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잠을 자는 내내 나는 나대로 몸이 아파 잠을 설치고, 아이는 아이대로 코가 막혀 숨을 못 쉬어 잠을 설치고, 코막힘으로 울고 발버둥치며 자는 아들 옆에 자느라 남편도 잠을 설쳤다.
밤새 목이 너무 부어올라서 이 상태로라면 아이 데려다주는 것도 남편에게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고 아이 밥을 챙겨먹이고 하다 보니 아이 데려다주는 것도 자연스럽게 내가 하고 있었다.
오늘은 비가 어쩜 그리도 내리는지. 간만에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이 비가 쏟아졌다.
영국에서 이 정도 빗속을 뚫고 운전을 해 보기는 또 처음. 낯선 빗길 운전이다 보니 양손으로 운전대를 평소보다 더 꽉 잡고 긴장한 상태로 운전을 했다.
아이는 집에서 나서면서부터 가기 싫다고 울기 시작했는데, 차에 올라탔다 하면 이제는 본인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차에서 내리기 전까지는 울지 않다가, 차에서 내릴 때 또 울기 시작한다.
그런데 왠일인지 오늘은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의 느낌이 신기했던지, 아이를 조금이라도 비를 덜 맞게 하려고 내가 아이를 안고 달렸더니 그게 신이 나서인지 아이가 울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어린이집 현관을 열고 복도를 열고 들어가는데도!
오늘은 아이의 키 케어러가 10시부터 2시로 단축근무를 하는 날. 그리고 버디케어러 레이첼은 이번주 내내 휴가이다. 아이가 가장 친숙할 두 사람이 모두 부재하는 가운데 아이가 등원해야 하는 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이를 안고 입구로 들어갔는데, 한 선생님이 ‘써누~~’ 하며 우리 아이를 맞아준다. 눈썹을 짙게 그리고 다니는 친절한 젊은 선생님인데 안타깝게도 선생님의 이름을 아직 모른다. ㅠ
어제까지만 해도 아이가 늘 울면서 들어가다 보니 걸어들어가지 못하고 선생님 품에 안겨서 들어갔는데, 오늘은 혹시나 해서 바닥에 내려놓고 문을 열어줬다. 아이가 걸어들어간다!!
“엄마가 이따 데리러 올게! 재밌게 놀아, 이따 봐!” 하고 아이 이마에 입을 맞추고 두세번 손을 흔들다 돌아나서는데, 뒤에서 선생님이 소리쳤다.
“선우도 손을 흔들었어요!”
“아, 정말요?! 고마워요!! 이따 뵈요!”
하고 인사를 나누고 돌아나왔다.
뭐야.. 우리 잭. 엄마한테 인사한거야?! 엄마는 혹시라도 니가 엄마랑 또 눈 마주치고 참았던 울음을 다시 터뜨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 황급히 뒤를 돌아 나왔더니, 엄마가 가는 걸 보면서도 울지 않고 엄마에게 손을 흔들어줬구나!
감격스럽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 일을 시작했다.
집에서 일을 해서 그런가, 특정 고용인이 없는 상태에서 일을 해서 그런가, 일을 안 한다고 당장 길바닥에 나가 앉을 상황이 아닌데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가.. 일을 하다 보면 내가 뭐 하고 있나, 왜 이러고 있나, 온갖 생각이 밀려온다. 내가 이러고 살려고 고생스럽게 긴 유학을 했던가 하는 생각도 올라오고, 이런 일 하려고 (? 이런 일이 뭐가 어때서!!) 아이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하루종일 책상에 붙어있나.. 별에 별 생각이 다 드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아직 이런 상태인데 어린이집에 울지 않고 들어간 아이가 나보다 더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인 나는 아직도 아이를 보내놓고 내 일을 하는 게 어색하고 죄책감도 느껴지는데, 아이는 나보다 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는.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선생님들도 적응을 도와주고, 엄마 아빠도 응원을 해주는데, 나는 그런 응원이 부족해서일까.. 생각해보니 그것도 아니다. 남편은 나를 적극 지지해주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도 (아마도) 응원해주고 있는데, 내 안에 무엇이 나를 이렇게 불편하게 하는지.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은 나의 잘못된 환상이 나를 억누르고 있는 듯하다. 절대 그렇게 될 수 없고, 그런 것 (‘완벽한 엄마’) 자체가 이 세상에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워킹맘들은 아이를 적게 돌봐도 되니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파트타임 재택 워킹맘이 되어 보고 나니 이것 또한 그저 맘이 편하기만 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얼른 아이 간식을 준비해서 아이를 데리러 가야겠다. 오늘은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어서 아이가 말을 시작해서 나에게 하루종일 있었던 일들을 종알종알 재잘거려주는 날이 오면 좋겠다.
사진: 지난 화요일, 어린이집에서 한 친구가 아이 얼굴을 할퀴는 바람에 왼쪽 볼에 상처가 나서 아이 아빠가 밴드를 붙여주었다.
'육아 > 육아일기 2017-2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출산 후 남편과의 첫 데이트! (14) | 2019.06.25 |
---|---|
[영국육아] 어린이집에서 4일간 3번의 사고.. (5) | 2019.06.11 |
볼 넓은 아이를 위해 한국에서 공수한 신발 (13) | 2019.06.02 |
[엄마일기] 1년만에 라디오를 꺼내다 (7) | 2019.06.01 |
[영국육아] 등원 4주 2일차_어린이집이 가기 싫은 아이 (2) | 2019.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