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난 날부터 아이가 왜 이리 잘 자나 싶었다.
갓 태어난 아기들이야 원래 다 잠만 자는 거 아니겠냐 하겠지만 첫째 잭에 비해 너무 잠을 잘 잤다.
한편으로는 우리도 '잘 자는 아기'에 당첨된 것인가 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너무 잠만 자는 아이를 보니 혹시 황달은 아닌가 걱정이 되어 아기를 낳은 날 나를 체크해주러 오는 조산사마다 모두를 붙들고 혹시 아이가 황달인 것 같지는 않은지 물어보았다.
우리가 물어본 모든 조산사들이 둘째 뚱이는 황달기가 없어 보인다고 대답을 하였고, 우리는 '잘 자는 아기' 복권에 당첨되었을 기대를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도 아이는 너무 잘 잤다. 사실 엄마가 아기 재우는 것을 도와주시다 보니 엄마의 숙련된 기술 덕에 아이가 더 잘 자는 것도 있는 것 같았다. 엄마가 아이 재우는 모습을 보니, 나와 틴틴이 첫째 아이 때 얼마나 뭣 모르고 아이를 키웠던가, 우리의 미숙함으로 육아가 더 힘들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아이때라도 엄마가 와 주셔서 엄마에게 이런 기술을 보고 배울 수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아이가 집에 돌아온 후 하루 하루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아이의 얼굴이 조금씩 노란 기운을 띠는 것을 발견했다. 황달이 아니려나 걱정을 하는데, 엄마는 그런 소리 하지 말라며, 괜히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그 이야기 때문에 안 생길 일도 생기고야 말기라도 할 것처럼 우리의 말문을 막으셨다.
영국에서는 아이를 낳고 나면 아이가 이틀째 되는 날 집으로 조산사가 찾아오고, 아이가 닷새 되는 날 또 찾아오고, 열흘 되는 날에 다시 또 찾아온다. 이틀째 되는 날 우리를 찾아온 조산사에게 아이가 잠을 너무 잘 자고, 황달이 걱정된다는 이야기를 전했고, 닷새째 되는 날 우리를 방문한 조산사는 간이검사기로 아이 황달을 체크하더니 황달이 있기는 하지만 다행히 피검사를 해야 할 수치 바로 아래이니 피검사는 하지 않아도 되지만 닷새 후 (열흘째 방문하는 날) 다시 체크를 해보자고 하였다.
아이가 열흘이 되는 날은 원래 지난 토요일이었으나 조산사들이 바빴는지 그날은 방문을 하지 않았고, 대신 월요일이 되자 오전에 조산사가 집으로 왔다. 조산사는 아이 체중을 재고 간이검사기로 아이 황달 수치를 체크했다. 이런.. 훨씬 높은 수치가 나왔다.
닷새째 조산사가 왔을 때, 일반적으로 빌리루빈 수치가 5일째 피크를 찍고 그 뒤로는 안정되면서 내려간다고 이야기를 했고, 그 때 이미 피검사가 필요한 수준 이하로 나타났기 때문에 두번째 검사에서는 더 낮은 수치를 기대하였으나 우리 모두의 기대와는 달리 빌리루빈 수치가 급격히 상승한 것이다.
놀란 조산사는 당장 피검사를 실시했고, 30분 뒤 사무실로 돌아가서 결과를 알려준다고 했다.
이후, 전화가 왔다. 현재 빌리루빈 수치 404로 (350이상이면 광선치료가 필요하고, 450이 되면 수혈을 해야 한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당장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병원에는 이미 이야기를 해뒀고, 여성병동 5층 1번방이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우리가 머문 방
황달이 뭐라고. 이미 첫 아이때 대부분의 황달이 생리적 황달로 아이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씻겨져 나간다는 것을 배우고 경험하여 알고 있으면서도, 당장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연락을 받으니 심장이 쿵쾅거리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그러나.. 내 옆에는 엄마가 계셨으니.. 우리 엄마는 가족들이 아프면 그것에 대해 아주 불안해하고 죄책감을 강하게 느끼시는 분이다. 나와 틴틴이 뚱이의 황달 가능성을 이야기할 때도 엄마는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며,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셨던 분이지만, 갑작스런 입원 통보에 엄마도 놀라셨을 것을 생각하니 엄마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는 없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틴틴에게 병원을 가야한다고 연락을 했고, 얼른 샤워를 하고 나와 아기가 병원에 이삼일 머물 짐을 챙겼다.
틴틴도 놀라기는 마찬가지. 다행히 올해들어 새로 바뀐 매니저도 아이가 있는 아빠인데다가 6월에 둘째 출산을 앞두고 있고, 팀원들 상당수가 아이 아빠들인지라 아기 건강 문제로 급하게 병원을 다녀와야 한다고 하니 다들 일 걱정 말고 병원에 가서 충분히 필요한 만큼 시간을 쓰고 오라고 배려해줬다고 한다. 그렇게 황급히 집에 도착한 틴틴.
우리는 얼른 가방을 챙겨 둘째 뚱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옥스퍼드 대학병원 JR로 향했다.
늘 교통체증과 주차난이 심각한 병원이건만 어제는 왠일인지 병원주변의 교통이 한산했다. 그러나 주차장은 여전히 만원. 우리는 20분간 대기할 수 있는 비상 주차장에 잠시 차를 대고 병원으로 올라갔다.
5층 1번 방. 5층은 내가 첫째 잭을 낳고 하루동안 입원해있던 병동이어서 친숙한 느낌이다. 방 번호도 마침 1번이다. 이 병원 7층에 있는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은 후 옮겨졌던 회복실도 1번 방이었는데, 이번 황달로 입원한 방도 1번 방. 우리 뚱이는 1번과 깊은 인연이 있구나, 엉뚱한 생각을 하며 방으로 들어왔다.
다행히 공동입원실이 아니라 독방이다. 작은 방에 싱글침대 하나, 세면대가 하나 놓여져있었다.
방에 들어오고 잠시 후, 우리 담당 조산사와 support worker 가 찾아와서 인사를 했다. 먼저, 담당 조산사는 우리 아이의 빌리루빈 수치가 수혈이 필요한 수치에 가깝기 때문에 바로 광선치료를 실시한 후 2시간 후에 다시 피검사를 해서 그 결과에 따라 격리병동으로 보내서 더 강한 광선치료를 받게 할지, 아니면 현재와 같은 광선치료를 받게 할지 결정할 거라고 했다.
그 전에 일단 다시 한번 피검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했다. 아침 9시반에 아기 발바닥을 찢어서 피를 뽑았는데, 오후 1시에 다시 피를 뽑고, 3시에 또 뽑겠다니 ㅠㅠ 황달보다 아이 발에 피를 뽑느라 아이가 아파할 것을 생각하니 당장은 그게 더 걱정되고 마음이 아팠다.
병원에 도착해서 실시한 첫 피검사. 결과는 다행히 예상보다 나았다. 아침에 측정한 것보다 훨씬 낮은 370이 나온 것이다. 350 이상이면 광선치료가 필수이므로 일단 일반 광선치료를 실시하기로 했고, 서프트 워커 (support worker)는 광선치료를 위한 장비들을 갖고 와서 설치해줬다.
아이는 기저귀만 차고 온 몸이 벗겨진 채로 광선담요 위에 뉘어졌고, 아이 몸 위에서도 광선이 내리쬐었다.
태어난 후 지금껏 집에서 따뜻한 속싸개에 폭 싸인 채로 생활한 우리 뚱이, 갑자기 팔 다리가 자유로워지니 아이가 너무 불안해했다. 치료 세팅을 마치고 서포트 워커가 나가기 무섭게 아이는 울어댔고, 나는 그 때부터 아이를 치료 침대에서 빼서 안았다가 다시 넣었다가, 수유를 했다가, 기저귀를 갈았다가를 반복했다. 밤새. 말 그대로 밤새도록..!!!
광선치료에 들어간 우리 아이
치료 세팅이 완료된 후 틴틴은 곧바로 회사로 복귀했다. 일을 더 하다가 4시가 좀 넘으면 아이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므로. 아이를 집에 내려놓고 틴틴은 집에서 6시까지 더 일을 해야 한다. 엄마에게 틴틴의 스케줄을 알려주고, 틴틴이 일을 마칠 동안 잭을 잘 돌봐달라고 부탁드렸다.
어제 오후 티타임. 집에서 엄마에게 철저히 통제당하던 식단에서 처음으로 벗어난 날. 디카프 홍차를 주문했더니 쵸코과자를 간식으로 함께 줬다. 냠냠 다 먹어치웠다!! ㅋ
마침 어제는 처음으로 영국에서 소꼬리를 사서 엄마가 오전에 소꼬리곰탕을 끓이기 시작하셨다. 엄마는 저녁에 틴틴을 보내 꼬리곰탕을 보내주겠다고, 집 걱정일랑 말고 병원에서 이 참에 산후조리한다고 생각하고 푹 쉬라고 하셨다.
엄마는 설 연휴에 아버지를 집에 혼자 두고 영국을 오신 게 못내 마음이 아프셔서 영국 오신 첫날부터 설날, 설 다음날까지도 마음이 안 좋으셨다. 설에 잠시라도 한국을 다녀왔어야 한다, 아버지 혼자 저게 뭐냐, 자식을 넷이나 키웠는데도 가까이 사는 자식이 하나도 없어서 너희 모두에게 강한 배신감을 느낀다 (?!! ㅠㅠ) 등의 발언으로 엄마를 곁에 두고 있는 내 마음마저 불편하게 하셨다. 나도 엄마가 필요한데 엄마는 몸이 불편하고 아프신 아버지가 더 걱정이었다. 나는 젋고, 옆에 남편도 있고 자식도 있는데, 아버지는 연세도 많으시고 아프고 불편하신 몸으로 명절마저 혼자 지내실 것을 생각하니 엄마 마음이 아프고 불편한 것도 당연하긴 하다.
어쨌든 그렇게 어제 아침까지도 불편한 기색을 하셨던 엄마는 우리가 갑자기 병원으로 가야하게 되자 태도가 돌변하셨다. 별 것 아닌 일이지만 나름 우리 집에서는 비상시국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엄마에게 "엄마가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엄마가 계시니 나 잭 걱정 안 하고 병원 다녀 올게요." 등등 엄마가 여기 계신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고, 특히 이런 상황에서 얼마나 의지가 되는 존재인지 엄마에게 여러번 말씀드렸다.
역시.. 엄마는 강하다. 아니, 강하지 않겠지만, 강한 척 하는 데에 강하다. 엄마는 엄마도 내심 놀랐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셨고, 평소에는 저녁이면 두통에 피곤하셔서 우리에게 잭을 맡기고 엄마 방으로 '퇴근'을 하셨는데, 어제는 잭을 돌보고, 내게 갖다주실 도시락을 챙기시고, 병원에 오셨을 때도 영국 오셔서 그 어느때보다 표정이 밝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그래, 이렇게 병원에 며칠 있다 나왔어야 하는데. 지금이라도 병원에 이렇게 있으니 너무 잘 됐다. 이 참에 한 일주일 병원에 있다 와라. 집 걱정은 말고."
영국 병원 시스템을 잘 모르는 엄마는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셨다. 입원하고싶다고 입원시켜주는 곳이 아닌데 말이다. 그래도 엄마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따뜻해졌다.
병원에서는 조산사가 다시 찾아와서 의사와 의논을 했는데, 아이 빌리루빈 수치가 많이 내려갔으므로 2시간 뒤에 체크할 필요가 없고, 일반적으로 하는대로 6시간 이후에 피검사를 다시 하겠다고 했다.
일단, 빌리루빈 수치가 광선치료를 요하는 수준인 350에서 50단계 이하로, 즉 300 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그 때 광선요법을 중단한다고 했다. 그 후 광선요법 없이 12시간 후 추이를 본 후 퇴원을 할지 말지 결정하게 될 거라고.
일단 300까지 수치가 내려가야 하고, 또 그로부터 12시간 후에 피검사를 다시 하니 하루 더 입원을 해야 하는 것이 자명해졌다. 그래서 어제 저녁 엄마와 틴틴은 나에게 음식도 가져다 주고, 엄마를 보고파하는 잭도 엄마를 만나게 해주고,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잭을 재우겠다는 계획으로 저녁 8시쯤 집을 나서 병원으로 오셨다.
차에서 늘 지겨워하며 떼를 쓰는 잭이건만, 엄마와 뚱이가 병원에 있다는 이야기에, 그래서 엄마와 뚱이를 보러 간다는 이야기에 아이가 상황이 뭔가 평소와 다른 것을 눈치챈 것인지 아이가 아주 얌전히 병원까지 왔다고 했다.
원래 이 병동은 한번에 2인의 방문객만 방문이 가능하고, 12세 이하 아동의 경우 환자 본인의 자녀 외에는 방문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혹시나 싶어 직원에게 성인 둘에 우리 아이까지 올 수 있겠냐고 물어보니 1번 방 방문객은 관계없다며 융통성을 보여줬다. 다인실이 아니라서 그런데다가, 특별한 질환으로 입원한 게 아니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병원을 온 잭은 난생 처음보는 세팅에 당황한 것 같았다. 어리둥절. 그리고 호기심. 그리 애타게 찼던 엄마가 여기 있는데도 나를 조금은 외면하는 듯했다. 낯선 곳에서의 내가 어색했나보다.
음식을 전달하고 잠시 대화를 나누고 뚱이를 들여다보는 동안 잭은 이미 졸려서 남편에게 안겨 남편에게 머리를 기댔다. 집에 가야 할 시간.
엄마가 잭에게 물었다.
"선우야, 너 여기서 엄마랑 자고 올래?"
그랬더니 아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선우야, 너 뚱이처럼 저 안에 들어갈까?"
하니 아이는 고개를 더 흔든다.
그리고 조용히 아빠 손을 잡고 병실 밖으로 나섰다.
나는 방 문 앞에서 엄마, 틴틴, 잭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런 나를 발견한 틴틴과 엄마는 잭에게 엄마에게 인사를 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잭은 손을 흔들며 바이바이를 한 후 얌전히 엄마와 틴틴을 따라갔다.
그렇게 다들 돌아가고 난 후.. 긴 밤이 시작됐다. 큰 아이 없이 혼자서 둘째 아이만 보니 얼마나 편하겠는가 했지만, 바뀐 환경에, 벌거벗겨진 몸 상태에, 병실은 또 너무 건조해서 아이가 너무 너무 불편해했다. 어제 저녁 검사에서 다행히 아이의 빌리루빈 수치는 광선치료를 요하는 수준 이하로 떨어졌다. 324. 그러나 광선을 끄려면 300미만으로 떨어져야 하므로 밤새 광선치료기가 돌아갔고, 그 소음과, 그 열기를 식히느라 돌아가는 팬이 만들어내는 건조한 공기탓에 집에서는 한번 잤다 하면 적어도 2시간에서 길면 4시간도 자던 아이가 (단, 엄마가 재워줬을 때) 여기서는 30분을 견디지 못하고 낑낑대며 울어댔다. 전날 2시간 + 1시간 + 1시간, 딱 세번의 토막잠밖에 자지 못해서 너무나 피곤했던 나는 아이가 이렇게 힘들어하니 더 죽을 맛이었다.
결국은 새벽 언젠가부터 나는 아이를 내 옆에 뉘여 수유를 하다 잠들었다, 아이가 또 젖을 찾으면 수유를 하다 또 잠들었다를 반복했다. 이른 아침, 지금이라도 아이를 광선 아래에 넣어야겠다 싶어 잠든 아이를 살며시 눕혔는데, 눕히기가 무섭게 아이가 또 울어댔다.
하아..
나도 너무 피곤하다고.. 밤새 등을 침대에 바로 대고 누워본 적이 없었다.
결국 도움을 요청했다.
나이가 지긋한 Maternity Assistant 아주머니께서 오셨다. 이 아주머니는 어제 저녁 아이가 잠든 상태로 피뽑기에 성공하신, 아이 다루는 솜씨가 아주 숙련된 전문가셨다.
아이 상태를 설명드렸다. 속싸개 없이 있는 게 처음인데다가 아이가 코도 막혀서 누워있는 것을 너무너무 불편해한다고. 밤새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자다 울다를 반복했다고.
아주머니께서는 아이를 얇은 면 담요에 폭 싸시더니 아이를 본인 다리 위에 앉혀서 몸을 위위 돌렸다. 유투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서양인들의 아기 트림시키는 방법의 정석이었다. 그러자 아이는 그억~ 하고 큰 트림을 한번 했다. 그리고 아주머니의 손길에 따라 아이는 진정되며 눈이 스르르 감기는 듯했다.
아주머니께서는 아이를 자리에 눕혔다. 그리고 버둥거리는 아이의 다리를 살며시 잡고, 팔도 살짝 잡아주셨다. 미동도 않고 아이를 그렇게 가볍게 잡고 한참이 지났다. 아이는 점점 안정되며 스르륵 눈이 감길 듯 말 듯 하더니 결국은 코를 답답해하고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울어댔다. 중년의 전문가마저 포기.
"이따 코에 넣을 식염수를 처방해달라고 해요. 아이가 이렇게 누워있기 힘들어하면 직접 안아서 등에 광선담요만이라도 덮어주세요."
라고 당부의 말씀만 남기고 유유히 사라지셨다.
희망을 포기한 나는 그냥 아침 피검사때까지 광선치료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나도 살고 봐야하니까. 그리고, 빌리루빈이 떨어지는 추세를 봐서는 오늘 아침 검사에서는 무조건 300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확신했다. 그럼 결국 광선치료를 중단할테니 한두시간 일찍 중단한다고 큰일이야 나겠나 싶어 아이를 안고 수유를 하고 아이와 함께 잠시 침대에 누웠다.
어젯밤에도 두시간에 한번씩 방으로 찾아와 아이 체온을 체크하던 직원이 오늘 아침에 또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그래, 바로 이 체온 체크 때문에 나와 아이는 더더욱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이의 온 몸을 벗겨놓고 있다 보니 혹시라도 아이 체온이 떨어질까봐 두시간에 한번씩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는데, 차갑고 딱딱한 체온계를 아이 겨드랑이에 대다 보니 그 때마다 아이는 깨서 울었던 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역시나 아이가 울었고, 나는 다시 아이를 안아들고 달래주었다.
집에서 엄마는 아이가 손 탈 수 있으니 되도록 안지 말고 아이를 달래라고 신신당부하셨는데, 우리 아이 하루 사이 엄마 손 제대로 탄 날이다. 아이로서는 계 탄 날이려나.
그리고 얼마 후 피검사를 하러 직원이 들어왔다. 젊은 여자 둘. 어제저녁의 그 숙련된 아주머니의 솜씨가 그리웠다. 겨우 잠든 아이가 직원이 발바닥을 찌르기 무섭게 아이가 울어댔기 때문.
피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나는 아이를 속싸개에 단단히 싸고 따뜻한 담요로 잘 감싸주었다. 아이가 한결 편해보였다.
그리고, 두둥~ 결과는?! 300미만으로 훅 떨어졌다. 야호! 당장 광선치료를 중단하고 12시간 후 다음 피검사에서 여전히 낮은 수치가 유지되면 우리는 퇴원이다.
어제 병원으로 올 때는 아이 입원으로 마음은 무거웠지만 오랫만에 나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아 한편으로는 기뻤는데, 단 하룻밤 사이 이 마음이 완전히 변했다. 뭐니뭐니해도 자기 집이 제일 편한 법. 아이와 자다 깨다 하더라도 엄마도 계시고, 틴틴도 있고, 귀염둥이 잭도 있는 집에 가서 잠을 설치는 편이 낫겠다.
따뜻한 싸개에 감싸진 아이는 이제야 두시간씩 잠을 자기 시작했다. 아이도 바뀐 환경이 낯선지 집에서보다 더 낑낑대긴 하지만, 아이야, 조금만 더 참아. 저녁에 아빠가 데리러 오면 형아랑 할머니 계신 집으로 우리 같이 돌아가자~
이상, 우리 아이 생후 11일-12일, 황달치료기, 끝~
병원에서의 모습들
어제 티타임에 제공된 쵸코비스킷. Hill Biscuit에서 나온 Chocolate Creams 이라고, 한통 (150g)에 1파운드 (1500원) 하는 저렴한 비스킷인데 얼마나 맛있던지. ㅋ 한국에서 먹던과자 맛 느낌이 났다. 뭔가.. 쵸코크림이지미나 쵸코맛일 뿐, 진짜 쵸코가 아닌 그런.. 맛? ㅋ
어제 저녁 식사. 파이 껍질 없는 Cottage pie. 맛이 없고 식감도 별로지만 매일 미역국만 먹다 다른 음식을 먹으니 새롭고 좋았다. 파이에도 감자가 들어가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탄수화물로 으깬감자를 선택했더니 접시가 감자판이다.
틴틴이 싸준 내 간식. 죄다.. 우리 큰 아들, 잭의 간식이다. --;;;;; 잘 먹을게, 잭~
광선치료 중인 뚱이. 잠시 이렇게 잘 때도 있었다. 눈을 보호하기 위해 씌워준 안대를 너무너무 싫어해서 결국 이렇게 돔처럼 생긴 뚜껑을 아이 얼굴에 덮어두었다. 그 뚜껑을 꼬옥 잡고 있는 손이 너무 귀여워서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생각하는 사람, 로뎅? 처음으로 아이를 벗겨놓고 아이 손 발을 마음껏 볼 수 있었던 날. 아이의 다양한 동작이 귀여웠다.
오늘 아침 내 식사. 다른 씨리얼보다 차라리 단 맛 없는 단백한 위타빅스가 그나마 낫다. 오늘은 바나나까지 하나 줘서, 어제 틴틴이 보내온 바나나에 이 바나나까지, 아침에 바나나를 두개나 먹어치웠다.
위타빅스를 뜯으면 아래와 같이 생겼다. 이걸 우유에 말면... 왓포드댁이 말하는 소여물같은 모양이 된다. ㅋ 그래도 먹다 보면 맛있다.
오늘의 내 점심. 점심은 터키 코티지 파이를 시키고, 후식은 오렌지로 주문. 두달만에 먹는 오렌지. 보기에는 볼품없었으나 맛은 좋았다. 쥬스는 concentrate이라 반도 못 마시고 버렸다. 오렌지를 먹고 오렌지쥬스를 먹으려니 안 넘어가더라는..
뚜껑을 열면 역시나 또 으깬 감자. 어제 저녁에 제공하고 남은 감자가 아닐까 의심까지 하게 되는 ㅋ 야채가 많이 나와서 야채를 먹는 데에 의의를 둔 식사. 맛은 정말.. 별로.--;;; 야채마저도 별로라는.. (너무 익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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