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2017-20

잭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셨다

옥포동 몽실언니 2019. 7. 17. 14:52
그저께 드디어 엄마 아버지께서 도착하시면서 엄마 아버지와의 한달 간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대학을 서울로 진학하면서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본가를 떠난 후 대학 방학 중이라 하더라도 한달씩이나 집에 머문 시간이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의 이번 방문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나로서는 가장 긴 시간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라 매우 특별하다.  사실 그만큼 긴장도 되고 걱정도 조금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데 긴장할 게 뭐가 있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고등학교 시절 이후 집을 떠나 산 시간이 이미 내 인생의 절반이고, 그렇게 오래 떨어져 살다 보면 부모님과 부대끼는 시간도 적고, 나의 성격과 가치관의 상당부분은 성인기 이후 보다 확고해지고 뚜렷해지다 보니 부모님은 나를 ‘어린 시절의 딸’로만 기억하시고, 나 또한 부모님에 대해 어린 시절 나의 응석을 받아주던 부모님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부모님, ‘성인’으로서의 부모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간의 사랑은 부족하지 않더라도 서로 의사소통하는 방식은 서툴고, 그러다 보니 불편한 부분들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번 방문이 기대되었던 것은 우리 간의 불편과 어색함을 녹여줄 수 있는 귀여운 우리 아들, 부모님에게는 귀여운 손주인 잭이 있다는 것과, 어색한 인간관계를 자기 혼자 어색하지 않은 듯이 다뤄내는 특이한 소셜스킬을 가진 남편 틴틴이 있기에 나 혼자 부모님과의 한달 간의 동거를 하는 것보다는 덜 긴장하고 걱정도 덜했다.  

부모님께서 오시면 우리 아들 잭이 그 누구보다 좋아할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잭은 부모님의 방문을 가장 좋아하고 흥분하고 즐거워하고 있다.  부모님 방문 덕에 어린이집을 안 가서 그런 것도 있을 것이고, 부모님이 계시니 자기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이 늘어나서 즐거운 것도 있을 것이고, 자기의 신경을 뺏어가는 흥미로운 존재의 수가 늘어나다 보니 본인도 지겨울 틈이 없을 것이고, 부모님 덕분에 자기 엄마 (몽실언니)도 밥 잘 먹고 에너지가 있으니 그것도 좋을 것이다.  

올해 5월 말부터 실시되었다고 하는 한국인 자동입국심사 절차 덕분에 부모님은 히드로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한 후 입국심사를 통과하고 짐을 찾고 공항을 나오기는 데까지 겨우 30분밖에 걸리지 않았고, 그 덕에 우리 집에 도착하신 시간이 잭 취침 전인 8시 10분쯤이었다.  

부모님이 오신 날, 부모님의 커다란 두 개의 짐 가방 안에서는 온갖 신기한 음식들과 잭의 놀잇감 등이 쏟아져 나옴과 동시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연신 자기의 이름을 불러대며 좋아하시니 잭도 아주 흥분했다.  부모님이 머무실 3층 방에서 1층 거실을 여러번 왕복하며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관심을 보이고 신이 나서 켁켁 거리며 웃음을 지으니 그 모습 그 자체가 부모님에게는 아이의 애교이며 즐거움이었다. 

아이는 전날 밤 9시간 밖에 자지 않고 낮잠도 1시간 반을 잔 게 전부였으면서도 밤 10시가 되어서야 겨우 흥분을 가라앉히고 잠이 들었다.  ‘잠이 들었다’기 보다는 그냥 순식간에 뻗어버렸다. 

그렇게 첫날밤을 보내고, 둘쨋날인 어제. 

할아버지와 엄마 (몽실)와 함께 공원 산책을 하고, splash park 에서 물놀이도 하고, 집에 돌아와 낮잠도 자고, 낮잠 자고 일어나서는 마늘 까는 할머니 곁에 가서 마늘껍질을 뒤적이며 한바탕 난리도 치고, 골목 앞 누나 형아와 돌멩이를 던지며 놀다가, 가든에서 또 실컷 물놀이와 과일따기를 즐기며 하루를 즐겁게 보냈다. 

아버지께서는 오후 2시쯤부터 주무시다가 오후 8시가 다되어 일어나시더니 거실에서 밤을 지새우고 새벽 5시 반이 되어서야 침실에 들어가신 듯하고, 엄마는 한참 마늘을 까시다가 부엌에서 혼절(?)하시고는 틴틴 퇴근 후 침실로 들어가셔서 밤새 주무신 모양이다. 

나는 잭을 재우다가 먼저 잠들었다가 기침이 너무 나서 새벽 3시반에 잠이 깼는데, 이미 6시간쯤 잠을 자서인가 잠이 더 오지 않고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생활 소음에, 나의 기침에, 또 잭의 귀여운 잠자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에 잠을 들지 못하다가 어떻게든 잠을 더 청해보려 했지만 부모님 편에 전달받은 무선 접이식 키보드를 얼른 써보고 싶은 마음까지 일어 누워있다 말고 내 방으로 기어들어와 새로 받은 키보드로 핸드폰에 이렇게 글을 적어보고 있다.   '나중에 이 키보드에 대한 후기를 남겨야지'.. 생각하면서.. 

그렇게 우리 가족과 부모님과의 1.3일간의 동거는 무사히 지나갔다. 

부모님과의 동거가 기대와 함께 ‘긴장’이자 나로서는 ‘도전’인 이유에 대해서는 차차 조금씩 이야기를 풀어가보고 싶다.  

나에게는 그 누구보다 훌륭하고 감사한 부모님이지만.. 동시에 어느정도의 상처와 상당한 고민을 남기신 부모님이시기도 하다.  그 상처와 고민들은 성인이 되면서 조금씩 풀어가고 있었으나, 이제는 자식을 낳아 길러보면서 또 다른 차원에서 부모님과의 관계를 생각해보게 되고, 부모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면서 나는 나의 상처들을 더욱 극복하고 부모님과의 관계도 보다 건강하게 회복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도 된다. 

앞으로의 한달간의 동거..  쉽지만은 않을 것이고 그저 즐거움으로만 채워지지도 않을 것이다.  부모님으로서도 본인 집을 떠나 딸과 사위의 집에서, 그것도 동네도 낯설고 언어도 낯선 외국 땅에서 지내신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으실 것이다.  나와 남편도 집 떠나 산 세월이 워낙 길다 보니 아무리 내 부모이고 내 배우자의 부모라 하더라도 나와 다른 성인 두 분, 그것도 어른 두 분을 모시고 한달이나 지낸다는 것이 그저 편치만은 않은 일일 것이고.

그러나 이 시간이 매우 특별한 선물임에는 분명하고, 그런 만큼 나는 이 시간 또한 잘 기록해두고 싶다.  소중한 기억이 될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