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2017-20

[육아일기] 우는 아이를 뒤로 하고 하루종일 불편한 마음..

옥포동 몽실언니 2019. 8. 14. 21:49
지난주부터인가, 아이가 다시 어린이집을 정말 정말 가기 싫어했다.  지난달에는 주2회로 월요일과 화요일을 갔고, 이달은 화요일, 수요일, 금요일, 이렇게 주3회를 가고 있다.  그리고 이번달이 현재 다니는 어린이집에 가는 것은 마지막이다. 

지난 6월 주4회를 나갈 때는 아이가 그럭저럭 적응하여 자연스러운 일과처럼 받아들이는 듯하더니, 7월이 되고 주2회로 줄어들자 다시금 어린이집을 정말 가기 싫어했다.  그러다 7월 중순 부모님이 오시고, 지난주에는 나의 1박2일 런던 출장으로 어린이집을 더 빠지고 엄마와도 떨어지는 시간을 가지면서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기 싫어하는 마음이 더욱 강해졌다.

매일 가는 것도 아닌데, 어쩌면 매일 가는 게 아니라서, 아침마다 전쟁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아이가 가기 싫다고 떼를 쓰고 울어대면 내 마음도 찢어진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또 하고,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결국 잘 놀거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막상 아이의 눈물과 울음을 눈앞에서 보게 되면 도대체 내가 뭘 하자고 이렇게 가기 싫어하는 애를 어린이집에 한사코 보내는 것인지, 내가 엄마가 맞기는 맞는 것인지, 스스로의 결심과 마음이 너무 쉽게 무너져내려버린다.

그리고 그 무너진 마음이 하루종일 나를 괴롭힌다.

오늘은 집에서 옷을 입을 때부터 울어대기 시작했고, 차에 타서도 너무 울어대서 남편을 함께 태우고 남편 회사까지 함께 갔다. 남편이 회사앞에서 내리자 아이는 또다시 엄청난 울음을 터뜨렸고, 어린이집에 도착해서는 당연히 또 울어댔다.어린이집 교실 앞에 도착해서는 더 세차게 울어댔고, 내 몸을 꽉 안고는 절대 떨어지지 않으려했다.

오늘따라 한국의 장맛비가 영국에 오기라도 한 것처럼 세찬 비가 차 창을 내리때렸는데, 이 비 때문인가, 아이의 울음때문인가, 이 모두가 합해져서인가, 유독 내 마음도 더욱 아팠다.  임신 때문에 호르몬 영향으로 내 감정이 더욱 요동치는 것도 있을테다. 

평소 같았으면 집에 와서 한바탕 울어댔을 것 같은데, 내 우울한 기분을 걱정하는 엄마가 눈 앞에 있으니 엄마 앞에서 티를 내기도 힘들다.  그런데 엄마는 내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면서도 그러는 것인지,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그러시는 것인지, 갈아지지도 않을 사과를 핸드블랜더로 세차게 갈아대시니, 입맛도 없는데도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그냥 물릴 수가 없어서 꾸역꾸역 밥을 입안으로 쑤셔놓고 있는 중에 블랜더에서 나오는 시끄러운 소음에 내 마음은 더욱 격해졌다.  소리가 세면 셀수록 눈물이 터질 것만 같은데, 내가 그랬다가는 엄마가 괜히 곤란해하실까봐 그럴 수도 없어서 눈물을 겨우 참으며 마른 밥을 삼켰다.

‘엄마, 나중에 좀 하세요!’

라고 소리치고 싶었는데, 내 그 말에도 엄마가 상처받으실까봐 속으로만 외치고 말로 하지는 못했다. 나는 왜 이렇게 늘 속으로만 애 태우며 이 생각 저 생각 하며 나 혼자 앓는 것일까.. 그나마 내가 이런 내 속을 가장 가감없이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나의 틴틴인데, 그 틴틴은 회사에 있고, 틴틴에게 전화하자니 아침 회의 시간이라 그럴 수도 없다.  

이렇게 온갖 생각과 배려하는 마음.. 어쩌면 눈치보는 마음일 그 마음으로 속앓이가 많은 내가 그나마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나의 배우자라니, 그것 하나는 참 감사한 일이다는 생각을 하며, 속으로 틴틴을 그리워하며 밥을 겨우 다 먹었다. 

배가 고파서 먹은 것도 아니요, 밥이 맛있어서 먹은 것도 아니었다.  밥을 남기면 왜 남겼냐, 더 먹어라, 홀몸도 아닌데 더 먹어야 하지 않겠냐 등등 그에 따라올 온갖 잔소리가 듣기 싫어 밥을 다 먹는 편을 택했다. 

오늘은 원래 하루 종일 일을 했어야 하는 날인데, 이렇게 아침부터 심란하니 계획대로 일을 하긴 글렀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마음이 이리 심란하면 내 일도 잘 하지 못한다. 

***
지난주, 런던 출장길에 오랫만에 팟캐스트를 들었다.  

영국 BBC Radio 4 채널에 Woman’s Hour 라는 프로그램을 들었다.  

십여년전 영어공부를 위해 영국 라디오방송을 열심히 듣던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하던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여성들에 대한 여러 주제를 다루고, 여성들을 인터뷰하는 내용도 많은, 여성주의 방송이라 할 수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아동성폭력에 대한 실상을 다루는 등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이슈들을 다루기도 하고, 일반적인 교육, 문화 등의 주제를 다루기도 한다.  유명한 여성 작가나 여성 아티스트들이 나와서 자신들의 커리어와 관련된 인터뷰를 하기도 한다.  영어 공부를 할 때, 여자는 여자의 영어를 듣고 연습하고, 남자는 남자의 영어를 듣고 연습하는 게 가장 좋다고 해서 듣기 시작한 방송이었는데, 영어는 물론이거니와 다루는 주제들과 초대되는 여성게스트들도 좋고, 그들과의 인터뷰 방식도 워낙 좋아서 자주 듣던 방송이었다.

이번 출장길에 그 방송을 들은 것은 오랫만에 영어를 좀 되새김질 하기 위해 영어 워밍업을 위한 것이었다.  가장 최근의 방송을 틀었더니, 한 여성 인터뷰이가 나왔다.  이 분은 Dame Victoria Sharp 라는 분으로 여성으로는 최초로 영국 대법원장에 오른 분으로, 현재 시니어 법관들 중 유일한 여성이라 소개되었다. 

이 분에게 진행자가 물었다.  당신이 이런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어떤 것 덕분이었던 것 같냐고.  그 때 그 분의 대답이 참 인상적이었다.

“Very supportive family”

자신의 가족들이 아주 지지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는 것이 그 분의 첫번째 대답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대답도 아주 기억에 남았다.

“Less sleep and no social life”

잠도 적게 자고, 사교생활은 아예 갖지 않는 것. 

그 대답을 하자 진행자가 “오 제발, 그런 말만은!” 이라 하였으나, 어쨌든 그 분은 사실은 사실이라며, 모든 직업이 바쁘지만 판사들도 매우 바쁘고, 정해진 기한 안에 끝내야 하는 일들을 맞춰야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희생하는 것이 생긴다고.  그 희생은 바로 자신의 잠을 줄이고, 사교생활을 단절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나마 자신이 여성임에도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지지적인 가족 덕분이었으며, 자신 또한 아이들과 있을 때는 자신의 일에 대해 절대 생각하지 않고,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아이들을 돌보지 않고 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지 않으려고 했다고 한다.

그 발언을 듣자 마자 나는 속으로 ‘그게 그리 쉽나, 나는 그게 정말 너무 안 되는데..’ 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때 바로 그 분의 다음 발언이 이어졌다. 

“나는 그렇게 하긴 했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지는 않지요.”

참.. 판사다운 공정한 발언이었다.  이 분은 타고난 판사구나..  어쩌면 ‘판사’로서의 삶이 인간으로서의 이 분을 이미 온전히 형성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나는 그 분처럼 일할 때는 일만 하고, 애 볼 때는 애만 보는, 그 둘의 분리가 그리 쉽지가 않다.  아니, 아주 아주 어렵다.  너무 어렵다.

이 긴 이야기는 내가 오늘 오랫만의 나 만의 시간으로 밀린 일을 잔뜩 진행했어야 하는 일정과 계획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일은 시작조차 하지 못한 (안 한) 것에 대한 변명이라면 변명이다. 

이럴 때는 차라리 내가 어느 직장에 고정적으로 출근해서 내게 주어진 행정업무를 정해진 메뉴얼에 따라 처리하는 일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실제로 내 직업이 그런 일이라면.. 늘 그 일이 재미없고 하기 싫다며 불평하고 다녔을 것임에는 틀림없다 ㅠㅠ 아.. 나라는 사람은 왜 이럴까.. 그리고 나의 인생이여 ㅠㅠ)

이렇게라도 내 마음을 모두 풀어내고 나니 이제야 좀 숨을 쉬겠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1시 반.  어제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설사를 한번 하고, 오늘 아침에도 집에서 설사같은 물똥을 쌌는데.. 아이는 잘 놀고 있을지 벌써 걱정된다.  지난주 한주간 어린이집을 안 가면서 정말 오랫만에 아이 콧물이 멈췄는데, 어제 다시 어린이집을 가기 무섭게 밤부터 기침을 다시 시작했다.  오늘은 또 어떤 병을 옮아올까.. ㅠㅠ 어린이집을 안 보낼 수도 없는데, 보내면 보내는데로 이렇게 걱정이고 또 부담이다. ㅠ

남은 두어시간이라도 밀린 일들을 좀 해야겠다.

그래야 오후에 더 가벼운 마음으로 우리 잭과 더 즐겁게 놀 수 있을테니.

***

아이야, 너에게만 온 시간을 집중할 수 없는 엄마여서 미안해.  무엇을 위해 엄마가 이리 해야 하는지는 엄마도 잘 모르겠어.  아니, 엄마도 엄마의 일이 너무너무 하고 싶어.  그래서 그래.  너보다 엄마 일이 더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엄마는 너도 중요하지만 엄마 일도 중요하다고밖에 말 할 수가 없어. ㅠㅠ 아직은 그래.. ㅠㅠ 너를 사랑하는 마음과, 엄마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은 서로 다른 차원의 마음이라 비교할 수가 없어.  

쉽지 않겠지만 잘 맞춰나가보자.  엄마도 너무 엄마 욕심만 채우지 않을게.  어린 너에게 양보해달라 하기는 미안하지만, 이게 너의 현실이니 어쩌겠니.. 힘들겠지만 너도 적응해나가리라 믿어.

사랑해.  고마워.  곧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