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2017-20

두살 아들에게 영혼이 탈탈 털린 날

옥포동 몽실언니 2019. 11. 21. 21:01
그게 바로 어제였다.

이렇게 힘들었던 날이 그간 몇번 있기는 했지만 그리 자주 있지는 않았다.  아이가 하루종일 나를 끌고 다니고, 모든 것을 나와 함께 하려하고, 잠도 자지 않으려 하고, 겨우 잠들었다 해고 이내 깨버리고... 이런 정도는 우리에게는 그냥 일상이었다.  

‘영혼이 털리는 날’은 아이가 많이 아파서 하루종일 보채고, 영문도 모르게 계속 울고 짜증을 내고, 조금만 자기 마음대로 뭐가 되지 않아도 대성통곡을 하고, 음식도 먹으려 하지 않고, 그러면서 배는 고프니 더 짜증을 내는 이런 날들인데, 어제는 그 정도가 정말 정말 심했다.  특히, 아이가 어디가 아픈지 뚜렷하게 알기 힘든 상황에서 아이가 온갖 떼를 쓰고 울고 불고 짜증을 내고 자해(?)를 하며 나에게 보채니 정말.. 어찌할 방도를 몰라 너무 너무 힘들었다.

그 난리통은 아이가 잠에서 깨기 전부터 시작됐다.  새벽 3시가 좀 넘었을 시간, 아이가 뒤척이다 잠이 조금 깼는지 울면서 짜증을 부리며 자리에 앉아 제 두 손으로 벽을 마구 치며 울어댔다.  심한 울음소리에 옆방에서 자던 남편이 달려오기까지 했으나 혼자 그렇게 울고 불고 난리를 치더니 갑자기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이 들었다.  그리고 새벽녁에도 몇번이나 그렇게 뒤척이며 울며 잠결에도 짜증을 부렸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이 난리는 이어졌다.  아이가 오전에만 거실 벽에 붙어있는 라디에이터에 제 머리를 서너번은 갖다 박은 것 같고, 두 손으로 땅을 치며 바닥에 엎드려 대성통곡하는 일은 대여섯번쯤 된 거 같다.  화가 나서 장난감을 던지는 바람에 나에게 혼나기도 예닐곱번은 한 거 같다.  오전 중에만 말이다.  

그렇게 난리 난리를 치는데, 아이는 뭐가 마음에 안 들고 뭐가 불편한 것인지 도통 알 수도 없으니, 내 마음도 너무 답답했다.  아이의 행동이 과격해질수록 나의 인내심도 점점 바닥을 쳤다.  아이가 화가 나서 휘두르는 팔다리에 내가 맞을 때마다 아이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아이를 타이르고 혼내기를 반복하다가, 급기야 나도 울어버렸다.  내가 뭘 어떻게 해줘도 아이가 그렇게 울고 짜증을 내는데, 더이상 내가 뭘 어떻게 해줘야 하는거냐고 아이 앞에서 울음을 터뜨려버렸다. 

“니가 그러면 엄마는 어떻게 하라는 거야~” 

엄마, 아빠, 어부바, 밥, 안녕, 정도밖에 말 하지 못하는 아이를 붙들고 나도 울어버린 것이다.  눈물을 쏟으며..

내가 우는 소리에, 또 흘리는 눈물에, 울고 있던 아이가 깜짝 놀랐다.

보름뒤면 두살이 되는 아이가 갑자기 내 앞에 다가와 나를 안았다.  아이가 던진 물건이나 휘두른 팔다리에 우리 부부가 맞았을 때 아이에게 “엄마 안아주면서 ‘미안해요’ 라고 말 해~”라고 할 때 아이가 하는 동작과 같은 동작이었는데, 우리가 시켜서 사과하느라 우리를 안아줄 때보다 훨씬 따뜻했다.  게다가 자발적이었다.  

아이의 포옹에 아이를 잠시 꼬옥 안고 진정한 나는, 내친김에 한발 더 나아갔다. 

“엄마 눈물 닦아주세요.”

라고 부탁해보았다.  그랬더니 아이가 바닥에 뒹굴던 손수건 하나를 집어올려 내 왼쪽 빰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줬다.

“엄마 오른쪽 눈에 눈물도 닦아주세요.”

그랬더니 아이가 다른 쪽 눈에서 난 눈물도 닦에 줬다.

“엄마 코에 콧물도..”

아이가 내 코까지 닦아줬다. 

아주 잠시 아이의 보살핌을 받은 시간이었다.  시키는대로 잘 해주는 아이가 기특하면서도, 아이의 행동에 따뜻한 감동을 받은 시간.

그러나 이 시간도 아주 잠시.  앞서 언급한 모든 행동은 계속해서 반복됐고, 나는 이후에도 두번 정도 더 울고야 말았다.  

결국 남편에게 점심시간을 이용한 긴급구조 (?)를 요청했고, 점심 시간이 되기 무섭게 집에 도착한 남편은 아이를 돌보며 12시 20분쯤이었을까.. 나와 함께 침실로 가서 다같이 아이 낮잠을 재우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회사로 가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겠다고 이내 집을 나섰다.

나는 그제야 한숨 돌리며 씨리얼을 우유에 말아 한사발 들이켰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그런데, 숟가락을 놓기 무섭게 방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는 30분도 채 자지 않고 잠에서 깨버린 것이다.  아마 내가 옆에 있었더라면 잠에서 잠시 깼더라도 더 잤을 수도 있었을텐데, 혼자인 것을 알아서인가, 아님 뭐가 불편해서인가 아이는 잠에서 깨서 또다시 대성통곡을 시작했다.

아이를 달래어 거실로 내려와서 아이와 잠시 놀다가 아이 점심을 먹였다.  

오전 중에 망고만 먹고 밥을 먹지 않으려 했던 아이가 밥 한그릇을 뚝딱 비우더니 갑자기 착한 아이로 변신했다.

밀가루 놀이를 하겠다고 밀가루를 달라고 하여 밀가루를 잔뜩 뿌려줬더니 신이 나서 놀았다.   아래 사진은 어제 잠시 찾아온 짧디 짧았던 평화의 시간.. 

그렇게 아이와 함께 놀며 평화로운 시간이 한시간쯤 흘렀다. 

그리고.. 아이는 다시 악동으로 변신했다.  오후 4시... 4시반.. 

아이가 한창 떼를 쓰고 있는 중에 남편이 일찍 퇴근했다.  나혼자 고군분투하고 있을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아서 결국 일찍 퇴근하고야 만 것.  사실 나도 감기에, 남편도 편도선이 부어 둘 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그 와중에, 그래도 날 생각해서 남편이 일찍 와 줬다.  고마우면서도, 오늘 일찍 온 것에 대해 회사 일을 언젠가 다시 어떤 식으로 보충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그저 편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당장은 도움의 손길이 찾아오니 마음은 놓였다.

남편이 돌아온 후.. 아주 잠깐씩 평화로운 시간이 있긴 하였으나 아이의 떼는 이어졌다.  낮잠을 너무 적게 잔 탓에 피곤까지 겹쳐서 아이가 더 떼를 쓴 것 같다.  그러나 절대 자지 않겠다고 고집은 피우고, 그러면서 맘대로 안 된다고 온갖 것에서 떼를 쓰고, 이거 해보겠냐, 저거 해보겠냐 제의를 해도 다 싫다고 하고, 계속 짜증만 부리니.. 남편도 나도 정말 지쳤다.  아이는 그렇게 저녁 시간에도 몇번이나 땅을 치며 대성통곡을 하고, 라디에이터에 제 머리를 갖다 박고, 장난감을 던져서 우리에게 혼나고.. 저녁에는 결국 너무 졸려 남편 어깨를 물어버리는 통에 남편 어깨에는 피멍이 들고 남편도 화가 났다. 

그렇게 보채던 아이는 결국 저녁 8시 반이 되어 잠에 들었다.  평소보다 아주 빠른 취침시간이었다.  

그래.. 밤 잠을 그리 안 자고 낮잠도 못 잤는데.. 어린 녀석이 자기가 무슨 재간으로 더 버틸 수 있겠는가. 

아이가 잠에 들고 나자 그제야 남편과 나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는 아이를 옆에 두고 잠시 둘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어젯밤, 아이는 어디가 또 안 좋은지 밤새 기침을 했다.  지난주부터 자꾸 입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데, 입 안에 어디 염증이 난 것인지 입을 벌려 확인해보려 해도 아이가 워낙 비협조적이라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주말에는 38-39도가 넘는 열이 계속 나는 바람에 4시간마다 해열제를 먹였다.  드디어 열은 내려 월요일은 어린이집도 안 보내고 집에서 돌보았고, 화요일에는 어린이집 가서 낮잠을 세시간이나 자고 잘 놀고 돌아왔는데, 아이가 어제는 왜 그리 난리 난리를 쳤나 모르겠다.  주말에 빨갛게 부어있는 듯했던 편도선도 어제는 가라앉아 있던데..  도대체 어디가 그리 불편하고 맘에 안 든 것인지..  그리고, 밤이 되니 또 왜 갑자기 그렇게 기침은 하는 것인지.. ㅠㅠ 아이를 따뜻하게 재우느라 내가 구석으로 밀려서 잠을 자다 보니 나는 우풍 드는 벽에 바로 붙어 자게 되면서 코도 막히고 목은 더 아파졌다.  나는 잘 때 추운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인데, 아이 앞에서는 스스로 그 추운 구석으로 들어가 잠이 드는 것을 보며 엄마는 참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새 추워 짜증이 났던 것은 아침에 일어나 남편에게 하소연하며 풀었다.  

다행히 아이는 열도 없고, 아침에 일어나니 기침도 덜 하고, 콧물이 나는 것도 아니고, 딱히 어디가 아파보이진 않아서 평소처럼 어린이집에 보냈다.  나도 아이를 보내고 얼른 밀린 일을 해야 한다.  월요일에 뜻하지 않게 아이를 집에서 돌보면서 일이 밀려버렸기 때문.  

평소 평일 저녁마다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만 치이다 보니 둘이서 조용히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정말 부족하다.  평일은 평일이라 부족하고, 주말에는 주말대로 정신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주 월요일,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날 휴가를 쓰고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휴가가 부족한 우리에게는 아주 사치스러운 시간이다.  유명 리조트 호텔에 놀러가는 것 못지 않게 (그런 곳은 가본적도 없지만 ㅋ) 특별하고 소중한 선물같은 시간.  그 시간을 맘 편히 즐기기 위해서라도 오늘 내일 이틀간 효율적으로 일을 해 둬야지.  그래야 담주 월요일, 맘 편히 남편과의 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남편도 나도.. 다음주 월요일의 황금같은 우리만의 휴일만을 고대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