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2017-20

[친정부모님과의 동거] 5-6일차: 아버지의 집 수리

옥포동 몽실언니 2019. 7. 25. 17:33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어느새 부모님이 오신지 열흘이 지났다.  초반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잭이 깨기 전까지의 시간을 이용하여 블로그를 썼는데 그것도 며칠 하다 보니 나도 피곤하고, 그렇다고 낮 시간에는 따로 개인 시간이 나지를 않다 보니 며칠간은 글 쓸 시간도 없이 지나갔다. 

부모님과 함께 한 시간을 잘 기록해두고 싶었는데, 이렇게 흐지부지되는 게 싫어 지나간 시간에 대해 뒤늦게나마 적어보려 한다. 

7월 20일 토요일, 친정 부모님과 함께 한 5일째 되던 날..

오전에 회사에 일 하러 가야 하는 남편을 설득하여 집 근처 가든센터를 방문했다.  틴틴의 팀에 급한 일이 생겨서 전날도, 전전날도 야근 아닌 야근을 하였는데 (6시-6시 반 퇴근이니 야근이라 치기에는 퇴근시간이 빠르지만 그래도 야근은 야근이다) 그럼에도 일이 다 해결되지 않아서 토요일 오전에 틴틴이 일을 좀 해두겠다고 매니저에게 말을 해두는 바람에 토요일 오전에 회사에 가서 일을 좀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 전날, 부모님께서 나의 운전이 불안하여 내가 모는 차를 타시기 꺼려하셨던 데다가, 집 근처 가든센터는 차로 15분 거리이지만 그 거리 중에 고속주행을 해야 하는 시골길 구간이 포함되어 있어서 (구불구불한 시골길 도로인데 제한 속도가 60마일, 즉 시속 96킬로) 나는 운전하기 겁이 나니 틴틴에게 운전해서 함께 잠시 다녀오자고 했다.  점심 시간 전에 와서 오전에 일을 시작하기만 하면 되지 않겠냐고 했더니 틴틴도 동의했다.  마침 틴틴 회사 책상에 둘 새로운 식물화분 하나를 구입하고자 했던터라 우리는 다같이 서둘러 채비한 후 집 근처 Notcutts Garden Centre로 향했다.

자연을 좋아하시는 부모님은 역사나 가든센터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셨다.  우리가 가든센터를 천천히 둘러보며 틴틴의 화분을 고르는 동안 아버지께서는 혼자서 가든센터 곳곳을 누비며 화초와 나무, 화분, 가든용 여러 자재 등을 구경하고 오셨다. 


가든센터에는 조그맣게 아이들 장난감을 파는 코너도 있는데, 거기서 잭을 위한 스쿠터를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선물로 사주셨다. 

배가 고파진 잭을 위해 가든센터 카페에서 다같이 차 한잔에 디저트를 즐기고 (틴틴은 잉글리쉬 브렉퍼스트) 쇼핑한 것들의 계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아버지께서는 현관 윗쪽 지붕을 받치고 있는 나무가 상한 것이 집 입구의 외관을 해친다며 거기에 새로운 합판을 대어서 지저분한 부분을 가리는 게 어떠냐 하셨다.  우리는 그 작업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데, 그래도 아버지께서 뭔가를 해주시겠다는데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그렇게 하자고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이번에는 틴틴이 회사에 나가서 일하는 중이다 보니 아버지는 선택의 여지 없이 내가 모는 차를 타야만 자재를 사러 갈 수 있었다.  얼른 작업을 시작하시고 싶은 아버지의 급한 성미 탓에 아버지께서는 결국 약간의 긴장과 함께 내가 운전하는 차에 탑승하셨다. 

“부드럽게 잘 하네. 김서방보다 낫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그리고 내 운전에 대한 기대치가 워낙 낮으셨기 때문일까, 나보다 더 부드럽고 안전하게 운전하는 틴틴보다도 내 운전이 낫다고 칭찬하셨다. 

토요일 오후, 아버지께서는 온종일 집 앞 현관에 합판을 대는 작업을 하셨고, 그 덕에 지저분했던 현관 아래 나무가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하얀색으로 칠해진 현관 나무에 누런 합판을 대어 놓은 게 당장은 이상해보였지만, 아버지께서는 페인트 칠 하면 문제없다고 하며 자신하셨다.  


7월 21일 일요일, 부모님과 함께 한 6일차.

이 날은 어제 설치한 새로운 합판과 현관 위 나무 전체에 페인트를 칠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잭까지 동반하여 아버지와 틴틴, 나, 잭 넷이서 쇼핑을 갔다.  영국에서 각 DIY용 자재를 판매하는 B&Q에 가서 페인트와 페인트를 바를 붓 등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페인트 뚜껑을 여는 순간,

“몽실아, 이거 하얀색이 아니네!!”

흰 색 페인트를 산다고 샀는데, 페인트를 사 본 적이 없던 나는 페인트 박스 앞에 off white 라고 적힌 색상 명칭만 보고 이게 흰색인 줄 알고 집어왔더니, 살짝 노란빛이 도는, 한국으로 치면 아이보리 색 같은 느낌이다.  이런.. 

아버지께서는 일단 이거라도 발라보자 하시며 붓을 들고 칠을 시작하셨다.  

현관문도 흰색, 현관옆 창틀도 흰색인데, 현관 위의 안쪽 나무에 크림색을 바르니 아주 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이쁘지도 않았다.  

“괜찮아요.  지붕 아랫쪽이라 그늘이 져서 색이 다른 게 그렇게 티가 나지도 않네요.  깨끗하게 칠 해 두니 확실히 더 나은걸요?!”

그래도 수고하신 아버지를 위해 좋게 좋게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흰색 페인트를 사러 다시 상점에 가자고 하셨지만 일요일은 상점들이 모두 일찍 문을 닫는 탓에 이미 시간이 늦어서 제대로 된 흰색 페인트는 다음날 사기로 하고 이날 작업은 그렇게 끝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이틀간 아버지께서 온갖 집안일을 하신 일정이 일정의 대부분이다.  

그리고, 주말 이틀간 저녁식사 후 나와 틴틴이 잭을 돌보고 엄마 아버지께서는 두 분이서 동네 산책을 나가셨다.  한번 나가셨다 하면 한시간 반, 두시간을 걷고 돌아오셨다. 

엄마는 영국을 몇번이나 오셨지만 아버지께서는 이번 영국행이 첫 영국 여행이셨다.  미국 사는 동생네에는 부모님 두분이서 자주 놀러가셨는데, 아버지께서는 영국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으셨다.  아마 아주 오래전 유럽 여행 (영국제외)을 하시며 유럽은 이미 볼 데로 봤다고 생각하셔서 그러셨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집이 오셔서 이렇게 일주일을 지내시더니 영국 생활에 의외로 아주 만족하고 계신다.  난 사실 아버지께서 오시면 그 누구보다 이 곳 생활을 좋아하실 거라 알고 있었기에 아버지의 그런 반응이 놀랍지 않았다.  영국은 주변 선택하기도 좋고 집 밖에 걸어서 나가 이리 저리 둘러보기도 좋으니, 그런 걸 좋아하시는 아버지께는 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관 열쇠 여유분을 아버지께 드렸고, 아버지께서는 집 열쇠를 갖고 아버지 마음대로 산책을 즐기시며 이곳 생활을 즐기고 계신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날짜를 8월 4일에서 8월 27일로, 장작 3주나 연기하셨다!

양일간의 주말이 지나고, 지난 월요일.  부모님이 오신 후 잭이 어린이집을 가는 첫 날이다.  처음으로 잭 없이 부모님과 나만의 시간이 생겼다.  이 날은 부모님을 모시고 옥스퍼드를 다녀왔는데, 옥스퍼드로 나서기 전 엄마 아버지는 드디어 일주일만에 작은 (?) 부부싸움을 하셨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싸움이 있었냐는 듯이 옥스퍼드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셨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