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2017-20

[육아일기] 영국의 가족주치의 제도의 장점

옥포동 몽실언니 2019. 8. 30. 19:46
영국의 의료시스템은 한국과 다르다.  한국은 의료보험제도로 대부분이 민간의료로 이루어져있고, 각자의 필요에 따라 1차 의료진료를 받을 수 있지만, 일부 민간의료시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공공의료서비스로 이루어져있다.  그런만큼 의료서비스 이용에 대한 원칙이 철저히 지켜진다. 

일단, 1차 의료진료는 본인이 등록되어 있는 동네 의원에서 본인이 등록된 의사 (GP) 에게 진료를 받는다.  물론 응급한 상황에는 다른 의사를 볼 수도 있고, 등록되지 않은 병원이라 해도 진료를 거부하지는 않지만 그런 상황은 아주 예외적이다.  

본인의 담당 GP는 한국으로 치자면 ‘가정의학’ 전문의라고나 할까.  다른 전문의가 되기 위한 과정보다는 약 2년 정도 교육기간이 짧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동네마다 있는 의원에 소속되어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거주민들의 전담 주치의가 된다.  가족이 있는 경우 가족 모두가 한 의사에게 속하게 되며, 그 의사가 가족 전체의 전담 주치의가 되는 방식이다. 

상위등급 의료서비스 (3차 의료 서비스 등 전문의 서비스) 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본인 GP가 상위 등급 의료서비스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전원 신청을 해줘야만 가능하다. 

우리 잭은 태어나면서부터 눈 감염, 황달, 그 뒤로는 끊이지 않는 감기과 잦은 중이염 등으로 병원을 찾을 일이 자주 있었다.  그러다 보니 태어난지 2년도 안 된 기간에 어느새 우리 GP선생님만 얼마나 자주 봤는지 모르겠다.  

지난 며칠간 우리 잭이 또다시 많이 아팠다.  아이가 밤이면 밤마다 심하게 울어댔는데, 한번의 울음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간헐적이지만 자주 심한 울음이 꽤 긴시간 지속되었다.  며칠 전에는 애가 어디 크게 잘못된 건 아닌가 싶어 나도 틴틴도 너무 놀라 한밤중에 방 불을 환히 켜고 아이를 흔들어 깨웠다.  그런데도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하게 울었다.  그리고 그 울음은 삼십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어루고 달래니 겨우 달래지긴 했는데, 그렇게 한밤중에 깨서 한두시간 놀다 자기를 벌써 며칠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저께는 오후부터 아이의 ‘진상’ 짓이 피크에 달했다.  컨디션이 안 좋을때마다 아이가 얼마나 보채고 짜증을 내고 말을 안 듣는지..  그야말로 “악동”으로 변신한다.  아파서 저러겠거니 싶어 안타까우면서도 막상 아이의 온갖 악동짓을 감당하다 보면 화가 목 끝까지 치솟는다.  그럴 때는 아이를 돌보는 일보다 그 화를 참는 게 더 힘든 일이 된다. 

그 날은 보니 아이가 열까지 나고 있었다.  우린 그 때에야 이건 뭔가 정말 이상하다는 생각에 당장 병원을 예약했고, 바로 어제 그렇게 예약한 의사선생님을 만나고 왔다. 

병원에 가니 선생님은 아이 체온을 재었다.  

“38도.  열이 있네요.”

그리고 아이 귀를 체크하고, 입을 벌려 목상태를 체크하고, 청진기로 폐 소리를 확인했다.  

지난번까지만 해도 선생님이 체온을 잴 때부터 싫어하기 시작해서, 귀를 체크하거나 입 안을 체크하는 것에 아주 심하게 반항을 했었는데, 이제는 이것도 여러번 해서 그런가 아이가 아주 협조적이었다.
 
“아~ 해보세요.”

하니 애가 “아~” 하고 입을 벌리기까지 한 건 이번이 정말 처음이었던 것. 

“오, 잘 했어요.  잘 했어요.”

선생님도 칭찬했다. 

“잭이 콧물도 나 있고, 눈곱도 껴 있고, 기침도 한다 하니 바이러스성 감염같아요.  우는 건 아마 기침하다 보니 목이 아파서 그럴 수도 있겠어요.   폐 소리도 깨끗하고, 목도 부은 건 안 보이고, 귀도 귓밥만 있지 중이염은 없어 보이네요.  계속해서 파라세트몰이나 이부프로펜 같은 진통제 줘서 아이 열을 내리게 해주세요.”

역시.. 이 나라에서는 어지간하면 항상 '바이러스 감염’이고, 무조건 시중 진통제를 먹이며 지켜보라는 게 전부이다.  그게 정답일 수는 있지만 매번 같은 소리만 듣고 돌아오니 힘이 빠질 때가 있다. 

진료실을 나서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한가지를 더 물었다. 

“아이 결막염은 우측 눈의 경우는 한달이 넘게 지속되었는데, 그냥 둬도 될까요?”

사실 한달 넘게 전부터 아이 오른쪽 눈에 눈곱이 심하게 끼면서 눈감염 (결막염) 증세가 있었는데, 저절로 나아질 수도 있다고 해서 며칠 지켜보다 보니 좀 괜찮아지는 듯해서 넘어갔으나 그게 싹 사라지지 않고 조금씩 남아있었다.  그러던 것이 며칠 전부터는 무슨 일인지 양눈으로 번져서 아침마다 아이 눈에 누런 고름색의 풀을 발라둔 것 같았다.  결막염으로 인해 이렇게 아파할 수 있나 인터넷을 찾아보기도 하고, 밤마다 아이 기침이 심했는데, 기침때문에 우는 것인지, 도통 아이가 밤마다 왜 그리 울어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 잭은 태어나면서부터 눈에 감염을 안고 태어났다.  눈에 누런 고름같은 눈곱이 껴서 눈을 잘 뜨지를 못했다.  처음에는 오른쪽 눈만 그렇더니 이게 왼쪽눈까지 번졌다.  의사선생님의 말에 따라 끓인 후 식힌 물로 닦아도 줘보고, 모유로 닦아도 줘봐도 저절로 낫지를 않아서 결국 안약을 일주일 가량 넣었다.  그리고도 다 낫지 않아서 생후 6주 정도까지는 이것때문에 고생을 했던 것 같다.  매번 아이 눈 닦일 물을 끓이고 식히는 것이 생각보다 고되고 귀찮은 일이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최근 다시 감염이 일어난 곳도 오른쪽 눈이다.  오른쪽 눈이 감염에 좀 더 취약한 상태인가보다.   

“아, 전에 눈 감염 되었다고 다녀간 후 눈이 계속 그랬어요?  그렇다면 항생제 안약을 써야겠어요.  반드시 냉장고에 보관해두고 쓰고, 하루에 4번 정도 일주일 정도 넣으면 될 거예요.”

지난번에도 같은 안약을 처방해주셨는데, 아이 눈이 저절로 낫는 거 같아 안 썼더니 결국은 이렇게 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도 의사 선생님이 언제든 환자입장을 많이 배려해주는 것 같아 현재 선생님의 서비스에는 아주 만족한다. 

진료실을 떠나려고 하는데 선생님이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전에 아이 발 문제로 물리치료사와 발전문의 진료 신청한 것, 받아들여졌다고 연락왔으니 조만간 연락 올 거예요.  그럼 전문가들 만나서 발 문제 상의해보세요.”

아이가 오늘따라 선생님의 진료에 순순히 응한 것을 보면서도 이제 이 환경에 아이가 익숙해지나 보구나 싶었는데, 얼마전 병원에 찾아왔던 아이 발 문제까지 선생님이 기억하고 (아마도 우리가 들어오기 전에 차트 기록으로 체크를 한 것일수도) 이야기를 해 주시니, 한 선생님이 계속해서 모든 진료를 봐준다는 것이 안정감도 있고 지속성도 있어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아이 발 때문에 병원에 왔을 때는 최근 갑자기 시작된 나의 알러지 증상 때문이었는데, 선생님은 나를 보고는 둘째 임신으로 인한 정기검진이나 임신과 관련하여 찾아온 것이냐고 먼저 물으셨다.  그 때도 나는 순간 깜짝 놀랐다.  다 기억하고 있다니!  (이 또한 우리가 들어오기 전에 차트를 확인하며 체크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ㅋㅋ)

집에 돌아와서 틴틴에게 말했다.

“계속 진통제 주래.  안약은 하루 4번 일주일 간 투약.  그리고, 잭 발 전원신청 해주신 거 잘 받아들여졌다고 조만간 연락 올 거라 하네."

“오늘 병원 다녀오면서 든 생각이, 이렇게 한 선생님이 계속해서 가족 전체를 진료하니까, 이게 참 좋다는 생각이 오늘 처음으로 들었어.”

“어떤 점 때문에?”

“생각해봐.  우리야 그렇다쳐도 잭이 어릴 때부터 계속해서 이 선생님한테 진료를 받으니, 선생님도 잭이 커가면서 겪는 것들을 다 보시게 되고, 우리도 한 선생님이 잭을 계속 알아가면서 진료를 해 나가니 안정감 있고 믿음이 가잖아.  선생님에게도 어린 아이들 자라는 거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 같고.”

“응, 그럴 수도 있겠네.”

사실 틴틴은 그렇게 깊게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10여년간 영국에 살면서 열심히 엄청난 보험금과 세금을 내면서 살았지만 병원을 이용한 것이라고는 작년 육아로 힘들 때 간수치가 심하게 올라가면서가 전부였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아이로 인해 병원을 가는 게 전부이기 때문에 영국의 의료서비스에 대해 그렇게 많이 경험할 일도 없었고, 그리 심각하게 생각해볼 일도 없었을 것이다. 

영국 의료시스템의 가족주치의제도는 나도 아이를 갖기 전까지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병원 갈 때마다 보는 의사 선생님이 같으니 서로 좀 친숙해지고, 의사 선생님이 나의 병력에 대해 좀 더 잘 아는 게 편한 느낌.  그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나니 가족주치의제도가 아이에게는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현재 의사선생님의 서비스에 만족스럽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본인이 신청해서 다른 선생님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가족주치의제도는 편리한 부분이 있지만, 사실 영국 의료시스템 자체가 아주 이상적인 제도는 아니다.   제도가 사회보험료와 세금으로 운영되다 보니 모든 사람이 경제력에 관계 없이 동일한 서비스를 받고, 돈이 없어도 모든 치료와 처치가 무상으로 제공된다는 점은 참 좋다.  그러나 그런 만큼 문제도 많고 부작용도 많다.  본인이 원한다고 해서 전문의를 무조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뭔가 피검사 외의 검사를 받으려면 대기기간이 상당히 오래 걸린다.  한국 같으면 환자가 언제든 찾아가서 초음파며, 엑스레이며, CT 촬영까지 쉽게 받을 수 있는데 - 한국은 이게 또 너무 쉬워서 문제 ㅠㅠ - 여기서는 생명에 위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런 검사를 받기 위해서는 최소 한달에서 6주 이상 기다려야 한다.  

여러 문제와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어제는 병원에 다녀오면서 새삼 영국의 가족주치의제도의 장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날이었다.  

아이가 커가는 동안 우리 GP선생님이 자리를 옮기지 않고 우리 아이의 성장을 함께 지켜봐주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진료 후 약을 받으러 약국으로 가서 찍은 사진.  한시간 전에 깨끗이 세수한 얼굴인데, 어느새 눈 주의가 엉망이다.  그리고 요즘따라 왜 그리 침을 질질 흘리는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