 손가락질 한 후 레이첼이 안아주자 울음을 그쳤다고 했는데,  어제 목요일도 동일했다고 한다.  울고 있다가 레이첼이 오자 울음 뚝.  내가 아이를 내려주고 온 게 7시 반이었으니 거의 30분을 내내 울고 있다가 레이첼이 오고서야 지난번과 똑같이 레이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안아달라 한 후 레이첼이 안아주자 울음을 뚝 그친 것이다.  

아이들도 모두 성향이 있어서, 아이들이 각자 좋아하는 성향의 사람이 있는 편인데, 레이첼은 자기가 좀 엄마같은 느낌이 있어서인지 잭이 자기를 정말 좋아하는 거 같다고 한다.  잭이 안는 것도 좋아하고, 자기도 안는 거 정말 좋아한다며, 잭이랑 안을 때 너무 좋다고.  잭의 키 케어러 코럴도 선우가 레이첼 좋아한다고 말 하더라고 한다.  코럴은 약간 좀 더 차갑고 냉정한 스타일이라 그런가.. 아무튼 애들이 자기 비빌 언덕을 귀신같이 찾아서 그리 하는 것 같다. 

아침에 데려다줄 때 너무 오열해서 맘이 너무 안 좋았다고 하자, 몇년 다닌 애도 들어올 때는 그런다고.. 대신 일단 들어오면 이것 저것 하면서 잘 논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아이가 하루 종일 그럭저럭 잘 놀았고, 다만 레이첼이 점심을 먹으러 갈 때 레이첼이 방을 나가니 잭이 가지 말라고 그렇게 울었다고 한다.  아.. 레이첼이 집에서 내가 겪는 것을 겪고 있다니.. 고마우면서도 안타까우면서 웃기면서.. 참.. 뭐라 말 할 수 없는 여러 감정이 올라왔다.  아이가 레이첼 자기가 가는 걸 싫어하며 울자 자기도 마음이 짠 했다고 한다. 

레이첼은 젊고 밝아보여 싱글인 줄 알았더니 윗층 베이비룸 (만 14개월 미만의 걷지 못하는 아이들이 머무는 방) 에 자기 딸이 있는데 이번 금요일인지 주말인지 첫 생일이라 한다.  아직 걷지 못하는데, 얼른 아이가 걸을 날만을 기다린다고.  아이가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9개월간 육아휴직 하고 2월에 복직한 거라 한다.  처음 어린이집 케어러로 자격을 취득한 후 이 어린이집에서 일을 하다 한번 승진을 했고, 이후 육아휴직 후 돌아와서 또 다시 승진하여 현재는 토들러 룸 리더가 되었다고 한다.  

아이의 적응 과정에 대해 내가 하는 여러 질문에 서슴지 않고 모두 대답해주고, 아이가 자기에게 애착을 형성하는 것에 대해 기뻐하고 아이를 이뻐하는 모습에 정말 고마웠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자기와 잘 맞는 좋은 케어러를 만나게 된 것에 감사하다.   

레이첼과 이야기를 이어가다 아이가 좀 잤다 싶은 때에 레이첼이 아이의 배를 가볍게 문지르며 아이를 잠을 깨웠다.  잭은 실눈을 살짝 떴는데, 그 때 내가 아이 얼굴 앞으로 다가가서 “선우야~~~” 했더니 아이가 바로 울상을 지으며 울음...ㅋㅋ “엄마, 왜 나 놓고 갔어?  왜 이제 왔어?!” 하는 듯했다.  

“일어나자 마자 왜 울어~~ 엄마도 왔는데 왜 울어~  레이첼 선생님이 엄청 잘 해줬다며~~”

라고 아이에게 말하며, 레이첼에게는, 

“선우는 집에서도 일어날 때 꼭 이렇게 울면서 일어나는 경향이 있어요.” 

라고 얘기하며 아이를 달랬다. 

오늘도 아이가 낮잠 자느라 먹지 않은 tea (‘차’라 부르지만, 오후 식사나 다름없는 식사) 를 갖고 와서 집에 와서 냠냠 남김없이 다 먹었다.  

아이가 낯선 서양음식도 이제 잘 먹는 걸 보니 마음이 또 놓였다.  그 과정이 힘들기는 하지만 아이가 서서히 적응을 해나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