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2017-20

[친정부모님과의 동거 4일차] 즐거움과 불편함 사이.. (1)

옥포동 몽실언니 2019. 7. 20. 06:48
오늘로 부모님과 함께 한지 4 일째.  

제목을 뭐라고 해야 좋을까.. 이틀간의 일들을 돌이켜보니 “즐거움”과 “불편함”이 공존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 

부모님이 계시니 잭은 신이 났다.  사람이 북적이니 더 즐겁고 활발하다.  자신에게 관심을 주는 대상이 늘어났고, 자신 또한 흥미로운 존재들이 주변에 더 늘어나자 내 손가락만 끌고 다니던 잭이 혼자서도 이리 저리 돌아다니도 한다.  나랑 잭만 있거나 틴틴과 나랑 잭만 있더라도 보기 힘든 광경이 부모님이 오시자 펼쳐지기 시작했다. 

부모님과 함께 하는 3일째 되던 날인 어제, 7월 18일 목요일.

이 날은 우리 잭이 생후 12개월 예방접종에서 건너뛴 MMR (풍진, 홍역, 이하선염) 예방접종을 맞는 날이었다.  원래 한 주 전이었으나 아이 감기가 심해 주사를 맞지 못하고 퇴짜를 맞았고 일주일 뒤인 어제로 새로 예약이 잡혔다. 

부모님이 안 계셨더라면 틴틴과 함께 갔을텐데 이번에는 틴틴에게 부모님과 갈테니 걱정말고 회사에 있으라 하고 엄마 아버지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주사 접종 후 아이 상태만 괜찮다면 공원에 들러 산책하기 위해 아이 간식을 바리 바리 싸들고서. 

아이 주사를 맞힌 후 15분쯤 경과를 보는데, 다행히 특이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가 주사를 미룬 것은 아이의 계란알러지 때문이었다.  계란흰자에 배양하는 백신들이 있는데, MMR이 그 중 하나라고 해서 의사도 간호사도 아이의 알러지가 나아지는지 좀 더 지켜본 후 주사를 주자고 했다.  그러나 이후 인터넷을 찾아보니 MMR 백신은 배양된 병아리 배아세포에서 배양하는 것이라서 계란 알러지와 반드시 연관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최근 연구 결과였다.  또한 계란 알러지가 있는 아이들 중 MMR 백신에 마비나 호흡곤란 등이 온 경우가 매우 매우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 조사 끝에 나는 주사를 너무 연기하지 않고 그냥 맞히기로 했고, 그것이 바로 이번에 예약된 접종이었다. 

접종으로 인한 이상반응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우리는 마음 편히 시내 주변을 산책했다.  늘 가던 공원으로만 가지 않고 이번에는 엄마도, 아버지도, 잭도 가본 적 없는 아빙던의 아주 오래된 교회 (10세기에 세워진 교회라고 한다) St Helen’s Church 쪽으로 향했다.  한국의 신라시대에 영국에서는 이런 교회를 지었다는 사실에 아버지께서는 감탄을 그지 못하셨다.  

아래 사진은 교회 뒷편에 있는 15세기에 지어진 빈민구호소 Long Alley almshouses 앞.  이 곳을 지나던 아주머니들이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엄마가 우리도 이 앞에서 사진 하나 찍자 하셔서 부모님과 잭 사진을 한컷 찍어보았는데.. 잭이 카메라를 볼 리가 없다. ㅋ

그리고 템즈 강변의 벤치에 앉아 강을 따라 여행하는 보트여행객들과 강에 둥둥 떠다니는 오리떼를 구경하며 집에서 싸 온 간식을 먹다가 시내 공원으로 향했다.  

우리는 놀이터에 소풍매트를 깔았고, 잭은 신나게 놀았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주변을 열심히 산책하셨고, 엄마는 매트 위에 누워서 쉬시다가 또 일어나서 잭과 놀다가, 나와 수다를 떠시다가 하였다. 

나는 혹시라도 아이 열이 오르면 어쩌나 노심초사하였는데, 다행히 별 일 없이 이날 오후가 잘 지났다.

집에 돌아온 후, 아버지께서는 수요일 하루종일 정리하신 집 앞 나무 모양새에 여전히 뭔가 아쉬우셨는지 집에 오시자마자 나무 손질을 이어가셨다.  아버지의 손길 덕분에 아래와 같이 제멋대로 자라있던 집 앞 나무가,

이렇게 깔끔하게 이발을 하였다. 


친정부모님과의 동거 4일차인 오늘 금요일.  

오늘은 오전에 엄마 아버지 두분께서 산책을 가신다기에, 나랑 잭도 간단히 짐을 챙겨 넷이 함께 가기로 했다.  

"우리 둘만 두고 어디로 가시려구요~  잭, 우리도 옷 입고 할머니 할아버지 따라 가자!!” 

산책 가자는 말에 잭도 신이 나서 옷 입고 신발 신는데 매우 협조적이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우리가 집을 나설 때는 그쳐서 다행이라 하며 길을 나섰는데, 시내를 한참 구경하던 중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시내 카페들은 이내 자리가 만석이라 유모차를 끌고 우리가 갈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다행히 가족 모두 비옷을 챙겨입은 덕에 이대로 집에 가보자고 길을 나섰는데, 비는 잠잠해질 기색은 커녕 오히려 더 쏟아져서 우리는 집에 오던 길에 있는 웨이트로즈 (마트)에 황급히 들어갔다.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나는 엄마에게 잭을 맡기고 집에 가서 차를 끌고 오기로 했다.  

"집까지 10분, 여기로 다시 오는데 5분, 15분 정도면 돌아올 거예요.  엄마, 그때까지 괜찮으시겠어요?”
“응, 당연하지.  걱정말고 조심히 다녀와.”

몇달만에 한 달리기였나..  집 앞 마트에서 우리집까지 걸으면 15분쯤 걸릴텐데 이 길을 10분, 아니 마음 같아서는 10분 안에 가려고 맘 먹고 가볍게 달리기 시작했다.  최근 운동을 전혀 못 했던 터라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숨이 가빴다.  

'혹시라도 배가 고파진 잭이 많이 칭얼대서 엄마가 당황하시면 어쩌나', 또 '현금은 죄다 내가 들고 있어서 엄마 아버지는 현금도 없으실텐데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여러 걱정을 하면서 뛰다 걷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  결국 10분쯤 걸렸으려나..   나는 방수쟈켓 덕에 상의는 젖지 았았으나 바지는 빗물에 홀딱 젖어버렸고, 안경에도 빗방울이 그득했다.  

얼른 집으로 들어가 재빨리 바지를 갈아입고, 혹시라도 물에 젖었을 식구들 비를 닦을 수건을 서너개 챙기고 잭과 엄마의 여벌 옷을 챙겨 차를 출발시켰다. 

적당히 마트 입구 근처 주차장에 차를 대고 마트로 뛰어들어갔더니 카페 좌석에 엄마가 잭을 조심히 앉히고 있고 잭은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으로 보이는 울상을 짓고 있었다.  

“엄마!!”

하고 작은 소리로 잭에게 소리치며 눈인사를 건네니 나를 알아본 아이가 울상을 거두고 바로 웃기 시작했다. 

엄마 아버지를 자리에 앉히고 나는 부모님의 커피와 잭이 마실 베이비치노 (아이들용 따뜻한 우유를 이렇게 부른다. 웨이트로즈에서는 30펜스 - 450원)에, 간식거리 빵 2개를 주문해왔다. 

그렇게 즐겁게 한숨을 돌리고 차로 돌아갔는데, 아버지께서는 그냥 집까지 걸어가고 싶으시단다.  

나는 걷고 싶으시면 그렇게 하시라고, 집 잘 찾아오실 수 있으시겠냐고 재차 확인을 하는데, 차에 탔던 엄마까지 내리시면서,

“아버지 혼자 오시는 거 불안하니 길 잘 아는 엄마가 같이 걸어올게.”

하신다. 

“엄마는 길 아시겠죠? (작년에 와서 여러번 산책을 하셨으니)  그럼 조심히 오세요!”

그리고 나는 운전을 해서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후 잭 옷을 갈아입히고, 기저귀도 갈고 나서 10분쯤 더 놀았을 때려나.. 부모님께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점심 준비를 하며 엄마가 하시는 말씀..

“사실 아버지께서 니가 모는 차를 타는 게 불안하셔서 걸어가시겠다고 한 거야.  그런데, 엄마도 마찬가지였고.”

헉!! 이럴 수가!! 내가 두 분이 오실 날을 위해 그리 열심히 운전연습을 하였건만!!! 

“뭐가 불안해요? 내가 얼마나 안전하게 운전 잘 하는데!!  나는 일흔 다된 엄마 아버지 차 타는 게 더 불안해요!!”

흥칫뽕.  서운한 마음에 나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아버지, 제 운전이 뭐가 불안하세요~ 우리 어린 아들을 태우고 어린이집을 매일 왕복하고 있는데~ (매일은 아니지만 ㅋ)”

그래도 아버지는 대꾸가 없으셨다.  

가든에 필요한 도구 한두가지를 사러 쇼핑을 나가고 싶어하셔서 그리 하자고, 차로 15분만 가면 된다고 했더니, 아버지께서는 그것도 굳이 김서방이 쉬는 날인 주말에 하자고 하셨다.  여전히 내 운전이 불안하신 듯했다. --;;;

그리고 저녁.. 

간단한 저녁 식사 후 아버지께서는 잠이 드셨고, 엄마와 나는 잭과 함께 종이접기를 하며 놀았다. 

사실 요즘 우리 아이가 푹 빠져있던 장난감은 스크루드라이버들이었는데, 날카롭게 위험해 보인다며 우리가 모르는 사이 엄마가 죄다 박스에 담아서 어디론가 숨겨버리셨다.  

드라이버가 없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드라이버를 찾고 화를 내던 잭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셔서 그런가, 드라이버를 찾지 않고 다른 놀잇감을 가지고도 즐겁게 놀았다.  장난감 통에 남겨져 있던 (아마 엄마가 놓치고 챙기시지 못한) 드라이버 하나가 있었는데, 아쉬운대로 그거 하나만 갖고도 즐겁게 놀기도 했다.   

그 덕에 저녁에는 큰언니가 한국에서 보내준 색종이로 엄마와 함께 종이접기를 해보는데, 처음에는 관심도 없던 잭이 자기도 종이 하나를 들어 이리 저리 구겨보기도 하며 관심을 보였다.

그런 잭을 위해 엄마는 바지 저고리를 접어주셨다. 나는 어린시절 그리 많이 접었던 종이접기가 하나도 기억나질 않는데, 이런 이쁜 바지저고리를 접어주신 엄마가 대단해보였다. 

“엄마, 어떻게 이걸 접을 줄 알아요?”
“학교 다닐 때 엄청 많이 접었으니까~”
“나도 어릴 떄 학도 엄청 많이 접고, 다른 것도 꽤 접은 거 같은데,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데, 엄마는 이걸 다 기억하고.. 대단해요.”
“엄마도 학도 많이 접었는데, 학은 기억이 안 나네.  바지도 아랫부분이 기억이 안 났는데, 이 끝을 확 잡아당겼더니 바지가 됐어. 하하.”

하며 웃으셨다. 

그리고 나는 우리 집에서의 엄마의 첫 작품, 바지 저고리 기념사진을 한장 찍었다.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 


글이 너무 길어졌다.  

부모님과 함께 한 이틀간의 즐거움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즐거웠던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치고, 다음 편에서는 ‘불편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불편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니 마음이 벌써 불편하지만.. 그래도 그 이야기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으니, 다음편은 불편함에 대해 적어보기로 하며 이번 글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