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언니 다이어리/결혼

[부부일기] "우리도 좀 부부같이 살아볼까?"

옥포동 몽실언니 2020. 9. 15. 06:55
오늘 저녁. 

거실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때우며 아이들이 잘 시간만을 기다리다 문득 남편에게 그랬다. 

"우리도 좀 부부같이 살아볼까?"

그랬더니 남편 왈,

"그러자. 샤워?"

“응? 푸핫! 틴틴은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아니, 우리가 이미 부부같이 살고 있는데, 딱 하나 그것만 빼고. 그럼 어떻게 더 부부같이 살아?"

“부부같이 대화도 하고…”

“대화 항상 하잖아.”

“업무분장만 하지, 그걸 대화라고 하기 힘들지!  그나저나, 나 좀 전에 샤워 했는데? 틴틴도 아침에 샤워했잖아.”

“그렇지. 그럼… 이따가…?”

“푸하하하하”

우리의 19금 대화는 여기까지. 

부부같이 사는 건 뭘까?  대화는 중요하다.  같은 단어로도 서로 다른 것을 생각하니.  나라고 틴틴이 생각한 것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실은 틴틴이 너무 귀신같이 단번에 알아들어서 웃기면서도 민망해서 말을 돌린 것이었다. 

*** 

그리고 얼마 뒤, 드디어 아이들이 잘 시간이 되었다.  

자러 가기 싫어하는 잭을 침실로 가자고 꼬드기기 위해서 침실에 가서 옷장 정리를 좀 더 하다가 자자고 했다.  아이 침실에 내 옷장도 함께 있는데, 이번에 옷장 아래에 작은 서랍장을 하나 만들어 넣으면서 못 입거나 안 입는 옷들은 과감하게 처분하고 꼭 입을 옷들만 서랍에 다시 넣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애들만 없으면 하루 반나절도 안 걸릴 일이 애들이 있으니 며칠, 몇주에 걸쳐서도 제대로 되지가 않는다. 

자기 전에 아이와 다시 ‘옷정리 놀이’를 하며 박스에 들어있던 옷을 꺼내어 서랍에 담을 것과 채러티로 보낼 것을 구분했다.  옷 박스에서 내가 아끼던 옷들, 임신 출산으로 입지 못해서 고이 넣어두었던 옷들이 나왔다.  

그 중 하나가 지금 입고 있는 겨울 가디건.  엄마랑 그 옷을 사러 백화점을 갔던 날, 그 돈을 주고 그 옷을 사야겠냐고 못 마땅했던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는 화사하고 화려한 옷을 좋아하는데, 난 그렇지 않다 보니 내가 맘에 들어하는 옷이 엄마 눈에는 그리 이쁘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내가 기어코 그 옷을 입겠다고 마지막까지 고집을 피웠을 때, 그리고 그 옷이 너무 맘에 들어 집에 와서도 입고 좋아하던 내 모습에 엄마는 내 취향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랬던 엄마와의 추억부터 그 옷을 입고 지냈던 수 년의 시간들.  옥스퍼드에서 그 가디건을 입고 지냈던 수 많은 겨울들.  모든 것이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우여곡절 끝에 잭이 잠들었고, 잠든 잭을 뒤로 하고 난 그 가디건을 걸치고 거실로 내려왔다. 

잘 입지도 않는데도 버리기가 힘들어서 못 버리고 갖고 있던 옷.  앞으로도 몇년간은 입을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은 옷.  그런데도 차마 버려지지가 않는 옷이라고.  추억이 너무 가득해서 버려지지가 않고, 20년 후에라도 꺼내 입고 싶을 것 같아 못 버리겠다고 했더니 틴틴이 버리지 말라고 했다.  갖고 있고, 나중에 애들에게 물려주라고. ㅋ 

그리고 거울을 보는데, 이상하게 옷이 작다. 

“이 옷이 이렇게 작았나? 옷이 세탁하면서 줄었나?”

“옷은 그대로인 것 같은데?”

“으응..?? 아.. 그런가... (그래, 옷은 그대로인데 내가 커졌지…).  잘 입지도 않을 옷인데, 더 갖고 있지 말고 채러티로 보낼까?”

“갖고 있어. 그건 고칠 수 있으니까. I can fix it!”

그래. 맞다. 살을 빼서 입으면 되지.  틴틴이 자기가 그렇게 해 줄 수 있단다.  자기가 그걸 고칠 수 있다니.  그 말에 웃음이 절로 터졌다. 

과연, 살이 빠질 날이 올까?  틴틴은 지난주 한 주간 달리기를 하루에 2킬로씩 했을 뿐인데도 어느새 허리띠 한 칸이 줄었다고, 나도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줄 수 있단다.  자기 몸이랑 내 몸 다른 건 생각도 않고. 

“뭐야, 자기 살 금방 빠졌다고 이렇게 놀리기야?”

대꾸했더니, 

“다음주부터는 너도 달려.  아침마다 내가 너 달릴 수 있도록 시간 만들어줄게.”

틴틴의 I can fix it 이라는 말 한 마디에 약이 오른 나는 틴틴에게 복수해줬다. 

“달리는 데 힘 다 빠져서 애들은 어떻게 봐? 내가 틴틴처럼 하루종일 앉아서 입으로만 노닥거리고 손가락만 놀리면 되면 나도 달리겠다!”

틴틴은 푸핫 웃으며 자기 일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냐며, 이렇게 복수하기냐고 눈을 흘겼다. 큭큭. 

그나마 이렇게 서로 놀리고 장난하는 재미. 그게 우리 부부가 사는 재미이다.

그렇게 틴틴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놀면서 난 랩탑으로 미루고 미루던 이케아 온라인 주문을 넣고 (작업실에 작은 책장을 하나 넣고, 거실 정리용 수납박스들도 좀 사기로 했다), 틴틴과 한 이야기가 웃겨서 그 이야기들을 이렇게 블로그에 적었다.  그 사이 틴틴은 아이 젖병 소독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쓰레기를 버리고, 혼자서 와인도 한 잔 마셨다.  그리고 할 일이 많다며 작업실로 먼저 올라가겠단다. 

“뭐야. 같이 가. 같이 가려고 내가 지금껏 기다린 건데~” 

“진쫘? 강동희야 (감동이야)~~”

그렇다. 틴틴은 아재다.  아재개그를 좋아한다.  저런 아재 개그에 “뭐야~~” 하며 타박을 하던 나는, 이젠 틴틴의 저런 아재 개그가 사랑스럽다 못해  몹시 귀엽기까지 하다.  부디 내 이 마음이 앞으로도 변치 않기를..! ㅋ