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2017-20

[영국 락다운4주] 도시봉쇄 상태에서 아이와 살아가기

옥포동 몽실언니 2020. 4. 19. 21:04

안녕하세요.  영국 사는 몽실언니입니다. 

영국은 도시봉쇄 (Lockdown, 락다운) 를 실시한 지 한달이 되었습니다. 

저희 잭이 어린이집을 가지 않은지도 딱 한달이 되었네요. 

저희 남편 틴틴의 회사는 락다운 되기 일주일 전부터 전사원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틴틴이 재택근무한 지 딱 일주일 되던 때부터 아이 어린이집도 봉쇄령으로 닫게 되면서 지난 4주 내내 온 가족이 함께 집에 머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4주의 시간 중 2주는 틴틴이 근무를 했고, 그 후 2주는 육아휴직을 사용하여 집에서 쉬었어요. 

남편의 2주 육아휴가 기간 중에 저에게 작은 소망이 있었다면 

1. 매일 샤워하기 (애가 둘이다 보니 매일 샤워하는 게 아주 럭셔리한 일입니다 ㅠㅠ)

2. 매일, 아니 2-3일에 한번이라도 블로그 글 하나 쓰기

였는데, 저는 매일 샤워는 커녕.. 머리에 기름이 줄줄 흐르고 비듬이 덕지 덕지 붙어 제 머리 냄새에 제가 머리가 아픈 지경이 되어서야 겨우 샤워를 하고 있고, 블로그 글은 남편의 휴가가 끝나가는 시기가 되어서야 겨우 하나 올리네요.  그런데... 그 와중에 저희 틴틴은 대상포진에 걸렸습니다!!!!! ㅠㅠ 아 정말.. ㅠㅠ 이런 시국에 대상포진이 왠 말입니까!!  틴틴의 육아휴직 기간에 실컷 쉬어보기를 꿈꿨던 저는 틴틴의 대상포진으로 인해 그저께부터 두 아이를 모두 제가 데리고 자고 있습니다.  틴틴이 잠이라도 혼자 자야 체력을 좀 회복할 것 같아서요. 

그간 저희에게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요.  

4주간의 시간이 넉달은 되는 듯이 느껴질 정도로 길고 지난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영국에서는 현 여왕의 아들인 찰스 왕자 (윌리엄, 해리 왕자의 아빠) 도 코로나에 걸렸다 회복했고, 이 나라의 실질적 수장인 총리 보리스 존슨도 코로나에 걸려 중환자실까지 들어갔다가 퇴원한 상태입니다.  일반인들의 코로나 감염과 사망 정도는 말할 것도 없이 심각한 상황이지요..  특히, 충분한 보호장구 없이 일을 하고 있는 의료인들이 많다 보니 의료진 사망 소식도 잦은 편인데, 그런 소식을 들을 때면 마음도 아프면서, 이 나라의 시스템에 화도 나고, 이런 사회에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에 불안하고 괴롭기도 하답니다. 

한국에도 잘 알려졌듯이 영국은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휴지와 식료품 사재기가 아주 심각했습니다. 분유, 기저귀 품귀현상까지 일어났으니, 정말 말 다 했죠..  온라인 쇼핑은 배달 예약을 잡기가 아주 하늘에 별따기였어요.  마트들마다 노약자 우선으로 배달을 해 주는 정책을 펼치다 보니 일반인들이 마트 배달을 받기는 더더욱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노약자를 우선시해주는 것은 좋은데, 어린 아기가 있어서 마트 가기가 꺼려지는 우리 같은 가족도 어떤 측면에서는 약자인데,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나 불안감이 큰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희 가족은 어찌저찌 온라인 쇼핑에 성공하여 지난 한달이 넘는 시간동안 마트에 간 일이라고는 딱 두번, 저희 둘째 뚱이의 해열제를 사야 해서 어쩔 수 없이 마트에 간 일이 전부입니다.  아이 첫 예방접종 후 해열제를 꼭 먹여야 하는데, 집 앞 마트에 갔더니 해열제가 없잖아요. ㅠ 마트 문 여는 시간에 맞춰 갔는데도 해열제를 구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그 다음날 틴틴이 동네에서 가장 큰 마트에 아침 6시 30분에 가서 해열제를 구해왔어요.  그게 저희가 지난 두달여의 시간 중에 마트에 간 전부입니다.  나머지 쇼핑들은 온라인 마트도 이용하고, 동네 고깃집에서 야채와 과일 꾸러미도 배달을 함께 하길래 동네 고깃집으로부터 식재료를 배달받기도 하고, 동네 농장 가게에서도 식재료 배달을 실시한다기에 거기에도 몇번 주문을 해서 받아 먹었어요. 

바로 아래가 고깃집에서 보내준 고기와 야채꾸러미, 과일꾸러미 박스입니다. 

과일과 야채 모두 알도 굵고 실한 녀석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다만, 야채의 경우 제가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서양식 재료들도 많아서 그것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양 요리를 해야 했어요.  골고루 먹으니, 뭐 이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뭘 사야하나 고민할 필요 없이 알아서 골고루 가져다 주니 그것도 편하구요.   

과일꾸러미는 저나 잭 모두 과일은 가리지 않고 잘 먹으니 어떤 과일을 가져다 줘도 땡큐입니다.  저희 집 과일은 저랑 잭이 거의 다 먹고 틴틴은 맛만 보는 정도예요.  ^^; 잭은 저를 닮아서 그런가 과일을 정말 정말 좋아합니다. 

바로 아래의 물품들은 동네 농장 샵에서 배달받은 "Essential Box"예요.  빵 한덩이, 우유 큰 것 한통, 계란 12알, 버터, 쥬스 1병으로 구성된 것인데, 저희는 거기에 우유와 계란을 더 추가해서 받았어요.  마트에 직접 가지 않고도 꼭 필요한 식품을 배달받을 수 있어서 아주 편리했어요.  특히 그날 주문하면 주문 후 1-3시간 사이에 배달을 해 줘서 이렇게 꼭 필요한 빵과 우유, 계란을 바로 가져다 주니 얼마나 고맙던지.. 대신 가격은 마트에서 같은 물건을 사는 가격에서 5파운드 정도는 더 비싼 느낌이었어요.  배달비 2파운드까지 생각하면 한국돈으로 만원 정도의 웃돈을 주고 사는 느낌?  약 3만원에 2만원어치의 물건이 들어있는 느낌?  좀 세긴 하죠?  그래도 동네 농장샵에서 가져다 주는 물건이라 일반 마트 물건과는 좀 다르고 - 훨~~씬 맛있는 빵이 배달되었어요!! - 저희의 구매로 지역 경제가 더 활성화된다고 생각하면 그 값어치는 충분하다고 여겨지는 구매입니다. 

락다운을 실시한지 4주가 되자 이제야 어느 정도 온라인 마트들도 정상화되는 느낌이에요.  저희가 주로 음식을 배달받아 먹던 Ocado 는 이제 7일에 한번은 배달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줄 수 있게 되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 덕분에 이제는 마음 졸이지 않고 일주일에 한번씩은 온라인 마트로 장을 보면 되게 되었어요.  다행이죠?

그간 저는 다시 집에서 잭을 돌보는 생활에 적응해야 했고, 잭은 엄마 아빠의 관심을 동생과 나눠가지는 생활에 적응해야 했고, 틴틴은 아이와 제가 이따금 본인 일을 방해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일을 해야 하는 생활에 적응해야 했어요.  막내 뚱이는 배고플 때 바로 먹지 못 하고, 잠 올 때 바로 자지 못하는 생활에 적응해야 했구요.  잠 들기 무섭게 형아가 깨워버릴 때도 있고, 엄마 우유를 한참 먹는데 형아가 제 목을 꺾을 기세로 덤벼들기도 하니 말이에요. 

간만에 전업 육아 생활로 돌아오니 저는 저대로 잭에게 휘둘리는 생활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동시에 잭이 아빠 일을 방해하지 못하게 막는 일도 해야 했고, 잭과 남편 모두의 아침, 점심, 저녁 뿐만 아니라 오전 간식, 오후 간식도 챙겨야 했고, 그 와중에 뚱이 수유도 하고 뚱이 낮잠도 재워야 하고..  그러면서 틈틈히 온라인 마트에 접속하며 장도 봐야 했지요.  다시 적어봐도 정말 힘든 시간이었네요. 

그래도 남는 건 추억이고, 추억은 사진 속에~  사진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장면만을 담아내는 놀라운 기계입니다. 

저는 잭과 집에 남아돌던 오트밀을 이용하여 쿠키도 만들어 먹었고, 

어린이집 안 보내는 대신, 그 비용 중 일부를 장난감과 놀잇감에 과감히 투자하여 조금이라도 편하게 육아하자는 마음으로 아이 장난감도 제법 구입했어요.  고맙게도 주변 친구들에게 선물을 좀 받기도 했구요.  아래는 선물받은 퍼즐을 맞추며 재밌어 하는 잭의 모습입니다. 

벽에 낙서를 하려고 하는 잭을 겨우 뜯어말려 벽에 스케치북을 한장 떼어 내어 붙여주며 아이의 예술혼을 맘껏 불태우게도 해주었어요.

지난 주와 이번 주는 한달도 넘게 전에 미리 예약해둔 육아휴직 기간이라 2주간의 고된 [남편 재택근무+저의 두 아이 동시 전업육아] 시간을 마치고 한숨 돌리는 시간이었어요. 

마침 날씨도 너무 좋아서 잭과 틴틴은 가든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작년 여름에 열심히 갖고 놀았던 물놀이 테이블을 다시 꺼내줬더니 잭은 물놀이는 하지도 않고 바닥에 뒹굴던 행주를 주워들고 물놀이 테이블을 깨끗이 닦으며 청소를 하더군요.  엄마 아빠가 해 주지 않으니 놀이기구 청소도 셀프로??? ㅋㅋ  청소가 뭐라고, 잭은 엄마 아빠가 청소하는 것도 모두 다 따라해보고 싶은가 봅니다. 

둘째 뚱이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 것도 모른채 그저 좋습니다.

락다운이 3주가 넘어가니 집에만 쳐박혀있던 저희 잭도 몸이 근질근질했나봐요.  집에서 아무리 뛰어놀고, 가든에서 아무리 놀아도 자기도 지겹긴 지겨웠는지 집 밖을 가리키며 밖으로 나가자고 떼를 쓰기 시작했어요.  코로나도 무섭고, 코로나로 인해 특히 심해진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 때문에 밖에 나가기가 너무너무 꺼려졌는데, 아이가 너무 원하니 어쩔 수 없이 며칠 전부터 집 앞으로 산책을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최대한 사람이 없는 곳으로 산책을 간다고 가는데도 날씨가 좋아서인가 길에 사람들이 제법 보여서 저희는 더더욱 사람이 없을 곳으로만 찾아다녔어요.

집 밖을 나가 보니 봄이 성큼 와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예쁘게 핀 벗꽃을 보며 저희 잭도 좋아했어요. 

오늘은 날이 따뜻해서 한국에서 작은언니가 사 준 예쁜 청자켓을 입고 외출을 했습니다.  저희 잭이 집 앞은 재미없다고 나가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집 안에서만 3주 넘게 지내더니 이제는 집 앞 골목도 너무 좋아해요.  아래 사진은 앞옆옆옆옆집 코너에 있는 작은 공터에서 오늘 아침에 찍은 사진입니다. 

집에 돌아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유혹하는 데는 달달한 간식만큼 효과적인 게 없습니다.  먹는 걸로 아이를 유인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저도 손쉬운 방법을 쓸 수밖에 없어요.  ㅠ 육아는 현실입니다.  달콤한 웨이트로즈 허니오트바를 먹으며 웃는 잭~

코로나로 영국은 현재 확진자 11만 4천명이 넘고, 15,464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ㅠㅠ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할많하않"...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말 뿐입니다. ㅠㅠ 

왜들..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 않는 것인지.. 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동양인에게 오히려 인종차별적 공격을 해 대는지.. 왜 공공장소 외출시 집에서 만든 면마스크라도 쓰고 다니라고 하지 않는지.. ㅠㅠ  워낙 안타까운 죽음 소식을 많이 듣고 있는지라.. 짧게 뭐라 말로 하기가 쉽지가 않네요. 

놀라운 것은 이런 충격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산책하고, 조깅하고, 일상적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주변 영국인들의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왜 이들은 이 상황에 분노하고 일어나지 않는지... 다시한번.. 저는 할많하않... 

아무튼, 여러분.. 건강이 최고입니다.  모두들 부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