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이가 베키네로 가는 두번째 주.
오늘도 아침부터 옷 갈아입기 싫다고 떼를 쓰는 아이를 겨우 달래가며 옷을 입히고, 양말은 결국 신기지 못한 채로 가방에 양말만 싸 넣어서 베키네로 보냈다.
이번달은 내가 급히 데드라인을 맞춰 일을 해야 하므로 아침에 데려다 주는 것은 남편이 하기로 하고, 오후 픽업만 내가 하기로 했다.
남편 틴틴은 오후에는 무조건 칼퇴근을 해야 하다 보니 최근 들어서는 출근을 30분이나 1시간 일찍 해서 여유롭게 회사 일을 보곤 했는데, 이번달은 무조건 9시를 좀 넘은 시간에 출근할 수 있게 되었다. 출근을 조금이라도 일찍 하면 어떤 날은 조금 일찍 퇴근하기도 하고 여유롭게 일과를 보내는데, 이렇게 매일 타이트하게 출근을 하게 되어 틴틴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다.
그러나 이 달은 나도 풀타임 못지않게 일을 해야 하므로 틴틴이 내게 양보를 해야 할 때도 있는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내가 뭔 대단한 일을 한다고 이렇게 틴틴 일과를 힘들게 하면서까지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올라오는 건 나의 낮은 자존감 때문인 것일까. ㅠㅠ 그런 생각이 스믈스믈 올라오지만 그런 생각은 하지 않기로 하고, 이 달에는 나도 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기로 해본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오늘은 틴틴이 혼자서 잭을 베키네로 데려다주는 첫 날. 지난 넉달간 어린이집을 다니던 중에는 내가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 아침 운전을 하기 힘들었던 하루 이틀 정도를 빼고는 모두 내가 아이를 데려다 주고, 내가 픽업을 했었다. 그러다 틴틴이 혼자서 데려다주는 날에는 아이가 유독 더 울면서 어린이집을 가지 않으려 한 전적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를 틴틴에게만 맡겨 보내면서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아이를 차에 태울 때부터 이미!
“잭, 베키 아줌마 집에서 잘 놀고 와~ 이따 엄마가 오후에 데리러 갈게!”
남편이 매어준 아이 카시트를 좀 더 단단히 조여준 후, 아이 이마에 뽀뽀를 하며 아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차 문을 닫고 돌아설 때 아이가 징징거리는 소리가 살짝 들리는 듯 하였지만, 그 소리를 더 들어봐야 내 정신건강에 좋을 게 없기에 얼른 뒤돌아 현관을 닫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가 가는 모습을 거실 창에서라도 보고 싶었지만, 괜히 아이랑 눈이라도 마주쳐서 아이가 더 울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 거실 커튼도 꽁꽁 닫아버렸다.
그리고 한 15분이 흘렀을 때 틴틴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 진동 소리에 가슴이 철렁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아이를 보내놓고 틴틴에게 연락이 오기까지, 그 시간 동안 나는 집에 있으면서도 내내 긴장을 놓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몽실, 잭 방금 잘 들어갔어. 9시에 딱 도착했는데, 그때는 베키집에 아무도 없어서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으니까 베키가 유모차에 아이 둘 태우고 집에 돌아오고 있었어. 그런데, 베키가 와서 집 현관을 탁 열자마자 잭이 제 발로 성큼성큼 그 집 안으로 들어갔어.”
“뭐라고? 정말? 제 발로 그냥 걸어들어가?”
“응, 그러니까. 나도 정말 놀랐어. 그냥 바로 걸어들어가버리더라고. 그래서 내가 '선우야, 신발 (벗어야지)' 했더니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서 신발을 벗어. 그거 보고 베키가 ‘Good boy!’ 하면서 칭찬해주는 거 보고 나는 나왔어."
“와.. 그랬구나. 어린이집을 그렇게 다니면서도 한번도 그렇게 제 발로 걸어들어간 적이 없는데. 잭이 그래도 베키네 가는 게 괜찮은가보다. 너무 다행이다. 수고했어요, 아침부터..”
겨우 적응하는가 싶던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빼내어 인근 차일드마인더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지난주 본격적으로 차일드마인더인 베키네에 가기 시작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갈등하고 고민했던가를 생각해보면 정말 뭐든 사람일이라는 게 실제로 벌어지기 전에는 모를 일인가보다.
겨우 적응한 아이를 낯선 환경으로 다시 내 몰아서 아이를 힘들게 하면 어쩌나, 어린이집은 공간도 넓은데 좁은 베키네 집에서 아이가 하루종일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까, 어린이집에서 레이첼 선생님과 그렇게 좋은 관계를 형성했는데 아이가 베키와 좋은 관계를 잘 형성할 수 있을까, 베키가 레이첼처럼 따뜻하게 잭을 안아주는 사람일까.. 혼자서 수 많은 걱정을 만들어내고 답을 알 수 없는 온갖 여러 시나리오를 펼치며 괴로워했던 나였건만. 아이는 베키네로 옮긴지 단 일주일만에 어느새 자신의 바뀐 현실을 수용 (?) 하고 의젓하게 제 발로 베키네를 걸어들어가다니..
지난 주에 그런 생각이 들어 틴틴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가만보면 내가 유독 아이에 대해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걱정하고 불안해하는데, 아이의 지난 날들을 돌이켜생각해보니 그럴 이유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우리가 집에서 아이에게 집중하며 정성스레 보살펴주고 있고, 그런만큼 이 아이가 건강하고 (감기를 달고 살긴 하지만 ㅠ) 밝고 강한 아이로 자라고 있다. 우리가 집에서 이 아이에게 심어주고 이 아이가 키워내고 있는 그 안의 강한 힘이 있는데, 그 힘으로 이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든, 어떤 자리에서는 스스로 잘 해 낼 수 있는 힘이 있을텐데 내가 그걸 하나부터 열까지 불안해하고 걱정한다는 것은 오히려 이 아이에게 미안한 일인 것 같다는.
나의 아버지가 당신의 자식들을 말로는 ‘나는 항상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말과 행동에서는 늘 자식들에 대한 불안을 갖고 계신 것이 불만이었는데, 내가 바로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는 것 같아 순간 낯이 뜨거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따.
우리가 이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면서 이 아이 안에 형성되고 있는 그 힘, 내면의 그 힘을 믿는다면 그렇게 걱정할 일이 없을텐데, 내가 쓸데없는 나의 걱정으로, 내 안의 불안으로 인해 아이에게 불안함을 키워내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아이가 오늘 제 발로 성큼 성큼 베키네에 들어갔다고 해서 내일도, 모레도 그렇게 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지난주도 며칠을 즐겁게 놀고 오더니 금요일에는 아이가 기분이 안 좋고 하루종일 보채며 베키에게 많이 안겼다고 했다. 그러나, 매일 한걸음씩을 나아가지는 않더라도 지지부지하게 나아가는 듯 마는 듯, 어느 날은 뒷걸음질을 몇걸음 치는 듯하다가도 시간이 흘러 뒤돌아보면 두어걸음이라도 나아가있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 생각한다.
며칠만에 아이가 이렇게 베키네에 제발로 걸어들어갔다는 것이 너무 대견하고, 엄마가 그간 걱정한 것을 알기라도 한 듯이 엄마의 걱정을 다시 한번 모두 씻어준 것에 또 감사하다. 앞으로도 불안해하지 않고 아이 안에 아이가 갖고 있는 그 강한 힘을 믿도록 스스로를 다잡으며, 어서 나는 내 일과로 들어가야겠다. 할일이 산더미다. ㅠ
아래 사진은 지난주 목요일 베키가 보내준 아이 노는 모습 사진. 우리집 빨래통과 비슷한 통인데, 이런 통을 갖고도 재미있는 놀잇감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한수 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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